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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였던 내가 여신이 되었습니다-88화 (88/138)

〈 88화 〉 #87 다시 모이다

* * *

생각 없이 행동하는 녀석들을 함정에 끌어넣기는 정말 쉽다.

쉽다는 의미는 생각대로 상대방이 행동해주기에 쉽다는 거지 과정이 쉬웠던 건 아니었다.

나와 엘로아는 그저 그림을 그렸다.

가장 이상적인 그림.

그림을 그리기 전에 가설을 세웠다.

저 녀석들은 그저 가짜고 인형이다.

마치 기계처럼 행동한다.

그런 사실에 근거해서 한 가지 의문을 제시했다.

그럼 공포나 고통 같은 원초적인 신경들은 기능할까?

그리고 우리는 가짜 로엔에게 상처를 내봤다.

처음에 바알의 기술로 상처를 주니 그 똑같은 기술을 사용할 때 더 조심해서 방어했다.

또 몇 개의 기술로 상처가 가해질 때 눈살을 찌푸린다든지 신경들이 반응하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우리는 밑 그림을 그렸다.

가짜 페르세스에게 큰 공포를 한 번 주고 엘로아의 왕관을 사용한다.

죄의 왕관.

엘로아의 왕관이다.

이 왕관은 언령을 강화해주는 무기이다.

언령은 세계에게 말을 거는 기술.

세계에게 말을 하면 세계가 그 말을 들어주는 기술이다.

하지만 이 관을 쓰면 상황이 달라진다.

세계에게 부탁하지 않게 된다.

그저 세계에게 명령을 내리게 된다.

이 모든 세계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된다.

기본적인 언령이라고 하더라도 효과가 확연히 달라진다.

언령 같은 경우 파괴력이나 강도를 조절할 수 없다.

그저 세계에게 부탁하면 세계가 알아서 움직일 뿐이다.

하지만 명령을 내릴 경우는 다르다.

강도를 조절할 수도 있고 그 일이 일어나게 하는 과정을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관은 세계에 하는 명령을 넘어서 세계의 모든 존재들에게도 명령할 수 있다.

이 능력을 사용하려면 제한이 있다.

상대방의 상태가 불안정할 것.

정말 애매한 기준이지만 그런 애매한 기준이라서 더 좋은 점도 있다.

불안정하게 만드는 방법은 많기 때문에 어렵게 방법을 찾을 필요 없다.

그래서 우리는 공포를 선택했다.

로엔을 무시하고 계속 페르세스만을 밀어붙여서 페르세스의 몸 상태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마치 우리가 가지고 놀았다는 듯 가짜 로엔을 가볍게, 압도적으로 죽인다.

그 상황을 가짜 페르세스에게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 버티지 못할 상황.

자신의 몸은 엉망이지만 상대방은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가짜 페르세스에게 공포를 심었다.

“쿨럭...”

가짜 페르세스는 자신의 심장에 칼을 꽂고 우리를 바라봤다.

그리고 눈의 힘이 풀리더니 쓰러졌다.

“끝이군.”

우리는 그렇게 그림을 완성했다.

“어?”

“어! 로엔!”

나와 페르세스는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주변에 괴물들이 좀 있어서 그 녀석들을 없애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포탈이 있는지 파악했다.

별다른 성과를 얻고 있지 못할 때 갑자기 있던 곳이 사라지고 흰색 공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우리 옆에 카리온과 엘로아가 나타났다.

“카리...!”

나는 갑자기 보는 얼굴에 반가워서 인사를 건네려고 했으나 방금 했던 실수가 생각났다.

그저 반가움에 인사를 건네려다가 당할 뻔했으니까...

나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카리온을 쳐다봤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가...가짜 아니지?”

“가짜인데?”

“...”

카리온이 당당하게 가짜라고 말하는 거 보니까 진짜인가 보다.

“가짜인지 진짜인지 따지는 걸 보니까 아마 가짜들을 만났나 보군.”

“응! 너희도 만났어?”

“만났지. 아주 골치 아팠다.”

엘로아가 말했다.

“얻은 정보 좀 공유해볼까?”

카리온이 웃으면서 말했다.

“정보?”

뭔...뭔가 있었나?솔직히 가고일을 잡은 일도 그렇게 큰일이 아니었고 가짜를 잡은 거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해줄 게 없는데...

내가 곤란한 얼굴을 하고 카리온을 보고 있었다.

으... 어떡하지...!

아 페르세스.

그러고 보니 페르세스도 같이 있었으니까 페르세스는 뭔가 알지도 모르지.

진짜와 가짜가 다른 점도 집어냈으니까!

내가 페르세스를 보자 페르세스는 날 보고 있었다.

“...어?”

“...음?”

우리 둘은 서로를 본 채로 멍하니 있었다.

페르세스... 너두?

“에휴... 별로 바라지도 않았으니까 됐어.”

“흐잉...”

뭔가 멋지게 말을 하고 싶었지만 어떡하는가.

진짜 모르는데.

“일단 너희도 가짜 녀석들을 만났었지.”

“응...”

“그 녀석이 그럼 인형처럼 행동했던 것도 알겠네?”

“그렇지...?”

페르세스의 말 대로라면 마치 인형 같다고 했다.

그런데 인형과도 다른 느낌이었다고 했다.

인형 같은 비 생명체와 싸우는 느낌은 아니고 사람과 싸우는 느낌이었다고 했으니까.

“그럼 몇 가지를 알 수 있지. 우리와 싸운 건 생명체고 그들을 인형처럼 조종하는 이가 있다. 그것도 우리의 힘을 따라 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우리의 힘을 따라 할 수 있다.

이건 그냥 쉽게 넘길 일이 아니다.

우리 한 명, 한 명의 힘은 누구도 넘볼 수 없을 정도의 강함이다.

그런 4명의 힘을 전부 따라 할 수 있다고?

“그게 물리적으로 가능한 거야?”

“불가능하지.”

“절대로.”

내 물음에 엘로아와 카리온이 동시에 답했다.

“그럼 뭐야?”

“계속 들어봐. 하지만 한 가지를 못 따라 했지. 로엔의 근원.”

“근원은 그냥 한 번 봤다고 따라 할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니까.”

내가 말하자 엘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우리들의 경험이나 다른 부분들도 따라 하지 못했다.”

“음... 그렇네.”

“그럼 이렇게 말할 수 있겠군. 우리들의 생각은 읽지 못했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든 걸 따라 했다고.”

“정확하게는 우리의 감각을 조종한 거지.”

“엥?”

내가 무슨 소리냐는 듯 묻자 카리온이 덧붙여 설명했다.

“한 마디로 감각들을 조종해서 우리에게 상대하기 힘든 상대를 보여준 거지.”

“그럼 내 근원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지. 근원을 느끼는 게 어떤 감각인데?”

“그...”

그러고 보지 마나를 느끼는 감각은 어떤 감각이지?

“광신들은 5개의 감각을 다루는 종파가 있지만, 육감을 다루는 종파는 없잖아.”

“엉? 육감이 있는 감각이야?”

“그럼 너가 신력과 마신의 기운을 다루는 감각이 어떤 감각이라고 생각했어?”

“그...그럼 그 녀석들의 행동은 어떻게 된 거야?”

“신의 생각은 읽지 못한다. 광신도들 주제에 어떻게 신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겠어.”

아... 그럼.

사람인데 좀 부족해 보이는 사람처럼 보였던 게 이해가 갔다.

우리를 복사했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복사하지는 못해서 그냥 사람처럼 보이는 정도만 구현한거였다.

“원래는 사람들을 복사해서 상대방이랑 싸우게 하는 함정일 텐데 신을 감당하지 못해서 뭔가 부족한 녀석들이 나온 거겠지.”

"뭐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우리의 감각을 조종한거지."

"감각을 조종하다니?"

내가 묻자 카리온이 주위를 가리켰다.

"이게 진짜 우리가 있었던 공간이고 우리가 봤던 건 전부 가짜라는 소리지."

"전부 가짜는 아니었겠지만 감각을 조종하는 함정이었던 건 확실하다."

엘로아가 말하자 나도 느껴지는게 있었다.

분명 공간이 바뀌었는데 원래 있던 공간에서 느껴지는 것과 크게 다를게 없었다.

"그럼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쇼한거야?"

"뭐 환각이라도 그 환각을 깨는 방법이 상대방을 죽이는 방법밖에 없었으니까 어쩔 수없었던 거지."

“그럼 이 공간은 뭐야?”

“이 공간은 하나의 제단이라고 생각한다.”

그 말을 하자 우리 주위에 괴물들이 모이는 게 느껴졌다.

여러 가지의 괴물들이 나타났지만, 우리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어떤 한 공간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 위를 보니 5개의 기운이 보였다.

공중에 떠있는 5개의 기운.

꺼림칙하고 불쾌한 느낌을 풍기는 기운이었다.

괴물들은 그곳으로 모이더니 몸이 녹아내렸다.

그리고 그 녹아내린 몸들이 섞이기 시작했다.

“뭐야...”

나는 끔찍한 그 장면을 보고 인상을 꾸겼다.

“저 녀석이 이 공간의 보스인거 같네.”

모두 전투 준비를 했다.

엘로아는 왕관을 매만졌다.

페르세스는 칼리버를 꺼냈다.

카리온은 바알과 솔로몬을 꺼냈다.

그리고 나는 근원을 꺼냈다.

“후딱 끝내자고.”

내가 말하자 괴물들이 모여 제대로 된 형체가 드러났다.

키메라.

그 괴물은 키메라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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