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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였던 내가 여신이 되었습니다-126화 (97/138)

〈 126화 〉 #125 완벽한 세계

* * *

나는 내려치는 검을 멈췄다.

검이 주신의 목에 약간 들어갔지만, 카리온의 외침에 바로 멈춰 목을 완전히 베지는 못했다.

“카리온, 그게 무슨 소리지?”

엘로아는 카리온에게 물었다.

그러자 카리온의 뒤에서 가브리엘과 페르세스가 오는 모습이 보였다.

“하아...”

그러자 주신은 짜증 난다는 얼굴을 했다.

분명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는 주신이었다.

갑작스러운 표정 변화에 우리 모두가 놀랐다.

“가브리엘, 너도 쓸모가 없군. 그래도 주신이 만들어낸 걸작인 줄 알았는데.”

“저는 걸작이 맞습니다. 하지만 마신들에 비할 바는 아니죠.”

가브리엘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주...주신의 걸작?”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들도 인상을 찌푸렸다.

가브리엘의 말에 이내 이해가 되었다.

“당신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겁니다. 에레보스.”

“어?”

나는 가짜 주신을 바라봤다.

저 주신이... 광신이라고...?

그러자 그 주신은 웃음을 지었다.

“하하... 이미 내 뜻대로 다 되었는데 마지막에 잠깐 삐끗했다고 달라질 거 같느냐.”

비열한 웃음.

인자하고 모두를 위한다는 주신의 얼굴에서 나올만한 표정이 아니었다.

“나...인가.”

에레보스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직접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이군. 나.”

가짜 주신은 에레보스에게 말했다.

“너는 그곳에서 나올 수가 없을 텐데?”

“네 말이 맞지. 여기 있는 정신은 내 정신의 편린일 뿐이야.”

“저 몸은 주신의 몸이 맞습니다. 하지만 에레보스와 동화된 주신이라서 에레보스의 정신을 대변하고 있을 뿐이죠.”

가브리엘는 광신의 말에 부연설명했다.

“흐음... 저 녀석을 그 쪽으로 보내는 게 실수였나? 같이 있는 것보다 더 나을 것 같아서 보냈는데 카리온 녀석도 근원에 대해 깨달을 줄은 몰랐군.”

“로엔, 뒤로 물러나십시오.”

가브리엘의 말에 나는 뒤로 뛰었다.

그러자 가짜 주신... 아니 광신이 입을 열었다.

“자신의 행동뿐만 아니라 주변에까지 영향을 끼칠 줄은 몰랐군.”

그리고 흥미롭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또 내 목을 치지 않고, 마지막에 망설이다니.”

광신의 말이 맞았다.

나는 마지막에 확신을 가지고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그래서 카리온의 외침에 검을 멈출 수 있었지만.

내가 망설였던 이유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분명 다 끝났는데도 내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았기에 광신의 목을 치는데 망설임을 유발했다.

덕분에 결과적으로 좋게 됐네.

“그것도 감각 때문인가... 역시 탐나는 몸이다.”

“모...몸?”

“로엔, 광신은 당신의 몸을 차지할 계획입니다.”

“뭐?”

나는 가브리엘의 말에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저 주신의 몸을 죽이는 순간이 당신의 몸을 차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카리온이 말을 이어갔다.

“저 주신은 너가 자신을 죽이면 너의 근원과 자신의 근원을 연결할 계획이었어. 주신 몸속에 있는 근원으로 너의 정신을 분해하고 그 순간 너의 몸을 차지하려고 했지.”

“내...내 몸을? 왜 내 몸을...”

사실 내 육체가 그렇게 뛰어난 육체는 아니다.

차라리 뛰어난 육체라고 하면 페르세스의 육체가 최고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내 몸을 뺏으려고 한 거지?

내가 그런 의문을 품고 있자, 광신은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가브리엘이 아니었으면 알아내지도 못했을 녀석들이 자신만만하게 말하는군.”

광신은 자신의 검은색 머리를 쓸어넘겼다.

“사실 너무 쉽기는 했어. 하나도 발전이 없는 마신들답게 너무 계획대로 진행되는 게 재미가 없었지. 그래도 저 로엔이라는 녀석은 엄청나게 재미있었지만.”

그 말을 듣자 뭔가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이...이리나?”

이리나를 처음 만나고 계속 만날 때마다 들었던 소리였다.

재미있다.

“하하... 그래 그때는 내가 이리나의 몸을 조종해서 봤었지. 너는 내 예상대로 움직인 적이 한 번도 없었지.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내가 원하는대로 되었지만.”

광신은 우리를 쭉 둘러봤다.

“‘나’도, 엘로아도, 카리온과 페르세스도 너무 진부한 녀석들이야. 중간계나 신계에 있는 녀석들까지.”

광신은 우리들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빈틈을 보여주니 그곳이 호랑이의 입 속인 것도 모르고 전부 들어오는 마신들. 내가 인질로 잡으려는 것도 모르고 이곳으로 온 ‘나’, 나를 죽이면 안된다는 것도 모르고 죽이려는 엘로아, 무식하게 앞으로만 나아가는 페르세스, 하나를 안다고 전부 안다는 듯 말하는 카리온까지.”

그리고 인상을 구겼다.

“너무 한심해. 한심하다고.”

광신은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너는 다르다. 로엔.”

그 말을 하자 이 공간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모두는 나를 보호하듯 내 앞을 막았다.

“모든 모습들이 내 예상을 벗어나더군. 특히 근원을 만들어내거나, 이곳에 미카엘을 데려오는 행동. 너무나 재밌더군.”

그리고 카리온을 쳐다봤다.

“그거에다가 너의 행동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또한 내 예상에서 벗어나게 해줬다. 너의 몸에 있는 감각. 그 감각이 너를 그렇게 만들어 줬겠지.”

내... 감각이...

광신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와 신세계를 만들자. 로엔. 너의 몸과 나의 정신이라면 꿈이 아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저 녀석에게 내 몸을 주면 나는 죽는 것 아닌가.

“아... 너 정도는 나의 신세계에서 살려줄 용의가 있다.”

그러자 광신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아니지. 내가 너무 설명이 부족했군.”

광신은 나를 빤히 쳐다보며 기괴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이 세계를 리셋시킬거다. 다시 시작할 거라고.”

다시... 시작한다고?

나만 놀란 것이 아니었다.

모두 처음 들었다는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광신의 의도.

중간계를 없애거나 이 세상에게 복수를 한다는 사실인 줄 알았다.

아님 자신이 세상 지배하려고 하는 줄 알았다.

“지금의 세상은 너무 쓰레기야. 주신이 너무 잘못 생각했다. 불완전함이 완벽한 세상을 만든다고? 주신은 틀렸다.”

불완전함...

“나는 완벽한 세상을 만들 거다. 중간계 같은 쓰레기를 전부 없애고 모두가 완벽한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들 거다. 하지만 지금의 세상에서 변화시켜봤자 의미가 없지. 이미 나사가 빠져버린 세상이니까.”

광신은 말을 이어나갔다.

“자신의 직무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신들. 저들끼리 싸우며 서로를 죽이는 벌레 같은 중간계 존재들. 그들 중 제일 괜찮다는 마신들까지... 전부 쓰레기다.”

광신은 말을 멈췄다.

그리고 아주 기분이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미소가 굉장히 불쾌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 세상을 다시 시작한다.”

“아무리 네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불가능하다는 건 너가 더 잘 알 텐데?”

에레보스가 광신에게 말했다.

“불가능? 아직도 모르겠느냐? 나는 주신의 힘까지 먹어냈다. 주신의 힘과 나의 힘 그리고 가능성. 이 모든 게 합치면 불가능이란 없다.”

“가...가능성?”

내가 말하자 광신은 나를 가리켰다.

“그래 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내는 가능성. 내 부족했던 계획에 너가 들어온다면 이 계획은 실현 가능하다. 흐흐흐...”

광신은 웃음을 흘렸다.‘

“나는 세상을 결합한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전부 합치는 거다. 태초의 주신을 다시 만들어낸다. 그리고 나는 세상을 다시 시작할 거다. 이런 쓰레기 같은 세상을 다시 시작할 거라고.”

광기.

순수한 광기가 광신의 눈에서 맴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동안 봤던 광기와는 조금 달랐다.

“기근으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서로 싸우면서 죽이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 어떤 일도 하는 사람들. 이런 상황이 정상적이라고 보느냐.”

광인이 아니었다.

“모두가 고통받으며 발전하는 이 세상이 완벽한 세상이라고 생각하느냐.”

논리적이었다.

“불완전함이 완벽함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누구든지 상상해볼 만한 일이었다.

그러자 우리의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저 녀석의 말이 맞기 때문이었다.

마신들도 완벽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세상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하지만 저 녀석이 완벽한 세상을 만들어 낸다면 사실 이런 노력도 필요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세상을 아끼고 노력하는 이들이기에 더욱 이런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을 거다.

나는 내 앞을 막아주고 있었던 모두를 살짝 밀며 나왔다.

그리고 모두의 앞에 섰다.

나를 지켜주던 모두의 앞에.

“너의 말은 맞는 말이야.”

내가 입을 열자 광신은 기뻐했다.

“하하하!! 역시 내가 선택한 녀석답군. 그럼 나에게 와라. 나와 하나가...”

“아니.”

현재는 많이 부족한 세상이다.

사람들도 어떤 면에서든 부족하고 그들을 다스려야 하는 나도 부족하다.

풀지 못하고 있는 많은 문제가 존재한다.

“그런데 너가 만든다는 세상은 정말 완벽할까?”

물론 주신의 능력이라면 지금보다는 나은 세계를 만들 수 있다.

그거에 사람 수를 줄이고 몇몇 존재만이 있는 세계라면 더욱.

“그런 작은 세상만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 세상은 완벽한 세상이 될 수 있을까?”

또 물음을 던졌다.

“그리고 분해되지 않았던 주신이 정말 완벽한 존재였을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너는 착각하고 있어. 완벽했던 세계가분해되어 불완전한 세계가 되었다고. 내 생각에는 아니야.”

아쉽게도 처음부터 완벽한 세계는 존재할 수 없었다.

이미 근원의 분해와 결합을 보고 주신의 실수들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탄생한 지도 얼마 안 되고 부족한 내가 말하기에는 조금 과분할 수도 있는 말이긴 하지만, 완벽한 세계란 누군가 만들어주는... 그런 형편 좋은 세계가 아니야.”

내가 봤던 세계는 그랬다.

지금 여기 서 있는 내가 아마 학대를 당하던 그런 아이였다면 저 녀석의 말에 동의하고 손을 잡았을 수도 있다.

그때는 정말 세계가 끔찍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어딘가에서는 말도 안 되는 죽임을 당하고 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무의미한 고통을 받고 있을 수도 있겠지.”

마치 다시 태어나기 전의 나처럼.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은 완벽한 세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마신들도, 다른 신들도, 혹은 다른 중간계의 존재들도.

살아남기 위해서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한 발자국 씩 나아가고 있다.

잘못된 사실들을 바로 잡아가기 위해.

정말 완벽한 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해.

누군가는 잘못된 길로 나아갈 수도 있을 거다.

그러나, 그 잘못된 길에서 배움을 얻고 다음 사람들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진정한 완벽한 세계, 그런 세계는 불완전하고 쓰레기 같다고 말했던 그런 우리가 만들어낼 거야.”

우리는 이 세계가 부족하다고 버리지 않을 거다.

겨울 후에 피는 꽃처럼 우리는 이 고통들을 견딜 거다.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기 위해.

눈이 오고 찬 바람이 불어도 우리는 견딜 거다.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사스라 칠 것 같은 추위가 오더라도.

미래에 피어날 꽃.

그 꽃을 위해 우리는 고통을 견뎌낼 것이다.

언젠가 올 따뜻한 봄을 기다린다.

그리고 저 녀석.

저 광신에게서 이 작은 꽃봉오리를 지킬 것이다.

언젠가 피워낼 꽃을 위해.

나는 손가락으로 광신을 가리켰다.

“너의 완벽한 세계. 나에게는 필요 없어. 이 불완전한 세계야말로 완벽해질 세계거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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