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 #114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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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온!! 이게 무슨!!!”
바알은 카리온에게 소리쳤다.
카리온은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괴로움이 얼굴에 나타났다.
카리온은 솔로몬의 행동을 예측하기는 했었다.
자신이 도망가라고 했을 때 솔로몬이 잠시 자신을 쳐다봤었다.
담담한 눈빛.
마치 자신이 해야 될 일을 알고 있다는 태도.
카리온도 이를 의도한 바가 있었다.
솔로몬을 편하게 보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큰 공격을 먹이려면 붙잡으려는 기술이 필요한 법이니까.
대신 강요하지는 않았다.
솔로몬에게 선택지를 줬다.
도망가도 괜찮다는 선택지를.
하지만 솔로몬은 솔로몬 다운 선택을 했다.
그게 솔로몬이 원했던 전사의 삶이니까.
오래 전 신계.
솔로몬이 슬슬 생명을 다해갈 때 카리온에게 찾아갔다.
원래 카리온과 솔로몬은 그렇게 연이 있는 사이가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과 계약하고 싶다고 했다.
“오래 살고 싶다는 마음은 뭐 그렇다고 할 수 있는데... 갑자기 왜?”
카리온은 물었다.
원래부터 강직하게 살아왔던 솔로몬이 겨우 오래 살고 싶어서 자신과 계약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는 천사들을 대표하는 한 명의 천왕이기 전에 한 명의 전사입니다.”
그 말을 하고 솔로몬은 살짝의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퇴역 전사로서 죽기보다는 언젠가 저의 목숨이 필요할 때 사용되는 게 더 좋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카리온은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태어났을 때부터 신계와 천사들에게 전부를 바쳤던 녀석이 마지막.
그 마지막까지 이 녀석은 남들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거다.
카리온은 이 녀석을 만난 게 그때가 처음이었지만, 이 녀석의 소문이 거짓된 게 아님을 깨달았다.
강직하고 모두를 위해 사는 천왕.
카리온은 만족하며 솔로몬과 계약했다.
카리온은 그렇게 솔로몬과 오랜 시간을 보냈다.
이 녀석은 자신의 몸을 사릴 줄 몰랐다.
자신이 몸이 깎이고 베여도 해야 될 일을 했다.
그리고 지금.
“크으으윽...!”
“허허... 불길이 따뜻하지 않은가.”
카리온의 기운과 로드의 브레스 속에서 솔로몬과 사제장이 있었다.
솔로몬은 엄청난 고통에 휩싸였지만, 사제장을 놓치지 않았다.
불길 속에서 방패와 작은 검으로 사제장을 밀어붙였다.
사제장은 불길에서 나오려고 했지만, 계속 공격하는 솔로몬 때문에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사제장의 피부는 불길에 의해 녹아내렸다가 다시 생성되었다가를 반복했다.
솔로몬은 풀 플레이트 아머에 몸이 가려져 있었지만, 안은 어떠한 상태인지 뻔했다.
“니가 그런다고 내가 죽을 거 같아? 넌 그저 희생될 뿐이다.”
사제장은 솔로몬과 부딪히며 말했다.
“무의미하지는 않겠지. 전사의 마지막이라면 나쁘지 않다고 본다.”
“크흐흐... 전사의 마지막? 그래 전사의 마지막이겠지. 그저 전장에 있는 병사의 마지막. 개죽음이라는 소리다. 훗날에 기억되는 그런 전사가 아니라.”
사제장은 솔로몬의 말을 비웃었다.
“그게 그래서 어떻다는 거지?”
“뭐?”
“이런 일을 내가 기억에 남기 위해서 하는 거 같나?”
솔로몬의 말에는 웃음기가 맴돌았다.
“희생을 기억에 남기 위해 한다는 소리는 내가 처음 듣는 군. 그건 희생이 아니다. 그저 기억에 남기 위한 발악이지. 희생은 발판이다. 다른 이들이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발판.”
그리고 솔로몬은 방패로 강하게 밀어붙였다.
“나는 겨우 기억에 남는 존재보다 세상 모두가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발판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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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사제장이 나온다 준비해.”
카리온은 바알과 로드에게 말했다.
불길은 점점 잦아들었고 사람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 명이었다.
불길이 전부 없어지자 쓰러져 있는 솔로몬도 보였다.
“겨우... 겨우... 이딴 녀석 때문에...”
서 있는 사람은 사제장이었다.
온 몸이 불에 그을려 검은색을 띄고 있었다.
쓰러져 있는 솔로몬의 갑옷은 황금색이 사라져 있었다.
십자가를 받기 전의 갑옷색이었다.
“바알.”
카리온이 말하자 바알이 사제장에게 달려들었다.
사제장은 도끼로 바알의 발톱을 막았다.
아까보다 둔해진 움직임.
힘을 소모한 만큼 약해져 있었다.
바알이 밀어붙이자 바알의 공격에 전부 대응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바알의 공격은 통각의 사제장에게 생채기들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부분.
그 생채기들은 치료되지 않고 있었다.
충분히 죽일 수 있다.
모두의 눈에 희망이 깃들었다.
천사들은 하늘에서 총 공격하기 시작했고 로드도 마법을 사용해 공격했다.
“이 새끼들이...!”
통각의 사제장은 소리쳤다.
바알을 도끼로 강하게 치자 바알은 뒤로 밀려났다.
“하하... 니네 이길 수 있을 거 같지?”
당연하지 않는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제장을 모두가 쳐다봤다.
“그래. 이대로면 너희가 이기겠지.”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난 혼자 죽지 않는다.”
사제장의 몸에서 갑자기 엄청난 기운이 나오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쓰러질듯한 사제장이 아니었다.
그리고 사제장은 입을 열었다.
“광폭화.”
그러자 사제장의 눈이 붉어졌다.
통각의 사제장 앞에 검은색 칼이 하나 나왔다.
사제장은 그 검은색 칼을 쥐더니 자신의 목을 찔렀다.
“나는 혼자 죽지 않는다...!”
목을 찌르자 점점 사제장의 몸이 검은색이 되어가는 게 보였다.
아니 검은색과 붉은색이 섞여 있는 느낌이었다.
사제장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자폭...”
그 말을 꺼내자 마치 폭발할 물체처럼 몸이 점점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몸에서 빛이 새어나왔고 곧 폭발할 듯했다.
“이런 시발...”
카리온은 욕을 내뱉었다.
엄청난 수의 천사들이 지금 여기에 있다.
인간들도 많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저 녀석이 폭발한다?
자신은 살 수 있겠지만, 다른 녀석들은 아니다.
저 녀석이 풍겨오는 기운.
이미 저 녀석은 죽은 거 같지만, 모든 기운을 폭발로 사용하고 죽은 거 같았다.
점점 풍겨오는 기운이 진해졌다.
저 기운으로 폭발해버린다면 우리가 있는 곳뿐만 아니라 다른 곳까지 영향이 간다.
카리온은 최대한 빠르게 생각했다.
다른 공간으로 보낸다?
그럼 어디로 보내지?
다른 중간계로 보내기엔 정확한 좌표를 찍을 수 없다.
사람이 하나도 없는 곳의 좌표를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이공간에 넣을 수도 없었다.
이공간이 버틸 수 있는 충격의 한계가 있다.
어느 정도 규모를 줄 일 수 있겠지만, 폭발이 벗어나 올 거다.
그리고 이공간을 만드려면 그 입구를 새길 곳이 필요하다.
이공간을 새길 물건.
그러나 그런 물건도 없다.
“쿨럭... 이제 좀 죽으려고 했건만...”
그러자 저 멀리서 솔로몬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엉망진창인 모습이었지만, 몸을 일으켰다.
그 모습을 보고 바알이 입을 열었다.
“살아 있...?”
“아니 곧 죽는다.”
솔로몬은 바알의 말에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카리온에게 절뚝이며 걸어갔다.
카리온이 솔로몬을 보자 서서히 생명이 꺼져가는 게 느껴졌다.
아니.
사실상 꺼져있었다.
죽은 상태나 다름없었다.
그저 카리온 준 생명력으로 어떻게든 끈을 잡고 있는 느낌이었다.
“솔로몬...”
“제 몸을 객체로 이공간을 여십시오.”
사람의 몸.
이공간을 그런 곳에 연다면 분명 좋은 공간을 만들 수 있긴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폭발이 세어나온다면 몸에서 폭발이 나온다는 소리다.
고통을 그대로 몸이 받아야한다.
투구 사이로 솔로몬의 얼굴이 보였다.
차마 말로 묘사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일어난 거 자체가 말이 안 됐다.
카리온은 솔로몬을 빤히 쳐다봤다.
“이왕 희생한거 끝까지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솔로몬...”
“빨리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최대한 멀리 가야 합니다.”
카리온은 솔로몬의 손을 잡고 악수했다.
“고맙다.”
그리고 긴 말보다 많은 말을 담은 한 마디를 건넸다.
“별 말씀을...”
솔로몬은 카리온이 줬던 십자가를 로드에게 던졌다.
“잘 사용해라.”
카리온은 빠르게 솔로몬의 몸에 마법진을 새겼다.
그 마법진은 터지려고 하는 통각의 사제장을 빨아들였다.
“그럼 다음 생에 만나도록 하겠습니다.”
솔로몬은 그렇게 말하고 흰색 날개를 펼쳤다.
천사를 의미하는 흰색 날개.
그리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늘에 열려있는 포탈.
광신도들이 열었던 포탈.
그곳으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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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됐다.”
“무슨 무식하게 이런 속도로 작업해!!”
에루는 드러누운 채로 투덜댔다.
나도 신기하긴 했다.
평소의 노아스는 귀찮다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었는데 이런 지식들이 있는 줄 몰랐다.
아니. 어디 나가지 않으니 책 같은 걸 많이 읽은 건가?
노아스는 인체 구조학적인 지식과 마법 회로에 대한 지식을 섞어서 작업했다.
그리고 그 작업 속도는 말도 안 됐다.
자신의 일을 하면서도 계속 에루에게 훈수를 뒀다.
그러다 보니 에루도 급하게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분명 빠르게 작업하는데 정확했다.
내가 일어나서 팔을 움직이자 아주 잘 움직였다.
“노아스, 고마워요...”
“이 정도 가지고.”
그렇게 말을 나누고 있자 하늘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정확히는 포탈과 지상 사이에서였다.
“뭐야...!”
우리 모두는 그 폭발에 놀랐다.
폭발의 규모가 지상까지 영향이 가지는 않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규모였다.
“포...포탈?”
이미 다른 마신들은 포탈로 간 건가?
지상에서 포탈로 간 건지 아님 포탈에서 내려온 폭발인지 구별되지 않았다.
“노...노아스. 에루. 이만 가봐야 할 거 같아요.”
노아스와 에루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까지 해줬으니까 꼭 성공해야 한다.”
나는 무엇을 성공해야되냐고 묻지 않았다.
어떤 걸 성공해야하는지는 분명했으니까.
세상을 구한다.
나는 그 사명만을 가지고 포탈 쪽으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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