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화 〉 #133 엘로아와 에레보스
* * *
“카...카루아?”
집무실에 앉아 있던 엘로아는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카루아와 에레보스만이 가지고 있던 근원.
그 근원의 기운이 세상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이 창조되고 있었다.
엘로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카루아의 집무실로 향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빨리 카루아에게 가봐야만 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카루아!”
엘로아는 카루아의 집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어... 엘로아.”
다행히 카루아는 집무실에 있었다.
“카...카루아?”
그러나 카루아의 형체가 이상했다.
평소의 모습과 다르게 흐릿한 모습이었다.
마치 연기처럼 보였다.
“카루아... 몸이...”
“아... 그게...”
카루아는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색한 웃음.
엘로아는 그 웃음을 보자 불안감이 몸을 휘감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엘로아... 상의하지 않고 일을 벌여서 미안해...”
카루아는 고개를 숙였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
엘로아는 처음으로 카루아에게 소리쳤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카루아를 위해 행동하던 엘로아였다.
하지만, 엘로아는 자신을 휘감는 불안함에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했다.
“내가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야... 새로운 세상. 새로운 아이들을 만드는 일.”
“그거라면... 신들을 만들고 천계도 만들었으니 된 거 아니야?”
카루아는 엘로아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 더 자유롭고 많은 생명체가 존재하는 세상이야.”
“그...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런데 카루아의 몸은 왜 그러는데.”
엘로아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헤헤... 미안... 에레보스처럼 한동안은 없어질 거 같아. 내 정신의 일부를 남기고 갈 테니까 크게 걱정하지는 마.”
“정...정신의 일부?”
“그 친구한테 물어본다면 여러 가지를 알려줄 거야. 완벽하지는 않을 테지만...”
“그럼 카루아는 어디 가는데!”
“내 몸은 이제 없어질 거야.”
그 말에 엘로아는 마음이 털컥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느끼던 불안감.
그 정체를 직접 들은 것이다.
엘로아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 아...”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눈에서 눈물만이 흐를 뿐이었다.
“엘로아. 괜찮아. 내 몸이 없어질 뿐이니까. 내 정신은 살아있을 거야.”
“카루아...! 안돼... 카루아...!”
“엘로아... 미안...”
서서히 카루아의 몸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엘로아는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나 그 몸을 붙잡으려고 했다.
“다른 세상들을 부탁해.”
“카...”
엘로아가 손을 뻗어 카루아를 잡으려고 했다.
카루아의 손에 자신의 손이 가까이 갔지만, 카루아의 손은 몸과 함께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루아...”
엘로아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분명 저기에 있던 손이, 자신이 잡으려고 했던 손이 연기처럼 변해버렸다.
“으...으...”
엘로아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흐으...윽...으으...”
엘로아는 카루아를 잡았던 손을 바라보며 울기 시작했다.
자신이 처음 나와 만났던 존재.
지금까지 계속 함께했던 존재였던 카루아가 사라져 버린 것은 엘로아에게 큰 충격이었다.
엘로아는 그렇게 울고 있다가 마지막에 카루아가 했던 말을 생각했다.
다른 세상들을 부탁해.
“하아...”
엘로아는 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카루아가 맡긴 세상.
이 세상을 이렇게 등지고 있는 것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절망하고 있어봤자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미 카루아는 사라졌고 내가 이러고 있다고 카루아는 돌아오지 않는다.
“카루아의 정신은... 남아있다고 했어.”
분명히 말했다.
카루아가 분명히 말했다.
자신의 정신은 살아있고, 한 동안 없어진다고.
언제 돌아올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엘로아는 결심했다.
카루아가 돌아왔을 때 만족할만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그렇게 엘로아는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카루아가 만든 중간계를 둘러보았다.
많은 생명들이 존재하는 중간계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엘로아는 그 부족한 점들을 보완하기 시작했다.
원래 하던 일인 환생에 관한 일도 하면서 중간계 또한 돌보기 시작했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렇게 일을 했지만, 일은 해도 해도 늘어날 뿐이었다.
신계에 있는 신들은 늘어나는 업무량을 보고 중간계에 대해 이를 갈기 시작했다.
아무리 신들이 일한다고 해도 부족한 점이 채워지지 않았다.
계속 늘어날 뿐.
그리고 결국엔 신들의 불만이 터지고 말았다.
그들은 엘로아의 집무실에 쳐들어왔다.
엘로아는 그들을 보고 덤덤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어차피 저희가 이런 노력을 해봤자 그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엘로아에게 불만을 표했다.
“더 이상 저희는 이런 일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엘로아에게 던지고 방에서 나왔다.
“...”
엘로아는 한숨을 내뱉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신들이 던진 서류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다.
신들의 행동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갔다.
신들이 엄청난 노력을 해도 중간계 존재들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서로 싸우기 바빴다.
중간계 생명체들은 쾌락만을 추구했다.
자신의 주변인들을 착취해 쾌락의 양을 늘리려고만 노력했다.
하지만 엘로아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 사이에서도 노력하는 이들이 있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도우려 하고 희생하는 이들을.
그렇게 신들이 자신의 업무를 포기하자 엘로아가 해야 할 일은 늘어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엘로아의 집무실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
이 시간에 올만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자신의 집무실에 들어오는 이는 자신에게 서류를 가져다주는 이뿐이었으니까.
엘로아는 의아한 채로 물었다.
“누구지?”
그 존재는 엘로아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집무실에 들어왔다.
엘로아는 살짝 불쾌해질 뻔했지만, 그 얼굴을 보고 입을 벌렸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에...에레보스.”
드디어 에레보스가 일어난 것이었다.
엘로아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자신이 학수고대하며 기다렸던 에레보스가 눈앞에 있으니 엄청난 기쁨이 자신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엘로아에게 감격에 재회는 일어나지 않았다.
“너가... 엘로아인가?”
에레보스는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어... 맞습... 아니. 맞아.”
엘로아는 습관대로 존댓말을 할 뻔했지만, 존댓말을 하지 말라던 카루아의 말이 기억나 말을 바꿨다.
에레보스는 단도직입적으로 엘로아에게 물었다.
“카루아는 어디 있지?”
그 말에 엘로아는 에레보스를 만나면 하고 싶었던 말들을 모두 잊었다.
“어디서도 카루아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카루아는 어디 있는 것이지?”
엘로아는 계속해서 물었다.
“카루아는 어디 있느냐고 했다.”
엘로아는 주먹을 쥐고 말했다.
“카루아는 없어.”
그렇게 말하자 에레보스는 성큼성큼 자신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있던 서류들을 전부 쳐냈다.
서류들은 자신의 책상에서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렀다.
떨어지는 서류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에레보스를 봤다.
에레보스는 분노하고 있었다.
자신을 만들어주고 잠이 들었다는 그 에레보스가 나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제대로 말해.”
엘로아는 조용히 다시 말했다.
“카루아는 없다고...”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카루아는 자신의 몸을 바쳐서 중간계를 만들었어.”
“뭐? 중간계?”
“그래. 중간계를 만들고 사라졌어.”
에레보스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내 집무실에서 나가버렸다.
“이런 첫 만남을 겪고 싶지는 않았는데.”
엘로아는 땅에 떨어진 서류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서류들을 주우려고 땅이 쪼그려 앉았다.
그러나 서류가 손에 집히지 않았다.
자꾸 눈물이 맺혀 눈앞을 가렸다.
서류를 잡으려고 해도 손은 허공을 저을 뿐이었다.
마치 카루아의 손을 잡지 못했던 것처럼.
“흐...흐으...”
소매로 눈물을 닦아내도 계속 눈물은 눈앞을 가렸다.
엘로아는 자신의 눈이 야속할 뿐이었다.
카루아가 없어지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는 일이 없다.
중간계의 일들도, 신계의 신들도, 에레보스마저도.
자신을 도와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흐으... 끄윽... 후우... 정신 차려야지.”
엘로아의 마음에는 계속 슬픔이 차올랐지만, 엘로아는 참았다.
견뎠다.
다시 카루아를 만났을 때를 기약하기 위해서.
그렇게 엘로아의 마음은 곪아갔다.
@
며칠 달 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엄청난 수의 사망자.
중간계에 사망자가 급속하게 늘어났다.
겨우 하루 만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었다.
모든 중간계를 통틀어 하루 만에 나온 사망자 수는 무려 7천만.
7천만이라는 사람, 엘프 등 여러 종족이 죽었다.
중간계의 차원이 여러 개 있기는 하지만 비슷한 수로 모든 차원에서 일어난 사망 사건.
차라리 한 차원에서 전쟁이 일어났다거나, 전염병이 돌았다면 이해가 가겠지만 모든 차원에서 비슷한 정도의 사망자가 나왔다.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자 담당 천사인 리시아가 입을 열었다.
“그... 에레보스님이... 중간계를 멸망시키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에...에레보스가?”
“그동안 몇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에레보스님이 신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시거나 하는 사건들이...”
“신들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사건?
엘로아는 그동안 집무실에서 나가지 않고 일만 처리해왔다.
그러다 보니 소문이나 다른 사실들에 어두웠다.
리시아는 고개를 숙이고 말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업무를 제대로 하지 않는 신들을 보고 실망하셨고, 중간계를 둘러보시고는 분노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언하셨습니다... 중간계를 멸망시키시겠다고...”
“아...”
엘로아의 곪아버린 마음은 결국... 터져버렸다.
“아...아... 안돼... 아...”
카루아가 희생해서 만들어낸 세상.
그 세상이... 자신의 전부가.
무너지려고 했다.
엘로아는 집무실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에레보스에게로 향했다.
에레보스가 있는 곳은 알기 쉬웠다.
근원이 있는 곳을 찾으면 됐기 때문이다.
에레보스는 공중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붉은 머리를 한 여성과 보라색 머리를 한 남성이 생명체들을 죽이고 있었다.
피가 난무하고, 시체들은 쌓여갔다.
그 두 존재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그 둘은 중간계에게 재앙이었다.
굉장히 끔찍한 모습이었지만, 에레보스는 살짝의 웃음을 지으며 보고 있었다.
“에레보스!!!!”
엘로아는 그런 에레보스의 앞에 섰다.
“무슨 짓이지? 카루아가 자신의 몸을 바쳐 만들어낸 것들을 전부 부술 셈인가?”
엘로아는 분노와 슬픔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너도 카루아와 오래 지냈으면 카루아에 대한 정이 있을 거 아닌가. 저런 벌레들, 쓰레기들이 카루아를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저 녀석들이 숨을 쉬며 살아가는 것만으로 구역질이 나온다.”
“카루아가 남긴 세상이다. 카루아가 보고 싶어했던 세상이라고.”
“하! 그래서 카루아는 어디에 있지? 저 녀석들 때문에 카루아는 사라졌다. 나는 용납하지 못한다. 저 녀석들은 절대로 카루아를 대신할 수 없다.”
엘로아는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럼 널 없애야겠어. 카루아를 위해.”
엘로아는 자신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너가 나의 상대가 된다고 생각하느냐.”
에레보스는 섬뜩하게 웃으면서 기운을 꺼냈다.
엘로아와 에레보스의 기운은 비교되지 않았다.
엘로아는 최대한으로 기운을 끌어올렸지만, 마치 거인 앞에 선 작은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런 힘의 차이는 엘로아에게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엘로아는 앞으로 나아갔다.
카루아가 희생해서 만든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
빨리 끝날 것 같던 엘로아와 에레보스의 싸움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상처를 입고 몸이 찢겨도 엘로아는 일어났다.
그리고 에레보스에게 달려들었다.
끈질기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결과는 정해졌다.
엘로아는 쓰러져 더 이상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그대로 누워 있어라.”
에레보스는 쓰러진 엘로아에게 말하고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흐...으으... 카루아...”
그리고 하늘에서는 비가 내렸다.
그 비는 쓰러져 있는 엘로아의 얼굴을 적셨다.
빗물은 엘로아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빗물과 함께...
“흐으으앙... 미안... 카루아... 지키지 못했어...”
엘로아의 눈물도 흘러내렸다.
카루아에 대한 미안함과 에레보스에 대한 원망.
그리고 자신의 무능함을 탓하며 울었다.
곪았던 마음을 터트렸다.
그 모든 감정들은 엘로아의 눈물에 담겨 흘러내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