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리나 호감작 (1)
* * *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역시 내 예상대로 내가 할 일은 전혀 없었다. 뭐, 현장 관리라는 목적으로 이 장소에 오긴 했는데.
이미 베테랑들끼리 모여서 진행하는 촬영에 내가 개입할 만한 일이 있을 리가 없지. 사실상 나는 법인 카드 들고 와서 커피 사주는 사람이다. 그거 말곤 할 게 없거든.
그나저나, 리나는 이곳에서도 가장 눈에 띄었다.
하체를 전부 드러내는 연 분홍색 레깅스와 글래머러스한 가슴을 드러내는 흰색 끈 나시를 입고 폴 댄스를 추고 있는 리나는 굉장히 새로워 보였다. 저런 옷차림을 하고 있는 건 처음 본단 말이지.
흠, 마음이 조급해지는 게 느껴진다. 그냥 무지성 댓글 명령으로 들이박아서 조종해버려?
뭐, 절대 그럴 생각은 없지만.
로렌과 리나는 촬영 중에 꽤나 친해진 것 같았다. 처음엔 둘이 친해지는 듯한 모습을 보고 뉴투버들의 연기인가? 하는 생각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저 모습이 연기일 거라는 생각은 전부 사라졌다.
로렌은 열심히 폴 댄스를 배우려 하는 리나가 상당히 마음에 든 것 같았다.
리나는 아이돌 시절에도 예능 프로그램에서 늘 활약했었고, 그 활약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리나가 무슨 일이든 늘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했다는 것이었다.
리나는 로렌에게 폴 댄스를 배우는 내내 절대 설렁설렁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배웠다. 심지어 애초에 센스가 뛰어난 것인지. 이 분야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내가 봐도 리나의 폴댄스 실력이 쭉쭉 늘어가는 게 보였다.
아, 그리고 몸매 좋은 센터 직원 신상을 드디어 알았는데. 그녀의 이름은 가연, 나이는 23살이라고 한다.
묘하게 연륜이 느껴져서 나이가 조금 있을 줄 알았는데. 나보다 한 살 어렸다. 뭐, 내가 대뜸 신상을 물어보거나 그런 짓을 한 건 아니고, 그녀가 먼저 내게 관심을 가졌다. 아마 컨설턴트라고 온 젊은 남자가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 같다.
그렇게 그녀와 서로 간단한 통성명을 하다 보니 이름과 나이를 알게 됐다. 그 와중에 리나가 나를 수상한 눈으로 쳐다보긴 했지만... 하하, 그냥 인사한 거거든?
교육은 기본적으로 가연이가 자세를 먼저 선보이면 리나를 그걸 최대한 따라 하고 로렌이 리나의 자세를 수정해주는 식이었다.
그나저나, 저렇게 몸매 좋은 여자 3명을 앉아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맞으며 직관하고 있으니 여기가 지상 낙원이 따로 없다.
가연이의 키는 로렌보다 조금 작았고, 마른 몸매였다. 그다지 운동하는 몸으로는 안 느껴지는데. 저렇게 매달려 있는 거 보면 참 신기하단 말이지.
뭐, 난 마른 몸도 좋아하니깐. 가슴도 그렇게 작은 사이즈는 아닌데. 리나와 로렌하고 함께 서 있으니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진다.
리나와 로렌의 가슴을 유심히 비교해보니 로렌의 가슴이 더 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체격 자체는 리나가 더 작으니 비율로 따지면 비슷한 느낌이다.
물론 셋 다 훌륭한 몸매지만, 굳이 이 중에 한 명을 뽑자면 역시 가장 내 스타일인 몸매는 리나의 몸매다.
지금 이 상태로 바라보면 딱 가연이와 로렌의 중간 정도 느낌을 주는 몸매지. 그리고 내 스타일인 걸 제외하더라도 리나는 아이돌 생활까지 했던 몸매다.
그런 그녀가 다른 여자들에게 너무 쉽게 밀리는 것도 말이 안 되지.
상황이 상황인지만큼 난 대놓고 여자들을 즐겁게 관찰할 수 있었고, 그러던 와중 하필 리나와 눈을 딱 마주쳤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대놓고 날 불쾌한 눈빛으로 쳐다보던 리나는 이젠 묘하게 흔들리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역시, 크게 드러나진 않지만, 조종의 효과는 확실히 있다. 내가 조종당하기 시작한 지 얼추 한 시간은 훌쩍 넘었을 테니. 슬슬 효과가 나타날 만 하지.
조종당하는 당사자인 리나는 이게 무슨 감정인지 알아차리지도 못할 만큼 작은 감정이겠지만.
리나는 날 잠시 바라보더니 시선을 휙 돌렸다.
그렇게 한동안 촬영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안 그래도 계속 직관하며 쉬고 있던 나는 슬쩍 자리를 피해서 복도로 나가 화장실로 향했다.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 쉬고 있는데. 옆에 있으면 묘하게 불편하단 말이지.
화장실에서 대충 손을 한 번 씻고 나오는데. 바로 옆에 있는 여자 화장실에서 나오는 로렌과 마주쳤다.
로렌은 날 마주치자 도저히 궁금했던 걸 드디어 물어볼 수 있게 됐다는 듯 질문했다.
"시온아. 너 리나 씨한테 관심 있어?"
그녀가 부르는 내 이름이 기분 좋은 울림으로 퍼졌다. 가 아니라, 지금 이 여자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네...? 갑자기 무슨...."
흠, 그냥 자연스럽게 눈치를 채게 된 건가? 관심 있냐는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살짝 다르단 말이지.
"계속 리나 씨만 쳐다보던데?"
역시, 눈치챘구나. 노련한 여우 같은 인간답다. 그나저나, 혹시 질투하거나 그러진 않겠지? 설마 로렌이 그러겠어? 적어도 내가 느낀 로렌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애초에 본인은 유부녀인데 뭘.
"흠, 맞아요. 관심 있어요."
뭐, 거짓말은 아니니깐. 로렌이 내가 계속 리나를 지켜보던 걸 눈치챈 이상 속일 순 없다. 근데 난 세 여자를 다 쳐다봤지. 딱히 리나만 쳐다본 거 같진 않은데.
무의식적으로 리나에게 시선이 많이 향한 건가? 로렌은 그걸 예민한 감각으로 눈치챈 거고? 이러나저러나 대단한 여자구만.
"하핫! 진짜? 너무 귀엽다~"
로렌은 내 어깨를 치며 아주 재밌다는 듯 웃었다. 이게 그렇게 재밌나...?
"징그럽게 뭐가 귀여워요. 저 24살이거든요?"
"그래, 그래. 어른이구나. 그래도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도와줄게. 둘이 사귀면 잘 어울리긴 하겠다."
그녀는 내 등을 손바닥으로 툭툭 치고 앞장서 걸었다. 흐음, 아무리 봐도 질투를 하거나 그런 거 같진 않다. 솔직히 로렌은 남편도 있는 유부녀인데. 딱히 그런 감정을 가질 필요는 없지.
애초에 연륜 있는 그녀가 그런 감정을 가질 거 같지도 않고, 그리고 어차피 로렌은 내 좆집인데. 뭘, 그런 감정이 생겨도 스스로 버텨내야지.
난 앞에서 걷고 있는 로렌의 씰룩거리는 엉덩이를 짝 소리가 나게 확 붙잡으며 주물럭거렸다.
"꺄읏!"
"누구랑 연애하게 되든 간에 누나는 제가 평생 예뻐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요."
로렌은 갑자기 엉덩이를 만져대는 나 때문에 놀란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따로 있는 건지, 얼굴을 붉히며 홍조를 띠고 있었다.
짧은 휴식 시간이 지나고 다시 촬영에 돌입했다.
이러나저러나 몸매 좋은 여자들이 레깅스 입고 여러 가지 자세를 취해가며 운동하는 모습을 계속 보고 있으니 아랫도리가 자꾸 불끈불끈해지려 해서 죽을 맛이었다.
흠, 오늘 일정이 다 마무리되면 섹스는 꼭 해야겠다. 흠, 로렌은 시간이 안될 텐데. 수아나 서하은 둘 중 한 명이랑 해야겠군. 우선 수아에게 연락을 해봐야겠다.
어느덧 촬영이 전부 끝났다.
로렌은 곧 아들이 유치원에서 도착할 시간이 돼서 먼저 가버렸고, PD와 촬영 감독, 그리고 가연이는 뒷정리를 하느라 바빴다.
난 가연이와 수다를 떨며 자연스럽게 그녀의 일을 돕고 있었고, 그와 동시에 리나와 단둘이 얘기할 수 있는 타이밍만 재고 있었다.
드디어 리나가 PD와 떨어진 걸 확인한 나는 가연이에게 화장실을 좀 말하고, 조심스럽게 리나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오늘 약속 있어요?"
리나는 살짝 당황한 듯했다.
"없는데요. 왜요?"
"저번에 있었던 일, 사과하고 싶어서요. 오늘 저녁 대접하게 해주세요."
"괜찮아요. 이제 기분 나쁜 거 없어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리나의 표정은 역시 좋지 않았다. 그러나 리나는 지금 내게 조종을 당하고 있는 상태다. 끝까지 거절할 수는 없겠지.
"그러지 말고, 같이 가요. 이렇게 불편한 사이로 지내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리나는 꽤나 고민하더니 이내 대답했다.
"알겠어요."
됐다. 이제 남은 건 내 계획대로 순탄하게 오늘 하루를 보내기만 하면 된다. 아직 호감을 쌓는 단계이니만큼 난 적어도 오늘 하루는 욕심부릴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럼, 지하 주차장에서 기다릴 테니까. 끝나면 내려와요."
리나는 내게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뒷정리를 전부 마치고 사람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지하 주차장에서 리나를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리나가 나타났다.
리나는 화사한 연 노란색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리나의 쇄골이 은은하게 드러나 있었고, 길이는 허벅지 중간 정도로 리나가 걸을 때마다 치마가 팔랑거리며 허벅지 깊은 곳까지 내 시야에 들어왔다.
아마, 오늘 촬영하면서 땀을 잔뜩 흘렸을 테니. 씻고 옷을 갈아입고 온 거겠지.
난 곧바로 차를 몰아 리나의 옆에 차를 세우고 창문을 열었다.
리나와 눈이 마주쳤고, 리나는 내 얼굴을 확인한 뒤 조수석에 탑승했다.
리나는 씻고 나와서 그런지 뽀송뽀송함이 옆에 있는 내게도 느껴지는 듯했다. 심지어 좋은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는데. 차 안이 산뜻해져 내 기분마저 좋아지는 듯했다.
흠, 그나저나 리나는 이 상황이 꽤나 불편해 보였다. 하긴 저번엔 말다툼까지 했던 상대랑 갑자기 저녁을 먹으러 간다 생각하면 충분히 불편할 수 있지.
그래도 계속 어색하게 지낼 건 아니잖아? 아, 생각해보니 중요한 걸 안 물어보고 있었다.
"초밥 좋아해요?"
"좋아하죠. 초밥 먹으러 가요?"
리나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역시, 초밥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 내가 초밥 싫어하는 사람은 아직 까지는 본 적이 없다.
"네. 제가 이번에 맛있는 곳을 찾았거든요."
사실, 내가 찾은 건 아니다. 어제 로렌과 함께 다녀왔던 스시 오마카세 집으로 갈 거니깐. 결국엔 로렌이 알려준 장소다.
리나와 하는 첫 식사인 만큼 절대로 아무 데나 갈 수 없다. 맛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아무리 은퇴한 아이돌이라 해도 리나는 여전히 공인이다.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그 이상으로 불편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 내가 알고 있는 가게 중 최대한 고급스러운 곳으로 가는 게 좋을 거로 생각했다.
어제 로렌과 함께 갔을 때를 떠올려보면 사람이 많지 않았으니 리나와 가도 별다른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다.
그렇게 간단한 대화를 하고 나서도 분위기는 전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난 그냥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괜히 쓸데없이 대화를 나누려다 더 피곤해질 수도 있으니깐. 그냥 이 상태로 저녁 먹을 장소까지 도착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어차피 리나는 계속해서 내 댓글 명령을 따라 조종당하고 있는 상태니 굳이 내가 마이너스 요소를 만들지만 않으면 늘 플러스가 되는 상태인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리나 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왔다.
"원래 그렇게 어린 여자들이랑 친하게 잘 지내나 봐요?"
흠, 말을 건 게 아니라 시비를 건 거 같은데?
분위기를 보아하니 아마 촬영 내내 가연이랑 사이좋게 지낸 걸 얘기하는 것 같았다.
"가연 씨, 얘기하는 거예요? 그 사람 저랑 한 살 차이밖에 안 나고, 저도 아직 24살이면 어린데요?"
"아, 네. 그리고 누가 그쪽 늙었대요? 볼 때마다 여자랑 사이좋게 지내고 있길래 물어본 거예요."
흠, 이거 아무리 봐도 질투 맞지?
시간이 꽤 지났으니 조종의 효과도 당연히 더욱더 커졌을 거다. 가연이와는 정말 단순한 대화를 했을 뿐이다. 수아처럼 손을 잡고 있던 상황도 아닌데. 리나가 이 정도까지 반응을 보이는 걸 보면 효과가 커진 걸 알 수 있다.
"가연 씨랑은 감정 오가는 거 없이 평범한 일 얘기한 게 전부인데요."
"그 여자분은 그쪽 바라보는 눈에서 호감이 뚝뚝 떨어지던데요? 눈치가 없는 편이 신가?"
리나는 이제 틱틱대며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가연이의 그런 시선은 나도 느끼긴 했지만, 아니, 그걸 떠나서 분위기 좀 좋아지려 하더니 또 이러는 거야?
"전 가연 씨한테 관심 없으니깐, 너무 그러지 마요."
"네에."
다행히도 리나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문제는 분위기는 더 어색해져서 이젠 가만히 있는 것도 불편할 지경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입을 꽉 다물고 목적지로 향했다.
"와... 여기 진짜 맛있네요. 완전 잘 먹었어요, 고마워요."
"그쵸? 저번에 왔을 때도 리나 씨랑 같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오고 있었고, 내 말을 들은 리나는 흠칫하며 멈춰 섰다.
"왜 그런 생각을 해요?"
리나는 처음 보는 진지한 얼굴로 내게 질문하고 있었다.
"그냥 미안해서 맛있는 거 사주고 싶었어요."
"삐진 여동생 달래주는 것처럼요?"
"뭐, 그런 감정일 수도 있네요."
리나는 인상을 팍 쓰며 날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내 내 팔목을 잡아당기며 눈을 질끈 감고 내 볼에 입을 맞췄다.
"저 그쪽 동생 아니거든요!"
하! 저런 모습도 있구만. 리나는 내게 등을 돌려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다. 천천히 좀 가지 위험하게.
난 리나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천천히 따라갔다.
급격한 변화를 주는 댓글 명령의 효과도 좋지만, 역시 이렇게 천천히 변화하게 만드는 댓글 명령의 효과도 색다르게 좋다. 흠, 뭐랄까. 내게는 마치 최면과 세뇌의 차이 정도로 느껴진다.
내가 오늘 아침 리나를 만나기 전 그녀의 뉴투브 채널에 작성한 댓글 명령의 내용은 이랬다.
`나를 쳐다볼 때마다 조금씩 내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내 볼에 입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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