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 #118 미카엘과 가브리엘
* * *
“너희는 중립이자, 중립이 아니다. 중립을 유지하며 세상의 편을 들어라.”
내가 처음 들었던 말이었다.
주신님은 미카엘을 만들고 나를 만드셨다.
그리고 어느 날 나와 미카엘을 불렀다.
“내 아이들아. 너희는 세상을 지켜보고 세상에 있는 아이들을 지켜줄 의무가 있다.”
주신님의 마지막 말.
그 말을 마지막으로 주신님은 사라지셨다.
그리고 우리는 주신님이 시키셨던 일을 하기 시작했다.
미래를 의미하는 미카엘과 과거를 의미하는 나.
가브리엘.
미카엘은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신들에게 말해줬고 나는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세상의 중심에서.
어떤 때에는 그저 상인으로 주변에서 지켜보기도 했고, 기사로써 싸우기도 했다.
하지만, 나로 인해 세상에 영향이 가지 않도록 움직였다.
주신님이 말씀하신 중립.
우리는 그저 세상에게 조언할 뿐이었다.
미카엘과 나는 직접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우리의 힘은 병기 수준으로 뛰어났지만, 그 힘은 사용하지 않았다.
아무리 세상이 위험하고 불안해도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을 저버리지는 않았다.
나는 기록된 사실들을 필요한 이들에게 보여줬다.
그 사람과 상황에 필요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보여줬다.
어떤 때는 책으로... 어떤 때는 노래로... 어떤 때는 조언자로...
특정한 매체가 아닌 여러 가지로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게 어떤 조언이라고 정확하게 말해주지는 않았다.
언제나 우연을 가장해 다가갔다.
그저 본인이 깨달아야했다.
그렇게 나는 기록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그 기록을 알렸다.
다음 번에는 더 좋은 대처 방법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주신님도 다른 신들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자립심.
우리의 힘 정도라면 어느 정도의 위험은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힘을 넘어가는 정도라면?
우리가 힘을 사용하지 못할 상황이라면?
그렇다면 세상은 아무런 힘도 사용하지 못하고 무너질거다.
나와 미카엘은 나침반이다.
세상 사람들이 어느 길로 나아가야 할지 보여주는 나침반.
직접 항해를 하는 사람은 살아 숨 쉬는 존재들이다.
우리는 배를 이끌어줄 수 없다.
항해에 관련된 모든 능력은 세상 사람들이 발휘해야 한다.
그 존재들은 우리가 보여준 길로 갈 수도 있지만, 다른 길로도 갈 수 있다.
어떤 길이 지름길인지, 맞는 길인지는 그저 가본 존재들만이 알 뿐이다.
나는 그렇게 내 역할을 다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 때는 어느 때와 다름 없이 새로운 역사들을 찾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광신도라...”
나는 세상을 돌아다니다 광신도가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사건도 중요하겠네.”
그리고 그 관련 사건들을 기록하러 그곳에 가려고 했다.
광신도의 중심지로.
하지만, 내 앞에 나타난 존재로 인해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가브리엘. 오랜만이네.”
“...!”
내 앞에 나타난 이는 주신님이었다.
나를 창조하시고 사라지신... 그 주신님.
“가짜인가?”
하지만 느껴지는 기운이 달랐다.
분명 주신님의 기운이 느껴지고 모습도 같았지만, 주신님은 아니었다.
“내 아이야... 어떻게 부모를 몰라보느냐.”
그렇게 말하더라도 방심하지 않고 전투 태세를 취했다.
“넌 대체 뭐지?”
분명 주신님과 비슷한 존재.
하지만 근본이 다르다.
우리가 마지막에 봤던 주신님은 이런 느낌이 아니었다.
마지막에 봤던 주신님은 완벽해보였지만, 불완전했던 그런 분이었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이 존재는 그 주신님보다 더 완벽해보였다.
“흐음... 아는 건가?”
주신님은 턱을 만지면서 말했다.
“그럼 강제로 사용하는 수밖에.”
그러자 주신님은 주신의 기운을 꺼내 들어 나에게 날렸다.
“윽......”
나는 그 근원을 피할 수도 없었다.
근원을 보자마자 거부할 수 없는 내 몸을 묶어냈다.
물리적으로 묶이는 게 아닌 그저 그렇게 프로그래밍 된 것 마냥 몸이 굳어버렸다.
그리고 근원은 내 머릿속으로 들어왔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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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네.”
페르세스가 입을 열었다.
카리온이 노아스에게 어떠한 ‘부탁’을 하고 마신들은 포탈로 움직였다.
“이대로 가면 되는 건가?”
카리온의 말에 엘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저 끝에 누군가 싸우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기운들의 폭발.
부딪힘.
그런 느낌들이 저 끝에서 느껴진다.
“그럼 빨리 가버리자고.”
페르세스가 앞장서서 가려고 하자 저 끝에서 누군가 날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엄청난 속도로 날라오고 있었다.
“페르세스!”
“알고 있어!”
페르세스는 바로 귀걸이를 만져 검을 뽑아들었다.
“흡!!!”
쾅!!!!!!!!
그리고 빠른 속도로 날라온 존재는 페르세스와 강하게 부딪혔다.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고 안 그래도 어두운 곳에 먼지 구름까지 일어났다.
“바알, 루카스.”
카리온이 말하자 뒤에서 바알과 로드가 나타났다.
“페르세스. 괜찮나?”
먼지 구름으로 가려져 앞이 보이지 않자 엘로아가 소리쳐서 물었다.
그러자 먼지 구름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으!!”
그건 어떤 여성과 검을 부딪치고 있는 페르세스였다.
그 여성은 검을 들고 있지는 않았고 엄청난 크기의 낫을 들고 있었다.
“저 녀석은 뭐지?”
자세히 보니 이리나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조금은 달랐다.
등 뒤에는 마법진들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고 있었고 머리 위에는 검은색 모양의 링이 달려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검은색 머리가 흰색으로 변해있었다.
새하얀 머리로.
검은색 링이 머리 위에 있는 것과 다르게 흰색 머리는 대비되어 보였다.
“일단 적이라는 거지?”
바알은 바로 그 여성에게 달려들었다.
페르세스가 검을 휘두르고 바알이 발톱을 세워 공격했다.
페르세스와 바알의 협공.
그러나 너무나 쉽게 막혔다.
긴 낫을 이용해 낫의 날 쪽으로 페르세스의 검을 막고 긴 봉 쪽으로 바알의 몸을 막았다.
“[폭발하라.]”
펑!!
그리고 바알과 페르세스 쪽에 폭발이 일어났다.
“읏!!”
“크윽...!”
페르세스와 바알은 폭발을 털어내고 뒤로 물러났다.
“언령?”
엘로아는 놀란 얼굴로 그 여성을 바라봤다.
언령은 신 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 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언령을 사용한다고?
엘로아의 상식으로도, 마신들의 상식으로도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신이라고?”
“아니. 신은 아니다.”
카리온의 물음에 엘로아는 단호하게 말했다.
저 녀석이 신이라면 몸에서 신력이 풍겨 나와야 한다.
마신이라면 신력과 마신의 기운이 풍겨 나와야 하고.
하지만 저 녀석에게 풍겨나오는 기운은 달랐다.
“근원...”
저 녀석에게서 풍겨 나오는 기운은 근원에 더 가까웠다.
“짜증나게!!”
페르세스는 쾌검으로 그 여성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너무나 쉽게 페르세스의 검을 받아쳤다.
마치 공격이 읽히는 듯한 느낌으로.
“[속박하라.]”
엘로아는 언령을 사용해 그 여성의 몸을 묶어냈다.
언령으로 이루어진 사슬들이 그 여성의 몸을 묶으려고 날아왔다.
“[사라져라.]”
하지만 그 여성은 언령을 사용해 엘로아의 언령을 없애버렸다.
이에 멈추지 않고 로드가 브레스를 준비하고 바알도 다시 달려들었다.
여성은 낫을 크게 휘둘러 바알을 밀쳐냈다.
그리고 페르세스가 틈을 노려 파고들었다.
“만월 베기.”
페르세스가 검을 크게 휘둘렀다.
분명 가까이서 빠르게 휘두른 검이었다.
그러나 이미 그 공격을 아는 것처럼 그 여성은 행동했다.
페르세스가 검을 휘두르기 전에 낫을 땅에 꽂았다.
그러자 페르세스가 휘두른 검이 그 여성의 몸에 닿기 전 낫에 막혔다.
“허...”
그 모습을 본 페르세스는 어이가 없었다.
일단 낫이 베이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한 번 당황했다.
그리고 낫이 힘에 밀리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두 번 당황했고.
이미 자신의 기술을 전부 알고 있다는 사실에서 세 번 당황했다.
빠른 속도로 휘두른 검은 그 전 동작을 알고 있지 않는 이상 막을 수 없다.
물론 완전히 그 곳에서 벗어나서 공격을 피할 수는 있겠지만, 이런 작은 움직임으로 막기는 쉽지 않았다.
대체 누구길래 자신의 기술을 전부 알고 있고 이런 힘을 가지고 있는 거지?
“페르세스! 물러나!”
카리온의 외침에 페르세스는 뒤로 비켰다.
그리고 로드의 입에서 브레스가 나왔다.
통각의 사제장 마저 녹여버렸던 브레스.
그 정도로 강하게 쏘지는 않았지만, 강한 위력으로 쐈다.
“시스템 가동. 쉴드.”
그러자 머리 뒤에 있던 마법진 하나가 나와 커다란 크기가 되었다.
그 마법진은 그 여성의 앞쪽을 막더니 로드의 브레스를 막아냈다.
엄청난 크기의 불길이 그 여성을 덮치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막혔다.
커다란 마법진은 불길 하나 새어 나오지 않는 방어막이 되었다.
분명 강한 위력의 브레스였음에도 마법진에 흔들림이 없었다.
이미 연계에서 흔들렸기에 완벽한 타격이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공격이 가볍게 막힐 줄은 몰랐다.
적당히 했음에도 이 정도의 공격이면 피해가 있었어야 했다.
여러 가지의 공격들 중 하나 정도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줘야 했다.
그러나 그 어떤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막힌다.
읽힌다.
세 마신에게 이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우리에 대해 전부 알고 있다.
미래를 보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사람과 싸우는 느낌이었다.
그것도 자세히 알고 있는.
마신들은 이를 갈았다.
대체 누구지?
누군데 자신들에 대해 이렇게 알고 있는 거지?
그러자 문득 카리온에게 든 생각이 있었다.
“가브리엘?”
“무슨 소리야?”
“아니. 그냥 예전에 봤던 녀석하고 비슷한 기운이라서.”
카리온이 이공간을 만들 때 만났던 녀석.
그 녀석하고 비슷한 느낌이었다.
물론 분위기 자체는 아예 다르다.
원래 봤던 가브리엘은 친근한 느낌이 강했다.
예전부터 봤던 친한 친구를 보는 느낌.
지금의 저 녀석은 아주 딱딱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분위기가 아닌 풍겨오는 기운 자체는 그 녀석과 비슷했다.
“분명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했는데...”
“가브리엘이 누군데?”
가브리엘은 자신 말고 아는 존재가 없을 거다.
자신도 몰랐던 존재였는데 갑자기 알게 됐으니까.
“어?”
가브리엘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자신들을 공격하던 녀석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와줘.”
“뭐?”
자신들을 공격하던 녀석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었다.
그 여성은 삐꺽거리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마치 자신을 거부하는 듯한 움직임.
그리고 그 말은 모두의 귀에 들렸다.
“도와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