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화 〉 #119 가짜 주신
* * *
“저 녀석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도와달라?
세 마신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다.
아니 다른 사람의 상식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을 말이었다.
자신들을 갑자기 공격해오고 압도적인 힘을 보여준 뒤 하는 말.
그게 도와달라는 말이라니.
“무엇을 도와달라는 거지?”
“저는... 가브리엘이라고 합니다.”
그 여성은 먼저 자신에 대해 말했다.
“저를... 저를... 막으셔야합니다.”
“막다니?”
어차피 이 상태로는 서로 싸울 상황이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자신과 제대로 싸우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저 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근원... 제 몸에 근원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것을 빼내면...”
가브리엘은 말을 하다가 말고 멈췄다.
그리고 다시 달려들기 시작했다.
페르세스는 검을 들고 가브리엘을 막았다.
“크윽... 골치 아프게...”
“일단 저 녀석이 말대로 하자고.”
엘로아는 침착하게 말했다.
어차피 이 녀석을 제대로 상대하면 이기기 힘들다.
물론 이기지 못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아직 해보지도 않고 이기지 못한다고 판단 내리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고 이긴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럼 저 녀석이 말한 대로 하는 게 더 효율적인 판단이었다.
“일단 카리온. 너가 저 녀석을 알고 있는 거지?”
엘로아의 물음에 카리온이 답했다.
“자세히는 몰라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
"믿을 만한 녀석이야?"
"믿어볼 만한 녀석은 맞아."
만족스러운 답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정도면 충분했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계약하는 카리온의 안목 정도면 믿을 만 했다.
“그럼 이렇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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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자?
“이...일단 내가 아는 바로는 그래.”
나는 에레보스에게 가브리엘에 대해 설명했다.
어차피 나도 자세히는 몰라서 짧게 말했다.
“골치 아픈 녀석이네...”
“그것보다 미카엘에 관한 걸 알고 있었으면 좀 다른 애들한테 설명이라도 해주지.”
미카미카가 말하는 모습을 보고 에레보스에게 미카엘에 관한 것도 설명해줬다.
그러나 에레보스는 미카엘에 관한 내용을 알고 있었다.
미카엘을 만들 때 에레보스도 도왔다고 한다.
미카미카는 미카엘의 프로토타입.
즉, 미카엘이 만들어지기 전 미카엘의 초기 버전이라는 소리다.
“어차피 알려져 봤자 좋은 점도 없고, 이런 존재가 있다는 게 밝혀지면 악용할 수도 있다. 아님 미카엘에게 의존할 수도 있지.”
에레보스는 말하기를 그만두고 가짜 주신을 쳐다봤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일단 저 녀석이 먼저다.”
아마 침입자가 왔다는 점을 보니 엘로아 쪽이 이곳으로 왔다.
가브리엘이 얼마나 강할지는 모르겠지만, 마신이 세 명이나 있으니 금방 오지 않을까 싶었다.
그럼 내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초석을 닦는다.
지금 굳이 빠르게 이겨야 할 이유가 없다.
에레보스는 풀려있다.
그럼 더 이상 빠른 속도로 이 녀석을 물리쳐야 할 이유가 없다.
그 동안 급했던 이유는 ‘에레보스가 제물로 바쳐져 광신이 깨어날 수 있다.’였으니까.
그럼 나는 천천히 상대방을 분석한다.
동료들이 왔을 때 이길 방법을 찾아놓는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는 순순히 인정했다.
지금은 내가 저 가짜 주신을 이기지 못한다.
나보다 강하다.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지금까지의 상대와 다르다.
하지만, 나는 혼자 싸우고 있지 않다.
지금은 내 옆에 에레보스가 있고, 더 뒤에는 마신들이, 그 뒤에는 노아스님이나 다른 동료들도 있다.
그 모든 사람들은 나를 믿어줬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나에게 내가 할 일 이상을 바라고 있지 않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낸다면 나를 축하하고 같이 기뻐해 주겠지.
그렇다고 내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못 냈다고 떠나지 않는다.
나를 도와주면 도와주지 나에게 다른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면 된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
가짜 주신의 사슬들이 나와 에레보스를 노리고 날아왔다.
에레보스는 자신의 기운을 꺼내 그 사슬들을 쳐냈다.
“다시 한 번 해봐.”
에레보스의 작은 말.
다시 한 번.
나는 주먹을 쥐고 앞을 바라봤다.
엄청난 수의 사슬들을 에레보스의 기운이 쳐내고 있었다.
하지만, 쳐내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이 직접 나서서 저 가짜 주신의 능력을 캐낼 수도 있었지만, 그 이상의 일을 하지 않았다.
내가 알아내 주기를 바라고 믿고 있다.
처음부터 이기려고 했던 생각이 바보 같아졌다.
에레보스조차도 자신이 혼자서 이기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능력을 알아내고 천천히 상대하려고 한다.
지금 이길 필요가 없다.
그저 마신들이 오기 전에... 아니 오고 나서라도 능력을 알아내기만 하면 되는 거다.
그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할 역할이니까.
“에레보스. 간다.”
나는 근원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근원을 머릿속으로 넣었다.
“분해할 수 있게 해줘.”
근원은 내 눈을 바꿔줬다.
아까 전에 봤던 시야가 내 앞에 나타났다.
선들과 점들.
그것으로 이루어져 있는 세상.
“으...!”
수많은 점들.
에레보스가 다루는 기운과 가짜 주신이 다루는 사슬이 점이 되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너무 빠른 속도로 움직여 파악하기도 힘들 정도.
그러나 그것보다 더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주신의 모습.
그 모습이 이상했다.
분명 평범한 존재라면 선은 점과 점이 이어져 있을 때만 존재할 수 있다.
점 하나에 여러 개의 선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선은 점과 점이 이어져 있을 때만 존재한다.
그러나 주신은 아니었다.
주신의 몸에 나타나는 점에는 너덜너덜하게 끊어져 있는 선들이 존재했다.
밖에 점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있는 선들.
이 선들은 쉽게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근원을 사용해서도 쉽게 끊기지 않는 선.
그러나 수많은 선들이 끊긴 채로 있었다.
“에...에레보스...”
나는 당황하여 에레보스를 쳐다봤다.
마찬가지로 너덜너덜한 선이 존재했다.
나는 에레보스의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분...해?”
선이 저렇게 끊길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근원을 이용한 분해.
다른 존재들을 봤을 때 저런 모습을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내가 정확하게 분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존재.
그 존재가 바로 에레보스였다.
에레보스는 주신에 의해 분해되었다.
광신과 지금의 에레보스로.
그런 에레보스의 너덜너덜한 선은 한 가지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원래 주신님이 아닌 거지...?”
주신이 분해되었다.
이 사실만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확신에 가득차서 공중에 떠있는 미카미카에게 물었다.
“어... 맞긴 한데... 접근 방식은 잘못됐어요.”
“어?”
접근 방식이 잘못되었다?
“원래 주신님은 자신의 몸을 분해해서 세상을 만들었기에 분해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은 맞아요.”
그리고 미카미카는 점들 하나하나를 가리켰다.
“하지만 근본이 없어요. 주신님의 근본들이.”
“그럼...?”
“주신님의 몸이 분해되었다는 사실은... 맞네요...”
뭔가 만족스러운 추리는 아니었지만, 결과만 좋다면 된 거지!
“주신님이면서... 주신님이 아니라는 말이네...”
미카미카가 나타나면서 했던 말이 맞았다.
주신님이면서 주신님이 아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살짝의 실마리가 보인 느낌이었다.
그 실마리를 잡기 위해 나는 에레보스에게 말했다.
“에레보스. 큰 기술을 한 번 더 날려줘.”
“알았다.”
에레보스는 다시 큰 기술을 준비하려 했다.
하지만, 주신은 순순히 기다려주지 않았다.
아까와는 다르게 사슬과 근원을 동시에 사용했다.
“근원은... 근원으로...!”
내가 근원을 꺼내서 가짜 주신이 날리는 근원을 받아치려 하자 미카미카가 내 행동을 막았다.
“미카미카?”
“잠...잠시만요!”
그러자 근원은 그대로 우리 쪽으로 날아왔다.
에레보스는 그대로 큰 기운을 모으고 있었고 나는 미카미카에게 막혀 그 기운에 대응하지 못했다.
“야 이러면...!!!!”
작은 근원이라도 폭발을 제대로 일으키면 그 위력은 엄청나다.
하지만 그것보다 작은 근원도 무서운 진짜 이유는 상대방이 어떤 명령을 내렸을지 모른다는 사실.
“으...!!!”
“괜찮을 거에요!”
미카미카는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외쳤다.
“어?”
그리고 그 근원은 우리 쪽으로 와서 에레보스가 모으던 기운으로 직행했다.
퐁!
그리고 근원은 그저 에레보스의 기운을 사라지게 하고 끝났다.
“엥...?”
“저 주신... 근원으로 분해밖에 사용하지 못해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