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일주일만 사귀자는 20살 ASMR 뉴투버. (2)
* * *
"그러니깐, 일주일간 사귀자는 건데. 스킨쉽은 일절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죠?"
"네. 맞아요."
카페에 도착해서 테이블에서 수아와 마주 보고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아니, 이걸 대화라고 할 수 있나? 저게 대체 뭔 헛소리야.
"그럼 애초에 부탁이 잘못된 거 아닙니까? 일주일 동안 사귀자는 게 아니라 일주일 동안 사귀는 척을 해달라고 부탁을 하셨어야죠."
"사귀는 척을 원하는 게 아닌데요. 제가 부탁드리는 건 정말 연인 같은 일주일은 원해요.
"정말 연인 같은 일주일은 원하는데. 스킨쉽은 싫다? 아무리 20살이라 해도 알 거 다 알 텐데. 연애 안 해봤어요?"
"....... 그런 건 물어보지 마세요."
수아는 내 시선을 피하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야. 진짜 연애 한 번도 안 해본 거야? 그럼 스킨쉽은 겁나서 피하려는 거고?
"후, 수아씨 말대로면 제가 그 부탁을 들어드릴 이유가 딱히 없는 거 알고 계시죠?"
수아는 내 이런 대답을 예상하였던 것처럼 빠르게 반박했다.
"제 부탁 들어줄 이유는 분명히 있으실 텐데요. 리나랑 회사에서 손잡고 다니던 것 때문에 제 입 막으려고 여기 까지 오신 거잖아요."
요것 봐라.
이제 하다 하다 20살짜리 여자애한테 협박을 당하고 있네. 난 살짝 인상을 쓰며 단호하게 얘기했다.
"일단 그렇다 치고, 그런 짓을 하자고 하는 이유는 대체 뭡니까."
"제가 리나를 싫어하거든요."
흠...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이 여자애는 진짜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리나를 싫어한다. 그게 나한테 일주일 동안 사귀자는 제안을 하는 이유라면 내가 리나의 남자라고 생각을 하는 건가?
날 리나에게서 빼앗아 그녀를 열받게 하려는 수단 정도로 생각 하는 것 같은데. 하지만 나랑 일주일간 사귄다고 쳐도 리나가 분노를 느낄 거 같진 않단 말이지.
어쨌든 리나랑 나는 미팅에서 고작 얼굴 한 번 본 사이다. 헤프닝이 조금 있긴 했지만, 리나가 내게 엄청난 질투를 느낄 만한 감정을 가질 이유는 전혀 없지.
하지만 리나는 분명히 나한테 수아랑은 얼굴만 아는 사이 정도라고 얘기했다.
수아가 내게 리나를 싫어한다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아마 리나가 내게 거짓말을 했던가, 리나는 자신도 모르는 이유로 수아에게 미움을 받는 거겠군.
그러나 결과적으로 저런 제안은 수아를 공략하려는 내게 오히려 이득이다.
둘 관계를 내가 신경 써줄 필요는 없으니. 궁금한 건 그냥 알아내 봐야겠다.
"리나는 나한테 그쪽이랑 얼굴만 아는 사이라고 얘기하던데. 그게 아닌가 봐요?"
"틀린 말은 아니네요."
수아는 툭 던지듯 대답했고, 난 점점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그럼 리나가 싫다는 이유가 대체 뭡니까?"
"그건 대답하기 싫은데요."
아악!!! 그건 그렇고, 애는 왜 이렇게 선생님한테 대드는 말투로 얘기하는 거야.
답답함에 머리를 감싸며 얘기를 이어나가려 했으나 진동벨이 울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아는 그런 나를 보고 재밌다는 듯 웃었다.
"벌써 남자친구 노릇 하시는 거예요?"
"그쪽 한테 가져오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수아는 킥킥대며 웃었고, 난 음료를 가지러 발걸음을 옮겼다.
저런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평범한 20살 같단 말이지.
난 카운터로 가는 짧은 시간에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수아는 내게 일주일간 사귀어 달라고 부탁을 했고, 스킨쉽은 일체 안된다고 못을 박았다.
거절할 경우엔 회사 내 직원이 소속 뉴투버와 사적인 관계를 가지는 모습을 봤다고 문제를 일으킬 생각이 있다는 뜻을 내보이며 날 협박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레귤러 사이즈랑 자바칩 프라푸치노 맞으시죠?"
"네. 감사합니다."
수아가 이런 부탁을 하는 이유는 그녀가 리나를 싫어하기 때문, 하지만 그 이유는 내게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는 리나의 말대로 얼굴만 아는 사이가 어느 정도 맞는 듯하다. 그러나 수아는 틀린 말은 아니라는 애매모호한 태도로 대답했고, 숨겨진 무언가가 있는 건 확실하다.
흠, 일단 어떻게 할지는 결정했다.
"아메리카노 맛집이라더니. 그런 걸 먹어요?"
난 트레이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수아에게 건네줬다.
"그쪽 때문에 머리 굴리느라 당 떨어져서 그래요."
난 내 자바칩 프라푸치노에 빨대를 꽂아 넣고 깊게 빨아들였다.
단맛이 혀를 자극하며 머리가 다시 맑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부탁 들어드릴게요. 일주일간 사귀는 척이든 뭐든 해보죠."
"사귀는 척이 아니라 사귀는 거 라니깐...."
수아는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애는 대놓고 까칠하구나....
"알겠어요. 미안해요. 그래도 나름 그쪽 부탁을 제가 들어주는 거니깐. 저도 조건 하나만 걸죠."
"들어보고 결정할게요."
하긴, 본인이 결국 우위에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거겠지. 사실 내가 존나 봐주고 있는 것도 모르고 말이야.
"만약에 그쪽이 저한테 먼저 스킨쉽을 하게 된다면 스킨쉽을 일절 하지 말자는 조건은 사라지는 겁니다."
"네. 좋아요."
수아는 아주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녀는 가만히 있었는데. 내 눈엔 마치 수아가 콧방귀를 끼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보일 정도였다.
"자신 있나 봐요?"
난 가볍게 웃으며 그녀에게 질문했고, 수아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네. 자신 있는데요. 제가 봤을 땐 그냥 쓸모없는 조건이에요."
너는 진짜.... 그 건방짐, 지금 많이 봐두마.
"그럼 우리 연인 된 첫날인데. 이제 뭐 할까요?"
내 말을 들은 수아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아마 연인이라는 단어에서 민망함을 느낀 듯하다.
"그런 건 원래 남자가 정하는 거 아니에요...?"
따질 건 다 따지면서 의외로 이런 대선 또 정론으로 나오네. 뭐, 일단 계획대로 함께 그녀의 집으로 갈 수 있게 유도한다.
"저 배고파요. 수아씨는 오늘 일정 끝난 거죠?"
"네. 근데 집에서 촬영해야 하는데...."
오히려 잘됐다.
"그러면 집에 가서 요리해 주세요."
"네에?! 같이 집으로 가자고요...?"
수아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대답했다. 수아를 만나며 본 모습 중에 가장 역동적인 모습이었다. 이렇게 격한 반응도 할 줄 아는구나.
"네. 뭐 어때요. 사귀는 척이 아니라 진짜 연인처럼 하자는 거 아니었어요? 집에 가서 남자친구한테 요리 좀 해 주세요."
일주일뿐이지만, 남자친구는 맞잖아?
"흐음... 알겠어요. 근데 저 요리 잘 못해요...."
그래, 뉴투브만 봐도 그런 거 같더라. 근데 뭐, 난 요리가 아니라 다른 거 먹으러 가는 거니깐.
"괜찮아요. 저 어지간하면 다 맛있게 먹어요. 가서 수아씨 뉴투브 하는 것도 구경하면서 데이트한다 생각하면 되겠네요."
데이트라는 단어를 듣자 수아는 또 부끄럽다는 듯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다 괜찮은데. 촬영할 때 구경하는 건 안 돼요...."
됐다. 이제 수아를 댓글 명령으로 조종하는 것만 남았다.
난 수아와 대화하는 내내 만지작거리던 스마트폰을 켰다. 수아가 내 예상 범위에서 너무 벗어나려 할 경우엔 곧바로 그녀를 조종할 필요가 있었거든.
난 아메리카노를 홀짝거리는 수아를 바라보며 그녀의 영상에 틀어가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내 품에 안기고 싶어진다.`
수아는 자신만만하게 내 조건을 받아들였지만, 결국 시작부터 내 승리일 수밖에 없는 게임이었다.
그녀가 스킨쉽을 피하고 싶어 하는 이유를 내가 완벽하게 알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감은 온다.
수아는 연애 경험이 많지 않거나 아예 없는듯하고, 결국 목적을 분명히 가지고 만나는 남자와 몸을 섞는 게 두려운 거겠지. 지금의 나는 그 목적을 알지 못하지만. 곧 알아내게 될 것이다.
내가 수아를 조종해 그녀에게 얻어낼 것은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당연히 리나와 내가 손잡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 수아를 입막음 시키는 것이다.
심지어 그 모습을 빌미로 조금 전 협박까지 했으니 이건 말할 필요도 없겠지.
두 번째는 수아의 몸이다. 애초에 입막음만 목적이었다면, 그냥 단순하게 기억을 날리면 되는 일이지만, 일을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만들게 된 건 내가 수아의 몸을 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난 여전히 저 얼음장 같은 얼굴이 잠시 후 얼마나 일그러질지 너무도 궁금하다.
세 번째는 수아와 리나의 관계를 알아내는 것이다. 수아가 리나를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협박까지 해가며 일주일 동안 사귀어 달라는 이런 말도 안 되는 부탁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반드시 알아내야 한다.
이 부분을 확실하게 알아낸다면 차후에 리나를 공략할 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고, 결정적으로 이젠 내가 너무 궁금해져서 참을 수가 없다.
"다 마셨으면 슬슬 일어나죠. 집에서 뭐라도 해 먹으려면 마트 좀 들렀다 갈까요?"
"집에 간단하게 해 먹을 건 다 있어요. 그냥 가요."
수아는 퉁명스럽게 대답했지만, 왠지 꽤나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댓글 명령을 특이하게 내려서 그런지 수아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내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으니 발동은 분명 됐을 테고, 조종에 실패할 가능성도 전혀 없는 명령을 내렸으니 딱히 특별한 문제는 없을 거다. 댓글 명령대로 시간이 조금 걸리는 거겠지.
나와 수아는 트레이에 컵과 쓰레기를 담아 자리를 치우고 카페를 나섰다.
수아의 집이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여서 다행이었다. 운전하기 귀찮아하는 성격이라 생각보다 멀까 봐 걱정이 었는데. 금세 도착했다.
그녀의 집 현관을 열고 들어가니 무채색이 메인이지만 생각보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거실이 보였다. 평범한 집을 생각하면 역시 어두컴컴한 느낌이 있긴 했지만.
"혼자 사는 거예요?"
"네."
수아는 대답을 툭 던지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뭔가 더 까칠해진 거 같은데. 기분 탓인가?
"여자 혼자 살면 위험하겠네요~ 저 일주일 동안 여기서 지낼까요?"
"안 돼요!"
수아는 날 쳐다보며 언성을 높이며 대답했다. 흠, 확실히 조금 전보다 예민해져 있는데. 아무리 봐도 조종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거 같네. 수아는 큰 소리를 낸 게 민망하고 미안했는지 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그... 가끔 엄마 아빠가 와서 그래요...."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애는 애구나!
"왜 웃어요!!!"
"아, 귀여워서 그래요. 밥은 뭐 해 줄 거예요?"
"파스타 좋아해요?"
"좋아하죠. 면 요리면 종류 안 가리고 다 잘 먹어요."
"그럼 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해 줄게요."
수아는 서랍을 열며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귀엽다 귀여워. 사실상 댓글 명령 없이 그녀의 집까지 들어왔다고 봐도 문제가 없는데. 여러모로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아마 서하은이 만들어 준 이 직책이 크게 한 목 했겠지. 그 외에도 우연찮게 만들어진 상황들이 수아가 나를 신뢰 하게 되는데 큰 도움이 됐을 거다.
난 요리를 준비하는 수아를 뒤로 하고 가볍게 걸으며 그녀의 집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침실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하지만 역시 다른 집들과 다른 점을 뽑아보자면 전부 무채색만 사용한 인테리어였다. 취향이 확고 하구만.
난 침실에서 빠져나와 문이 절반 정도 열려있는 방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봤다.
그곳은 어둡지만 한 눈으로 봐도 수아의 뉴투브 촬영 장소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뉴투브 채널에서도 많이 봤던 익숙한 장소였지만, 어두워서 그런지 막상 실물로 보니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여러 가지 조명과 카메라가 설치돼 있었고, 전원은 들어와 있지 않았다. 그 앞으로는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할 수 있는 모니터와 나에겐 낯선 만큼이나 신기하게 느껴지는 특이한 물건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손님이 허락도 안 받고 구경하면 너무 예의 없는 거 아니에요?"
갑자기 들려오는 수아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그녀가 검은색 앞치마를 메고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채 부엌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어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도 제가 수아씨가 소속된 MCN 직원인데. 어떤 환경에서 촬영하시는지 알아야죠~"
수아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게 허락받는 거랑 무슨 상관이람."
자기네 집에 오면 귀여워지는 스타일인가? 왜 이렇게 귀엽지.
"농담이에요. 마음대로 구경해서 미안해요. 저도 모르게 시선이 가버렸네요."
"흐음... 용서해 드릴게요!"
수아는 세차게 뒤 돌며 부엌 안으로 사라졌다. 난 방을 빠져나와 부엌에 있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앞치마 한 거 되게 귀엽네요. 머리 묶은 것도 잘 어울리고."
수아는 화들짝 놀라며 뒤돌아 나를 쳐다봤다. 머리를 묶어서 그녀의 희고 얇은 목선과 귀가 내 눈에 드러났는데. 그녀가 가진 새하얀 피부만큼이나 그녀의 빨개진 귀는 더욱 눈에 띄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 고마워요."
생각보다 너무 부끄러워하는데? 그냥 가벼운 칭찬이잖아.
수아는 고개를 숙이고 양손을 모으며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근데, 저 불타는 프라이팬은 그냥 두는 거니?
"저기... 탄 냄새 나는 거 같지 않아요...?"
"꺄악!!!"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