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 #100 페르세스 vs 페르세스
* * *
카루아의 요새가 폭격하는 소리.
저 멀리 머리가 8개 달린 괴물이 울부짖는 소리.
여러 전장의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런 소리를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신관장에게 집중했다.
신관장은 자신의 모습을 둘러보더니 귀걸이에 손을 뎄다.
“이렇게 사용하는 건가?”
귀걸이가 빛나기 시작했다.
“칼리버.”
그러자 그 귀걸이는 페르세스가 사용하듯 칼리버로 변했다.
신관장 손에 들려있는 화려하고 찬란한 빛깔의 칼리버는 페르세스의 칼리버와 달라 보이지 않았다.
‘평범하게 따라 하는 정도가 아니다.’
페르세스는 긴장했다.
시각의 신관장에게 느껴지는 기운은 완전히 자신이었다.
그저 흉내 내거나 따라 하는 정도가 아니다.
가볍게 꾸며낸 환술 같은 게 아니었다.
저건 진짜 자신이었다.
‘어느 정도까지 따라 할 수 있는 거지?’
일단 페르세스는 파악해보기로 했다.
“반달 베기.”
페르세스가 검을 휘두르자 시각의 신관장도 똑같이 반응했다.
“반달 베기.”
페르세스와 신관장의 검격은 서로 부딪혀 상쇄되었다.
페르세스는 그 모습을 보고 멈칫했다.
검을 휘두를 때의 자세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작은 습관들.
그 모든 게 같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더라도 차이점을 찾지 못 할 거 같았다.
페르세스는 당황스러웠지만, 물러설 수는 없었다.
‘난타전으로 간다.’
페르세스는 판단을 내리자마자 신관장에게 달려들었다.
쾌검.
빠른 속도로 달려든 후 자신이 엄청난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한 번만 휘두른 것이 아니었다.
그대로 난타전에 들어갔다.
자신의 속도를 최대한 끌어올려 검을 연속으로 휘둘렀다.
“크흐흐...”
하지만 시각의 신관장은 그 검을 전부 받아쳤다.
뛰어난 사람에게도 보이지 않을 속도의 검이었다.
그러나 이 검을 전부 받아쳤다.
페르세스는 처음에 신관장이 자신을 따라 하는 정도로 멈출 줄 알았다.
신관장의 검은 페르세스를 따라 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완전히 같다고 볼 수 있었다.
검과 검을 부딪칠 때 상대방을 따라 하게 된다면 그 검을 막지 못한다.
똑같은 자세를 취하는 게 아니라 그 검을 받아칠 방어 자세나 카운터 자세를 취해야 한다.
신관장은 그 모든 자세를 정확하게 취했다.
페르세스는 그저 그게 따라 하는 정도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
완전한 자신.
어떤 검이 자신을 공격할 때 취하는 자세는 정말 여러 가지다.
예를 들어 검으로 내려치는 공격을 한다고 하면 검을 위로 들어 막는 방법도 있지만 검을 가볍게 흘리는 방법도 있고 몸을 빼서 피하는 방법도 있다.
보통 그 방법들 중 몸에 익은 방법이 있다.
굳이 머리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몸이 먼저 움직이는 습관.
그 습관은 안다고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신관장은 자신의 습관들을 정확히 따라 했다.
눈의 움직임 같은 작은 움직임들조차 같았다.
페르세스는 어느 정도 검을 부딪치다가 뒤로 빠졌다.
“불쾌하군.”
“불쾌하군.”
페르세스가 말하자 신관장도 똑같이 말했다.
그 모습을 보고 페르세스는 인상을 구겼다.
“크...크하하...”
신관장은 그런 페르세스를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리고 페르세스의 모습을 한 자신의 몸을 바라봤다.
“너 정말 엄청난 몸을 가지고 있잖아? 이 몸이 있으면 전장에 있는 마신들이라도 가볍게 벨 수 있을 거 같네.”
“오만하군.”
“오만할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
아까 페르세스가 했던 말을 똑같이 따라 했다.
페르세스는 살벌한 얼굴을 했다.
저 녀석을 절대로 전장에 보내면 안 된다.
카리온과 엘로아 같이 직접 전투를 하지 않는 녀석들에게 나는 최악의 상대다.
아마 마신들은 신관장을 한 명씩 상대하고 있을 거다.
하지만 지금 저 녀석이 전장으로 간다면 균형이 깨진다.
자신이 다른 신관장을 상대하게 되고 저 녀석이 저 모습으로 카리온이나 엘로아를 상대하게 된다면 모든 균형이 무너져버린다.
“뭐 그렇게 불안한 얼굴을 해? 웃어.”
신관장은 자신의 얼굴에 손을 가져가 자신의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아주 불쾌한 웃음.
하지만 그 불쾌한 웃음에서 살짝의 희망을 느껴갔다.
저 녀석은 내 행동들을 따라 한다.
‘따라 한다.’라는 점이 저 녀석에게 단점이었다.
저 녀석은 내 몸과 같은 몸이다.
그러므로 내가 몸으로 익혀온 여러 가지 기술들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저 녀석이 완전한 자신이 된 건 아니었다.
생각이 다르다.
자신의 정신은 남아있고, 내 몸을 사용하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차이를 어떻게 이용하느냐가 문제였다.
자신의 경험은 보통 몸에 익혀져 있다.
동물적인 감각.
이 감각이 자신에게 있어 최대의 장점이다.
몸에 익혀져 있는 이 동물적 감각은 자신을 최강으로 만들어준다.
하지만 지금 상대도 자신과 똑같은 그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럼 내가 그 감각의 단점을 파고들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 감각이 어느 정도까지 나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모른다.
저 감각이 사라져 본 적이 없으니 어디까지 머리로 인식하는 거고 어느 정도까지가 그 감각이 인식하는 건지를 모른다.
‘해보는 수밖에.’
페르세스는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다시 신관장에게 달려들었다.
아까와 같은 난타전을 시작했다.
서로 엄청난 속도로 베기 시작했다.
하지만 약간의 양보도 없었다.
빠른 속도로 검을 휘두르다보면 몸에 약간씩 베이는 상처가 나기 마련이었다.
서로 빠른 속도로 상대방을 베려는 난타전이다보니 모든 공격을 막지 못하고 가끔씩은 엇갈릴 수가 있는 거였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약간의 생채기는 물론이고 옷 끝에조차 검에 닿지 않았다.
모든 공격을 막으면서, 자신이 할 공격을 하는 거였다.
물론 상대가 자신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상대방이 할 공격을 알고 있으니까.
그저 거울을 보고 가위바위보를 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페르세스는 여기서 한 번을 꼬았다.
상대방의 검을 맞더라도 베어낸다.
살을 주고 뼈를 베어낸다.
그렇게 페르세스는 신관장의 검을 어깨로 받아냈다.
“크윽...!”
고통이 느껴졌지만, 이를 무시하고 벨 준비를 했다.
“페르세스류...!”
그러나...
페르세스는 상대방의 눈을 봤다.
무미건조한 눈.
자신을 분명 베었는데도 불구하고 변화가 없는 눈.
아니.
상대방을 베더라도 변화가 없을 수는 있다.
하지만 저 무미건조한 눈에는 한 가지만이 느껴졌다.
상대방을 벤다.
“크윽...”
페르세스는 자신 어깨에 박힌 검을 쳐내고 물러섰다.
자신의 검이 읽혔다.
이렇게 밖에 보이지 않았다.
분명 자신이 이를 무시하고 들어갔다면 베이는 건 자신이었을 것이다.
페르세스는 자신을 잘 알았다.
저 눈은 자신이 자주 하는 눈이었다.
그 상황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무미건조해지는 눈.
어떠한 흥분도, 자극도 감흥이 없어진 채 무의 형태를 띠게 되는 상태.
무의 경지였다.
저 상태까지 따라 하는 건가...?
자신의 목에 칼이 들어와 있는 느낌.
페르세스는 이런 감각을 처음으로 느꼈다.
방금 들어갔다면 그저 느낌으로 끝나지 않고 목에 칼이 들어왔을 거다.
그리고 이런 감각을 느끼고 더 벽을 느꼈다.
방금 전 자신이 베인다고 느낀 것조차 자신의 몸에 익혀져 있는 감각이었다.
머리로 이해한 게 아니라 몸이 느끼고 빠진 거였다.
그럼 상대방도 이런 감각을 이용할 수 있다는 거다.
사실상 무승부는 가능하지만 이길 수 없다.
이기려고 하는 순간 무승부조차 못하게 될거 같았다.
나를 이기려면 나답지 않은 행동을 해야했다.
하지만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으로 자신을 상대하기엔 너무 도박이었다.
“하...하하하...”
페르세스는 웃음이 나왔다.
“뭐야? 검을 맞으면 미치기라도 하는 건가? 아니면 이기지 못할 걸 느끼고 미친 건가?”
신관장은 그런 페르세스를 비웃었다.
하지만 그런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페르세스의 웃음은 만족의 웃음이었다.
‘나... 나 진짜 강하잖아?’
그저 자신의 강함에 감탄했다.
다른 상대들이 자신을 상대했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저 벽에 몸을 부딪치는 듯한 느낌.
저 녀석은 내가 못 이긴다라는 기분이 확 와 닿았다.
아니.
계속 싸운다면 상황이야 모르겠지만, 시간이 끌린다면 광신이 태어날 수도 있다.
몸의 상태도, 상황도 불리한 건 페르세스였다.
“하... 이제 그만하자.”
페르세스는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페르세스 특유의 붉은 기운이 끌어 올랐다.
그 상태에 들어가자 신관장도 똑같은 자세에 취했다.
그리고 페르세스의 기운도 똑같이 끌어올렸다.
“흡...!”
“하...!”
페르세스가 달려들자 신관장도 똑같이 검을 받아냈다.
하지만 아까 같이 검으로 난타전을 하지 않았다.
힘겨루기.
그저 검과 검을 맞댄 채로 힘을 주기 시작했다.
“크으...!”
“흐읍...!”
신관장과 페르세스는 똑같이 힘을 주면서 밀어냈다.
‘뭐야?’
시각의 신관장은 이 검을 흘리고 다음 공격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페르세스의 몸이 거부했다.
페르세스의 몸은 말하고 있었다.
이 검을 흘리면 베인다고.
“하... 계속 검이라도 맞대고 있자는 건가?”
신관장은 어이가 없었다.
여기서 힘에 밀리거나 검을 흘려내면 베인다니.
그럼 계속 검을 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계속 이렇게 겨루기에 들어간다면 아까 어깨가 베인 페르세스가 불리하다.
힘을 더 강하게 넣어서 시각의 신관장이 민다면 페르세스의 체력이 더 먼저 소모된다.
“아니면 어차피 질 거 같으니까 시간이라도 끌겠다고?”
어차피 시간은 자신의 편이었다.
광신이 부활한다면 끝이니까.
시각의 신관장은 얼굴에 웃음이 지어졌다.
하지만 페르세스의 눈은 포기한 눈이 아니었다.
아니 포기에 가까운 눈이긴 했지만 살짝의 아쉬움이 담겨있는게 좌절의 느낌은 아니었다.
“에휴...흐읍...!”
신관장이 힘을 더 줘서 밀자, 페르세스는 어깨에 드는 고통에 목소리가 나왔다.
“크흐흐... 그럼 뭐하자는 건데?”
“내가 진다는 걸 인정한 거지.”
자신의 실수.
어깨를 베이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페르세스는 순순히 이를 인정했다.
뭐 도전 자체는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자신들이 있는 곳은 전쟁터다.
겨우 일대 일로 싸우는 장소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 싸움이 끝이 아니라는 거다.
자신에게 약간의 피해는 자신이 책임지면 되는 게 아니라 전장에도 영향이 끼쳐질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다.
전장의 상황이 나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아...진짜 이러고 싶지는 않았는데.”
페르세스는 숨을 들이켰다.
“카루아!!!!!!!!!!!!!!!!!! 도와줘!!!!!!!!!!!!!!!!!!!!!!!”
“어?”
시각의 신관장 표정이 얼빵해졌다.
분명 자신이 보고 느끼고 지금 이 페르세스의 몸이 말하고 있는 페르세스는 오만했다.
신관장이 본 페르세스는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이 전장에서 최강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신이 도움을 요청한다고?
페르세스의 외침이 멈추자 저 멀리 있던 요새의 폭격이 멈췄다.
그리고 요새에 달린 포구가 검을 맞대고 있는 이곳을 향했다.
“지금 동반 자살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동반 자살일지 아닐지는 한 번 봐봐.”
페르세스의 얼굴에 미소가 띠어졌다.
그리고...
그 둘에게 폭격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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