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 #105 선수 교체
* * *
“흐음...”
엘로아는 자신 앞에 있는 오로치를 바라봤다.
계속되는 치유.
오로치는 계속 마물들을 잡아먹어 몸집을 키우고 있었다.
렌과 엘로아가 열심히 공격하고 있긴 했으나 오로치의 치유를 따라가기엔 약했다.
확실한 공격.
그런 공격이 없었다.
저 멀리서 카루아가 지원을 해주기는 했지만 카루아는 전장 전체에 있는 마물들을 막고 있어 계속 여기에 공격해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물론 저 오로치가 계속 마물을 먹어서 마물들이 줄기는 했다.
하지만 전장에 있는 모든 마물을 먹을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었다.
“후우...후우...”
렌은 숨을 몰아쉬었다.
렌도 처음에는 마음껏 날뛰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움직임이 둔해지고 있다.
렌은 엘로아가 생각한 것보다 더 활약해줬다.
오로치의 머릿수도 많이 줄였었고 주위에 있는 천사들도 셀 수 없을 정도로 구했다.
물론 오로치의 머리들은 없애도 다시 생겨나서 큰 의미가 있지는 않았다.
그저 렌의 체력만 점점 깎여갈 뿐.
렌의 체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상처들은 엘로아가 치료해주더라도 몸에는 피로가 누적된다.
그리고 이제 슬슬 못 움직일 때가 다가왔다.
혼자 오로치를 상대할 수는 있긴 하지만 아마 효율적이지 못할 거다.
지금은 렌이 공격하고 엘로아가 오로치의 공격을 막는 형식이었지만, 렌이 없어지면 엘로아 혼자 두 가지 일을 다 해야 한다.
다행히 천사들은 이 주위에서 대피시켰기에 천사들을 구하는 일은 안 해도 되긴 했다.
하지만 천사가 없어져서 오로치가 먹는 거 빼고 마물들의 수가 줄어들 일이 없어졌다.
“골치 아프군.”
이 녀석에게 질 거 같지는 않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광신이 소환된다는 것도 문제지만 다른 마신들이 질 수 있다는 가정도 해보아야 한다.
다른 마신들이 질 거 같지는 않았지만, 어디까지나 가정은 필요하다.
우리 중 한 명이 진다면 남은 신관장을 막으러 가야 한다.
누군가 먼저 신관장 한 명을 물리치지 않으면 도울 수 없다.
그러니 최대한 저 녀석을 빨리 물리쳐야 한다.
혹시나라는 가능성을 위해.
엘로아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빨리 해결할 수 있지?
그러면서도 냉정을 유지하려 했다.
냉정을 잃고 조급해진다면 실수를 유발한다.
엘로아가 오로치를 바라보며 고민하고 있을 때 귀에 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 아 엘로아. 들려?
로엔의 목소리였다.
로엔. 무슨 일 있어?
엘로아는 로엔의 목소리에 바로 대답했다.
설마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건가?
아니 아니. 막 그렇게 큰일이 있는 건 아니고...
로엔은 말꼬리를 흐렸다.
그럼 왜 연락했어?
혹시 나랑 자리를 바꿀 수 있어?
어?
엘로아는 생각지도 못한 소리에 벙쪘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돕는 거는 생각했지만, 자리를 바꾼다는 건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엘로아는 로엔의 말에 멍하니 있다가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엘로아는 마신들 중 가장 불안한 녀석이라고 하면 로엔이 첫 번째였다.
언제나 주위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행동을 하는 녀석.
그래서 더 잠재력이 있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행동을 하는 건 로엔의 단점이 될 수도 있었다.
평범하게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고 무너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 나타난 의외성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래. 바꾸자.
어? 이 녀석 능력도 안 듣고?
대충 요약해서만 말해줘. 너가 한 판단이니까 맞겠지.
아마 로엔은 맞는 판단을 했을 거 같았다.
분명 자신이 상대하기 좋은 상대니까 자신과 바꾸자고 했을 거다.
그리고 여기 상황도 로엔에게 너무 알맞은 상황이었다.
미각의 신관장이 가진 능력은 직관적이다.
마물을 먹고 치료한다.
그리고 행동은 단순했다.
이런 녀석에게 로엔은 너무 알맞은 상대였다.
엘로아가 본 근원은 사용자가 창의력을 발휘해야 했다.
마법같이 정해진 공식에 맞게 사용하는 게 아니라 그저 사용자의 생각에 달려 있는 능력.
마법에 비하면 유용성이 더 커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다.
정해져 있지 않은 틀에서 능력을 사용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어떤 기술을 사용해야 효율적인지도 모르고 처음 보는 적을 상대할 때 의지할 건 자신의 임기응변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메인으로 사용하기 어려운 힘이었다.
하지만 저 앞에 보이는 단순한 녀석들을 상대할 때는 정말 좋은 힘이었다.
상대방이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생각해야 될게 적다.
저 녀석 같은 경우도 치료를 못 하게 막으며 공격하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마법같이 정해져 있는 힘들은 사용방법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저런 단순한 적을 상대하기 어려웠다.
자신이 가진 마법들의 한계는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사용할 줄 아는 기술 중 저 녀석에게 대응할 좋은 기술이 없다면 불리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로엔의 힘은 정형화되지 않은 대신 한계가 없었다.
또 근원의 파괴력.
근원의 파괴력은 우리가 가진 어떤 힘보다 강력했다.
매일 로엔은 근원을 아끼려고 한 방울씩만 꺼냈다.
하지만 그 한 방울의 폭발력만 하더라도 엄청났다.
그럼 두 방울, 세 방울 정도로 늘려간다면 어떨까.
그 파괴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것이다.
그럼 바꾼다.
로엔의 말과 함께 엘로아는 후각의 신관장 앞으로, 로엔은 미각의 신관장 앞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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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가 후각의 신관장인가.”
갑자기 나타난 엘로아의 모습에 후각의 사제장은 어이없는 얼굴을 했다.
“나참... 싸우다가 이렇게 상대가 바뀌어버리는 경우는 처음 보네.”
“그건 나도 동감이기는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모든 수를 사용할 뿐이다.”
엘로아는 후각의 사제장이 하는 말에 담담하게 대답했다.
“뭐 누구든 상관없지. 죽여주마.”
엘로아는 앞에 보이는 드래고니안을 바라봤다.
로엔의 설명에 따르면 기운의 움직임을 예측해서 공격들을 피한다고 했었다.
엘로아는 웃음을 지었다.
완벽한 카운터.
엘로아에게 가장 쉬운 상대였다.
엘로아는 메인으로 언령을 사용한다.
언령은 세계에게 부탁하는 힘.
다른 기운들을 사용하는 힘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말로 세계에 변화를 줄 뿐이다.
그 세계가 자신을 도울 뿐.
“[폭발하라.]”
엘로아의 말과 함께 사제장의 뒤쪽에 폭발이 일어났다.
후각의 사제장은 정통으로 폭발을 맞아버렸다.
“컥!”
그렇게 강한 폭발은 아니어서 데미지가 크게 들어간 거 같지는 않았지만, 사제장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피어나는 건 좋은 징조였다.
언령은 즉발성 능력.
어떻게 반응하거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거에 기운의 움직임까지 없으니 후각의 사제장은 상대방이 능력을 사용하는지 알아채지도 못했다.
“[폭발하라.]”
이번에는 엘로아의 지팡이가 빛을 냈다.
더욱 큰 폭발.
하지만 후각의 사제장은 당하지 않았다.
이미 자신의 근처에 폭발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럼 몸을 움직이면 됐다.
후각의 사제장은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달려나가며 하늘 위로 검을 날렸다.
“엘로아. 저 검들은 너를 노리고 온다.”
노아스의 말에 엘로아는 별 반응을 하지 않았다.
“[땅이여. 일어나라.]”
엘로아의 말과 함께 땅에서 돌이 솟아났다.
‘움직임을 막으려 한 건가.’
후각의 신관장은 천천히 생각했다.
이 솟아난 돌들을 지나가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옆으로 돌아가는 법.
위로 뛰어넘는 법.
신관장은 웃음을 지었다.
보통은 위로 뛰어넘어서 갈 것이다.
하지만 신관장은 다른 선택을 했다.
돌을 부수고 직선으로 간다.
“[폭발하라.]”
판단을 내리고 행동하려 하자 엘로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 자신이 움직이는 쪽에 폭발을 일으켜 자신을 공격하려는 계획일 거다.
당연한 판단이다.
어차피 계속 움직이고 있으면 공격을 맞추지 못한다.
그럼 그 녀석이 움직일 곳에 예측해서 공격을 던질 수밖에 없는 거다.
아마 내가 위로 뛰어넘어갈 때 공격하려는 계획이겠지.
후각의 신관장이 앞에 세워진 돌을 부수려고 하자 폭발이 일어났다.
그 폭발은 신관장의 반대편에서 일어났다.
정확히 반대편.
‘뭐?’
그리고 그 폭발은 돌을 부쉈고 파편들이 날라왔다.
“크윽!”
신관장은 갑자기 날라오는 파편들을 정확히 맞았다.
그 파편을 맞고 뒤로 날아가자 흐릿하게 엘로아가 보였다.
하지만 한 방이 더 있다.
자신이 던져놨던 많은 수의 검이 떨어지는 게 보였다.
“[이동.]”
하지만 그 검들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너무 가볍게 피했다.
엘로아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애송아. 니 행동은 내 손바닥 위다.”
후각의 신관장은 생각했다.
자신은 미래를 보는 척을 해왔다.
미래를 보는 척이긴 했지만, 자신은 어느 정도 미래를 보는 것과 똑같은 능력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먼 미래는 보지 못하지만 가까운 싸움에서의 미래는 보고 있는 거 같았다.
그리고 자신은 싸움을 적게 하지도 않았다.
드래고니안으로서 살아남기 위한 싸움들.
엄청난 경험들을 해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 앞에 있는 신을 보니 자신이 한없이 작아 보였다.
분명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 상대에서 느껴지는 건 엄청나게 많은 전장을 거친 노장의 품격이었다.
자신에게는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지만, 저 신에게는 과거의 흔적이 있었다.
미래를 보지 않더라도 과거에 했던 상대들과의 경험.
그 경험들로 나의 행동들을 꿰뚫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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