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 #94 바뀌는 전황
* * *
단검에서 나온 마법진이 빛나자 에루를 빨아들였다.
그리고 에루는 황야로 도착했다.로엔과 페르세스가 있었던 황야.
그리고 에루는 나지막이 말했다.
“관리자 모드.”
그러자 에루는 그 공간에서 튕겨나듯 나와졌고 검은색 공간에 도착했다.
그 검은색 공간에는 책상 하나가 놓여져 있었고 책상 위에는 3개의 반 구가 존재했다.
하나의 반 구에는 황야가 그리고 하나에는 숲이 놓여져 있었다.
나머지 하나는 뿌연 안개가 끼어있었고 안개의 하얀색으로 안에가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갇혀있는 건가?”
에루는 뿌옇게 가려져 있는 반 구를 만졌다.그러자 에루의 손에 스파크가 튀기며 에루의 손을 밀어냈다.
스파크가 튀겼지만 그다지 고통이 있지는 않았다.
“끊어 놓은 건가?”
이공간의 권한.어떤 이공간을 만든 사람은 그 공간에서 최고 권한자가 된다.
그 공간에서 만큼은 그 사람이 왕이고 신이다.
물론 이공간에 들어온 사람과 차이가 심하면 그런 제한마저 무시할 수 있지만, 그렇게 힘 차이가 크지 않으면 권한자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공간은 조금 달랐다.
공간에 대한 권한을 권한자만 만질 수 있는게 아니었다.
이 공간은 먼저 들어와 있던 존재가 권한을 만질 수 있는 구조였다.
원래 같으면 에레보스와 카리온이 같이 이 공간을 관리하려고 만든 구조였을 거다.
어차피 이 공간에 들어오려면 이 공간의 입구인 단검을 만져야 한다.
단검을 만진다고 그냥 이 공간을 들어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괜히 미안하네...”
에레보스와 카리온은 나름대로 그에 대한 대처법도 생각해두었겠지만 에루의 마법으로 그건 깨져버렸다.
입구를 통하지 않아도 마음대로 들어올 수 있게 해주는 에루의 마법.
하필 그 마법이 이 공간의 허점을 정확하게 노려버렸다.
“그래도 내가 구하러 왔으니까.”
에루는 단검에서 편법으로 만들어둔 관리자 권한을 꺼냈다.
마법진을 꼬아서 만든 권한.
에루가 그 권한을 사용하자 구를 감싸고 있던 뿌연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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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서 근원에 대해 배우고 있자 어떤 빛이 우리를 감쌌다.
그리고 눈을 떠보니 우리 앞에는 에루와 로젤리아가 서 있었다.
"에루 해냈구나!!"
“헤헹! 내가 누군데! 이 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
에루는 평소처럼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잘난 척했다.
그런데 우리를 구해주고 에루를 보니 그게 잘난 척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귀엽게 보일 뿐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 괴롭힐거 같은 다른 신들도 가만히 있었다.
구해줬다는 공을 인정해주는 분위기였다.
“고마워 에루!!”
나는 에루를 붙잡고 볼에 마구 문댔다.
작은 에루가 내 볼에 비벼지자 위아래로 막 흔들렸다.
에루는 어지러운지 소리쳤다.
“으아!! 그만!!”
다른 마신들은 그런 우리를 보고 웃었다.
엘로아는 그런 우리를 보고 약간의 미소만 짓고 로젤리아에게 다가갔다.
“지금 상황이 어떻지?”
“많이 안 좋습니다. 1차원에서 광신도들과 총력전을 벌이고 있기는 한데 많이 밀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총력전? 총력전인데 너는 왜 여기 있는 거지?”
엘로아의 분위기가 살벌해지자 우리는 하던 행동을 멈추고 엘로아를 바라봤다.
“신계의 신들과 천사들은 대기 중입니다.”
“대기?”
엘로아는 어이가 없는 얼굴로 로젤리아를 바라봤다.
“신들은 이미 1차원이 밀린다는 가정 하에 병력을 신계에 모으고 있습니다.”
“뭐? 누구 판단이지? 카루아인가?”
“아닙니다. 카루아님은 1차원에서 싸우고 계십니다.”
“쓰레기 새끼들.”
엘로아는 무표정으로 욕을 내뱉고 앞장서서 어디론 가로 가기 시작했다.
“엘로아 어디가!”
“신들 조지러.”
엘로아는 평소와 같은 무표정이었지만 친한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빡침이 표정 안에 담겨있었다.
우리는 별 다른 소리를 하지 않고 엘로아를 따라갔다.
“일단 신계라도 지키는게 좋을거 같은데...”
“그냥 이대로 있어봤자 의미가 없다고. 그냥 손 놓고 보고 있을 건가?”
“아레스. 조금 진정해. 어차피 예전부터 했던 계획 아닌가. 1차원은 버리도록 하고 다른 수단을 취하자 는 게 잘못된 판단은 아니지 않는가.”
"그럼 카루아는, 카루아가 밑에서 싸우고 있지 않는가."
"카루아도 싸우다가 깨닫지 않겠는가. 막지 못하겠다고. 그럼 그때..."
로젤리아의 말에 따라 천사들이 모여있는 곳에 가자 신들이 모여서 싸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싸우고 있다고 해봤자 아레스가 다른 신들에게 항의하고 있는 것 밖에 되지 않았지만...
내 옆에 있던 마신들은 그 모습을 보고 인상을 꾸겼다.
그리고 페르세스의 입이 열렸다.
“너네 뭐하냐?”
페르세스가 말하자 신들과 천사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페...페르세스...!”
“엘로아!”
아레스의 항의를 듣고 있던 신은 엄청나게 놀란 표정을 했고 아레스는 제일 앞에 있는 엘로아를 보고 반가움을 표했다.
“지금 신들이라는 작자가 중간계를 버리자고 하는 건가?”
“그...그게 아니라... 최선의 방법을...”
“닥쳐라. 변명따위 듣고 싶지 않다. 그렇게 중간계를 버릴 거였으면 에레보스가 중간계를 멸망시키려고 할 때 왜 돕지, 왜 돕지 않았는가.”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지 않는가!”
“뭐가 다르지? 지금 여기서 하나의 중간계를 버린다는 판단을 한다면 다음에는 다를 것 같나? 아니. 다음에도 똑같다.”
엘로아는 살벌한 눈빛으로 신들을 쳐다봤다.
“다음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면 중간계 하나를 버릴 거고 그 다음에도 똑같다. 중간계를 구한다는 판단은 한 번도 안하겠지. 그저 글러 먹은 신이 될 뿐이다.”
엘로아는 말을 이어갔다.
“난 그동안 참아왔다. 일반 신들이 마신들보다 적은 일을 하고 나태한 태도를 보여도 신의 역할을 제대로 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군. 내가 어리석었어.”
“엘로아, 그런 말은 심하지 않은가!”
“아니. 절대. 에레보스는 자신을 희생했고 카루아는 신 대표로 중간계를 지키고 있다. 그럼 너희는 뭐하고 있지? 죽음이 두렵나? 신이? 대답해봐라.”
신들은 엘로아의 말에 어떤 신도 대답하지 못했다.
“내 말에 조금이라도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면 싸워라. 지금 당장 중간계에 가서 광신도와 싸워라. 너희를 믿고 기도했던 신도들을 지켜라.”
엘로아의 말에 신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공포에 떨던 죽은 분위기가 되살아났다.
또 뒤에 서있던 천사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천사들의 사기가 차올랐다.
“중간계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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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어...”
카론은 처음보는 광경이었다.
휘황찬란한 갑옷을 입고 있는 천사들이 하늘을 가득 메웠다.
이 광경을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성전.
세계의 멸망을 저지하려는 신들과 멸망시키려는 마물들.
이런 상황에서 말하기는 그렇지만 주위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을 거다.
경관이라고.
제일 앞에 서있던 엘로아의 입이 열렸다.
“적의 뼛조각도 남기지 마라.”
“모든 적들을 없애라.”
“이 땅에 더 이상 발도 못 붙이게 만들어라.”
“그리고 우리의 땅을 지켜라.”
“[없애버려라!!!!!!!!!!!!!!]”
그 말이 끝나자 모든 천사들이 소리지르며 마물들에게 달려들었다.
엄청난 기세.
엘로아의 마지막 말은 이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울렸다.
언령.
모든 사람들에게 명령 아닌 명령을 내렸다.
적을 몰살시키라는 명령.
그 말은 모두에게 힘을 더해줬다.
그리고 엘로아의 모습이 바뀌었다.
빨강색 망토가 등 뒤에 생기고 손에 지팡이 하나가 생겼다.
망토에는 엘로아의 문양인 해골에 지팡이가 박혀있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지팡이는 망토 안에 있는 지팡이와 같은 모양이었다.
엄청나게 큰 보석이 박혀있고 긴 지팡이.
원래 같으면 마법사들이 쓰는 지팡이라고 생각되었을 텐데 지금 상황을 보니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사령관들이 제일 앞에서 지휘할 때 사용하는 지휘봉처럼 보였다.
그런 달라진 외형은 딱 이런 느낌이었다.
사령관의 모습.
지휘관의 모습.
왕의 모습.
그리고 평소의 무표정과 다른 표정이었다.
원래 엘로아는 중후한 말투를 사용했지만 겉모습은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
아기자기하고 젖살이 있는 듯한 얼굴은 보는 사람이 미소를 띠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생기 넘치고 살벌한 웃음이 얼굴에 띠어져 있었다.
어쩌면 광기라고도 말할 수 있는 듯한 얼굴.
하지만 사람이 우리 편이니 그만큼 든든할 수가 없었다.
“크하하하하!!!!!! 유린하라!!!!! 배제하라!!!!! 제거하라!!!!!!!!!!!”
마치 그 모습은 광기에 젖어있는 사령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런 광기어린 모습과 다르게 판단은 냉정했다.
“[터져라.]”
지팡이를 휘둘러 마물들을 가리키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 폭발은 어떤 아군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았다.
정확한 판단으로 적절한 때에 일어나는 큰 폭발.
“[죽어라.]”
그리고 아군들이 위험할 때 지켜주는 주문들.
광기어린 모습이지만 평소의 엘로아 같이 따뜻한 모습도 보였다.
그렇게 전장에 큰 변화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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