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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였던 내가 여신이 되었습니다-91화 (91/138)

〈 91화 〉 #90 에루

* * *

“이게 뭐야!!!”

페르세스는 화가 났는지 검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화가 날만 했다.

마신들의 복사체도, 키메라도 거의 다 죽여놨더니 그게 함정이었다니...

키메라를 잡을 때 페르세스가 가장 스트레스를 받았다.

페르세스가 혼자서 전위 역할을 맡아줬기 때문이다.

혼자서 키메라의 체액도 뒤집어 쓰고 키메라의 공격들도 다 받아치고...

내가 페르세스라도 화가 날 것 같았다.

스트레스도 스트레스였지만 밖이 문제였다.

신계에서 가장 강한 에레보스는 없고.

그 다음이라는 마신들은 전부 여기있고.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신이라곤 카루아 밖에 없다.

때문에 느껴지는 무력감.

그게 우리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

“일단 밖에는 카루아가 있으니까 버틸 수 있을 거다.”

엘로아도 나랑 같은 생각을 했는지 내 생각과 비슷하게 말했다.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엘로아가 침착하게 말했지만, 페르세스는 그게 마음에 안 드는지 화를 냈다.

“페르세스. 화가 나는 건 알겠지만, 지금 그럴 상황이 아니다. 우리를 가둔 거면 밖을 공격하겠다는 소리니까 빨리 나갈 궁리를 해야 한다.”

“그럼 어떻게 나가는데.”

“로엔 그 반짝거리는 녀석이 뭐래?”

카리온이 내게 묻자 내 머리 위에 있는 근원이 반짝거렸다.

“저는 반짝거리는 녀석이 아니라 미카미카에요!”

“그래. 그래서 여길 어떻게 나가.”

“그... 정보가 부족하고 기운도 부족해요...”

지금 문제가 몇 가지 있었다.

원래 미카미카를 이용해서 나가는 법을 알아내려고 했으나 이공간이 열리지 않았다.

이공간이 열리지 않는다는 말은 내 근원을 꺼내지 못한다는 소리였다.

내 근원은 전부 카리온이 만들어둔 이공간에 담아뒀으니까.

카리온이 가지고 있던 이공간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근원을 비상용으로 조금 꺼내놔서 미카미카를 이용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미카미를 이용해 여기를 탈출할 방법을 찾기에 근원의 양이 턱없이 부족했다.

“하... 그럼 여기서 그냥 손 놓고 있으라는 소리야?”

“으음...”

“밖하고 연결을 끊어버린 건가...”

엘로아가 혼잣말을 했다.

밖과 연결이 끊긴 상황.이동하는 건 물론이고 전언이 날아가지도 않는다.

“막막하네...”

엘로아와 카리온도 고민을 해봤지만 막막할 뿐이었다.

“그냥 이 공간 부숴버리는 건 어때?”

“다 죽자고?”

“이공간이 부서진다고 우리가 죽진 않잖아?”

페르세스의 말이 맞았다.

보통 이공간이 부서지면 그 이공간을 만들 때 정해뒀던 입구로 나오게 된다.

“안쪽에서 부술시 공간 먼저 붕괴하게 만들었어.”

“뭐?”

“생각해봐. 마물들이 이 공간을 부수고 나오면 골치 아프다고. 나도 보험을 들어놓은 거지.”

“그럼 어떡해...”

나는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말했다.

“로엔님! 힘내세요!”

미카미카는 그런 나를 보고 반짝이며 응원했다.

“흐으... 이대로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해?”

나는 한숨을 쉬며 미카미카를 봤다.

미카미카를...

미카미...... 미카미카?

“그러고 보니 미카미카는 어떻게 움직이는 거야?”

“네? 작동 방법을 물어보시는 거에요?”

미카미카는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아니. 미카미카는 원래 미카엘과 근원 그리고 내가 이어져 있어서 사용이 가능한 거라면서.”

“맞...죠?”

분명 미카미카는 말했다.

자신은 미카엘과 연결되어있다고.

“그럼 미카엘은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거 아니야? 그리고 밖과 연결이 완전히 끊긴 건 아니고.”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거 같아요.”

“일부는?”

“저가 미카엘님과 연결되어있는 건 맞는데 밖과의 연결은 끊긴 게 맞아요.”

밖과의 연결은 끊겼다고?

“그럼 너는 어떻게 연결되어있는 거야?”

“아마 이 공간을 단절시키는 힘보다 저와 미카엘님의 연결이 더 강하다는 소리겠죠.”

“일리 있어.”

미카미카의 말에 카리온이 답했다.

“어차피 이 공간을 만들고 관리한 건 나와 에레보스의 작품인데 미카엘은 주신의 작품이니까. 내 힘을 뛰어넘는 다른 기술을 사용했다면 가능하지.”

“그럼 미카미카. 미카엘한테 우리 말을 전해줄 수 있어? 그리고 그 말을 다른 사람한테 전하는 거지.”

“가능은 할 거 같아요... 그런데...”

미카미카는 말을 망설였다.

“그런데?”

“그러려면 미카엘님이 깨어나는 힘까지 해서 나와 있는 근원을 전부 사용해야 해요. 그리고 전할 기회는 단 한 번이에요.”

“한 번이라...”

단 한 사람한테만 전할 수 있다는 소리다.

잘못하고 그 사람을 잘못 선택한다면 모든 게 소용없어진다.

밖의 상황이 어떤지도 모른다.

만약 그 사람이 광신도에게 공격받는 중이라면 의미가 없어진다.

싸우는 도중 우리를 구하러 올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그 사람이 우리를 구할 힘도 있어야 한다.

“그런 말은 어느 정도까지 전할 수 있는지 좀 알려줄래?”

“두 마디에서 세 마디 정도에요...”

“두 마디에서 세 마디라...”

누구한테 전해야 하지?

그리고 어떤 말을...

나는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 누구한테 보낼지 생각 안 해?”

“이 바보야... 너가 미래를 봤으면서 왜 너가 그걸 모르냐.”

“에?”

나는 멍한 표정이 되었다.미래를 본 게 왜?

“로엔. 너가 미래를 봤을 때 누구에게 마법을 배웠지?”

엘로아가 천천히 말했다.

“그거야... 에루한테 배웠...지?”

에루...?

그게 왜...?

“내가 말했지. 좌표 역 추적 마법은 요정 여왕만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은 아니라고.”

“그랬지?”

아... 그렇다면...!

내가 표정이 밝아지자 카루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요정 여왕한테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

잔잔한 바람이 부는 숲.

에루는 나무에 누워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여왕님!! 여왕님!!”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흘린 침을 닦으며 일어났다.

“으... 낮잠 시간에 왜 그래... 하늘이라도 무너졌어?”

“그...그런 건 아닌데...”

“그럼 왜...”

에루는 아직 정신이 안 드는지 반쯤 눈을 감은 채로 말했다.

“1차원이 난리가 났어요!”

“1차원...?”

그 소리를 듣자 에루는 정신이 드는 듯 했다.

저번에 만났던 마신들.

그 중 엄청나게 착하고 마음에 들었던 신이 있었다.

로엔.

그 신이 1차원에 있다가 왔다고 했었는데...

그 생각을 하자 그 말에 약간의 관심이 생겼다.

“무슨 일인데?”

“하늘에 엄청난 포탈이 열리더니 거기서 광신도와 괴물이 내려왔데요!”

“...뭐? 그런 건 신들이...”

아.

에루는 한 가지 생각이 났다.

마신들은 자신이 알려준 마법으로 어떤 공간에 간다고 했다.

신들 중 가장 강한 그들이 전부 다른 공간으로 가버렸다.

그런데 그 때 그 녀석들의 적이 갑자기 공격 온다?

에루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다른 애들은. 다들 요정계로 돌아왔어?”

신들도 걱정이지만 일단은 자신의 아이들이 먼저였다.

“전부 돌아오지는 못했어요... 일부는 돌아왔는데 그곳에 갇힌거 같아요...”

“하...”

에루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자신이 그곳에 가서 아이들을 구할 수 있긴 했다.

하지만 전부 구할 수는 없을 거다.

아무리 자신이 요정 여왕이지만 자신은 공격 마법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대부분 보조 마법들.

그런 마법들만 알고 있다.

1차원에 있는 드래곤들보다도 못한 힘일 거다.

몇 명의 요정을 희생한다고 생각하면서 가지 않는다는 선택지도 있다.

자신의 아이들이 불쌍하기는 했지만 다른 차원의 일이긴 했다.

하지만 그렇게 다른 차원의 일이라고 넘겨도 될까?

로엔과 엘로아의 말을 생각해보면 1차원 만의 일은 아니었다.

1차원이 붕괴한다면 다음은 다른 차원이 될 수도 아니면 우리 차원이 될 수도 있다.

‘좋은... 좋은 방안이...’

에루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어... 여왕님?”

“잠시만...”

“여왕님 이것 좀 보셔야 할 거 같은데...”

“생각 중이니까 조용히 해봐.”

“여왕님 진짜 이것 좀 보세요.”

“아 좀!”

에루는 짜증을 내며 눈을 떴다.

그녀의 눈 앞에 아름다운 불빛이 떠있었다.

흰색을 띠고 빛나고 있는 기운.

“근원...?”

로엔이 보여줬던 기운과 똑같은 느낌이었다.

“로엔?”

에루가 혼잣말을 하자 그 기운은 글씨로 바뀌었다.

­로엔이야. 도움 요청. 에레보스의 방 2번째 서랍.

“로엔?”

그 글씨는 한동안 에루의 앞에 떠있다가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에루는 입꼬리를 올렸다.

자신을 괴롭힌 엘로아를 도우러 간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건방진 마신을 구하는 것도 싫다.

하지만 며칠 동안 자신이 가르친 자신의 제자! 로엔을 구해야 되지 않겠는가!

“여...여왕님?”

“난 갈 곳이 있어! 요정 중에 나이 좀 있고 능력 좋은 애들 좀 꾸려봐.”

“네?”

“장난 좀 치러 가자.”

“어...어디로요...?”

“어디긴 어디야. 1차원이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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