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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였던 내가 여신이 되었습니다-108화 (122/138)

〈 108화 〉 #107 약속

* * *

나는 근원으로 검을 만들어냈다.

사실 내가 검을 만들 때는 매일 마신의 기운이나 신력으로만 만들었다.

어차피 몸으로 다루는 무기니 신체 능력으로 커버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엔 근원으로 만들었다.

제대로 손질하기 위해서.

어떤 음식을 손질하기 전에 칼을 가는 거와 비슷한 원리?

어쨌든 저 녀석을 더 잘 손질하기 위해서다.

“감히...!”

미각의 사제장은 내가 박아놓은 가시를 뽑으려고 했다.

사람의 몸이다 보니 손이 있어 그 손으로 가시를 뽑으려 했지만 꿈쩍하지 않았다.

전부 엮여져 있어 뽑으려고 할수록 반대쪽은 더 깊숙이 박혔다.

그렇다고 뽑으려고 한쪽이 뽑혀나간 것도 아니었다.

그러자 오로치의 머리 하나가 격렬한 몸부림을 쳤다.

몸부림을 치자 가시가 박혀있는 부분이 점점 찢기기 시작했다.

‘벗어나려고 하는 건가?’

그 머리는 가시가 뽑히지도 않고 움직여지지 않자 자신의 몸을 찢고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걸 보고만 있을 내가 아니었다.

나는 그 머리 쪽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그 머리의 피부를 난도질했다.

마치 껍질에 칼집을 내듯 베었다.

머리 자체를 베어버리면 잘려나간 단면에서 머리가 자라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저 피부만을 베어내서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크락!!

내가 피부를 난도질하자 고통에 소리쳤다.

하지만 움직이는 힘이 확실히 줄어들었다.

“으아악!!”

그러자 미각의 사제장 또한 소리쳤다.

몸이 이어져 있어 고통이 공유되는 거 같았다.

그럼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지.

나는 움직이려던 머리를 포함해서 다른 머리들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크라라라라라라!!!!!!!!!!!!!!

오로치의 머리들은 마치 칼집이 놓아진 물고기 마냥 피부가 갈라졌다.

하지만 그 피부들은 금세 치유가 되었다.

먹지 않아도 치유되는 걸 보니 몸에 어느 정도 에너지가 저장되어있는 거 같았다.

“이놈!!!!!!!!”

미각의 신관장은 고통을 느끼며 분노도 느꼈는지 나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이미 몸 전체가 묶여있는 상태로 나에게 할 수 있는 건 소리치는 일밖에 없었다.

“목소리가 크다고 싸움에서 이기는 건 아니야.”

나는 높이 뛰어올라 검으로 미각의 신관장을 찔렀다.

정확하게 심장을 찔렀다.

그러나 그다지 큰 변화가 없었다.

그저 고통스러워 할 뿐.

지금 몸만 사람의 형태일 뿐 사람인 거는 아니니까 사람과 급소가 다를 수 있겠지.

그런데 어떻게 죽여야 하지?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는 만들었지만, 죽일 방법을 찾지는 못했다.

계속 이렇게 고통만 줘야 하나?그때였다.

“으!!!”

미각의 사제장은 손으로 오로치 머리 하나를 뜯어냈다.

뜯어내는 걸로 모자라 그 머리를 자신이 먹기 시작했다.

“이런 씹...”

욕이 나올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일단 오로치의 머리를 먹는 거부터 기괴한 장면인데 자신의 몸을 먹는다고 생각하니 구역질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저 보고 있을 수 없었다.

나는 바로 달려나가서 미각의 사제장 팔을 잘라냈다.

“크악!!”

하지만 이미 늦었다.

뜯어낸 오로치의 머리는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라난 머리는 나머지 머리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근원 제자리로!”

나는 근원을 다시 원상태로 돌려보냈다.

이미 뜯어내기 시작했는데 저 상태로 놔뒀다간 근원을 그저 낭비해버린다.

“네 방울 정도인가...”

근원을 회수하자 네 방울 정도의 양이 남았다.

아홉 방울을 사용했었는데 남은 게 절반이라...

“먹어치워 주마!!!”

미각의 신관장과 오로치의 머리들은 전부 나를 노렸다.

“로엔!!”

그러자 내 앞으로 렌이 뛰쳐나와 기운을 뿜어냈다.

마치 털처럼 나온 기운들은 오로치들을 막아줬다.

“렌!”

하지만 렌이 모든 공격을 피하지는 못했다.

내 앞을 막는 데는 성공했지만, 자신에게 오는 공격을 전부 막지는 못했다.

“크흣!!”

오로치의 머리가 빠른 속도로 렌에게 달려들었고 렌은 뒤로 밀쳐났다.

나는 바로 앞으로 나가 렌을 낚아채고 뒤로 물러났다.

“렌 괜찮아?”

“윽... 많이 아프네.”

나는 근원을 한 방울 떼서 렌에게 넘겨주었다.

“미카미카. 렌을 지켜줘.”

안전한 장소로 렌을 이동시키고 싶었지만, 지금 안전한 장소라고 할만한 곳은 없었다.

전장 어디든 마물이 있고, 신관장이 있다.

그런 상태에서 나한테 멀리 이동시키는 건 더 안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렌 여기에 가만히 있어. 이 구슬이 널 지켜줄 테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렌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동료가 싸우는데 어떻게 보고만 있냐?”

렌은 웃음을 흘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분명 몸에 상처가 커 보였는데도 꿋꿋이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다.

“너 이러다가 죽어.”

나는 단호하게 렌에게 말했다.

렌은 중간계에서 강한 편이다.

특히 만월이 떠있는 지금은 더욱 강하다.

하지만 충분히 노력해줬다.

자신의 힘을 다해 신들도 힘들어하는 신관장을 막아줬고 그 결과 신관장에 대해 엘로아가 파악할 수 있게 해줬다.

이제는 나의 역할이다.

거기에 렌이 더 도와준다고 하면 나는 그저 염치없는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렌은 나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전장에서 죽는 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잖아? 동료와 함께 싸우다 죽으면 어쩔 수 없는 거지.”

분명 웃고 있는 부드러운 얼굴이었지만, 눈은 패기가 넘쳤다.

바로 뛰쳐나가서 모든 걸 물어뜯을 거 같은 늑대의 눈빛.

솔직히 논리적으로 설득한다고 해서 말을 들을 거 같지는 않았다.

뭐 처음부터 렌은 그랬다.

별일 없이 조용히 지내는 날이 없었고 불의한 일을 보면 참지 못했다.

나는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이게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 동료였던 렌의 모습이지...

조금 오랜만에 봐서 렌을 잊었던 거 같았다.

하지만 이 상태로 싸우게 둘 수는 없다.

나는 이 모습의 렌을 봤으면 됐다고 생각한다.

“아... 렌.”

그러다가 렌을 설득하는 방법이 한 가지 생각났다.

렌은 불의한 일을 보면 못 참고 자신은 절대 그런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

“렌 우리 처음 여행 시작했을 때 기억나?”

“갑자기 무슨 추억 회상이야.”

내가 그런 말을 하자 렌은 무슨 소리냐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우리 처음 여행했을 때 내기했잖아.”

“내기?”

렌이 카론을 가르치고 있을 때 렌과 나는 내기를 했었다.

서로 결투를 해서 내가 이기면 렌이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고 렌이 이기면 내가 수련에 참여하기로 했었다.

그저 장난스럽게 했던 내기.

솔직히 가물가물했는데 처음 만났던 생각을 하니 갑자기 떠올랐다.

“그 소원 지금 쓸게.”

나는 엄지를 들며 방긋 웃어 보였다.

“푹 쉬어.”

렌은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네 소원대로 푹 쉬어주마. 니가 도와달라고 소리쳐도 여기 앉아서 푹 쉴 거야.”

“그래 푹 쉬어.”

그저 장난으로 했던 내기긴 했지만 렌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것보다 이런 장난으로 설득하는 게 더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페르세스!”

엘로아는 바로 페르세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하하... 엘로아... 왔어?”

페르세스는 피를 줄줄 흘리면서 누워있었다.

“뭐야 이 상태는...”

“아 죽지는 않을 거 같은데 죽기 전 정도로 아픈 느낌?”

페르세스는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엘로아가 보기에 상태가 너무 안 좋았다.

“일단 치료부터 받자.”

“신관장은?”

“쓰러트렸어.”

“다행이네.”

담백하게 대답한엘로아는 페르세스를 앉힌 후 치료에 들어갔다.

“엘로아는 괜찮아?”

페르세스는 치료받으면서 엘로아에게 물었다.

평소의 걸걸한 페르세스와 다르게 많이 순해진 느낌이었다.

엘로아는 그런 페르세스를 보며 안타까운 얼굴을 했다.

“멀쩡한 거 안 보여?”

“그래? 다시 물을 게. 괜찮아?”

순한 얼굴을 하다가 살짝의 진지한 표정으로 엘로아에게 물었다.

“...괜찮아.”

“일단 벗고 있지 그래. 나한테까지 강한 척할 필요 없잖아.”

페르세스의 말과 함께 엘로아는 왕관을 벗었다.

왕관을 벗자 지팡이가 사라지고 등을 감싸고 있던 망토가 사라졌다.

“쿨럭...”

그리고 피를 토해냈다.

그 외에도 자질구레한 상처들이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어느 정도 버틸 거 같아?”

“...모르겠다. 일단 신관장까지는 처리했으니 할 만 할 거 같다.”

“...죽으면 안돼.”

“절대로 안 죽는다. 에레보스와 너, 카리온 거기에 로엔까지 있는데 어떻게 죽어.”

엘로아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웃어 보였다.

“악착같이 살아남는다.”

그리고 엘로아는 이곳에 오기 전에 모두에게 했던 말을 기억해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어떻게든 승리를 강구한다.

­그리고...

­절대로... 살아남는 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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