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 #97 가짜
* * *
렌은 달려나가 땅을 내려쳤다.
그러자 렌을 감싸고 있던 기운이 솟구쳤다.
그 기운은 가시처럼 날카롭게 나가 오로치의 몸을 찔렀다.
크라라라라라!!!!!!
하지만 그 기운은 오로치의 몸을 뚫지는 못하고 고통만 줄 뿐이었다.
오로치는 달려나온 렌을 보고 렌을 공격하려 했다.
오로치의 머리는 렌을 덮치려고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읏!’
렌은 갑자기 달려드는 머리를 피하려고 했다.
옆으로 스텝을 밟았다.
그러나 오로치의 공격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옆에서 들어오는 오로치의 머리.
한 개의 머리만이 렌을 공격하는 게 아니었다.
‘못 피한다.’
렌은 갑작스럽게 들어오는 공격을 막으려고 팔을 들었다.
충격이 없진 않겠지만, 충격을 최소한으로 줄이려 했다.
“[이동.]”
그때 엘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렌의 시야가 바뀌었다.
분명 코앞까지 온 오로치의 머리는 온데간데없었다.
그저 저 멀리 오로치가 보일 뿐이었다.
“에...?”
그리고 옆에는 엘로아가 있었다.
‘이동시킨 건가?’
렌은 언령에 관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로엔이 설명하기론 여러 응용이 가능한 기술이라고 말해줬는데 이렇게 가볍게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인지는 몰랐다.
렌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 엘로아는 렌에게 말을 건넸다.
“내가 보조해주마. 마음껏 공격해라.”
렌은 엘로아의 말을 듣자 자신감이 넘쳐났다.
아까의 말로 자신감이 올랐었지만 이 말로 자신감이 몇 배 더 증가했다.
세계 최강이라는 마신이 나를 보조해준다.
이것보다 더 든든한 말이 있겠는가.
렌은 미소를 짓고 다시 뛰쳐나갔다.
“[강화.]”
그리고 엘로아의 말이 울리자 렌의 손에 어떤 기운이 맴돌기 시작했다.
렌은 그 기운이 자신이 가진 기운은 아니라는 걸 느꼈다.
엘로아의 능력이었다.
“흐읍...!”
렌은 공중 높이 뛰었다.
그리고 몸을 뒤로 젖혔다.
등을 최대한 뒤로 하고 주먹을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뒤로 당겼다.
그리고 오로치의 머리 근처까지 왔을 때 주먹을 내리쳤다.
렌이 몸을 뒤로한 만큼 힘이 더해졌다.
그저 휘두른 주먹보다 몇 배나 더 힘이 들어간 주먹. 그리고 몇 십 배의 충격.
그 충격은 오로치의 머리에 가했다.
쾅!!!!!
엄청난 소리를 내며 오로치의 머리가 바닥에 내리박았다.
그저 내리박는 걸로 끝난 게 아니라 머리 자체가 뭉개졌다. 아주 징그러운 모습으로.
움푹 파인 땅에 뭉개져 버린 오로치의 머리가 보였다.
“이...이 정도야?”
렌은 자신의 힘에 놀랐다.
오로치에게 충격 정도 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바닥에 박히고 뭉게질 정도가 될 줄은 몰랐다.
만월의 힘을 많이 사용해보지 않아서 자신이 이 힘을 사용할 때 어느 정도 일지 예측하지 못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건 만월의 힘만으로 나올 수 있는 힘은 아니었다.
엘로아의 강화.
그 힘이 자신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준 거다.
‘오호...’
엘로아 또한 이런 렌의 움직임에 놀랐다.
렌의 움직임은 엘로아도 만족스러웠다.
물론 페르세스와 비교한다면 많이 부족한 실력이다.
다른 인간들에 비하더라도 그렇게 뛰어난 실력은 아니다.
렌의 움직임은 정직했다.
안 좋게 말한다면 기교가 없었다.
그저 어떤 공격이 어디로 갈지 엘로아가 보더라도 예측이 갔다.
사람과 사람이 싸운다면 큰 단점으로 작용하겠지만 이 상황에서는 아니었다.
몸집이 큰 오로치는 렌의 움직임에 반응하지 못한다.
공격이 오더라도 피하지 못하고 그저 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저 녀석은 공격을 피할 생각이 없다.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도 되는 강한 피부가 있어 웬만한 공격은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렌이 상대하기 너무 좋은 상대였다.
어차피 상대는 공격에 맞는다.
강한 방패를 믿고.
하지만 렌의 정직한 움직임은 이런 녀석을 상대하기 너무 좋았다.
정직하게 자신의 최고 힘을 끌어내는 자세.
렌은 그걸 가지고 있었다.
강한 방패를 가지고 있는 상대에게 모든 걸 뚫는 창을 가지고 상대한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상대는 그저 샌드백이 될 뿐이었다.
렌이 다시 뛰어올라 오로치를 상대하고 있자 목소리가 들렸다.
“가짜 엘로아군!”
목소리가 들린 쪽을 보자 오로치의 머리 위에 사람의 형태가 보였다.
뚱뚱하고 분노에 젖어있는 듯한 눈.
미각의 사제장이었다.
“나는 진짜다.”
엘로아는 그저 그렇게 부르는 게 가소롭기만 했다.
진짜에게 가짜라고 말해봤자 진짜가 가짜가 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게 상처가 되지도 않는다.
상처받기 보단 귀찮을 뿐이다.
어떻게 자신이 진짜라고 하나하나 변명하겠는가.
“계속 그렇게 말해봤자 너가 가짜라고 반증할 뿐이다.”
저 미각의 신관장에게 진짜는 없다.
저 녀석이 가진 삶의 의미는 가짜 엘로아다.
그런 가짜 엘로아가 시킨 일을 하며 살고, 그에 만족감을 느끼는 삶.
가짜의 엘로아를 두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삶.
그런 삶이 가짜가 아니면 어떤 게 가짜겠는가.
"내가 가짜라니. 나는... 나는 틀리지 않았다."
엘로아의 말을 듣더니 신관장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니. 너는 틀렸다. 모든 사람이 다른 삶을 살고 있을 때, 너는 혼자서 틀린 삶을 살고 있었다."
“거짓말... 거짓말...”
아마 자신도 알고 있는지 이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너가 백 번... 아니 천 번을 거짓말이라고 말해봤자. 넌 진짜를 보지 못할거다.”
엘로아는 지팡이를 미각의 사제장에게 겨눴다.
“자신이 가짜임을 깨달으며 죽어라.”
그 말을 하자 미각의 사제장 눈앞에 렌이 나타났다.
엘로아가 대화를 하고 있는 동안 렌은 미각의 사제장이 방심할 타이밍을 잡았다.
그리고 엘로아가 지팡이를 사제장에게 겨누는 걸 보고 바로 뛰어올랐다.
미각의 사제장은 이를 반응하지 못했다.
원래부터 육중한 몸을 가지고 있어 반응이 느렸다.
하지만 엘로아의 말에 충격을 받고 난 후라 움직임이 더 느렸다.
“[강화.]”
이에 이어 엘로아의 지팡이가 반짝였다.
그리고 렌의 발에는 기운이 맴돌았다.
“허...?”
“안녕?”
렌은 입꼬리를 올리며 사제장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발을 휘둘렀다.
휘두른 발은 사제장의 두툼한 배를정확하게타격했다.
펑!!!!!
“끄아아악!!!!!”
미각의 사제장은 그 발을 맞자 엄청난 소리가 났고 사제장의 육중한 몸은 옆으로 날라갔다.
사제장은 그대로 땅에 굴러 떨어졌고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뚱뚱한 체형이다 보니 공처럼 잘 굴러갔다.
“크헉...”
어느 정도 굴러가다가 몸은 멈췄다.
그리고 미각의 사제장은 소리치기 시작했다.
“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
엘로아는 그런 미각의 사제장을 한심하게 쳐다봤다.
렌도 마찬가지였다.
엘로아는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가짜는 그저 진실에게 질 뿐이다.”
그러자 미각의 사제장은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사제장의 눈에는 절망과 좌절이 보였다.
하지만 그것만이 다가 아니었다.
광기.
순수한 광기가 눈에 떠올랐다.
아까까지는 분명 정신이 있었던 거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젠 정신마저 놓아버린 모습이었다.
눈동자의 초점이 사라지고 미친 사람 같이 중얼거렸다.
아마 자신이 가짜라는 사실을 부정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결국 정신이 붕괴된거 같아보였다.
“거짓말...”
작은 소리가 엘로아의 귀에 들렸다.
“거짓말... 거짓말...”
미각의 사제장은 가만히 땅에 선 채로 말을 내뱉었다.
“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거짓말!!!!"
엄청난 소리가 전장에 울렸다.
그리고 오로치의 몸에서 촉수들이 나와 아까 뭉갰던 머리를 복구하기 시작했다.
“감히... 감히... 가짜주제에!!!!!!”
“나는 진짜다.”
엘로아는 다시 담담하게 말할 뿐이었다.
사제장은 그런 담담한 태도에 더 화가 난 듯 소리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아!!!!!”
엘로아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귀를 막았다.
그때.
소리 지르는 미각의 사제장에게 한 오로치의 머리가 다가갔다.
쩌억
오로치의 머리는 미각의 사제장에게 다가가 입을 크게 벌렸다.
“어?”
그리고 그 오로치의 머리는 미각의 사제장을 먹었다.
먹었다.
우적우적 먹었다.
그런 기괴한 모습에 렌과 엘로아는 놀란 얼굴로 바라봤다.
하지만 기괴한 상황은 이뿐만 아니었다.
오로치가 미각의 사제장을 삼키더니 오로치의 몸에서 촉수들이 한 줄기 올라왔다.
한 줄기였지만 굉장히 굵었다.
오로치의 머리만 한 크기였다.
그 촉수는 기괴하게 꾸물거리더니 사람의 몸 같은 형태로 만들었다.
엄청난 크기의 사람 몸을.
그리고 그 몸은 오로치의 몸에 이어져 있었다.
어느 정도 사람의 몸 형태가 갖춰지자 그게 누군지 눈치챘다.
미각의 사제장.
미각의 사제장 몸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몸 형태뿐만 아니라 얼굴 형태도 갖춰져 입이 생기자 확신이 생겼다.
사제장의 몸이라고.
“거짓말!!!!!!!!!!!!!!!”
그 엄청난 몸으로 소리치니 모든 전장을 울렸다.
@
“어우 좆같아.”
페르세스는 미각의 사제장이 지르는 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너도 저런 변신이나 하지그래?”
페르세스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주변에는 한 사람만이 있었다.
시각의 사제장.
“저런 정신병자랑 비교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너나 쟤나 하찮은 미친 신을 숭배한다는 건 똑같잖아? 아주 미친 신 따라 신관들도 다 미친 놈들 뿐이구만.”
페르세스가 말하자 신관장의 분위기가 날카로워졌다.
“나의 신을 모욕하지 마라.”
“자신의 신을 모욕하는 건 빡친다...이말인가?”
페르세스는 어이가 없었다.
자신의 동료를 묘욕하는 거에다가는 한 술 더 떠서 욕하더니 신을 욕하는 건 안된다?
모순되도 너무 모순된 녀석이었다.
“그런데 너 자신 있어? 너 나 보자마자 겁먹고 도망쳤잖아.”
“단순한 녀석답군. 작전상 후퇴라는 거다.”
“작전상 후퇴는 무슨. 넌 변명밖에 못하냐? 같은 신관장끼리 다르다고 하질 않나. 도망친 건 이유가 있다고 하질 않나.”
페르세스가 깐족대자 시각의 신관장 눈에 분노가 차올랐다.
“죽여주마.”
페르세스는 분노하는 상대를 보고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살벌한 말투로 말했다.
“한 번 죽여봐. 쓰레기 새끼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