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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였던 내가 여신이 되었습니다-99화 (113/138)

〈 99화 〉 #98 이어지는 전장

* * *

페르세스는 귀걸이에 손을 댔다.

“칼리버.”

그러자 페르세스의 손에 검이 쥐어졌다.

화려한 모양의 검.

페르세스가 검을 손에 쥐자 시각의 신관장도 광신의 기운을 꺼냈다.

“오만한 너에게...”

“만월 베기.”

광신의 기운을 꺼내기 시작하자 페르세스는 틈을 주지 않았다.

신관장의 말이 끝나기 전에 검을 휘둘렀다.

검을 휘두르자 신관장의 몸이 반으로 갈렸다.

상체가 잘려나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몸 정중앙을 베서 상체와 하체가 날아가는 신기한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페르세스는 신관장의 몸을 베어냈는데도 불구하고 긴장을 풀지 않았다.

그렇게 검을 들고 경계를 하고 있자 잘려나간 신관장의 상체가 일어났다.

신관장의 상체는 입을 열었다.

“오호. 안 속네?”

“속겠냐?”

페르세스는 코웃음을 쳤다.

그동안 쌓아왔던 경험과 기술.

이번에 가짜 마신과 싸우고 느꼈던 자신감.

이 모든 게 페르세스를 받치고 있었다.

물론 신관장이 단 한 합으로 죽는다는 게 말이 안 됐기 때문에 어린 애도 속지 않을 속임수긴 했다.

하지만 페르세스는 그런 근거없는 추측이 아닌 근거를 가지고 행동했다.

‘베는 맛이 달라.’

모든 존재를 벨 때 느껴지는 손 맛이 있었다.

그 존재를 직접 베었다는 느낌.

그건 진짜 손에 가해지는 감각이 아니었다.

그저 동물적인 감각이었다.

사실 이런 동물적인 감각을 확실한 근거라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싸움에서 이런 동물적인 감각을 무시한다면 제대로 된 싸움을 하기 힘들었다.

전투에서는 작은 행동에도 엄청난 정보들이 쏟아져온다.

그 행동을 함으로써 다음 행동의 가짓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나온다.

그런 행동의 가짓수를 줄여주는게 바로 동물적 감각이었다.

그리고 페르세스는 이런 감각과 수 많은 경험으로 언제나 확신을 가지고 행동했다.

지금도 그랬다.

신관장을 벨 때 분명 상대방을 베었다는 직접적인 느낌이 들었지만, 그 감각과 다르게 페르세스의 동물적 감각은 베지 못했다는 걸 느꼈다.

“그런 광대 짓은 안 속으니까 제대로 싸우자고.”

“크크... 오만한 신이여...”

시각의 신관장이 그런 말을 하자 페르세스의 앞에 광신의 기운 덩어리가 여러 개 생겼다.

그 덩어리는 꾸물거리더니 사람의 모습을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양은 각각 신계의 일반 신 모습이 되었다.

백 명 가까이 되보이는 신들의 모습.

“풉...”

페르세스는 웃음을 터트렸다.

“너 그런 식이면 절대 못 이겨.”

페르세스는 이번에 가짜 마신들을 상대하고 새로운 경지에 올랐다.

지금까지 혼자서 단련하고 약한 녀석들만 상대하다가 마신과 싸웠다.

분명 진짜 마신들과는 다른 가짜 마신들이었다.

하지만 능력만큼은 진짜 마신과 같았다.

자신을 유일하게 상대할 수 있고 동등한 존재로 보는 마신들이었다.

처음에는 이기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한 명을 상대하는 것도 벅찼다.

그렇지만 자신의 뒤에는 로엔이 있었다.

물러설 수 없었다.

마신들은 자신과 동등한 존재였지만 로엔은 조금 느낌이 달랐다.

마치 동생 같은 느낌이었다.

자신이 지켜줘야 하고, 아껴줘야 하는 동생.

그런 동생 앞에서 벅차보이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그리고 자신이 물러선다면 로엔이 다칠 수도 있었다.

상황 자체도 로엔의 근원을 아껴야 했기에 자신이 책임져야 할 상황이었다.

그리고 결국에 가짜 마신을 베었다.

유일하게 자신이 벅차다고 생각했던 상대들을 베었다.

그렇게 감각적인 면에서도, 무술 쪽 면에서도 자신감이 최고에 도달했다.

더 이상 어떤 누구도 무섭지 않다.

완전한 에레보스? 주신? 광신?

광신을 제외하고는 진심으로 싸울 일이 없기는 하겠지만, 이길 자신이 있었다.

페르세스의 검은 신념의 검이다.

자신이 믿는 힘이 강해질수록 더욱 강해진다.

페르세스가 믿음은 자신의 감각이다.

그저 자신이 느끼는 그대로를 믿는다.

페르세스는 그동안 다른 마신을 이길 수 있다면 검의 끝을 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느꼈다.

하지만 힘에 대한 열망보다 가족에 대한 애정이 더 컸다.

그래서 마신들과 싸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싸운다면 누군가 한 명이 큰 상처를 입을 테니까...

그리고 지금에 도달했다.

가짜이긴 해도 마신을 벴다.

그리고 검의 끝을 보았다.

가짜를 벴기에 완전한 끝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끝에 도달하기는 했다.

이게 진정한 끝이 아니었다.

하지만 끝이라는 장소에는 도달해있는게 느껴졌다.

그리고 모든 존재를 이길 수 있다는 것도 느껴졌다.

“페르세스류...”

페르세스는 앞에 있는 수많은 신을 봤다.

이 신들이 이런 가짜가 아니고 진짜가 오더라도 자신을 막지 못한다.

“신 죽이기.”

페르세스가 검을 휘두르자, 수 많은 가짜 신들이 절반으로 베어졌다.

롱기누스를 사용할 때는 소수의 존재들만을 노렸지만, 이번엔 범위가 넓었다.

검격은 신들을 베고 나서도 뻗어나갔다.

전장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있었지만, 전장에까지 영향이 갔다.

전장에 있는 마물들이 그 검격에 맞고 쓰러졌다.

하지만 아군은 그 검격을 맞았는데도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자신이 베지 않으려는 상대는 베더라도 베지 않는 경지.

그야말로 검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경지였다.

베어진 가짜 신들은 처음에 있었든 꾸물거리든 기운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꾸물거리는 기운들은 한곳에 모여 형태를 갖춰갔다.

“너는 정말 오만하군. 인정해주마. 오만할 수 있는 힘이다.”

그 기운은 한곳에 모이고 시각의 신관장이 되었다.

“나는 오만한 게 아니다. 있는 그대로 만을 볼 뿐이다.”

잘난 사람이 자신이 잘났다고 말하는 건 잘난 척이 아니다.

그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일 뿐이다.

페르세스는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겸손하지 않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고 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모든 걸 벨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너에게 아주 알맞은 선물이 있다.”

시각의 신관장이 그런 말을 하자 신관장의 모습이 바뀌기 시작했다.

“너가 평생을 단련하고 여러 경험을 해도 뛰어넘지 못하겠지.”

신관장의 모습은 제일 어색하면서, 제일 익숙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하...”

페르세스는 마신을 벨 때 한 말이 있었다.

­날 이기려면 나를 한 명 더 데려오든가 해.

유일하게 내가 뛰어넘지 못하는 상대.

그건 한 명밖에 없었다.

에레보스도, 주신도 언젠가는 뛰어넘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자신을 뛰어넘을 수 없었다.

과거의 자신은 자신이 뛰어넘을 수 있지만, 현재를 살아가면서 현재의 자신은 뛰어넘을 수 없었다.

그 자신이 아무리 성장한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자신도 성장할 테니.

딜레마였다.

신관장의 모습은 페르세스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페르세스인가?”

카리온은 옆에 날라온 엄청난 검격을 보고 혼잣말을 했다.

하지만 저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카리온은 자신 앞에 있는 상대를 봤다.

통각의 사제장.

사제장은 수 천의 천사와 카론, 드래곤 로드, 카리온까지 상대하고 있었다.

카리온은 그런 신관장의 힘에 어이가 없었다.

이 녀석은 다른 신관장들과 차원이 달랐다.

목이 잘리고, 심장이 뚫리고, 몸이 뭉개져도 죽지 않는다.

기운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카리온과 상성 또한 좋지 않았다.

수 많은 존재들을 이용해서 싸우는 카리온에게 통각의 사제장은 최악의 상성이었다.

자신의 분신을 이용해서 카리온의 소환체들을 상대하기도 하고 강한 공격은 본체가 받는다.

그러면 웬만한 공격을 무마할 수 있었다.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가장 좋은 수비는 공격.

이런 말이 있다.

통각의 사제장은 말도 안 되게 공격적이었다.

어차피 몸에 상처를 입더라도 치료가 되니 공격에 망설임이 없었다.

고통 또한 무시했다.

그렇게 자신의 몸을 바치면서 하는 공격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카리온의 소환수와 전장에 있는 병사들은 한계가 있다.

전장에 있는 이들은 싸우면 싸울 수록 눈에 보이게 수가 줄어갈 뿐이다.

그런데 저 녀석의 한계는 어느 정도일지 예측되지 않는다.

그저 보이는 거는 전장에 있는 아군을 줄어갈 뿐이고 저 녀석은 치료될 뿐이었다.

분명 한계가 있음을 머리로는 알고있겠지만, 전장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만 죽어간다고 느낄거다.

사실 이 상황이 일대 일이라면 희망을 잃지 않고 싸우면 됐다.

하지만 카리온은 수적인 우위를 점하고 싸우는 스타일.

이렇게 싸운다면 아군의 사기는 내려갈 수밖에 없다.

공포.

자신의 목숨은 하나인데 상대방은 계속 치료된다.

자기가 희생하더라도 저 녀석은 어떤 상처도 입지 않는다.

자신은 죽었는데 저 녀석은 어떤 영향도 없다.

그럼 싸우는 사람은 한 가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기심.

나는 몸을 좀 사리고 저 녀석에게 영향이 있을 때까지 싸우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이 희생하겠지?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시간이 끌리면 끌릴수록 사람들은 생각이 깊어진다.

잡생각들이 들기 시작한다.

사실 전쟁이라는게 그렇다.

처음에는 자신의 가족과 동료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딴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내가 가족과 동료를 지켰는데도 내가 죽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나?

내가 굳이 목숨을 바칠 필요는 없지 않나?

나만 아니면 되지 않나?

이런 이기적인 마음이 들 수밖에 없어진다.

사실 이런 마음을 이기적인 마음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합리적인 생각이었다.

가족과 동료를 지키려고 목숨을 바친다?

오히려 그걸 광기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광기라고 말한다면 세상의 그 누구도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거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희생이라고 부른다.

숭고한 희생.

누군가는 해야 하고, 꼭 필요한 행동.

하지만 이 수많은 이들에게 이를 강요할 수는 없었다.

“하아...”

카리온은 막막했다.

점점 사람들에게 공포가 심어진다.

자신의 소환체라고 하더라도 감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억지로 싸우게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지휘관만큼 무능한 존재는 없을 거다.

이미 공포가 심어진 상태에서 억지로 싸우게 해봤자 자신의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무의미한 희생이 될 뿐이었다.

그렇게 모든 사람들에게 공포가 심어지고 있을 때 앞으로 나오는 한 명이 보였다.

여기에 있는 녀석들 중 정말 약하다고 할 수 있는 녀석.

그런 녀석이 초월자들조차 겁내는 존재 앞으로 걸어나갔다.

특별한 과거가 있었던 녀석도 아니다.

정말 평범한 소년에 불과했던 녀석이다.

하지만 그런 평범했던 소년이 묵묵하게 앞으로 걸어나갔다.

“로엔이 축복받은 건지 아님 로엔을 만난 녀석들이 축복받은 건지...”

카리온은 그 모습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신관장 앞으로 걸어나온 그 소년.

그 소년은 카론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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