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해체한 걸그룹의 막내 멤버 리나의 처녀를.... (2)
* * *
드디어 서하은이 얘기해준 리나의 미팅 날이 찾아왔다.
서하은은 반드시 나도 미팅에 직접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며 끝까지 우겨댔는데. 그 이유가 자신은 시온이를 믿는다나 뭐라나....
개인적으로 그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그쪽 관련 업종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내가 거기 함부로 나섰다가 무슨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결국 그녀는 내게 복종하는 메이드 같은 존재인 만큼 마지막엔 내 뜻에 따랐다.
내가 할 일은 가서 조용히 있는 거다.
난 가만히 있으면 절반 이상을 갈 수 있는 사람이니깐. 굳이 무슨 행동을 할 필요가 없다.
우선 그래도 내 직책이 컨설턴트라고 했으니, 적어도 겉모습만큼은 그렇게 보일 수 있게 하자.
난 빠르게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우와 생각보다 더 으리으리한 회사였잖아?
건물 입구에 서 있으니 꼭대기가 마치 구름에 닿을 듯했다.
"시온아, 이거 통째로 다 내 건물 아니야.... 우리는 28층만 써."
서하은이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아, 그래요? 난 또 다 누나 건 줄 알았네."
그녀는 내 말을 듣고 눈을 부릅떴다.
"그럼 내가 힘내서 언젠가는...!"
"됐어요~ 장난친 거예요."
난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이렇다고 해도 대단하긴 하다. 고작 나보다 두 살 많은데. 이런 으리으리한 건물에서 한 층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다니.
저번에 만났던 서하은은 뉴투버로서 가볍고 편한 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오늘 만난 그녀는 그때 모습과는 아주 달랐다.
베이지색 슬랙스와 흰색 셔츠를 단정하게 입고 머리를 묶고 있었다. 밝은 계열의 옷 색상이 그녀의 금발과 정말 잘 어울렸다.
"내가 더 열심히 벌어서 나머지 층은 시온이 줄게!"
서하은은 의지를 불태우는 눈빛을 띠고 있었다. 아 진짜 진심일까 봐 무섭네.
"진심으로 필요 없어요. 지금 해주시는 걸로도 충분합니다."
그녀는 살짝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내 말을 듣고 이내 깨달은 게 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주머니를 뒤졌다.
"아! 맞아. 시온이 사원증."
서하은이 주머니에서 나온 건 줄이 돌돌 감겨 있는 사원증이었다. 그녀는 사원증을 내게 내밀며 건넸고, 난 줄을 붙잡아 빙빙 아래로 돌아 떨어지는 사원증을 바라봤다.
줄이 팽팽해짐과 동시에 멈춰서 흔들거리는 사원증을 붙잡으니 저번에 서하은에게 보내준 내 증명사진과 이름이 박혀 있었다.
남시온 컨설턴트
살다 살다 이런 직책을 가져 볼 줄이야. 그래도 결국 껍데기일 뿐이다. 실질적으로 내겐 업무 능력이 없으니깐 말이다.
그나저나 이제 서하은의 부하 직원이 된 건가? 기분이 참 묘하네.
내게 복종하는 CEO의 부하 직원이라니. 어감 한 번 참 이상하다.
난 사원증을 목에 걸며 서하은에게 미소 지었다.
"고마워요."
"아니야앙...."
서하은은 몸을 배배 꼬며 부끄러워했다. 아니, 그 정도로 부끄러울 일이야?
"누나도 미팅에 같이 들어가요?"
"아니. 나는 다른 미팅 있어~ 아직 시간 좀 남았는데. 시온이 얼굴 볼 겸 일찍 온 거야."
"그럼 미팅같이 들어가 줘요! 누나가 대표잖아. 나 좀 도와줘...."
"그래! 시온이 부탁이라면 다른 스케줄은 캔슬 해서라도 들어줘야지!"
진짜 실소가 터져 나오네. 이거 순 또라이 아냐.
"아니.... 그 정도로 할 필요는 없고요. 그냥 시간 여유 되는 만큼만 미팅이 잘 진행 되게 도와주세요."
전문가가 한 명이라도 더 있는 게. 내가 입 다물고 있기 좋은 거 아니야.
"시간 여유... 한 30분 정도 있을 수 있을 거 같은데. 그 정도면 괜찮아?"
"충분해요!"
30분 정도면 진행 방향 정도야 다 정해진 상태일 테니. 내가 나설 건 더욱더 없겠지.
"아, 그나저나 이제 누나라고 그만 불러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응? 상관없는데. 시온이가 원하는 대로 하는 거야~"
"그래요?"
흠, 회사가 자유로운 분위기인가? 일단 우리 둘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밖에선 본 모습과 마찬가지로 고급스러워 보이는 건물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그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검은색 정장을 입은 덩치 큰 남자 둘이 걸어오는 우리를 바라보고 멈춰 섰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네~ 수고하세요."
...... 자유로운 분위기 아니잖아!
"저 사람들 누구예요...? 대표님...?"
서하은은 내 어깨를 치며 웃기 시작했다.
"그냥 누나라고 불러도 된다니깐! 이상한 애들 아니라 우리 직원인데. 만날 둘이 헬스장 가서 열심히 운동하는 애들이야."
아... 평범한 헬창이구나. 지금 다시 보니 덩치가 태호랑 비슷한가? 그 거대한 두 사람은 내 등 뒤로 멀어지고 있었다. 우린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래도 주변에 누가 있을 땐 호칭 지켜서 부를게요."
28층을 누른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고, 닫히자마자 서하은을 내 목을 감싸며 볼에 뽀뽀했다.
쪽.
"그래! 시온이 너무 귀여워!"
으... 싫진 않지만, 엄청나게 부담스럽단 말이지.
서하은보다 지금 이 상황이 훨씬 부담스럽다.
회의실에 앉아있는 사람은 나, 서하은, PD, 매니저, 리나. 총 다섯 명이다.
서하은은 자기 직장으로 돌아오자 진가를 보였다. 정말 그녀가 내게 보이는 모습들이 얼마나 숨겨져 있는 그녀의 본심인지 느껴지는 듯했다.
부드럽지만 정확하고 날카로운 지적을 하며 서하은은 회의를 주도하고 있었다.
그에 맞춰 PD와 매니저도 서하은과 함께 열띤 토론을 펼치며 컨텐츠를 구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입 다물고 있으려니깐 생각보다 더 불편해서 죽을 맛이라는 거다.
씨발, 공부라도 조금 해올 걸 그랬나?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면 이미 늦은 거야. 오늘 당장에라도 집에 돌아가자마자 뉴투브 공부 존나 한다.
근데 입 다물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나 혼자는 아니었다. 내 맞은편에 앉아있는 그녀, 리나.
그녀는 이런 미팅엔 크게 관심이 없다는 듯, 시선이 다른 곳으로 돌아가 있었다. 하물며 그 시선조차 뭔가를 정확하게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 듯 했다.
사실 처음 회의실에 들어와 그녀를 본 순간부터 여러모로 집중이 안 되기 시작한 건 사실이다.
늘 생활관 TV 화면 속으로만 봐왔던 연예인인 그녀가 지금 내 눈앞에 있다.
댓글 명령으로 조종했던 다른 여성들도 화면에서만 보다 실제로 보고 감회가 새로웠던 건 사실이지만, 리나는 경우가 다르다.
사회에서 스마트폰 만지작거리면서 본 사람이랑 부대에 처박혀서 꼼짝도 못하고 TV로 본 사람을 만나게 됐을 때 같은 감정이 들 수가 있겠냐?
리나는 긴 생머리를 하고 있었고, 서하은처럼 염색 모였지만, 금발보단 더 희다는 느낌이 드는 애쉬 블론드였다.
굉장히 신비한 느낌이 연출되는 리나의 머리칼과 그녀가 특유에 동글동글한 이목구비로 아무것도 관심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의외로 그녀에게서 퇴폐미가 느껴졌다.
사실 집중이 안 되는 이유가 이것뿐만은 아니다.
집에서 출발 전 컴퓨터를 이용해 그녀의 뉴투브 영상에 미리 댓글을 달아놨다.
난 이미 한참 전부터 그녀를 쳐다보고 있고, 명령이 발동했다면 그녀는 이미 내게 조종을 당하고 있는 상태라는 거다.
내가 달아 놓은 댓글 명령 특성상 리나가 지금 내게 조종을 당하고 있는지 아니면 조종 자체를 실패한 것인지는 지금 당장 알 수는 없지만, 긴장 되긴 한다.
만약에 컴퓨터로 댓글 명령을 달아서 조종에 실패한다면 굉장히 좋지 못한 상황이다. 내가 가진 스마트폰으로만 조종이 가능하다는 건데. 그건 앞으로 겪어야 할 위험성이 너무 높다.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다른 경우에 수를 대비해서 컴퓨터로 리나에게 댓글 명령을 작성할 때 일부로 계정도 평소에 사용하는 계정이 아닌, 새로 만든 계정으로 작성해 두었다.
사람을 조종하는 힘 자체가 나도, 스마트폰도 아닌 계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일단은 지금 바랄 수 있는 건 다른 매개체로도 조종할 수 있길 바라는 수밖에.
그렇게만 된다면 난 훨씬 더 자유롭고 편하게 움직일 수 있다. 어디서든 어떤 물건으로도 조종이 가능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결국에 전부 실패한다면,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리나에게 새로운 댓글 명령을 내려 조종하는 수 밖에.
리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딴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꽤 지나버린 듯하다.
"어느 정도 정리된 듯하니. 전 먼저가 보겠습니다."
서하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짐을 챙기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PD가 말했다.
"아, 대표님 미팅 있다고 하셨죠?"
"네. 수아 게스트 출현 미팅이요. 수고들 하세요~"
"고생하셨습니다!"
서하은은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모두가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자 내게만 따로 눈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흠, 그래도 얼추 회의는 다 끝났다는 거지? 다행이다. 이제 조금만 버티면 되겠구나.
"저희 자료 좀 가져와야 할 거 같은데. 두 분 잠시만 기다리시겠어요?"
매니저가 나와 리나를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다.
뭘 기다리라는 거지? 어... 뭐 내가 할 게 있나?
내가 멍청하게 얼타는 동안 리나가 대답했다.
"넵~ 다녀오세요!"
그렇지. 그냥 저렇게 대답하면 되는구나. 사람이 얘기의 흐름을 모르니깐 그냥 단순하게 멍청해져 버리네.
매니저와 PD는 자리에서 일어나 분주하게 파일 몇 가지를 챙겨 회의실을 나섰다.
후... 차라리 이게 낫다. 할 것도 없으니깐 당당하게 넋 놓고 있어야지. 내가 진짜 이런 스타일이 아닌데.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런 자리에 껴 있으려니 진짜 성격이 바뀌는 것 같다.
어차피 리나는 계속 허공이나 쳐다보고....
리나랑 눈이 딱 마주쳐 버렸다. 아니, 이건 마주친 느낌이 아닌데. 그녀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뭐야. 왜 저래. 난 시선을 살짝 피했으나 여전히 그녀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애는 또 왜 저러는 거야. 진짜 불편해 죽겠네. 뭐 할 말 있는 건가?
"남시온, 컨설턴트?"
차갑고, 감정 없는 리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컨설턴트 맞아요? 왜 아무것도 안 해요?"
리나를 쳐다보니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흠, 잘 대답해보자.
"뭐, 제가 와서 할 일을 대표님이 오셔서 다 하고 가셨으니 아무것도 안 할 수밖에 없죠."
리나는 한 손으로 턱을 괴며 재밌다는 듯 날 쳐다봤다.
"그쵸? PD님이랑 매니저님도 완전 일 잘하시죠?"
뭐지? 지금 나 떠보는 건가?
"제가 이직한 지 얼마 안 돼서 뭘 함부로 판단하고 싶지는 않네요."
리나는 이제 그냥 씨익 웃고 있었다.
"아~ 넵."
뭐야? 대답이 저게 끝이야? 사람 존나 슬슬 긁어 놓더니 어이가 없네.
한참을 말도 못 하고 있다. 기껏 한 대화마저 묘하게 열 받으니 목이 타기 시작했다.
나가서 커피라도 하나 타와야겠다. 그래도 예의상 물어보긴 해야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리나는 살짝 놀란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난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저 커피 가지러 갈 건데. 리나씨도 드실 겁니까?"
"흠~ 같이 가요."
리나는 발랄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걸어왔고, 난 회의실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기다리는 날 본 리나는 귀엽게 깡충거리듯 내가 열어 놓은 문틈을 빠져나왔다.
그녀는 날 올려다보며 귀엽게 웃고 있었다.
처음부터 회의실에 앉아있던 리나를 본 탓에 서 있는 건 지금 처음 보는데. 리나의 매우 희고 얇은 목선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흰색 반팔에 청 멜빵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귀여운 옷차림과 반대되는 몸매가 내 시선을 끌었다.
특히 멜빵 안으로 큰 존재감을 내 뿜는 그녀의 가슴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귀여운 옷차림과 관능적인 몸매의 갭도 있지만, 역시 저 베이비 페이스라고 부를만한 얼굴이 그녀의 몸매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듯했다.
리나와 나는 복도를 걷고 있었고, 주변엔 아무도 없이 우리 둘뿐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리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내 옆에 딱 붙어 걷고 있었다.
그러던 그녀가 갑자기 자기 손을 내 손에 스치듯 닿게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스치듯 닿던 리나의 손이 이제는 내 손을 툭툭 치기 시작했다.
역시 댓글 명령은 성공했다. 내 스마트폰이 아니어도, 같은 계정이 아니어도, 댓글 명령은 통하는 것이었다.
결국에 사람을 조종하는 이 힘은 스마트폰이나 계정에 고유한 힘이 아니라 내가 가진 능력 그 자체였다.
내가 리나의 뉴투브 영상에 달았던 댓글 명령은.
`나와 단둘이 남게 되면 내 손을 붙잡을 듯 말 듯 툭툭 쳐라.`
무슨 웃기는 명령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 명령이다.
또 현재 내가 생각하고 있는 리나 공략 설계 중에 첫 번째 단계인 명령이다.
내가 사람을 조종하려면 반드시 성적인 욕구가 포함되어야 한다. 그리고 남녀의 스킨쉽중 가장 기본적이라고도 생각 할 수 있는 손 잡기.
과연 이성의 손을 붙잡겠다는 생각이 완전무결할 수 있을까? 아니, 분명 성적인 욕망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을 것이다.
그걸 증명하듯 지금 리나는 내게 조종당한 채 내 손을 붙잡을 듯 말 듯, 마치 날 유혹하듯 행동하고 있다.
나란히 걷는 중 계속해서 내 손 주변에서 얼쩡거리고, 부드럽게 스치며 툭툭 치는 리나의 손을 난 확 붙잡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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