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 #92 결합과 분해
* * *
“침입자를 잡아라!!”
덜컹
“어? 로젤리아네. 혹시 여기로 요정 한 명 들어오지 않았어?”
“없었습니다.”
“그래? 일단 알았어. 무장 다 끝나면 일반 신 건물 앞으로 나와.”
“알겠습니다.”
그 천사는 로젤리아의 대답을 듣고 방에서 나갔다.
“이제 나오셔도 됩니다.”
“푸하! 고마워!”
에루는 베게 밑에서 나왔다.
“무슨 일 있어? 무장이라니?”
“1차원에 약간의 일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에루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광신도들에 대한 이야기인가...
에루는 어차피 알고 있는 이야기라 캐묻지는 않았다.
“그런데 나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아?”
“원래 로엔님의 일정을 보는 편이라서 저번에 에루님께 마법 배우는 걸 봤습니다.”
“일정을 본다고?”
“네. 일이 없을 때면 매일 로엔님 일정을 보는 편입니다.”
로젤리아의 말에 살짝 섬뜩해졌다.
“...그거 사생활침해 아니야?”
“...아닙니다. 그저 로엔님의 1분 1초를 놓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그게 사생활 침해잖아...’
에루는 모순되는 로젤리아의 말에 어이가 없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럼 로엔이 나에게 도움 요청한 것도 알고 있어?”
“그건 모릅니다. 어떤 공간에 들어가신 이후로 모습을 볼 수가 없어서...”
대체 어떤 공간에 있길래 천사들도 못 보고 있는 거지?
에루는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더 들었다.
그런 공간에서 도움을 요청한 게 왜 나지?
사실 생각해보면 얼굴을 본 건 며칠밖에 안 되고 그렇게 친한 사이...였나?
“으음...”
갑자기 든 딴 생각이었지만 결론은 이거였다.
‘그 잠깐 사이에 제일 믿음직한 존재가 나로 바뀐 건가?’
에루는 '나니까 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으로 웃음을 흘렸다.
“후후후...”
“그래서 뭘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아 그래. 날 에레보스의 방에 데려다 주겠어?”
“에레보스님의 방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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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면 된 건가?”
우리는 미카미카의 말 대로 준비를 해서 메시지를 보냈다.
에루가 잘해낼 수 있을지는 걱정이었지만 그래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 카루아는 광신도들이랑 싸우고 있을 거 같았고 믿고 보낼 만한 녀석들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지 않았다.
정령왕들한테 보낼 까도 생각해보았지만, 공간 마법에 관련해서는 에루를 못 따라왔다.
카리온의 말에 따르면 에레보스의 서랍 아래 있는 물건을 분석해서 입구를 뚫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려면 마법에 능숙한 녀석이 해야 하는데 우리 주위에서 공간 마법에 제일 능숙한 녀석은 에루였다.
뭐 그거 말고도 여러 가지 걱정거리가 있었지만, 우리가 걱정해봤자 의미가 없는 행동이었다.
이제부터는 에루가 해결해야 될 문제일 테니까.
“그럼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준비를 해볼까?”
카리온이 팔을 걷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준비?”
“요정 여왕이 우리를 구한 이후를 생각해야지.”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솔직히 다 끝난 거 아니야?”
“그렇다면 좋겠지만, 밖에 상황이 어떨지 모르니까.”
밖의 상황이라...
솔직히 밖의 상황은 아무런 기대도 하고 있지 않다.
지금 최고의 상황은 카루아와 다른 신들이 신관장들을 막고 있는 정도였다.
큰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막고 있는 정도.
그 이상은 기대도 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이 문제다.
광신이 이미 부활했을 때의 상황.
그리고 1차원이라는 방어선에서 제재하지 못했을 때.
그 상황은 나가더라도 너무 절망적이었다.
광신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내 표정이 안 좋아지자 페르세스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
“니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우린 강하니까 걱정하지 마.”
“...응! 그래서! 뭘 준비하면 되는데?”
내가 활기차게 말하자 모두의 표정도 좋아졌다.
“솔직히 우리 셋은 더 이상 뭐 발전하기도 힘들어.”
맞는 말이다.
솔직히 몇만 년을 살아온 신들인데 여기에 갇힌 시간 동안 갑자기 강해진다는 건 말이 안 됐다.
“그럼 너밖에 강해질 사람이 없겠지?”
...
솔직히 맞는 말이긴 한데...
지금 며칠 사이에 배운 기술, 능력만 몇 가지인지 모르겠다.
근원을 만들고 응용한 거부터 시작해서 공간 마법, 좌표 추적 마법...
이 정도 시간에 이렇게 많은 기술을 배우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내 주위에는 모든 차원 통틀어 제일 뛰어난 1타 강사들이 옆에 있어서 가능했던 거였지.
물론 학생도 뛰어났고?
어쨌든 여기서 더 배우다간 머릿속에 과부하가 올 거 같았다.
원래 공부하는 걸 싫어하지는 않는다.
이런 마법 같은 판타지 계열 공부는 재미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단기간에 머릿속에 많은 내용을 때려 박으니 공부 알레르기가 올 거 같은 느낌이었다.
“나 또 공부해야 해...?”
“뭐 새로운 기술이나 그런 걸 알려준다는 소리는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그럼 뭔데?”
“근원에 관한 이야기야.”
카리온의 말을 엘로아가 이어갔다.
“넌 근원을 사용할 때 보통 근원 그 자체를 이용해서 싸우지.”
“그렇지?”
“근원의 사용 방법은 그게 다가 아니다.”
근원의 사용 방법.
나도 나름 근원에 대해 빠르게 이해하고 여러 가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럼 어떻게 사용하는데?”
“일단 근원이 어떤 힘인지는 알지?”
“주신의 힘? 그런 걸 말하는 거야?”
“맞아. 근원은 주신의 힘이지.”
엘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신의 힘에는 2가지 종류가 있어.”
엘로아는 두 손가락을 들었다.
“하나는 분해의 힘. 로엔. 주신이 중간계를 어떻게 만들었지?”
나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다.
“어...”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주신님은... 자신의 몸을 나눠서 에레보스를 만들고... 또 자신의 몸을 나눠서 중간계를 만들었지.”
“맞아. 그게 주신의 힘이야. 자신의 몸을 분해한 거지. 주신의 힘으로는 모든 걸 여러 존재로 분해할 수 있어. 정확하게 반으로 나눌 수도 있고 어느 부분만 빼서 나눌 수도 있지.”
그런 힘이...
이거 말고도 한 가지 예가 더 떠올랐다.
“그럼 에레보스의 정신을 나눈 것도 그 힘이겠네?”
엘로아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정답. 그것도 주신의 힘이야. 에레보스의 정신을 나눈 거지.”
“그럼 다른 힘은?”
“다른 하나는 결합의 힘이야. 흩어져있는 것들을 섞거나 모을 수 있는 힘이지.”
결합의 힘?
“그건 어떻게 사용하는 건데?”
“차차 설명해줄게. 일단 이 힘들이 세상의 근간이라고 생각하면 돼.”
“이게 세상의 근간이라고?”
“세상의 모든 힘은 근원의 해체와 결합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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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아마 지옥이 있다면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1차원은 지옥의 형태가 되어갔다.
하늘에서 드래곤들이 날아다니면서 신관장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땅에서는 엄청난 기계 요새가 세워져 있고 그 요새는 마물과 신관장 둘 다 상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카론과 페나도 자신들의 힘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엘리시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한다고 전황이 좋아지지는 않았다.
마신이 없다.
이 사실만으로 전황은 광신도의 손을 들어줬다.
밀려오는 마물들을 막기만으로도 벅찬데 신관장들까지 있다.
그리고 교황은 얼굴도 비추지 않았다.
이 사실들만으로 전체적인 사기가 떨어지기 충분했다.
“이 시발 새끼들은 왜 이리 늦어.”
카루아는 욕을 내뱉었다.
이 새끼들의 의미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마신.
하나는 일반 신들.
솔직히 일반 신들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 같지만, 마신들이 없으면 이 싸움은 진다.
지금 전황은 신관장들을 상대하기도 버거웠다.
하지만 다른 마물들이 여기 차원을 망가트리는 것도 막아야 했다.
카루아는 요새 안에서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대로면... 모든 게 끝난다.
“하...”
폭격기 40%가 파손되었습니다.
요새 내구도가 30% 파손되었습니다.
메시지로 들리는 소리는 계속 안 좋은 소식밖에 없었다.
“마신 새끼들아... 제발 빨리...”
그들이 들어간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빨리 나오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후방에 강한 힘이 나타났습니다.
“뭐?”
카루아는 희망과 절망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들었다.
나타난게 마신인가?아님 교황?그렇게 뒤를 돌아보자 한 여성이 보였다.
인상을 엄청나게 꾸기고 있는 여성.
노아스였다.
“시발 이게 뭐야?”
노아스는 그저 귀찮은 일만 없기를 기도하며 왔지만 귀찮은 수준의 일이 아니었다.
“언제 이런 대 전쟁이 일어났데?”
카루아는 요새에서 나와 노아스 옆으로 갔다.
“노아스!!”
카루아는 그래도 희망을 느꼈다.
정령왕.
신계 같은 곳에서는 신들이 더 강할 수도 있지만 중간계에서는 정령왕이 최강에 가까웠다.
이 중간계 자체가 정령의 본거지 같은 곳이나 다름없으니까.
물론 신들이 중간계에서 인과율로 인해 약해진다는 전제하에 정령왕이 최강이라는 소리였지만 그래도 하늘에서 놀고 먹는 일반 신들에 비해 강한 거는 맞았다.
“야 이게 뭐냐.”
“일단 그런거 묻지 말고 다른 녀석들은 어디 있어?”
“그 녀석들이야 다른 차원 놀러 다니고 있지.”
“걔네도 전부 오라고 그래."
"음... 그래야 할 거 같네."
노아스는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떴다.
"금방 올 거야."
그렇게 말하는 동안 마물 몇 마리가 그 둘에게 달려들었다.
카루아는 신력을 이용해서 그 마물들을 처리했다.
"너도 이제 좀 싸워."
카루아가 말하자 노아스는 머리를 쓸어넘겼다.
“귀찮은데...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일이 큰 거 같네.”
노아스가 기운을 끌어올리자 바닥이 갈라지며 돌들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다 죽이면 되지?”
“어. 부탁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