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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였던 내가 여신이 되었습니다-133화 (104/138)

〈 133화 〉 #132 주신의 과거

* * *

내가 처음 정신을 차렸을 때 봤던 것은 어둠이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어둠.

정확히 말하자면 어둠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그저 무(無)의 상태였다.

어둠이라는 것조차 존재하지 않는 무(無).

그렇게 혼자만 지내고 있는 동안 나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그러자 나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시간이라는 개념은 나에게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사무치게 느끼게 했다.

그래서 나는 이런 개념 뿐인 존재가 아닌 제대로 된 다른 존재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 외로움을 덜어내 줄 수 있는 존재를.

그렇게 엄청난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외로움은 익숙해져 갔다.

외로움은 나에게 너무나 당연한 존재가 되었다.

오히려 이 외로움이라는 게 없어질 수 있는 존재인가 싶었다.

내가 나 이외의 누군가를 만들어내더라도 달라지는 게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존재 만들기를 멈추지 않았다.

시간이라는 개념이 있었던 이후로 가만히 있는 게 더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성공했다.

나는 내 반을 소모해 다른 존재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나는 그 존재를 창조하자마자 내가 천천히 쌓아왔던 지식을 한 번에 넘겨줬다.

그리고 내가 만든 존재에게 나는 이름을 붙여줬다.

“네 이름은 에레보스야.”

“에...레보스?”

시간이라는 개념에게 내가 이름을 붙여주자 시간을 인지했던 것처럼 나는 그를 인지하기 위해 이름을 붙였다.

그러자 에레보스는 나에게 물었다.

“그럼 너는 누구야?”

“어...?”

하지만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게 있었다.

그건 ‘나’라는 존재였다.

‘나’는 그동안 이름이 없었기에 나는 ‘나’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거였다.

“나...나는...”

“네 이름은 내가 정해줄게!”

“어?”

“네 이름은 카루아야.”

나는 그 이름을 인식하자 갑자기 많은 감정이 들어왔다.

혼자서 있는 동안 힘들었던 기억들.

버틸 수 없었던 긴 시간들.

그렇게 나는 ‘나’를 인식했다.

그저 외롭다는 감정뿐만 아니라 수많은 감정들이 들어왔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았다.

나에게는 이제 에레보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엄청나게 긴 세월이 흘렀다.

“카루아! 마족 녀석들이 또 문제를 일으켰다.”

에레보스가 내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물었다.

“뭐! 무슨 사고인데! 어디 다친 데는! 마족 애들은 괜찮아?”

“아니... 마족이 사고 쳤다니까... 상대방을 걱정해야지.”

“그...그런가? 그럼 상대방은 괜찮아?”

“그게... 좀 많은 천사가 죽은 모양이야...”

나는 표정이 굳었다.

“죽...죽었다고? 많이?”

에레보스는 당황하는 내 모습을 보더니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마치, 자신이 실수를 했다는 얼굴이었다.

미안함이 가득한 얼굴.

“하아... 그냥 너한테 말하지 말 걸 그랬다.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아...”

나는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내 집무실에서 나가는 에레보스의 뒷모습만 바라봤다.

에레보스가 그렇게 고생하고 있는데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너무나도 적었다.

왜 다들 싸우고 상처 입고 죽는 것일까...

나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처음 마족과 천사들을 창조했을 때는 너무나 행복했다.

많은 친구가 생긴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 같이 생각하지 않았다.

서로를 증오하고 싸우기 바빴다.

그리고 서로를 죽였다.

죽음은 그들을 영원한 잠에 빠지게 했다.

나는 무(無)의 영역에서 혼자 있을 때를 생각했다.

엄청난 외로움을 느꼈던 그때를...

다른 존재들도 이런 비슷한 잠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에 나는 침울해졌다.

그렇게 한동안 내가 혼자서 침울해져 있자 에레보스가 나에게 왔다.

그냥 온 것이 아니라 어떤 서류를 가지고 왔다.

“이거 읽어봐.”

“아?”

에레보스가 준 서류는 죽음에 관한 서류였다.

계속되는 죽음들을 막을 수 없다는 내용이 길게 적혀있었다.

“하아...”

읽으면 읽을수록 한숨이 나왔다.

창조된 존재들 사이의 갈등은 사라질 수 없다는 내용.

너무나 절망적인 내용만이 적혀있었다.

내가 더 이상 읽지 않고 내려놓으려고 하자 에레보스가 그 행동을 막았다.

“끝까지 읽어봐.”

“어?”

나는 에레보스의 행동에 서류를 계속 읽어갔다.

그 서류 마지막에는 죽음이라는 개념을 체계화해 환생이라는 제도를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죽은 존재는 내가 느꼈던 고독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였다.

나는 흥분한 목소리로 에레보스에게 말했다.

“이거 너무 좋다! 역시 에레보스야! 최고!!”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거였다.

죽음 때문에 잠에 들어버린 영혼을 다시 다른 몸에 넣는다니.

에레보스의 창의력에 감탄할 뿐이었다.

“그런데 그러려면 난 잠깐 잠에 빠질 거야.”

“어...?”

“그러니까. 사고 치지 말고 가만히 있어. 내가 돌아올 때까지.”

에레보스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웃었다.

그게 내가 마지막으로 본 에레보스의 웃음이었다.

“아...안녕?”

에레보스는 죽음이라는 개념을 재구성하고 이를 관리하는 엘로아라는 신을 만들었다.

이 녀석은 매우 무뚝뚝해 보였다.

분명 작은 소녀의 모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감정표현이 매우 적었다.

내가 반갑게 인사하더라도...

“안녕하세요.”

딱딱하게 존댓말을 쓰면서 무표정으로 대답했다.

혹시 내가 불편한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내가 그다지 이 아이에게 한 일은 없었다.

그저 옆에서 불편한 게 있는지 계속 살펴본 거?

아님 뒤에서 일하는 모습을 몰래 염탐한 거?

혹시 이 아이가 무시당할까 봐 다른 존재들에게 겁을 준거?

생각하다 보니 집히는 구석이 너무 많았다.

“사과하러... 가야겠지?”

계속 나에게 딱딱하게 대하는 것을 보면 내가 잘못한 점이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조심히 엘로아의 집무실을 들어갔다.

“저... 엘로아?”

“카루아님 오셨군요. 차라도 드릴까요?”

엘로아는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엘로아에게 말했다.

“그... 미안...”

“네?”

내가 고개를 살짝 들어 엘로아를 보자 엘로아의 얼굴에 물음표 수십 개가 떠있었다.

“어?”

“네?”

“음?”

“무슨 일이 있었나요?”

엘로아는 나에게 물음으로 답했다.

“어... 내가 불편하게 굴어서 피곤했지?”

“네?”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미안... 내가 에레보스 말고는 친구가 없어서 널 어떻게 대해줘야 할지 모르겠어... 내가 자꾸 불편하게 굴고, 주위에 아무도 없으니 외로웠지?”

“...?”

엘로아의 얼굴에는 수 천 개의 물음표가 보였다.

“에? 아니야?”

“저가 외로울 일이 뭐가 있습니까. 매일 저를 챙겨주시는 카루아님이 계시고 조금만 있으면 일어날 에레보스님도 있는데.”

나는 어리둥절했다.

“어... 엘로아가 매일 나한테 존댓말을 하고 내 앞에서 딱딱하게 행동하길래...”

“아 그건 그게 편해서입니다.”

“편해서...?”

존댓말하는게 편...해서?

그럼... 내가 불편한 게 아니라는 소리지?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다행이다...”

“저는 지금 카루아님이 세상에서 제일 좋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그 말을 듣자 웃음이 새어나왔다.

입꼬리가 내 말을 듣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너무 히죽대면 평소의 위엄마저 사라질 것 같아 최대한 표정 관리를 하려고 했다.

“그...그럼!”

“네?”

“오늘부터 이름 뒤에 붙이는 님은 금지야.”

“네? 갑자기요?”

내가 그 말을 하자 엘로아는 당황하는 모습 역력했다.

“오늘부터는 카루아라고 불러! 에레보스도 에레보스님이 아니라 에레보스! 알았어?”

"갑자기 그러시면..."

"우리는 가족이니까 반말 하는게 맞아!"

“어...네 알겠습니다.”

“존댓말도 금지!”

“조...존댓말도요?”

처음에는 굉장히 어색한 말투로 나에게 말했다.

하지만 이내 엘로아는 나를 편하게 대하기 시작했다.

엘로아는 너무 착한 아이였다.

그저 표정에서 그 마음이 드러나지 않을 뿐이었다.

그 아이는 너무 착할 뿐더러 세상의 모든 존재들을 좋아했다.

“에레보스는 언제 일어나려나...”

나와 엘로아는 너무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여기에 에레보스까지 더해진다면 나는 행복에 겨워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서류.

그리고 계속되는 사건들.

이것이 문제였다.

나와 엘로아는 행복하지만, 마계와 천계는 그러지 못했다.

고통이 난무하고 두 세계는 계속 파괴되었다.

“하아...”

나는 이 많은 생명체로 인해 행복해졌지만, 그 생명체들은 점점 더 불행해졌다.

나는 그래서 한 가지 해결책을 생각해냈다.

에레보스가 엘로아를 만들었던 것처럼 나도 다른 신들을 만들어낸다.

엘로아가 생명체들을 죽음이라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줬던 것처럼, 하나씩 고통을 제거해나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고통이 없는 세계.

싸움이 없는 세계.

모두가 행복한 세계를 위해.

나는 그 내용에 대해 엘로아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엘로아도 동의하여 나는 바로 행동을 시작했다.

나는 여러 신을 만들어냈다.

마계와 천계를 관리할 수 있는 신들을.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엘로아는 에레보스의 많은 부분을 받고 탄생한 신.

그러나 내가 만들어낸 신들은 내 일부분만 받고 탄생한 신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 신들은 엘로아 같지 못했다.

엘로아도 완벽하지는 못했지만, 다른 신들은 마계에 있는 마족이나 천사들 보다도 못한 경우가 있었다.

물론 모든 신이 그랬다는 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었다.

“하아...”

나는 서랍에서 한 서류를 꺼내 들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계획을 적어둔 서류였다.

그 계획의 이름은 중간계.

내 원대한 꿈을 담은 계획이었다.

신과 마족, 천족 말고도 많은 생명체들이 존재하는 세상.

각자만의 개성을 가지고 서로 즐겁게 지내는 모습.

그 장면을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그리고 엘로아와 에레보스도 함께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 거다.

어차피 중간계들을 만들어 봤자 더 망가진 세상이 되어버릴 테니까.

더 망가진... 부서질... 세상이...

나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에레보스를 볼 면목이 없었다.

에레보스는 자신을 희생하면서 엘로아를 만들어내 존재들의 고통을 줄여줬는데 나는 무엇하나 해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나도 에레보스 같았으면...

내가 더 완벽했다면...

그럼 다른 존재들의 고통도 줄어들지 않았을까.

­똑똑

그러자 내 집무실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구야?”

나는 서랍에 중간계 서류를 넣고 물었다.

“카루아. 나 엘로아야.”

“응! 엘로아 들어와!”

내가 말하자 엘로아는 문을 열었다.

그러나 앞에 보이는 것은 엘로아가 아닌 서류 더미였다.

“에...엘로아?”

내가 당황해서 묻자 엘로아는 비틀거리면서 서류를 들고 들어왔다.

작은 소녀가 서류를 엄청나게 들고 있으니 서류로 인해 얼굴마저 가려졌다.

­쿵

“이...이게 뭐야?”

나는 엘로아에게 다가가 서류를 하나 들어서 봤다.

분명 처리할 서류는 아닌 것 같았다.

“내가 힘들어하는 카루아를 위해 만든 거야.”

“날 위해?”

“‘법’이라는 건데 천천히 읽어봐.”

나는 서류들을 들고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그 서류에 적혀있는 내용은 말 그대로 ‘법’이었다.

다른 존재들이 해서는 안 될 행동들이 적혀있고 그 행동을 할 때 벌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고심해서 만들어 낸 거야. 혼자서 만든 거는 아니고, 아레스나 다른 몇몇 신들과 함께 만들었어.”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마족들이나 천사들이 했던 행동들이 정리되어있고 그 행동 때문에 있었던 사건들이 밑에 나열되어있다.

그리고 그 행동을 종합해 해서는 안될 행동을 정리해 뒀다.

“엘로아...”

“어때?”

“최고야!!!!”

나는 엘로아를 꼭 껴안았다.

“좋아하니 다행이네.”

엘로아도 기분이 좋은지 미소를 지었다.

내 생각이 닿지도 않은 부분을 엘로아는 창조해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아...”

나는 한 가지가 번뜩 떠올랐다.

“엘로아. 이 서류들은 그대로 처리해줘.”

“알았어.”

엘로아가 대답하고 내 집무실에서 나갔다.

나는 엘로아의 그 행동을 보고 깨달았다.

그동안 내 행동이 바보 같다고 느껴졌을 정도였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너무나 부족하다.

다른 존재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모든 존재는 그저 제자리걸음을 하지 않았다.

모두 앞으로 나아갔다.

발전한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만들어낸다.

나는 중간계 계획 서류를 다시 꺼내 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 서류에 적어둔 대로 계획을 실행했다.

내 근원들을 꺼내 들어 내 몸을 분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중간계를 만들어낼 것이다.

분명 처음에는 모든 중간계가 불완전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엘로아처럼 성장할 것이다.

발전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세상에도 말해주겠지.

완벽한 세상을 만드는 방법을.

어떤 세상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수 많은 중간계 중 하나는 고통이 없는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다.

나는 엘로아를 보고 세상을 믿기로 했다.

내 몸은 분해될 것이다.

하지만 내 정신이 분해되는 것은 아니다.

내 정신은 남아있다.

그렇다면 나중에 에레보스랑 엘로아와 함께 완벽한 세계를 볼 수는 있을 것이다.

포탈로 들어가자 어둠이 우리를 감쌌다.

하지만 이내 점점 주위가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 주위를 밝혀가는 빛 중심에는 카루아, 주신님이 있었다.

“에레보스... 오랜만이야.”

주신님은 에레보스에게 인사를 건넸다.

촉촉하게 젖어있는 듯한 목소리였다.

자신의 상황 때문에 슬픔에 젖은 목소리 같기도 했고, 희망 때문에 기쁨에 젖은 목소리 같기도 했다.

그러나 울음에 젖은 목소리라는 점은 확실했다.

주신,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루아...”

그 모습을 보고 에레보스 또한 감상에 젖으려고 했다.

“에레보스.”

내가 그런 에레보스의 이름을 부르자 에레보스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감상에 젖는 것도 나가서 해야지.”

에레보스는 자신에게 말하는 듯한 혼잣말을 내뱉었다.

“주신님. 이따 보자고 했죠?”

“그래...”

그렇게 우리는 계획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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