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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였던 내가 여신이 되었습니다-127화 (98/138)

〈 127화 〉 #126 광신의 부활

* * *

“멍청하군.”

광신은 흥이 식은 듯 말했다.

“너가 그렇게 원하는 감각이 말해준 사실이니까 맞지 않을까?”

나는 웃음을 지었다.

저 녀석이 내 어떤 감각을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 생각이 즉 내 감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느낀 모든 것들이 종합되어 나타나는게 내 생각이니까.

“너는 다른 녀석들과 좀 다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과 다르기에 너의 제안을 거절하는 거지.”

나는 광신을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나는 내 생각이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 녀석도 나와 똑같이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겠지.

그것을 알기에 나는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세상을 만들어갈 뿐이다.

그리고 저 녀석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 뿐이다.

“그럼 강제로 가져가겠다.”

그러자 모두가 자신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페르세스가 검을 광신에게 향했다.

엘로아가 지팡이를 광신에게 향했다.

에레보스의 머리 주변에 기운이 광신을 향했다.

마지막으로 카리온의 양 옆에 로드와 바알이 섰다.

“로...로드?”

“대화는 나중에 하도록 하지.”

나는 로드의 모습에 깜짝 놀랐지만, 이내 진정했다.

나도 싸움에 집중하고 근원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내 왼편에 가브리엘이 섰다.

“저도 돕겠습니다.”

“가브리엘...”

“저 광신보다 먼저 저에게 근원을 넣으시면 됩니다. 그럼 상대가 저를 조종하지 못합니다.”

근원을?

나는 가브리엘의 말대로 근원을 가브리엘에게 보냈다.

그러자 내가 그녀와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미카엘과 나, 가브리엘 이 셋이 연결되어 새로운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한 느낌은 아니었다.

몸 전체가 안정되는 느낌.

없었던 것이 생겨난 기분이 아니라 원래 있어야 했던 것이 자리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이게 어떻게...”

“이런 식으로 강림하고 싶지는 않았건만...”

내가 이 느낌에 대해 가브리엘에게 물으려고 하자 광신에 의해 말이 끊겼다.

잠깐 가브리엘에게 정신이 팔려서 못 봤는데 주변 상황이 조금 이상했다.

끈적한 검은색 기운이 땅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과...광신의 기운?”

“우리가 그 동안 광신의 기운이라고 부르기는 했지만 저건 마신의 기운이야.”

에레보스가 입을 열었다.

“내 기운이지. 내 마신의 기운이 타락한 버전이라고 해야 하나.”

마신마다 마신의 특성에 맞게 그 기운이 느껴진다.

페르세스 같은 경우를 예로 들자면 열정적인 붉은색, 페르세스처럼 불타오르는 모습을 한다.

“증오와 분노가 담겨있는 기운...”

나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런데 주변에 느껴지는 광신의 기운은 평범한 정도가 아니었다.

주변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긴...”

모두의 얼굴에 있는 긴장감이 눈에 띄었다.

“보이는 그대로지.”

엘로아가 광신을 가리켰다.

광신은 공중으로 떠오르고 있었고 땅에서 올라오는 광신의 기운을 전부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등에는 제단에서 나오던 사슬들이 몸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광신의 말.

강림.

나는 상황을 깨달았다.

“광신이... 부활한다고?”

우리가 절대로 저지하려고 하던 광신의 부활이 지금 이뤄지고 있었다.

“막...막아야 되는 거 아니야?”

내가 말하자 에레보스는 고개를 저었다.

“저 기운에 휩쓸려봤자 피해를 보는 건 우리다.”

“그...그래도! 이렇게 보고만 있어?”

“괜찮습니다. 로엔.”

가브리엘은 나에게 말했다.

“마신들이 걱정하던 정도의 완전한 부활은 아닙니다.”

“분명 강하기는 하겠지만, 세계를 순식간에 멸망시킬 정도의 힘은 아니다.”

에레보스는 담담하게 말하긴 했지만, 표정에는 걱정을 품고 있는 얼굴이었다.

“제일 문제는 내 예전 힘과 주신의 힘이 합쳐져서 부활한다는 거겠지.”

“맞습니다.”

에레보스의 말에 가브리엘이 동조했다.

“부활이 가까이 온 순간부터 주신님은 사실상 광신에게 먹힌 상태였습니다. 물론 최소한의 봉인은 유지하고 계셨지만...”

가브리엘은 안타까운지 뒷말을 흐렸다.

그러자 에레보스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다른 마신들은 그 모습을 보고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어떤 위로도 그에게 닿지 않을 것 같았다.

그저 온 힘을 기울여 광신을 막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일 것 같았다.

주변 상황은 점점 안 좋아졌다.

제단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고 가짜 주신의 몸은 점점 강한 기운을 풍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가브리엘이 내 어깨를 잡았다.

“로엔. 당신이라면 이 싸움도 이겨낼 수 있을 겁니다.”

“이겨 낼 수 없는 싸움이더라도 이겨내야 해.”

더 이상 뒤는 없으니까.

가브리엘은 고개를 저었다.

“응원의 말이 아닙니다. 자세한 내용은 저도 잘 모르기 때문에 제대로 말해줄 수 없지만, 이것만큼은 기억하십시오.”

가브리엘은 곧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미카엘과 저를 사용하십시오. 이것이 이 싸움의 열쇠가 될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러자 내 옆에 띄워놨던 근원의 형태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 형태는 점점 사람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금발의 여성이 되었다.

아름다운 모습의 여성.

“오랜만이군요. 가브리엘.”

나는 그 여성의 모습을 처음 봤지만,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 누구인지 알아챘다.

“미카엘?”

“맞습니다. 로엔님.”

“어...어떻게 된 거야? 넌 그곳에서 못 벗어나는 거 아니었어? 내 근원으로 버티지 못한다고...”

“가브리엘과 연결되자 가능해지더군요.”

가브리엘과 연결되니까?

“그럼 미카미카는?”

“저가 있던 장소로 돌려보냈습니다.”

나는 다시 가브리엘을 바라봤다.

“그런데 너와 미카엘을 이용하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묻자 가브리엘이 곤란하다는 얼굴을 했다.

“자세한 점은 말해드리기 어렵습니다. 저희도 모르기 때문에...”

“그게 뭐야...”

“그러나 이거 하나만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가브리엘은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의 로엔님은 주신님과 다르지만, 주신님과 굉장히 비슷한 형태를 띠고 계십니다.”

“주신...님과?”

그럴 리가 없었다.

나는 근원을 사용할 수 있기는 하지만 제대로 말한다면 근원은 내 기운이 아니다.

진정한 내 기운이.

모든 기운들은 자신의 몸 속에 지니고 있다.

하지만 내 근원은 카리온이 만들어준 이공간에 존재한다.

사실 상 근원은 내 기운이 아니다.

오히려 무기.

도구에 가깝다.

내가 사용해야 할 때 꺼내서 쓰는 도구.

그러니 주신과 비슷하다는 말은 틀리다.

나는 근원을 다룰 줄 알 뿐이다.

몸 속에 근원이 있는 주신과는 아예 다른 상황인거다.

"나...나는 주신이 아니야..."

내가 그렇게 말하자 가브리엘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습니다. 그저 이것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기억...?

“근원을 사용하는 자로서의 마음가짐만을 가지고 나아가십시오.”

그러자 미카엘도 입을 열었다.

“크게 달라지실 필요 없습니다. 강한 상대라고 긴장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하던 대로. 늘 나아가던 대로. 살아가던 대로.”

그리고 두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

“미래로 나아가십시오.”

“과거를 기억하십시오.”

“현재를 살아가십시오.”

­쿵...

광신이 있는 곳에서 큰 소리가 났다.

“하하하... 이 몸에 강림하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주변에 있던 광신의 기운과 사슬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혼자서 서 있는 광신만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에레보스.

에레보스와 엄청나게 닮은 미청년이 서 있었다.

에레보스는 약간의 수염이 나 있는 아저씨 같은 느낌이었지만, 저 녀석은 엄청난 미청년이었다.

그러나 그 얼굴의 이목구비는 완전히 에레보스였다.

에레보스가 젊을 적의 모습 같은 느낌이었다.

“이 힘... 얼마만의 힘인가...”

광신은 고개를 숙이고 자신에게 취해있었다.

잠시 시간이 지나고 고개를 들었다.

“하하하! 다들 오랜만이군.”

광신은 신나는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했다.

“안녕?”

페르세스는 불편하다는 듯 눈썹을 움직였다.

“아! 방금까지 같이 있던 녀석은 내 정신의 조각일 뿐이고 지금은 진짜 나야.”

에레보스의 진중한 말투와 다르게 능글맞고 가벼운 말투였다.

“나는 정말 반가운데 너희는 아닌가 봐?”

광신은 웃음을 흘렸다.

“후후... 다른 ‘나’가 있어서 그런가?”

그러다가 광신은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나는 반가웠는데 반대쪽의 반응이 미적지근하니 좀 기분이 그러네?”

“닥치고. 죽여주마.”

페르세스는 기운을 끌어올리며 이를 갈았다.

“어허... 페르세스, 성격 급한 건 아직도 여전하네.”

광신은 미소를 지었다.

분명 에레보스의 얼굴로 짓는 미소였는데 섬뜩한 느낌이었다.

평소의 평온한 에레보스의 미소가 아니었다.

“어차피 다 죽을 예정이니 마지막 인사라도 해주려고 했건만.”

그러자 엄청난 기운이 광신의 몸에서 나왔다

오른쪽에는 광신의 기운이, 왼쪽에는 근원이 나왔다.

“그래도 정이 있으니까 작별 인사는 해줄게.”

그 기운들은 우리를 향해서 날아왔다.

“잘 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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