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 일주일만 사귀자는 20살 ASMR 뉴투버. (1)
* * *
시간을 꽤 들여서 수아에 대한 정보를 더 찾아보려 했지만, 역시 마땅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건진 건 20살이라는 정보뿐.
그래도 크게 걱정할 건 없다. 직책뿐이긴 하지만, 내가 일단 수아가 소속된 MCN의 컨설턴트니깐.
우선 같은 회사에서 수아를 마주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엄청난 이점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다.
수아를 조종할 때는 리나처럼 완벽하게 이질감 없이 내게 빠지게 할 여유로운 계획을 짤 생각은 없다. 조종이 가능하기만 해도 반 이상은 성공한 것이다.
내가 수아에게 원하는 건, 저 차가운 얼음장 같은 표정이 자신의 몸속으로 내 자지를 받아들이며 일그러지는 모습이다.
정말 조금도 생각하기 귀찮다면 그냥 단순하게 호텔 방 하나 미리 잡아놓고, 수아에게 댓글 명령으로 찾아오게 만들어 섹스한 뒤 기억을 잃게 하는 방법으로 그녀를 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생각보다 금세 재미가 없어졌다. 나에 대한 기억을 전부 잃게 만든다는 건 결국 난 상대방에 무엇도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뜻인데.
난 그런 걸 원하지 않는다. 조금 더 재미있길 원한다.
그러나 결국 수아의 기억을 부분적으로 지우게 될 수도 있다. 수아가 나와 리나를 목격한 걸로 우리를 곤경에 빠트릴 수도 있으니 그렇게 된다면 적어도 그날의 우리를 목격한 기억은 잊게 만들어야 한다.
난 얼마 전 서하은에게 받은 실버 엔터테인먼트 스케줄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유명한 회사답게 역시 많은 뉴투버들과 미팅이 잡혀있었다. 이미 실버 엔터테인먼트 소속이 뉴투버들의 미팅도 상당히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뉴투버들도 꽤 있었다.
게스트 출현이나 합동 방송으로 인해 다른 MCN 소속 뉴투버들도 꽤 보였고, 소속 없는 뉴투버들도 생각보다 많았다.
소속이 없는 뉴투버들은 아마 실버 엔터테인먼트에서 영업하려는 듯했는데. 계약 체결률이 생각보다 높아 보였다.
서하은, 생각보다 회사 운영을 잘하고 있구나. 이런 모습까지 보니깐 진짜 대표님이라고 부르고 싶어지는데.
뭐,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나한테 복종하는 메이드를 높혀 부를 순 없잖아?
일단 스케줄에서 수아의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금세 잡혀있는 미팅을 찾을 수 있었고, 다행히도 리나의 미팅 날짜와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어 겹치지 않게 움직일 수 있을 듯하다.
날짜는 확인했고, 그럼 우선 이날은 회사에 가야겠구만.
어떤 식으로 댓글 명령을 내려볼까. 난 스마트폰을 들어 수아의 ASMR 채널에 들어가 그녀의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최근에 봤던 수아의 영상은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 가져다 대 부드럽게 이야기해 주는 영상이었는데. 이번에 재생한 영상은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메이크업 ASMR 영상이었다.
흠, 수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영상이어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밋밋함이 느껴졌으나. 메이크업이 점점 입혀지는 그녀의 얼굴을 보는 것도 생각보다 중독성이 있었다.
처음 회사에서 수아를 마주쳤을 땐 그다지 화장이 진하지 않았지만, 영상 속에 그녀는 꽤나 진한 화장을 하고 있었다.
수아 특유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화장이었고, 화장이 진해지자 그녀가 가진 어두운 신비로운 느낌이 더욱 강해지는 듯했다.
안 그래도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수아였는데. 화장을 마치고 나니 훨씬 더 다가가기 어려운 인상이 됐다.
특히 눈 화장이 제일 강렬했는데. 이렇게 표현하면 좀 웃길 수도 있지만, 사람이 된 엄청 예쁜 범고래 같은 모습이었다. 그만큼 강해 보이신다는 거지....
그렇게 수아의 영상을 감상하던 중 수아 뒤편으로 그녀의 방이 눈에 들어왔다.
방 자체도 굉장히 신비로운 분위기였다. 화려하지만 어두운 느낌을 주는 가구들과 난생처음 보는 듯한 신기한 물건들, 그래도 결국 여자애 느낌이 물씬 나는 방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문득 재밌는 생각이 났다.
저 방에 가 볼까? 아직 20살이니 수아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면 문제가 있겠지만, 그녀가 자취를 하고 있는 건 이미 확인했다.
워낙 정보가 없는 그녀여서 뉴투브에 업로드된 영상 하나, 하나를 다 살펴봤는데. 자취하는 20살의 요리 ASMR이라는 영상을 하나 봤었다.
만약을 대비해서 댓글 명령을 작성할 때 `혼자 있는 집` 이라는 문구를 넣으면 혹시 모를 위험도 대비할 수 있다. 수아가 집에 혼자가 아니라면 명령이 발동되지 않을 테니. 내가 그녀의 집으로 갈 일 자체가 없어지는 거지.
그리고 이제는 사원증마저 생겼으니, 회사에 출입하는 데 문제 될 것도 없다. 당당하게 건물로 들어가 조종할 당사자를 쳐다봐 명령을 발동시킨 뒤 자리를 벗어 나면 된다.
큰 틀은 정해졌고, 이제 세부적인 사항을 선택할 때가 왔다.
어떤 댓글 명령을 작성해 수아를 조종할지 말이다.
최대한 자연스럽고 수아가 내게 이끌릴 수 있는 명령으로 조종을 하고 싶은데. 머리를 좀 굴려봐야 할 듯하다.
전역하고 나서 잠깐 직장 생활해 보고, 그 뒤로는 늘 자영업을 해온 탓에 오랜만에 가 본 회사가 너무 낯설어 기운을 다 빨렸다.
일단 오늘은 얼른 자고, 미팅 날까지 시간 여유 좀 있으니 느긋하게 수아를 조종할 방법을 구체적으로 구사해 봐야겠다.
생각보다 수아의 미팅 날짜는 금세 다가왔다.
얼마나 다가왔냐면 방금 막 회사 주차장에 도착해 차를 세웠다. 심지어 조금 늦을 거 같다.
이래서 사람이 여유 좀 있는데? 이런 생각 자체를 하면 안 된다. 이런 생각이 들었을 땐 이미 여유가 없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도 크게 상관은 없는 게. 난 그 미팅에 참여할 계획도 없고, 조용히 대기하면서 기다렸다가 수아를 마주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혹시나 모를 일은 늘 있으므로 난 발걸음을 재촉해 얼른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28층 버튼을 누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며칠 동안 수아에게 어떤 댓글 명령을 작성할지 고민을 꽤 했는데. 결국은 아무것도 작성하지 않고 오게 됐다.
저번에 리나 같은 경우엔 내 스마트폰 아닌 다른 매개체로도 댓글 명령이 가능한지 확인하기 위해서 미리 댓글 명령을 작성해 놓고 온 것이었고, 그동안은 확실하게 안전한 방법이라고 생각될 때만 댓글 명령을 미리 작성했었다.
그러나 오늘 같은 경우엔 상황이 조금 다르다. MCN 회사이니만큼 이 건물 안엔 수아를 알고 있는 사람이 수 십 명이 넘게 존재한다.
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수아를 조종해 끌어내려면 미리 작성해둔 댓글 명령으로 조종을 하는 것보단 상황에 맞게 유동적으로 댓글 명령을 작성해서 조종 하는 게 훨씬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단 수아를 마주치고 그녀가 어떤 상황인지, 어떤 장소에 있는지 파악하고 댓글 명령을 작성하는 방식으로 해서 그녀를 조종할 것이다.
뭐, 여차하면 서하은한테 부탁해서 수아라는 뉴투버를 조용히 내 쪽으로 보내 달라고 하는 것도 방법이긴 하지만,
그런 방식은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고 싶다. 생각보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방법도 아니라 몇 번 반복 되다 보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직원도 분명 나타날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던 중 28층에 도착했고, 엘리베이터는 도착 알림음을 내며 문이 열렸다.
정신없이 머리를 굴리던 나는 마음이 급해졌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재빠르게 내리려 했으나 가슴팍 쪽에 시꺼먼 무언가 때문에 멈춰 섰다.
그 무언가가 묘하게 익숙한 실루엣으로 느껴져서 다리를 멈춘 채 확인해보니 내 가슴팍 앞에 수아가 서 있었다.
하필 여기서 마주치냐... 머리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와... 존나 당황스럽긴 한데. 근데 이런 거 저런 거 다 떠나서 내리는 사람이 먼저 아니냐?
수아는 마치 비켜주는 걸 깜박했다는 듯 옆으로 물러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녀가 비켜주자 내가 지나갈 수 있는 틈이 생겼고, 시야가 열리자 나는 재빠르게 주변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좋아. 아무도 없네.
"아~ 차에 물건을 두고 왔네요."
난 다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고, 수아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저번에 리나와 함께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와 같은 시선이었다.
역시 알아보는구만.
수아의 옷차림은 저번과 마찬가지로 검은색이 주된 색깔이었다.
블랙 테니스 스커트에 블랙 니삭스와 발목까지 잡아주는 검은색 가죽 워커를 신고 있었다.
그래도 이번엔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스프라이트 티셔츠를 입고 있어서 완전 시꺼먼 모양새는 아니었다.
치마와 니삭스가 가리지 못한 허벅지 부분이 유독 탱글탱글해 보여 내 시선을 빼앗았다.
수아는 이미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는데 버튼도 누르지 않고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난 B3 버튼을 누르고 수아에게 말했다.
"몇 층 가세요?"
"1층이요."
수아는 마치 입이랑 눈을 따로라는 듯 여전히 날 쳐다보며 입만 움직이듯 대답했다.
슬슬 부담스러워지는데. 언제까지 저렇게 쳐다볼 생각이지?
아니, 그 전에 얼른 댓글 명령을 작성해야 하는 건가? 작성하면 어떤 명령으로 수아를 조종해야 하지?
일단 섹스를 목적으로 무작정 내 차로 데려가야 하나? 엘리베이터 안이라면 최대한 사람들 시선을 피해서 수아를 내 차까지 데려갈 수 있다.
그래, 이건 사실상 굴러 들어온 행운이다. 난 재빠르게 스마트폰을 꺼내 소리를 끄고 수아의 뉴투브 채널에 들어가 아무 영상이나 터치해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나와 섹스하기 위
"저기요."
이 타이밍에 말을 거냐... 난 댓글을 작성하던 손을 멈추고, 스마트폰 화면을 끄며 수아를 쳐다봤다.
"네?"
"저번에 리나랑 손잡고 걸어가시던 분 맞죠?"
미친... 역시 그때 그냥 완전히 확실하게 봤구나. 이럴 땐 쓸데없이 길게 말할 필요 없다.
"네. 맞아요."
얼른 대화를 정리하고 댓글 명령으로 조종해서 데려가야 한다. 만약 수아가 그날 우리를 목격한 걸로 나와 리나를 곤경에 빠트릴 생각이라면 그 날의 기억까지는 우선 확실하게 지워야 한다.
"리나랑 언제부터 사귄 거예요?"
"안 사귀는데요."
"그럼 손은 왜 잡고 있었어요?"
"우연찮게 그렇게 된 겁니다."
수아는 드디어 내게서 시선을 떼고 줄어드는 엘리베이터 층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뭐, 똑바로 대답해줄 필요도 없다. 어차피 기억을 지울 거니깐. 저런 식으로 질문하는 것만 봐도 이미 수상하다.
"그럼 둘이 안 사귀는 건 확실한 거죠?"
수아는 내게 살짝 다가와 내가 목에 메고 있는 사원증을 가볍게 손으로 집어 들어 확인하고,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이어 말했다.
"남시온, 컨설턴트님?"
저번에 리나도 이러던데. 이 회사 여자애들은 남의 이름이랑 직책 부르는 게 취미야?
"네. 맞아요."
이름이랑 직책까지 확인한 거 보면 분명히 무슨 생각이 있다. 이제 망설일 거 없이 수아가 1층에 도착하기 전에 댓글 명령으로 그녀를 조종해서 차로 데려가야 한다.
"그럼 저랑 같이 카페 갈래요?"
응? 이건 또 무슨 속셈이야.
"카페까지 가자고 한 거면 무슨 할 얘기가 있는 거겠죠? 얘기해 보세요."
우리는 회사 건물에서 꽤 떨어진 카페로 가고 있다. 혹시나 우리를 보는 사람이 있을까 봐 일부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에 태워서 데려가는 중이다.
수아는 내 대답을 피하듯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냥 근처 카페로 가도 되는데... 왜 멀리 가요?"
"별로 멀리 안 가요. 저기가 아메리카노 맛집이라 갑니다."
"풉, 그런 것도 따져요? 그래서 그런가 차도 엄청 좋네요~"
애가 진짜 왜 이러는 거야. 그냥 나한테 시비 걸고 싶어서 그러는 건가? 수아는 재밌다는 듯 웃고 있었다. 저 차가운 인상이 웃고 있으니 낯설지만 묘하게 빠져드는 듯했다.
"말 돌리지 말고, 어차피 할 얘기면 차라리 지금 차에서 둘만 있을 때 얘기해요."
괜히 수아의 페이스에 말릴까 싶어 난 단호하게 얘기했다. 애가 뭔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 마음이 불안해진다.
"그럼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어요?"
부탁? 내가 들어줄 만한 부탁이 없을 텐데. 딱 신호에 걸렸고, 난 잠시 전방주시를 멈추고 수아를 쳐다보며 말했다.
눈을 마주치니 그녀의 칠흑 같은 눈동자에 마치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제 선에서 가능한 거면 고려해 볼게요."
"저랑 일주일만 사귈래요?"
일주일? 질문 자체가 존나 어이가 없긴 하지만 뭐, 굳이 멍청하게 당황할 필요는 없지.
"그럼 그 일주일 동안 저는 연인이 하는 건 전부 다 할 건데. 괜찮겠어요?"
수아는 내 말에 뭐라 대답하려 했지만, 난 신호가 들어옴과 동시에 엑셀레이터를 깊게 밟아 배기음을 내뿜으며 출발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