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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였던 내가 여신이 되었습니다-107화 (121/138)

〈 107화 〉 #106 로엔vs 미각의 사제장

* * *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꿇어라.]”

엘로아의 말에 신관장의 몸이 자동으로 움직였다.

원래 사람을 언령으로 움직이기는 힘들었지만, 이미 마음이 꺾인 상대를 조종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하아... 하아...”

후각의 신관장은 무릎 꿇은 채로 숨을 몰아쉬었다.

아무리 달려들어도 자신의 공격이 읽힌다.

그리고 후각의 능력으로 상대방의 행동을 읽어도 상대방은 그걸 이용해 자신을 끌어들인다.

무력감.

상대방에게 손가락 끝조차 대지 못했다는 사실에 엄청난 무력감이 느껴졌다.

“다음 생에는 이런 선택을 하지 않길 빌겠다.”

엘로아는 그 말을 마친 후 뒤돌았다.

그리고 언령을 사용했다.

“[자결하라.]”

그 말을 하자 신관장은 높이 칼을 들고 자신의 심장을 찔렀다.

“하아...”

엘로아는 끝났다는 생각에 안심의 한숨을 내뱉었다.

분명 위엄있는 모습으로 후각의 사제장을 상대하던 엘로아였지만 한 명을 죽였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렸다.

또 생각보다 기운 소모가 컸었다.

미각의 사제장을 상대하다가 상대한 것도 있고 이 녀석한테도 기운 소모를 크게 했다.

계속 공격하더라도 몸이 너무 튼튼해서 쉽게 상처를 입지 않았다.

그래서 엘로아는 저 녀석의 의욕을 꺾었다.

일부러 힘을 사용해도 별거 아니라는 듯 행동했고 압도적인 모습만 보여줬다.

절대로 자신이 못 이기는 상대라는 걸 알려주듯 행동했다.

후각의 사제장이 사용했던 방법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다.

저 녀석은 미래를 보지 못하는데도 미래를 보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압박을 줬고 상대방이 과감하게 행동하지 못하도록 했다.

엘로아도 똑같았다.

압도적인 모습만을 보여주면서 상대방의 의욕을 꺾어간다.

자신이 이런 행동을 하더라도 막을 수 있을 거 같으니 행동의 범위가 좁아진다.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 더 엘로아가 유리해져 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상대방의 모든 의욕을 꺾었을 때 신관장의 몸을 조종한다.

하지만 저 녀석이 미래를 보는 걸 연기했던 것처럼 엘로아도 상대방이 쉬운 건 아니었다.

계속 되는 공격에도 버텨내고 계속 달려든다.

몸이 버티고 있으니 마음도 꺾이지 않는다.

그래서 위험했던 적이 몇 번 있었지만, 여유 있는 연기를 계속했다.

상대방에게 들키지 않도록.

“휴... 수고했다. 노아스.”

엘로아는 노아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래... 고생이란 고생은 내가 다했지...”

“난 다른 곳으로 가보겠다. 쉬려면 여기서 쉬어라.”

“뭐 다른 곳으로 가겠...?”

노아스의 말이 끝나기 전에 엘로아의 모습은 사라져버렸다.

상태가 그렇게 좋아보이지 않던데...

“...쩝.”

노아스는 말을 흐렸다.

조금 편하게 이긴 거 같기는 해도 몸 상태가 괜찮아 보이지는 않았다.

엘로아가 사용하는 지팡이와 왕관.

이 도구들은 언령을 말도 안 될 정도로 강하게 만들어준다.

엘로아의 언령은 노아스가 처음 보는 정도의 위력이었다.

나름 중간계가 생겨났을 때부터 있었던 노아스로서는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위력의 무기가 아무런 대가 없이 사용할 수 있을까?노아스가 보기엔 아무리 봐도 아니었다.

“조심해야 할 텐데...”

“으엑... 이게 뭐야?”

“로엔?”

나는 미각의 사제장 앞으로 이동되었다.

그 옆에는 렌이 서 있었고 렌은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렌! 렌 여기 있었구나!”

“아...아니 그것보다 분명 엘로아님이랑 같이 있었는데?”

렌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어? 엘로아한테 못 들었어?”

나와 렌은 서로 빤히 쳐다봤다.

‘아니. 같이 있는 사람한테는 설명해야지.’

렌의 표정은 딱 이런 걸 말하고 있는 거 같았다.

나도 노아스에게 제대로 설명하지는 않아서 뜨끔하는 마음이 있었다.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뭐 어쨌든 상황 설명은 대충 들었으니 한 번 해볼까?”

나는 팔을 걷어붙였다.

하지만 앞에 있는 오로치의 모습에 인상이 꾸겨졌다.

거대한 몸에 달린 8개의 용 머리.

그리고 그 중앙에 달린 커다란 사람의 몸.

멀리서도 모습이 조금 보이긴 했지만, 가까이서 보는 것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TV에서 보던 걸 실제로 본 듯한 느낌 같았다.

앞에 있는 녀석들의 피부 질감이나 움직임이 더 와 닿았다.

“구역질 나올 거 같네...”

“나는 저런 녀석하고 부딪히면서 계속 싸웠다고...”

내 말에 렌도 공감하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우리가 그러고 있자 오로치에 달린 사람의 몸이 이리 저리 둘러봤다.

그리고 말하기 시작했다.

“가짜... 가짜는 어디... 어디 갔어...”

가짜?

“쟤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엘로아님을 가짜라고 착각하는 거 같던데?”

“에? 엘로아를?”

“가짜... 가짜를 데려와라!!!! 직접 찢어 죽여주겠다...!”

그 소리를 듣자 머리가 핑 돌기 시작했다.

저 녀석은 신관장이다.

광신도들의 수장이라고 불리는 녀석.

그럼 평범한 광신도들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죽였겠지.

여기 전장에서만 하더라도 수 많은 사람들을 죽였을 거다.

그런데 그런 녀석이 엘로아에게 가짜라고?

그거에다가... 찢어 죽이겠다고?

엘로아는 여기 차원의 사람들을 살리려고 모든 힘을 쏟아붓고 있었다.

자신이 직접 움직여 사람들을 구하려고 했고 이 차원을 버리자는 신들을 꾸짖었다.

내가 봐왔던 엘로아의 착한 성품.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신이라는 직위.

그런 직위에 가장 알맞고 적합한 존재였다.

엘로아 같은 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중간계가 있는 거였다.

그런데 그런 신에게 가짜라고 말한다고?

그런 내 가족에게 가짜라고?

“니가 뭔데...?”

“어?”

내가 어금니를 꽉 깨물며 작게 말하자 렌이 나를 봤다.

“니가 뭔데 내 가족에게 가짜다, 진짜다 말하는 거지?”

내가 미각의 신관장에게 소리치자 신관장은 분노에 찬 듯 말했다.

“그 녀석은 가짜다. 가짜라고!!!!!!!!”

허...

대화가 안 되네.

“내 가족을 욕한 대가는 받아야겠지?”

자리... 잘 바꾼거 같네.

엘로아라면 이런 말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거다.

그게 엘로아니까.

엘로아는 이런 사소한 말을 신경 쓰지 않는다.

아니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다.

엘로아는 언제나 자신의 감정을 배제한 후 중요하고 큰 길만을 걸어가려고 한다.

어차피 저 녀석이 하는 말은 틀린 말이니 무시했을 거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게 싫었다.

분명 엘로아가 말은 하지 않겠지만, 신경이 쓰이기도 했고 화도 났을 거다.

그렇지만 그런 감정을 배제하고 행동했겠지.

내가 자리를 바꾸자고 했을 때도 효율만을 생각하고 이 녀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거다.

아무리 짜증이 나고 마음에 들지 않았어도.

자신의 손으로 저 녀석을 없애버리고 싶어도.

“너는 너가 엘로아를 진짜라고 말할 때까지 내가 패줄게.”

나는 8개의 근원을 저 녀석의 주위로 날렸다.

그리고 그 근원들은 커다란 가시로 바뀌었다.

“너에게 아주 좋은 걸 줄게.”

엘로아에게 이 녀석에 대한 설명을 대충 들었다.

힘 자체도 뛰어나기는 하지만 가장 거슬리는 점은 마물을 먹어 치료하는 거라고.

우리 갇혀있을 때 만났던 녀석들은 핵이 있어 그 핵으로 치료했었다.

하지만 그런 녀석들은 핵을 부수면 끝났기 때문에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다.

진짜 귀찮은 녀석들은 외부 매체를 통해 치료하는 녀석들이다.

특히 이 녀석 같은 경우는 머리가 8개나 돼서 모든 움직임을 막기 힘들겠지.

내가 아니라면.

엘로아는 나에게 말해줬다.

아주 간단하게.

이 녀석의 움직임을 막으면 된다고.

아주 간단한 말이었지만, 사실 어려운 방법이었다.

하지만 난 엘로아가 그렇게 간단하게 말해준 게 기분이 좋았다.

그만큼 나를 믿어준다는 뜻이니까.

엘로아가 세세하게 방법을 설명해줄 수도 있지만, 그저 간단하게 말해줬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 그렇게 한 거다.

그리고 나는 바로 방법을 생각해냈다.

장어 손질하는 걸 본 적이 있는가.

장어를 손질할 때 보통 머리에 송곳을 박아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나는 저 꿈틀거리는 머리들을 보고 바로 장어가 생각났다.

원래 장어 머리에 송곳을 꽂을 때는 바닥에다가 꽂는다.

하지만 나는 약간 다른 방법을 생각했다.

굳이 저렇게 좋은 기둥이 있는데 땅에다가 꽂을 필요가 있을까?나는 오로치 몸 중앙에 있는 신관장의 몸을 봤다.

“박혀라.”

근원으로 만들어진 가시들은 내 말과 함께 날아갔다.

오로치의 머리를 뚫고 미각의 신관장 몸에 박혔다.

“크억!!”

­크르르라라라!!!

오로치의 머리와 미각의 사제장은 고통에 소리쳤다.

오로치의 머리 움직임이 느린 편은 아니었지만, 근원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나는 근원 한 방울을 더 꺼내 커다란 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원을 이용해 가시들을 연결했다.

가시들이 원으로 연결되어 있는 모습이 마치 천사 머리 위의 고리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그런데 그렇게 천사의 링에 가시가 나 있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가시 면류관.

예수님이 십자가에 박힐 때 머리에 쓴 가시 면류관 같은 모습이었다.

“음... 처음으로 짓는 기술명인데...”

나는 공중으로 떠올랐다.

“가시 면류관... 이름 좋은데?”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오로치는 가시에 박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원으로 가시들을 연결해놨더니 더욱 단단하게 묶였다.

“가시 면류관과 장어는 좀 엮기 그렇긴 한데... 그래도 원래 발상이 장어니까...”

음음... 원래 발상에 충실해야지.

나는 살벌한 미소를 띄웠다.

오랜만에 드는 이 기분.

내 가족을 감히 건들여?

“하나 하나 손질해줄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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