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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투브속 그녀들을 내 마음대로-25화 (25/273)

〈 25화 〉 해체한 걸그룹의 막내 멤버 리나의 처녀를.... (3)

* * *

"응?"

내게 손을 붙잡힌 리나는 내 옆에 나란히 서서 토끼 눈을 뜨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 툭툭 치고, 정신 사납게 굴길래 잡았는데. 왜요?"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솔직히 손 가지고 이 정도까지 얼쩡거리면 좀 붙잡을 수도 있는 거잖아? 내가 명령으로 조종했긴 하지만.

"흠, 제가 그러긴 했는데.... 갑자기 손을 잡으셔서 조금 놀랐네요."

리나가 말은 저렇게 하고 있지만, 표정은 조금 놀란 수준이 아니었다. 볼엔 홍조가 귀엽게 피어있었고, 눈동자엔 당황스러움이 가득했다.

"그럼 손 가만히 두시면 놔 드릴게요."

"........"

흠? 내게 손을 잡힌 시점부터 명령은 충분히 이행 했을 테니. 조종은 끝났을 테고, 손을 가만히 두려면 얼마든지 가능할 텐데. 이 반응은 뭐지?

리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여전히 나와 손을 붙잡고 복도를 걷고 있었다. 생각보다 명령의 효과가 강한 건지, 조종의 영향이 남아 있는지 모르겠지만, 리나는 오히려 내 손을 붙잡고 있었다.

이게 무슨 어이없는 명령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방식으로 리나를 조종하는 깊은 뜻이 있다.

지금까지는 격한 명령을 이용해 여성들을 조종해왔다. 그 탓에 그녀들이 느끼는 이질감은 점점 강해져 나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거나 서하은처럼 내게 완전히 복종시켜버리는 수 밖에 없었지.

그러나 지금 내가 생각하는 리나 공략 작전은 그녀가 느낄 이질감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법이다. 천천히, 느리게, 점점 리나는 자신도 모르게 내게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다.

물론 그것도 작전이 내 생각대로 굴러갔을 때 얘기지만, 이번에 서하은을 복종시켰던 때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굳이 이런 복잡하고 불편한 방법을 사용하는 이유는 서하은 때와 비슷하지만, 실상은 오히려 반대다. 명령과 조종 없이도 나와 동등하게 날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남녀가 나란히 손을 잡고 걷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이 보게 된다면 마치 연인 같아 보일 거란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게 명령을 내려 리나를 조종한 당사자인 나도 오랜만에 이성과 손을 잡고 걸어보는 거고, 심지어 그 대상이 좋아하던 연예인이라니. 묘하게 설레는 감정이 감정 속 깊은 곳에서부터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 복도에 사람은 전혀 지나다니질 않았고, 우리는 짧은 침묵을 유지하며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후, 근데 이러다 갑자기 사람이라도 튀어나오면 어떡하지?

악!

저런 생각을 하자마자 복도 코너에서 낯선 여자가 바로 튀어나왔다.

난 붙잡고 있는 리나의 손을 재빠르게 놓았지만, 이 거리면 분명 맞은편에 있는 여자가 우리 모습을 봤을 거다.

리나를 힐끔 바라보니 끝장나게 당황스러운 건 그녀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지금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이랑 귀는 아무리 봐도 홍조 수준이 아니거든.

미친, 못 봤길 바라는 수밖에 없나? 아니, 근데 애초에 이 거리에서 못 볼 리가 없잖아.

작전 시작한 지 첫날 부터 실패하는 건가.... 그것도 그렇고 나름 다르게 생각해보면 나 취직한 건데. 지금 첫날 부터 사고 친 거 아니야?

나름 치밀하게 계산해서 준비한 작전이었는데. 씨발, 어이가 없다 여자애랑 잠깐 손 좀 붙잡고 있었다고, 설레는 바람에 상황 파악도 못 하다니.

간단하게 상황을 정리해보면 결국 예쁜 여자애랑 손잡고 팔자 좋게 복도를 나닐다 관계자한테 걸린 상황이다.

아니지. 관계자가 아닐 수도 있다.

오늘 하루 회사에 찾아온 손님일 수도 있고, 이쪽 업계랑 거리가 먼 사람이라 리나가 누군지 아예 모를 수도 있다.

일단 누군지 확인부터 해보자.

난 정면에서 걸어오는 그녀를 쳐다보지 않기 위해 계속 시선을 피했지만, 용기를 내서 맞은편에 그녀를 쳐다봤다.

뭐야. 어디 장례식장이라도 다녀온 사람인가?

시선을 옮긴 내 눈에 들어온 그녀는 정말 검은색을 좋아하는 듯했다.

흑발의 긴 생머리와 일자로 반듯하게 짤라 눈썹을 딱 덮을 정도인 앞머리는 굉장히 단정한 느낌과 신비한 느낌을 동시에 가져왔다.

심지어 그녀는 눈동자마저 깊은 검은색을 가지고 있었고, 크고 날카로운 눈매와, 날렵한 턱선, 그리고 전체적으로 앳돼 보이는 얼굴이었다.

문제는 그 밑으로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그 원피스 마저 칠흑 같은 검은색, 그녀가 신고 있는 로퍼 마저 검은색 가죽 재질 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검은색들이 저렇게 돋보이는 이유는 그녀의 새하얀 피부에 있었다.

그녀는 마치 뱀파이어라고 해도 딱히 의심 가지 않을 정도로 하얗게 질린 듯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고, 그와 반대되는 검은색 옷과 신발을 저렇게 두르고 있으니 검은색들은 더 칠흑 같아 보일 수밖에.

일단 이게 다 무슨 상관이냐. 오히려 좋다. 저런 차림을 한 거 보면 오히려 회사 직원이거나 관계자일 확률은 낮다.

그렇다면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그녀가 리나를 모르고 있을 확률도 높다는 뜻이지.

난 다시금 그녀를 쳐다보며 그녀의 시선을 확인했다.

아, 너무 노골적으로 우리 둘을 쳐다보고 있는데...?

혹시나 싶어 리나를 힐끗 쳐다보니 리나는 고개를 완전히 돌려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너마저 왜 그러냐 불안하게.

어느새 칠흑 같은 그녀는 내 코앞까지 다가왔고, 그 순간마저 그녀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선은 날 딱히 의심하거나 수상하게 여기는 눈빛은 아니었다. 가볍게 흥미를 느끼는 정도? 아니면 그마저도 느끼지 않는 눈빛이었다.

결국 그녀는 나와 리나를 지나쳐 이어진 복도로 쭉 걸어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 해볼까 하다 리나가 갑자기 말을 걸어 포기했다.

"쟤 누군지 알아요?"

"아니요. 처음 보는 사람이네요."

"MCN 다니는 사람 맞아요? 우리 회사 소속인 수아잖아요."

아! 조금 전 미팅 끝날쯤에 서하은이 얘기했던 수아가 저 사람이었어?

"우리 회사 소속이면 뉴투버겠네요?"

리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컨설턴트님 완전 월급 루팡 아니에요?"

월급 안받거든.... 그나저나 멍청한 소리를 하긴 했네. 우리 회사 소속에 저 비주얼이면 무조건 뉴투버겠지.

"이왕 바보 취급 받는 김에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저 수아 라는 분이랑 아는 사이예요?"

인사를 안 나눴으니, 그럴 확률은 딱히 없겠지만, 확실하게 알아둬야 하니 물어보는 쪽이 낫다. 리나가 워낙 시선을 피하고 있었으니 수아쪽에서 못 알아봤을 가능성도 있고.

"아는 사이였으면 인사를 했겠죠! 그래도 서로 얼굴은 아는 사이라 제가 누군지는 알 거예요."

리나를 살짝 언성을 높이며 대답했다. 까칠 하기는.... 어쨌든 얼굴을 아는 사이면 조금 피곤해지겠는데.

일단 수아라는 사람이 입이 가벼워 보이는 스타일은 절대 아니긴 하지만, 괜히 쓸데없이 떠벌리는 성격이라면 리나를 공략하는 데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니깐 왜 갑자기 손을 잡아 가지고.... 씨잉."

리나는 귀엽게 씩씩거리며 내게 토라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미안해요. 그냥 갑자기 그러고 싶었어요."

나연아. 네 대사 좀 빌린다.

리나의 얼굴에 다시 살짝 홍조가 피었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수아가 말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니라 별문제 없을 거예요."

말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닌 건 또 뭐야?

"그래요? 수아라는 사람은 무슨 뉴투버 인데요?"

"아, 몰라요! 앞으로는 함부로 손잡고 그러지 마세요!"

리나는 성질을 잔뜩 부리며 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난 리나를 뒤따라가며 그녀의 뒤통수 가까이에 대고 말했다.

"손은 내가 잡았는데. 잡을 상황을 만든 건 그쪽 이거든요?"

리나는 화들짝 놀라며 날 돌아봤는데. 귀가 잔뜩 빨개진 채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어쩌라고요!!!"

"아니~ 뭐, 그렇다고요~"

리나는 씩씩거리며 다시 앞을 보고 걸어갔고, 난 느긋하게 그녀를 뒤따라갔다.

일단 첫 번째 작전은 어느 정도 성공한 거 같다. 리나가 말을 저렇게 하고 있지만, 아무리 봐도 내게 적대심을 느끼고 있는 거 같진 않고, 결정적으로 손으로 먼저 툭툭 쳐대며 손을 붙잡을 상황을 만들어 준 건 본인이라고 생각할 테니 날 비호감으로 여길 이유는 없겠지.

그나저나 수아라는 뉴투버가 문제란 말이지. 일정이 마무리되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확인을 좀 해봐야겠어.

오늘 정해져 있던 일정을 전부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고 있다.

일정이라고 해봤자 리나 미팅이 끝이긴 했지만....

리나와 한바탕 소동이 있고 나서, PD와 매니저가 돌아와 나머지 미팅을 진행하는데. 리나가 하도 시선을 쏴대서 부담스러워 죽는 줄 알았다.

회의 진행 중에 계속 노려보고, 째려보고, 너 때문이야! 이런 시선을 보내는데. 그게 얼마나 티가 나는지 PD와 매니저도 눈치를 챘다.

일정이 다 끝나고 매니저가 나한테 따로 리나랑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보는데. 뭐, 내가 뭐라 대답하겠냐 그냥 아무 일도 없었다. 하고 마는 거지.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잘 됐다. 초반에 회의 진행할 땐 아무것도 관심 없다는 것처럼 허공만 쳐다보던 리나가 나머지 회의 진행 중일 땐 내내 나만 쳐다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째려보는 거 였긴 했지만..., 뭐 귀여웠으니깐. 됐다.

우선 다음 미팅 날짜는 정해졌으니. 그때는 오늘보다 더 확실하게 준비해서 리나가 내게 어떠한 이질감도 느끼지 않고, 한층 더 가까이 다가오게 만들어야 한다.

오늘 준비도 자신 있었지만, 수아라는 뉴투버 덕분에 조금 꼬이긴 했다. 하지만 결국 이 문제는 전적으로 내 탓이다.

리나랑 손 좀 붙잡고 걸었다고 잔뜩 설레서 앞일은 생각도 하지 않았으니, 이걸 내 탓을 안 할 수가 없다. 다음번엔 이런 실수마저 보강해서 좀 더 완벽하게 준비해야 한다.

그나저나 이제 수아라는 여자애를 확인해 볼 차례다.

난 스마트폰을 꺼내 뉴투버 수아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눈에 들어온 건 그녀의 채널명이었다.

수아의 ASMR

엄청 단조로워서 오히려 더 눈에 띄는 거 같다. 심플 이즈 베스트 같은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니겠지.

우선 채널은 뒤로 좀 밀어두고, 수아의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나이는 20살, 리나와 같은 나이였다. 문제는 이거 외에 정보가 없다. 심지어 이름만 나와 있을 뿐 성도 나와 있질 않다.

그녀에 대한 정보는 실명인지도 확실히 모를 수아라는 이름과 올해 20살이 됐다는 것. 이게 전부였다.

마땅한 정보를 구할 수 없게 된 나는 수아의 ASMR 채널에 들어갔다.

그녀의 채널엔 여러 가지 ASMR 컨텐츠 영상들이 있었다.

귀청소, 입소리, 이어블로잉, 위스퍼링, 이외에도 많은 컨텐츠들이 있었는데. 평소에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던 것들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나마 그녀가 목소리를 내는 듯한 썸네일을 골라 들어가니 곧바로 수아의 칠흑 같은 긴 생머리와 하얗게 질린 듯한 피부에 신비로운 얼굴이 보였다.

수아는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대고 속삭이기 시작했는데. 마치 동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깊고 차가운 목소리였다.

처음엔 무슨 이야기인지도 몰랐지만, 어느 정도 집중해서 듣기 시작하니 내용의 갈피가 잡히기 시작했다.

수아가 속삭이고 있는 건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다. 난 스마트폰의 스피커를 귀에 가져가 점점 그녀의 목소리에 빠져들며 어느새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내 차 앞까지 도착해버렸다.

난 차에 탄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수아라는 여자에 대해 생각하며 깊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난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앉아 집중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완벽하게 리나를 공략할 수 있도록 그녀에게만 시간을 투자해서 움직일 생각이었지만, 상황이 바뀌었다.수아라는 뉴투버가 손 잡고 걸어가는 나와 리나를 목격했다.

목격자인 수아를 해결해야 하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 내 스스로가 수아라는 여자의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계속 그녀의 칠흑 같은 눈동자와 깊게 빠져드는 듯한 목소리가 머물고 있다.

난 수아라는 여자의 몸을 탐하기로 마음 먹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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