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화 〉 #135 에레보스와 카루아의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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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풀들이 자라고 나무들이 있던 평화로웠던 숲.
그곳에는 이제 풀도, 나무도,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불타고 있는 오두막들은 사람이 살았던 장소였음을 보여줬지만,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시체가 되어 산처럼 쌓여있었다.
생명체란 생명체는 모두 마족에게 그리고 페르세스에게 죽임을 당했다.
에레보스는 그 장면을 둘러봤다.
“페르세스, 이쪽 차원은 어느 정도 정리된 거냐?”
“어. 더 이상 반항할 녀석은 없고 뒷정리만 하면 될 거 같아.”
페르세스는 검에 묻어있는 피를 털어냈다.
하지만 옷과 얼굴에 묻은 피는 그녀가 수많은 생명을 죽였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페르세스는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얼굴에 살짝 걸려있는 미소는 섬뜩함을 자아냈다.
“수고했다. 그럼 조금 쉬어.”
“쉴 틈이 어디 있어. 카리온은?”
“마물들을 이끌고 1차원을 부수고 있다.”
“음... 그럼 난 거기 구경이나 가야겠다.”
그 말을 끝으로 페르세스는 모습을 감췄다.
에레보스가 주변을 둘러보니 상처를 입은 마족들이 보였다.
아무리 중간계의 존재들이 약하다고 하더라도 그 중 강한 녀석이 한 둘 섞여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마족들이 상처를 입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에레보스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에...에레보스님.”
“가만히 있어라.”
에레보스는 손을 뻗고 다친 마족들의 상처를 만졌다.
에레보스의 손에서 근원이 나왔고, 그 근원은 부상자의 몸에 스며들어 상처를 치료했다.
“가...감사합니다! 저 따위에게...”
"아니다. 고생했으니 푹 쉬어라."
에레보스는 그렇게 마족들을 치료하고 신계로 돌아갔다.
“부상자의 수가 점점 늘어나는군...”
부상자가 보이면 에레보스가 치료해주기는 하지만, 모든 마족을 치료할 수는 없었다.
물론 카리온과 페르세스가 있어 확실히 부상자가 적기는 했다.
그렇다고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족들의 마법은 치료에 관련된 마법이 없다시피 했기에 부상으로 인한 사망자가 점점 늘어만 갔다.
에레보스는 그런 사망자들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지금 엘로아가 일을 하고 있지 않아 환생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에레보스가 다른 신들에게 이 일을 맡겨보려고 했지만 적임자가 없었다.
환생에 관련된 일이라는 게 너무나 바쁜 일이고 심히 어려운 일이었다.
평범한 신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에레보스는 그런 일과 함께 중간계 관련 일도 하던 엘로아에게 놀라움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엘로아가 사라진 이상 이 일을 맡아줄 존재를 찾긴 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찾을 수는 없었다.
중간계를 없애는게 먼저니까.
중간계 정리가 끝나고 나면 페르세스나 카리온에게 맡길 생각을 하며 환생에 관련된 일은 뒤로 밀어뒀다.
그러다 보니 에레보스가 사망자들에게 미안할 마음을 느낄 뿐이었다.
“사망자를 최소한으로 해야겠군...”
에레보스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마족들의 사망을 최소한으로 하려면 마족들을 치료할 존재나 치료할 도구가 필요하다.
치료할 존재라면 천계에 존재하는 천사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천사들은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엘로아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진 뒤 아무 일도 하지 않다가 결국 사라졌다.
그 사실은 천사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엘로아는 그 동안 자신들을 챙겨주고 도와줬다.
조금 딱딱한 얼굴과 말투이기는 했지만, 충분히 배려해주며 자신들을 돌봐줬다.
그런데 에레보스가 돌아오자 엘로아는 마치 쫓겨나듯 사라졌다.
그러니 천사들이 에레보스에게 호의적일 리가 없었다.
에레보스는 어쩔 수 없이 치료할 도구를 만들기로 했다.
에레보스는 그대로 카루아의 집무실로 향했다.
카루아의 집무실에는 작은 창고가 하나 있었다.
카루아는 호기심이 많아 신기한 물건들을 하나하나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다.
그 창고는 그 물건들을 모아놓은 장소였다.
에레보스가 그 창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자신이 있었을 때보다 더 많은 물건이 있는 게 보였다.
“많이도 모았네...”
에레보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 물건들을 하나하나 둘러봤다.
그 물건들에는 여러 옷들도 많았고 보물처럼 보이는 물건들도 있었다.
그렇게 창고를 뒤지다 에레보스의 눈에 띄는 물건이 보였다.
“오호...”
그 물건은 황금색 잔이었다.
두 마리의 용이 잔을 감싸고 있는 듯한 장식이 있었다.
“이게 좋겠네.”
에레보스는 그 잔을 들어봤다.
그리고 이리저리 둘러봤다.
관리가 굉장히 잘되어있는 잔이었다.
“그럼...”
에레보스는 그 잔에 근원을 넣기 시작했다.
근원을 넣어 그 잔에 새로운 기능을 넣었다.
그 잔에 물을 넣으면 다른 이를 치료할 수 있는 물, 성수가 생성되는 기능이었다.
그렇게 에레보스는 성배(??)를 만들었다.
“이 정도면 되려나.”
에레보스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잔을 들고 다시 중간계로 향했다.
카리온이 1차원에 있다고 했으니 그 잔을 건네주러 1차원으로 이동했다.
에레보스가 그 잔을 들고 중간계에 도착하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들고 있던 잔에서 갑자기 밝은 불빛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뭐지?”
분명 자신이 넣은 근원 말고 그 안에 어떠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런데도 그 잔은 이상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에레보스가 그 잔을 유심히 들여다보려고 하자 갑자기 정신이 뚝 끊기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무...’
에레보스는 어떠한 말도 하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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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보스는 슬슬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에레보스... 괜찮아?”
에레보스는 그 목소리를 듣자 몸을 벌떡 일으켰다.
“카...카루아?”
“에레보스... 오랜만이야.”
에레보스는 인사를 건네는 카루아를 봤다.
“환각...인가?”
“에레보스... 환각이라니...”
“너는 분명 없어졌다고...”
카루아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사라진 게 아니야. 그저 정신만 남게 된 거지.”
그러자 에레보스는 카루아를 껴안았다.
“카루아...”
카루아는 그런 에레보스의 등을 토닥거렸다.
“미안해... 너하고 상의라도 하고 일을 벌였어야 했는데...”
“아니야... 이렇게라도 봐서 다행이다...”
그렇게 잠시동안 에레보스와 카루아는 담소를 나눴다.
카루아는 엘로아와 있었던 일들을 에레보스에게 말해줬다.
에레보스는 그저 미소를 지으며 카루아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카루아는 슬슬 표정을 바꿨다.
“에레보스. 그러니까 이제 중간계를 멸망시키는 일을 멈춰. 엘로아하고 화해도 하고.”
그 말을 듣자 에레보스의 표정이 굳었다.
“아니. 카루아. 네가 돌아올 수 있더라도 난 내 선택을 바꾸지 않을 거야.”
“에레보스...!”
카루아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에레보스의 이름을 불렀다.
그렇지만 에레보스는 단호한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카루아. 이렇게 말하기는 그렇지만, 중간계는 실패작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그 녀석들은 엉망이야. 신들이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변하지 않을 거야. 그저 신들의 노력이 헛수고가 될 뿐이라고.”
“아니야... 에레보스...”
“차라리 신들이 들일 노력을 마계와 천계에 쏟아붓는 게 효율적이야. 굳이 중간계의 생명들까지 신경 쓸 필요 없다고.”
“그렇지만...!”
“내가 웬만하면 너의 말을 듣겠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야.”
에레보스의 표정에는 분노가 나타났다.
그 분노를 카루아를 향한 분노가 아니었다.
그저 중간계에 대한 분노, 증오.
그리고 에레보스의 증오는 이미 선을 넘어섰다.
카루아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에레보스... 제발...”
카루아가 에레보스의 손을 잡았지만, 에레보스는 그 손을 밀어냈다.
“카루아. 이렇게 본 건 정말 기뻤어. 네가 힘을 되찾으면 다시 보자. 이제 나를 내보내 줘.”
카루아는 안타까운 눈으로 에레보스를 바라봤다.
그리고 결심했다는 듯 주먹을 꽉 쥐었다.
“에레보스. 네가 그렇다면 난 너를 막을 수밖에 없어.”
카루아는 에레보스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근원이 카루아의 머리 위로 떠올랐다.
“너와 싸우기 싫어. 카루아.”
“나도야. 에레보스.”
둘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서로에 대한 증오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미안함과 괴로움만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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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보스, 시작한다.”
“로엔, 실수는 없다.”
나는 에레보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있는 근원을 바라봤다.
사용하고 남은 모든 근원.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분해하기에는 충분했다.
실패만 없다면...
나는 근원을 주신님께 날렸다.
근원이 주신님께 다가가자, 주신님은 미소를 지으며 두 팔을 벌렸다.
그 미소는 마치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하는 듯싶었다.
“분해!!”
나는 주신님을 분해하기 시작했다.
광신과 합쳐져 있는 주신님의 정신을.
나는 두 손을 뻗고 집중했다.
주신님의 정신이 손상되지 않도록 조심히 분해했다.
하지만 두 정신은 너무 섞여 있어 쉽게 분해되지 않았다.
“으...!”
분해가 어느 정도 시작되자 주신님은 고통이 느껴지는지 인상을 구겼다.
“그럼 나도 시작한다.”
에레보스 또한 계획했던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황금색 별 모양이 달린 목걸이, 인과율을 들고 자신의 기운을 넣기 시작했다.
그러자 인과율은 황금색 물결을 퍼트리며 주위를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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