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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였던 내가 여신이 되었습니다-112화 (126/138)

〈 112화 〉 #111 전투 후에는...

* * *

어두운 공간.

“언제까지 빨려고 하는 거야...”

에레보스는 묶인 채로 기운이 빨리고 있었다

“무슨 모기 새끼도 아니고...”

에레보스가 가진 기운은 지속적으로 빨리고 있었지만, 모든 기운이 소모되지는 않았다.

에레보스의 특징.

기운 컨트롤로 빨리는 정도를 조절하고 있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

시간을 끄는 정도였다.

물론 며칠 동안 계속 기운을 컨트롤 하다 보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다른 마신들이 오기 전까지 시간을 벌어야 한다.

사실상 광신이 소환되면 끝이나 다름없다.

광신이 가진 힘.

그건 말도 안 되는 힘이었다.

지금의 에레보스와 비교가 되지 않는 힘.

에레보스는 주신의 절반이나 다름없는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절반이 남은 주신은 자신의 힘을 중간계와 신들을 만드는데 전부 소모했지만, 에레보스는 아니었다.

에레보스는 겨우 마계를 만들고 엘로아와 같은 마신들만 만들고 더 이상 힘을 소모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중간계를 멸망시키려고 할 때의 에레보스는 말도 안 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주신이 에레보스의 정신을 봉인할 때 에레보스의 힘도 같이 봉인되었다.

분해의 단점.

주신은 에레보스를 나눌 때 정확하게 에레보스의 정신만을 나누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에레보스의 힘도 같이 봉인했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에레보스가 가진 절반 이상의 힘이 정신과 함께 봉인되었다.

물론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에레보스는 기운의 컨트롤이라는 자신의 무기를 만들었지만, 광신도 그러지 않으라는 법이 없었다.

“엘로아... 페르세스... 카리온... 로엔...”

에레보스는 마신들의 이름을 차례로 되뇌었다.

“빨리 좀 와라... 나 힘들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이런 말이라도 하면 ‘기다렸지?’ 하면서 갑자기 나타날 거 같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이제 어깨도 조금씩 뻐근해지네.”

보통 신들은 육체의 피곤함을 느끼지 않았지만, 며칠 동안 묶여있는 채로 있다 보니 피곤함도 누적되었다.

물론 기운을 계속 컨트롤하느라 힘을 소모해서 그런 것도 있었다.

“지낼만하십니까.”

투덜대고 있던 에레보스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이리나인가?”

이리나.

어디론가 사라져서 계속 보이지 않던 이리나가 나타났다.

유일하게 신계에서 주목하고 있었던 광신도.

중간계에서 날뛰면서 너무 티나게 ‘나 광신도의 높은 사람이오.’ 하면서 다녀 주목만 할 뿐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았었다.

광신도들도 바보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그 녀석은 함정일 줄 알았다.

그런데 에레보스는 한 가지 이상함을 느꼈다.

이 녀석은 대체 누구지?

분명 높은 직위임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 녀석은 신관장도 아니고 어떤 직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주 자유롭게 돌아다녔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구속되어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른 신관들과 다르게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지도 않았다.

그저 주변을 방관하며 다녔다.

그렇다고 이 녀석이 착한 녀석이라는 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죄악을 저지르는 녀석만 나쁜 녀석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런 행위를 보고만 있는 녀석도 똑같은 녀석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아니었다.

이 녀석은 힘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보고만 있었다.

그럼 그 녀석들이랑 똑같은 녀석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이상하다는 건 변함이 없었다.

이 녀석의 가장 이상한 점은 중요한 직위임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일을 맡지 않는다는 거다.

그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모든 신관장이 중간계로 나간 것과 다르게 이 녀석은 교황과 같이 있을 뿐이었다.

“계속 그러고 계시면 피곤하시지 않습니까?”

이리나는 어이없는 질문을 해왔다.

“니가 이러고 있어봐라. 피곤한지 안 피곤한지.”

“그럼 피곤하시다는 소리입니까?”

이상한 질문.

평소의 장난스러운 이리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분명 로엔이나 다른 신들을 대할 때는 말꼬리를 늘리며 장난스러운 말투를 사용했지만, 자신한테는 너무나 진지한 말투였다.

“그래 피곤하다.”

에레보스가 대답하자 이리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풀어 드리겠습니다.”

“뭐?”

이리나가 에레보스가 묶여있는 곳에 손을 대자 에레보스가 묶여있던 것들이 풀리기 시작했다.

­철컥... 철컥...

에레보스의 손을 붙잡고 있던 사슬들이 풀렸고, 기운을 빨아들이던 제단은 흡수하는 것을 멈췄다.

“뭐하는 거지?”

“피곤하시다 하셔서 풀어드리는 겁니다.”

에레보스는 어이가 없었다.

그럼 시발 진작에 풀어주지.

무슨 변덕이 일어났기에 갑자기 풀어주는 거지?

하지만 이렇게 순순히 풀려날 리가 없다.

“큭!!”

갑자기 제단에서 사슬들이 나와 이리나의 목을 졸라왔다.

“건방진 년. 무슨 짓이지? 어떻게 혼자서 움직인 거지?”

검은색 기운들이 서서히 모여들더니 사람의 형태가 되었다.

모습을 감추고 있던 교황이 나타났다.

그리고 다른 사슬들이 나타나 에레보스에게 달려들었다.

“후후...”

에레보스의 몸에서 검은색 기운들이 퍼져 나와 그 사슬들을 전부 쳐냈다.

마신의 기운.

에레보스임을 나타내는 순수한 검은색의 기운들.

“뭐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난 지는 잘 모르겠다만.”

에레보스의 기운들은 일렁이며 그 주변을 뒤덮었다.

분명 에레보스의 기운은 광신과 함께 봉인되었었다.

그리고 지금은 제단에서 기운을 많이 빨렸었다.

하지만.

겨우 그 정도로 에레보스가 약한 존재가 되지는 않았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붙잡힌 건 좀 억울했어.”

물론 교황 녀석에게 주신의 기운이 풍겨오고 엘리시가 그대로 잡혀있으면 광신이 너무 빨리 부활할 거 같아 자신이 잡힌 거긴 했지만,

억울한 건 억울한 거였다.

자신의 계획대로래도 어이없는 패배는 에레보스의 자존심에 흠집을 냈다.

“제대로 싸워서 니네가 이기면 기분 좋게 잡혀줄게.”

에레보스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자 교황이 입을 열었다.

“넌 날 못 이긴다.”

그리고 교황... 아니 주신의 머리 위에 근원이 떠올랐다.

“로엔 괜찮아?”

에루는 쓰러진 나에게 달려왔다.

“괜찮은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너무 큰 고통이 갑자기 닥치니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어지러움이 있긴 했지만, 고통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아마 계속 고통이 지속하면 정신이 버티질 못해서 보호 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거 같았다.

“하하...”

나는 괜찮다고 백번 말하는 것보다 한 번 웃어주는 게 더 나을 거 같아서 에루에게 웃어줬다.

“이...!”

내가 웃자 에루는 내 머리에 꿀밤을 박았다.

작은 몸으로 치는 꿀밤이라고 해봤자 아프지는 않았고 그냥 귀여울 뿐이었다.

“이 바보야. 어떤 녀석이 자기 팔을 그렇게 무식하게 잘라!”

“그... 떨어질 다른 방법이 생각 안 나서...”

“에휴... 이게 결과적으로 좋은 방법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에루는 잘린 내 팔을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마법을 사용해 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계속 치료하면 복구할 수는 있을 거 같은데...”

“응급조치만 해줘... 아직 제대로 끝난 건 아니니까.”

내가 그런 말을 하자 에루는 나에게 꿀밤을 세 대 더 먹였다.

“넌 지금 환자야. 이 몸으로 더 싸운다고? 이제 다른 녀석들한테 맡겨.”

“빠르게 응급조치만 해줄 수는 없어?”

“지금은 내가 치료하고 있으니까 내가 의사야. 의사의 소견으로는 절대 안 돼.”

에루가 치료하기 시작하자 피가 멈추고 어깨가 슬슬 복구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뜯겨나간 피부가 전부 돌아오지는 않았다.

다른 마신들에게 맡겨야 하나...

내 동료들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분명 내가 필요할 거다.

내가 그곳에 가면 내가 없어도 된다고 말하겠지만, 내가 사용하는 근원은 무조건 필요하다.

이런 몸이라도 가야 한다.

어차피 다른 동료들이랑 같이 싸운다면 내가 직접 몸을 쓸 일이 없을 거다.

뒤에서 근원만 지원하더라도...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팔이었다.

아무리 내가 뒤에 있다고 하더라도 팔이 없이 싸울 수는 없다.

어깨도 뜯기고 팔도 날아갔다 보니 서 있을 때 균형이 맞지도 않을 거고 여러 가지 불편함이 동반할 거다.

“뭐야. 애송이. 갑자기 몸 상태가 왜 이래?”

내가 누워있는 채로 치료받고 있던 도중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누구?”

내가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에루가 손가락으로 내 머리를 눌렀다.

“넌 누워있어. 노아스님이야.”

“노아스님?”

“그래. 나다. 갑자기 몸 상태가 왜 이래?”

검은 머리에 구릿빛 여성, 노아스님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하하...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아이고... 아프겠네. 그것보다 엘로아는 어디 갔어?”

“엘로아요?”

“여기로 온 줄 알았더니 아니네.”

엘로아는 후각의 신관장을 물리친 후 다른 곳을 도우러 가서 이곳에 올 줄 알았다고 했다.

뭐 엘로아가 싸우던 곳이기도 하니까.

그럼 엘로아는 어디 간 거야.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노아스가 걱정되는 눈으로 날 봤다.

“이 상태로는 더 못 싸울 거 같은데 신계로 돌아가지?”

“아... 아니에요. 싸울 수 있어요.”

“뭐 싸울 수 있어. 몸이 엉망인데. 노아스님 말대로 해.”

“그래 이 꼬맹이 녀석 말대로 해라. 나도 그게 좋아 보인다.”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갈 거에요... 싸울 거에요... 조금만 더 치료받고...”

“로엔!”

내가 그런 말을 하자 에루가 나에게 소리쳤다.

분명 내가 걱정돼서 하는 말이겠지만, 그래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내 상태가 좋지 않은 건 분명하다.

엄살 부리고도 싶고 어리광부리고도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내가 조금 엄살 부려 쉬러 갔다가 내 동료들이 잘못된다면...

큰일이 난다면...

중간계... 아니 모든 차원이 위험해진다면...

그럼 어리광은 무슨 평생 동료들의 얼굴도 보지 못한다.

“에루 부탁할게. 오늘 하루 정도만 싸울 수 있게 해줘.”

나만 이렇게 다친 것도 아니다.

이 전장에 있는 모두.

작은 상처를 입은 사람도 있을 거고 큰 상처를 입은 사람도 있을 거다.

심하면 죽은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이 사람들 모두가 자신이 다치지 않을 거로 생각하고 나왔을까?

아니다.

모두 죽을 각오를 하고 나온 거다.

상대방은 강하니까.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죽기 싫다.

지금의 환경과 모든 게 내 맘에 든다.

다시 이런 환경이 리셋된다고 생각하면 슬픔이 울컥하고 차오른다.

그래서 나는 죽을 각오를 하고 싸우는 거다.

죽기 싫어서 죽을 각오를 하고 싸운다.

“부탁할게.”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에루에게 말했다.

“니가 그렇게 말해도, 니 팔을 재생시킬 수는 없어.”

에루는 단호하게말했다.

“아니. 잠깐이라면 팔을 만들어 줄 수는 있다.”

“에?”

“네?”

나와 에루는 동시에 반응했다.

“오늘 하루 정도... 그 정도라면 팔을 만들어줄 수 있어. 하지만 격렬하게 움직이지는 못할 거다.”

그 정도면 된다.

“부탁할게요. 노아스.”

내가 그렇게 말하자 노아스는 나를 보고 웃어 보였다.

“나는 귀찮은 일을 싫어하기는 하지만...”

그리고 흙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귀찮은 일을 하는 사람을 싫어하지는 않거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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