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화 〉 #124 대응법
* * *
“엘로아!!”
엘로아는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우리 뒤에 섰다.
“에레보스?”
엘로아는 놀란 얼굴로 에레보스를 쳐다봤다.
“엘로아. 오랜만이네.”
“어떻게 풀려난 거야?”
“이리나... 아니. 가브리엘이 풀어줬다.”
“가브리엘...?”
엘로아는 의아한 얼굴을 했다.
그러다가 뭔가 납득한 얼굴을 하더니 주신을 보고 다시 의문스러운 표정을 했다.
“에레보스가 풀려났는데도... 흐음...?”
내가 가지던 의문을 엘로아도 똑같이 가졌나보다.
“나도 그게 이상해서... 분명 거의 끝난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는 거지?”
이미 상대는 목표를 잃었다.
에레보스를 통해 광신을 부활시킨다는 계획이 어긋나버렸다.
물론 이미 끝난 계획이지만, 우리에게 복수한답시고 계속 공격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는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우리에게 공격하기는 했지만, 공격 위주가 아니었다.
오히려 계속 수비를 하는 느낌이었다.
“그럼 이렇게 생각하면 되겠네.”
엘로아는 내 생각을 간단하게 요약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엘로아는 지팡이로 가짜 주신을 가리켰다.
“주신이라...”
그저 담담하게 상대를 바라봤다.
“엘로아는... 알았어?”
“몰랐지만... 예상은 했다.”
엘로아는 가브리엘을 만나 근원에 관한 내용을 들었다고 우리에게 말해줬다.
“근원을 사용한다면 어느 정도 추측이야 할 수 있지.”
“그래도 분해밖에 사용할 수 없는 반쪽이야.”
“흐음...”
엘로아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얼굴로 우리에게 말했다.
“일단 싸워보고 말하기로 하지.”
“응...?”
싸워보고?
일단 나는 엘로아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에레보스 간다.”
“그래.”
엘로아와 에레보스는 담담하게 말하고 뛰쳐나갔다.
그러자 주신은 그 둘을 사슬로 막아내려 했다.
“[막아내라.]”
엘로아가 입을 열자 엘로아의 지팡이에서 빛이 나왔다.
그리고 엘로아와 에레보스에게 날아오던 사슬들 몇 개가 움직임을 바꿨다.
사슬 중 몇 개가 다른 사슬들과 엉키기 시작했다.
그러자 둘에게 날아오는 사슬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흐읍.”
그러자 에레보스가 기운들을 주신에게 날렸다.
그 기운들은 빠른 속도로 주신에게 날아갔다.
하지만 주신의 주변에 있는 사슬들이 에레보스의 기운들을 쳐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고 근원을 꺼냈다.
“에레보스! 엘로아! 도울게!”
그리고 나는 그 근원을 주신에게 날렸다.
주신은 나와 똑같이 근원을 꺼내서 내 근원을 향해 날렸다.
“읏...!”
근원과 근원이 부딪히자 아까와 같이 폭풍이 일어났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사슬들도 밀려났고 에레보스의 기운들도 밀려났다.
하늘에 있던 엘로아와 에레보스도 휘청거렸다.
하지만 에레보스는 내가 근원을 날리자 바로 보호막을 만들어 엘로아와 자신을 보호했다.
덕분에 그 둘은 나처럼 땅으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뭐야?”
엘로아는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근원과 근원이 부딪히면 큰 폭풍이 일어나니까 조심해!”
내가 소리치자 엘로아는 잠깐 생각했다.
“폭풍이라...”
엘로아는 생각을 마친 후 나에게 소리쳤다.
“로엔! 다시 한 번 날려줘!”
“알았어!”
나는 엘로아의 말대로 근원을 꺼내 들었다.
“에레보스. 로엔이 근원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큰 기술을 준비해.”
“알았다.”
“엘로아! 간다!”
나는 근원을 다시 날렸다.
그러자 주신은 아까와 똑같이 대응했다.
엘로아와 에레보스는 근원보다 빠른 속도로 주신에게 날아갔다.
사슬들이 그 둘을 막으려고 했지만, 에레보스의 기운들이 전부 쳐내 그 둘을 막을 수 없었다.
“에레보스.”
“알았다.”
그러자 에레보스의 손에 검은 기운이 맴돌기 시작했다.
에레보스의 기운.
하지만 아까처럼 간단하게 기운을 모으지는 않았다.
아주 작은 검은색 점이 에레보스의 손아귀 안에 생겨났다.
그리고 그 점은 서서히 하늘로 떠올랐다.
그 점에서는 검은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연기는 그 주변을 감쌀 뿐 아니라 빠른 속도로 공간 전체를 덮기 시작했다.
그리고 에레보스는 조용히 말했다.
“세상을 어둠으로 뒤덮어라. 이클립스.”
에레보스가 말하자 서서히 떠올라 하늘에 있던 점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변에 퍼졌던 검은색 연기가 그 점으로 모여들었다.
“부딪힌다!”
근원과 근원은 부딪혔고 다시 큰 폭풍이 일어났다.
“[방향을 바꿔라.]”
그리고 엘로아가 입을 열었다.
그 폭풍은 주변으로 퍼지는 것이 아니라 한 방향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강한 폭풍은 주신 쪽으로 향했다.
“으!!”
한쪽으로 향하는 바람은 아까보다 더 강했다.
양쪽으로 퍼져 나가야 되는 바람이 한쪽으로만 향하니 두 배로 더 강한 바람이 된 것이다.
우리의 몸이 전부 주신 쪽으로 쏠렸다.
하지만 쏠린 것은 우리 몸뿐만이 아니었다.
하늘에 떠있던 구.
에레보스의 기운마저 주신 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가라.”
그리고 에레보스의 말에 그 구는 빠른 속도로 주신에게 날아갔다.
주신은 폭풍을 무릅쓰고 근원을 꺼내 이클립스 쪽으로 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근원은 그 폭풍을 이겨내지 못했다.
평범한 근원이라면 근원에 명령을 내려 폭풍을 이겨내고 갈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분해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반쪽짜리 근원.
여러 가지의 명령을 내릴 수 없는 근원,
그 근원은 폭풍을 이겨내지 못했다.
쿠우우우우우웅!!!!!
주신이 이클립스 쪽으로 날렸던 근원은 폭풍에 휩쓸려 주신의 뒤로 가버렸고, 빠르게 날아간 이클립스는 주신 쪽에서 터져버렸다.
“으!!”
주신 쪽으로 불던 바람은 반대로 불기 시작했다.
“으아아!”
나는 또 그 바람을 이겨내지 못하고 뒤로 굴렀다.
오늘만 몇 번을 구르는 거야!!
어차피 이렇게 굴러봤자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기운으로 저 바람을 막아서 서 있는 것보다 차라리 구르는 게 더 나았다.
안 그래도 기운을 계속 사용해서 정신력을 소모하고 있다.
그러니 기운을 사용해서 정신력을 소모하는 것보다 살짝의 육체 피해가 나에게는 더 작은 피해였다.
조금 꼴사나울 뿐.
그래도 희망적이다.
에레보스의 큰 기운이 주신을 제대로 덮쳤다.
그러니 작은 피해라도...!
하지만 이는 그저 희망일 뿐이었다.
큰 폭발이 일어났지만, 갑자기 그 폭발은 규모가 커지다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클립스의 모습은 사라지고 먼지 구름 사이에서 주신이 서서히 걸어나왔다.
옷만 살짝 찢겼을 뿐 큰 피해는 없는 모습.
“분...분해 해버린 거야?”
에레보스의 기운을 분해했을 때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폭발이 몸에 닿자마자 분해해버린 거 같네.”
에레보스가 말했다.
“무슨 저런 사기가...”
나는 근원을 꺼낼 때 시간이 걸리지만, 주신은 사실상 근원을 바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 차이가 이런 상황을 일으켰다.
공격이 몸에 닿자마자 근원을 꺼내서 상대 기술을 삭제해버린다.
“쉽지 않네.”
에레보스도 인상을 구겼다.
“저...저런 게 가능해?”
“못할 거야 없지.”
내가 묻자 에레보스가 대답했다.
에레보스의 강한 공격이 분명 제대로 들어갔음에도 상대방은 피해를 입지 않는다.
분해.
말도 안 되는 방어였다.
사실상 뚫을 수 없는 방패.
하지만 그런 방패를 봤더니 더 초조해졌다.
어떻게 해야 저 방패를...
“로엔, 진정해.”
그러자 위에서 엘로아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진정?”
“괜찮아. 걱정하지 마.”
표정에서 티가 났나?
전투 중에 동료에게 걱정을 끼치다니...
나는 심호흡을 했다.
그래.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다.
어떤 상황인지 모를 뿐.
아직은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다.
그저 상황을 모르니 초조해질 뿐.
나는 혼잣말을 했다.
“저걸 어떻게 하지...?”
“괜찮다니까. 이미 어떻게 해야 할 지는 정해졌어.”
엘로아는 편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에?”
나는 엘로아의 말에수십 개의 물음표가 찍혔다.
“정해...졌다고?”
“로엔. 나 믿지?”
엘로아는 나를 바라봤다.
“응!”
그러자 엘로아는 미소를 지었다.
“나도 너를 믿을게.”
그러자 엘로아의 지팡이가 빛을 냈다.
“로엔. 주신에게 달려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주신에게만 달려가는 거야.”
그 말을 하자 주신의 사슬들이 밀려나는 게 보였다.
“그리고 너가 근원으로 ‘직접’ 공격해.”
나는 그 말을 듣고 바로 달려나갔다.
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엘로아의 말대로 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달렸다.
내가 달려나가자 엘로아가 한 마디 더 말했다.
“멈추지 마.”
내가 달리자 사슬들이 나에게 달려들었다.
엘로아가 사슬들을 많이 막기는 했지만 전부 막지는 못했다.
그 사이에서 막지 못한 사슬들이 나에게 온 것이다.
하지만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엘로아가 멈추지 말라고 했으니까.
사슬은 내 코앞까지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그 사슬을 쳐내지 않고 계속 달려갔다.
그때 갑자기 어떤 검은색 기운이 내 앞으로 날아왔다.
그리고 그 검은색 기운은 나를 노리던 사슬들은 전부 쳐냈다.
나는 그 검은색 기운이 뭔지 알았다.
에레보스의 기운.
나는 계속 나아갔다.
주신에게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사슬의 수는 늘어났다.
내 몸에 닿을 거 같은 사슬의 수가 점점 늘어났지만, 그 사슬들은 하나도 내 몸에 닿지 않았다.
에레보스가 기운으로 그 사슬을 쳐내고, 엘로아가 사슬을 밀어냈다.
평소에 사슬들이 코 앞까지 다가올 때면 공포스러울 것 같았지만, 지금은 무섭지 않았다.
엘로아가 믿으라고 했으니까.
나는 엘로아의 말대로 계속 나아갔다.
그리고 주신의 근처까지 도달했다.
“근원.”
나는 근원으로 검을 만들었다.
“직접 공격한다.”
나는 엘로아가 했던 말을 읍조렸다.
주신이 근원을 날려 내 검을 노렸다.
하지만 그 근원들은 에레보스의 기운들이 정확하게 요격했다.
그 근원에 맞은 에레보스의 기운들은 사라졌다.
하지만 덕분에 근원으로 만든 검은 무사했다.
나는 페르세스가 가르쳐 줬던 검술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순수하게 검을 들고 달려나갔다.
검을 처음 잡아본 때처럼 단순하게.
기교를 부리지 않고 생각을 하지 않고.
어린 아이가 검을 잡는 것처럼.
나는 상대방이 피할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찌른다는 생각만 했다.
주신은 그 검을 피하려고 했다.
뒤로 물러나 검의 궤적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나는 궤적을 바꾸지 않고 검을 내질렀다.
“[한 걸음.]”
쿠궁...
그러자 엘로아는 언령을 사용했다.
그 말을 하자 나를 제외한 세상이 움직였다.
나를 제외한 모든 세상이 움직여 주신의 위치를 바꿨다.
마치 지각변동이 일어난 느낌이었다.
그렇게 세상이 움직이자 피했던 주신의 몸이 검의 궤적 안으로 들어왔다.
“흡!”
그리고 검은 주신의 몸에 닿았다.
주신의 몸에 닿은 검 끝에서 엄청난 빛이 나왔다.
“근원을 제대로 분해할 수 없다.”
엘로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게 약점이지?”
근원은 근원을 분해할 수 있다.
로엔이 날린 근원에 대응했던 것도 근원을 분해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분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폭풍이 일어났던 거다.
어느 정도 분해에 성공해서 큰 폭발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폭발이 아예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작은 폭발.
폭발의 규모를 분해로 줄였을 뿐, 폭발은 일어났다.
그 증거가 폭풍이었다.
“읏!!”
주신은 근원으로 만든 검을 막을 수 있다.
자신의 근원으로.
하지만 아까처럼 자신의 몸이 닿자마자 자신의 근원으로 막으면 자신의 몸에서 폭발이 일어날 뿐이다.
그렇다고 근원으로 만들어진 검을 막지 않을 수 없다.
막는다면 검이 자신의 몸이 찔릴 뿐이었다.
“윽!!!!!!”
그러자 주신은 신음성을 내뱉으며 뒤로 날아갔다.
나도 폭풍에 의해 뒤로 날아갔다.
하지만 나에게 큰 피해는 없었다.
내가 몸을 일으키니 주신이 쓰러져 있었다.
검에 닿은 부분의 옷이 날아가 있었고, 그 부분에 화상을 입은 것처럼 피부가 붉게 변해있었다.
“으...윽...”
주신은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상처가 큰지 일어나지 못했다.
주신의 표정에는 절망이 가득해보였다.
“일단 끝인가.”
나는 다시 근원으로 검을 만들어 주신에게 다가갔다.
“하아...”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긴 여정의 끝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주신 앞에 섰다.
나는 검을 높게 들었다.
“끝이다.”
나는 검을 내려쳤다.
“로엔 안돼!!!!!”
그러자 뒤에서 카리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이면 안돼!”
“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