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화 〉 #95 전쟁
* * *
“노아스 괜찮아요?”
나는 노아스를 안아 들고 안전한 곳으로 이동했다.
노아스를 보니 아주 엉망진창이었다.
배에는 약간의 구멍이 뚫려있었고, 옷은 칼로 인해 여러 군데가 찢겨진게 보였다.
“아씨... 진짜... 왜 이렇게 늦었어?”
노아스는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그러자 노아스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우리가 늦어서 이런 일이...
너무나 미안했다.
차라리 에루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억지로라도 나왔더라면 어땠을까.
그러면 노아스가 다치치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님 아직도 나오지 못해서 노아스가 더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지만 내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은 하나였다.
“죄송해요...”
너무나 미안했다.
평소에 움직이는 것도 싫어하던 노아스가 사람들을 구하러 나왔다.
그런데 이런 큰 상처를 입고...
내가 아랫입술을 깨물고 걱정되는 얼굴을 하자 노아스는 웃음을 터트렸다.
“크흐흐... 장난이니까 그런 표정 짓지 마라.”
“...에?”
“하아... 도와준 거만으로도 고맙다고. 생각보다 빨리 와줬어.”
노아스는 그렇게 말하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으윽...”
“노아스, 그냥 누워있어요. 상처가 깊어요.”
나는 마신의 기운을 꺼내 치료하려고 했다.
하지만 변화가 없었다.
광신의 기운이 상처 치료를 방해하나 싶었지만 아니었다.
아무런 이유가 없이 치료되지 않았다.
“뭐지?”
“정령을 치료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애송아. 하아... 어차피 정령은 죽지 않는다. 죽음이라고 느껴지면 그저 정령계로 돌아가질 뿐이다.”
정령이라서 치료가 되지 않는 건가?
아니.내가 배워온 지식으로는 아니다.
정령이라서 치료가 되지 않는 게 아니라 ‘기운’이 달라서 되지 않는 거다.
정령은 정령의 힘이 있고, 신은 신의 기운이 있다.몸에 담겨있는 기운이 다르다.
그렇다면...
“근원, 한 방울.”
나는 그 기운을 꺼내고 변형시키기 시작했다.
“어?”
나는 근원에 대해 많은 걸 배웠다.
근원을 다룰 수 있게 된 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살아온 신의 삶.
그 자체가 사실 근원에 대한 공부였던 거 같았다.
신력에 대해 공부를 할 때도...
마신의 기운에 관해 공부할 때도...
인간들의 삶과 능력들에 관해 공부할 때도...
정령에 대해 공부할 때도...
모두... 모두...
내가 갇혀서 근원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나서 느낀 바였다.
근원은 이 모든 차원에 있는 모든 존재들 그 자체였고 모든 차원에 있는 존재들은 모두 근원이었다.
근원과 세상.
이 두 가지를 나누는 건 정말 의미 없는 일이다.
세상에 있는 아주 작은 모래 한 알과 모든 차원을 군림하는 마신.
이 둘도 같은 근원이었다.
하지만 이 둘을 나누는 건 그 존재의 힘이나 가지고 있는 정도가 아니다.
그 존재가 어떤 일을 하는가였다.
아무리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도 악행을 저지른다면 그 존재는 가만히 있는 모래알보다 못한 거다.
나는 이 이론에 근거하여 깨달음을 얻었다.
근원... 이 능력의 한계는 없다.
그저 나의 한계일 뿐.
내 생각이 짧아 응용을 제대로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나의 한계지 근원의 한계는 아니다.
지금 상황에도 이를 적용했다.
정령은 치료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
사실 신력이나 다른 기운으로 치료할 수 없는 거다.
하지만 근원이라면 다르지 않을까?
“노아스를 치료해줘.”
내가 근원에게 명령을 내리자 근원은 노아스의 배 쪽으로 갔다.
그리고 강한 빛이 나오더니 노아스의 배에 있던 상처가 사라졌다.
“어...?”
노아스는 그 광경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야?”
그리고 자신의 상태를 봤다.
노아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이리저리 움직여봤다.
일어나지 못하던 방금과 차원이 다른 움직임이었다.
“이거 어떻게 된거야? 상처 뿐만 아니라 기운도 좀더 들어왔는데?”
“헤헤...”
나는 딱히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다.
어차피 노아스가 그런 설명을 원해서 물은 거 같지도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위를 올려다봤다.
위에는 후각의 사제장이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노아스는 입을 열었다.
“저 녀석은 나한테 맡겨...라고 하기엔 가만히 안 있을 거지?”
당연하다.
너무한 말이 될 수 있지만 노아스는 이미 졌다.
후각의 사제장에게 패배했다.
그런데 다시 혼자서 상대한다고 한다면 나는 반대다.
굳이 그래야할 이유가 없다.
그래도 나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도와주세요.”
“뭐?”
“꼭 정정당당히 일대 일을 할 필요는 없잖아요.”
나는 방긋 웃어보였다.
이런 혼란스러운 전장에서 정정당당히 싸우는 것도 웃긴 상황이다.
우리가 필요한 건 승리지 명예가 아니다.
그러니 나는 노아스와 같이 싸울 거다.
그럼 승리할 확률도 높아지고 노아스도 복수할 수 있고 일석이조 아니겠는가.
@
엘로아는 하늘에서 모든 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전황은 이제 신들쪽으로 넘어오고 있었다.
마물들은 발키리 부대의 상대가 되지 않았고 마신들도 슬슬 실력발휘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로아는 전체적인 전황을 보고 이상함을 느꼈다.
마신들이 내려오자 신관장들이 자신에게 오는 공격만 받아치고 직접적인 공격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뿐.
"마신들이여. 생각보다 빨리 나왔군. 역시 마신이라 이건가?"
통각의 사제장이 음흉하게 웃었다.
“자 이제 관객도 배우도 다 모였군!!!”
하늘 위에서 시각의 사제장이 소리쳤다.
모두의 시선은 그에게 집중되었고 시각의 사제장은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 파티의 시작이다.”
시각의 사제장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미각의 사제장 상태가 이상해졌다.
“크흐...흐흐흐흐...”
웃음을 흘리다가 몸 주위에서 무언가 꾸물꾸물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크르르르르.
크라라라라!!!
저번에 봤던 촉수.
아니 촉수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저번에 봤던 촉수는 피부색이 투명한 느낌이었지만 이번엔 색이 점점더 진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촉수 끝 부분의 형태가 잡혀갔다.
“나와라...! 오로치!!!!!!!!!!!!!!”
미각의 사제장이 소리치자 그 촉수들의 형태가 잡히고 몸의 색이 정확하게 띄기 시작했다.
몸의 중앙에서부터 시작한 검은색이 머리 끝까지 채워졌다.
그리고 촉수의 끝 부분은 용의 머리가 되었다.
그 머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8개.
총 8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괴물이 되었다.
“먹어치워라.”
그리고 미각의 사제장이 명령을 내리자 주변의 모든 걸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으...으아아악!!!”
크르륵...르르...
그야 말로 모든 걸 먹었다.
자신의 편인 마물도, 적인 천사들도.
모두 먹어치웠다.
그러나 천사들보다 마물을 더 먹었다.
천사들은 오로치의 공격이 오면 피했지만 마물들은 그저 오로치의 일용할 양식이 될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천사들이 피해가 없는 건 아니었다.
엘로아는 그 괴물을 막기 위해 앞으로 달려나갔다.
‘위험.’
엘로아가 가는 중에 한 천사가 괴물에게 먹힐 위험에 처했다.
“으...으아!!”
“[폭...!]”
엘로아는 오로치에게 폭발을 사용하려 했으나 갑자기 그 천사와 오로치 사이에 누군가 끼어들었다.
“합!!”
그 사람은 오로치의 머리를 쳤지만 그렇게 큰 피해를 준거 같지 않았다.
하지만 오로치를 잠깐 멈추게 하고 천사를 구해내는 데 성공했다.
“흐음...?”
엘로아는 그 모습을 보고 흥미를 느꼈다.
“괜찮으세요?”
“가...감사합니다!”
천사를 구한 사람은 머리에 달린 귀를 쫑긋이며 말했다.
회색 늑대 귀를 달고 있는 그 사람은 렌이었다.
‘로엔의 동료인가...?’
엘로아는 로엔의 여행을 오랫동안 같이 다녔던 동료임을 금방 눈치챘다.
그리고 한 가지 계획을 세웠다.
“거기.”
엘로아가 부르자 렌은 고개를 들어 위를 봤다.
“어...? 나...나 불렀니?”
렌은 어린 소녀가 갑자기 자신을 불러 놀란 얼굴로 쳐다봤다.
그리고 잠깐 생각한 후 깨달았다.
그 소녀가 엘로아라는 걸.
"엘...엘로아님이신가요?"
"맞다. 나 좀 도와다오."
"네...?"
렌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얼굴로 엘로아를 바라봤다.
"저 녀석 좀 같이 해치우지."
"어...어떻게...요? 어떻게 도와주면 될까...요?"
렌은 어린 모습의 엘로아에게 간신히 존댓말을 이어갔다.
외모가 어린 여자아이인데 그래도 신이니까...
"너 회색 늑대 족인가?"
"어 어떻게 아시네요?"
"알겠다. [만월을 올려라.]"
엘로아가 그렇게 말을 하자 땅에 엄청난 울림이 퍼져나갔다.
마치 세상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
"으아아!!"
다른 사람들도 땅을 붙잡거나 중심을 잡으려고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곧장 그 울림은 멈췄다.
"이...이게 무슨 일이에요?"
"회색 늑대 족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리고 엘로아는 하늘을 가리켰다.
"만월이다."
아무것도 없던 하늘에 아주 밝은 달이 떠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