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 10년 지기 여사친 처녀 따기 (2)
* * *
우선 혜연이가 20살 때 영상을 가지고 있는 건 내가 확실히 알고 있다.
그도 그럴 게 혜연이는 워낙 SNS를 자주하고 또 게시글을 전혀 지우지 않기 때문에 몇 년간에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출발 전 혜연이의 인별에서 미리 확인하고 왔으니 이 부분에 대해선 나름 확신해도 괜찮을 것 같다.
중요한 건 이다음인데….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자."
내 말을 들은 혜연이는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간단한 얘기 아니었어…? 대체 뭐길래 그래."
"밖에서 할만한 얘기는 아니야."
"뭐, 심각한 얘기야…?"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니깐, 긴장 풀어."
혜연이는 살짝 안심했다는 눈빛으로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알겠어. 그럼 들어가자."
후우, 생각보다 쉽게 설득돼서 다행이구만.
혜연이네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풍경에 난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코끝을 찌르는 맥주 냄새와 테이블에 마구잡이로 놓여진 맥주 캔들이 나의 후각과 시각을 동시에 자극했고, 자연스럽게 혜연이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너 술 마시고 있었냐? 왠지 생각보다 흔쾌하게 집으로 들어오라 하더라. 취했냐?"
"마신 지 얼마 안 됐거든?! 그리고, 술 마시고 있는데 니가 대뜸 찾아온 거잖아!"
흐음, 그건 또 그렇지.
난 대충 소파에 걸터앉아 생각을 다듬기 시작했다.
이제 혜연이가 최초공개 기능을 사용하게 만들어야 한단 말이지.
뭐, 조종해서 무작정 최초공개 업로드를 하게 만들고 기억을 지우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우선 그냥 부탁해보자 순순히 들어줄지도 모르잖아?
대화로 해결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라면 대화로 해결하는 게 좋겠지. 뭐, 맥주긴 하지만 나름 취기가 올라오면 내 부탁을 기분 좋게 들어줄 수도 있으니 말이야.
댓글 명령을 이용해 조종하는 방법은 대화에 실패하면 그때 대비책으로 사용해야겠다.
"맥주 시원한 것 좀 꺼내 줄까?"
혜연이를 바라보니 이거 완전 그냥 술친구가 생겨서 신난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같이 마셨겠는데. 여름휴가 파티에서 술을 너무 진탕 마시고 와서 술만 봐도 넌더리가 난다.
"됐어. 별로 안 땡겨."
혜연이는 입술을 삐쭉 내밀며 대놓고 실망했다는 표정을 지었고, 맥주 한 캔을 집어 내 옆에 풀썩 앉았다.
"그래서 할 얘기가 뭔데?"
지금부터 시작이다. 대화가 안 통하는 거 같으면 바로 댓글 명령으로 조종한다.
"너 뉴투브 아직 잘하고 있지?"
"응. 그냥 틈틈이 취미로 하고 있지. 그건 왜?"
"혹시 최초공개 사용해 본 적 있냐?"
혜연이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 너 설마 너 그거 물어보려고 온 거야?"
"아, 중요한 거야. 빨리 알려줘."
"응. 쓰고 있지. 영상 올릴 때 마다 최초공개로 올리고 있어."
좋다. 이러면 대화가 쉬워진다. 이미 사용 방법과 효율을 알고 있다면 내 부탁을 거절하지 않을 확률도 올라가는 것이다.
"그럼, 혜연아.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
난 살짝 불안하다는 표정을 날 바라보고 있는 혜연이에게 진지한 눈빛을 건넸다.
"지금 최초공개 기능을 사용해서 영상 하나만 올려줄 수 있어?"
"그렇게 어려운 부탁은 아닌데. 어떤 영상을 올려야 되는데…? 나 제품 홍보 같은 건 별로 안 하고 싶거든."
설마 얘, 지금 내가 공짜 광고라도 맡기려는 줄 아는 건가? 미친, 사람을 뭐로 보는 거야."
"아니, 광고 시키는 거 아니야. 내가 올려 달라는 영상은 너 20살 때 영상이야."
혜연이는 이제 기겁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뭐…? 갑자기 채널에 내 4년 전 영상을 왜 올려 미친놈아!!! 광고 부탁하는 것 보다 그게 더 이상해!!!"
아, 순간 너무 어이가 없어서 생각이 짧아졌다. 시발, 4년 전 영상을 대뜸 올려달라는 게 정상적인 부탁은 절대 아니구나.
설득하려면 설득도 가능하겠지만, 귀찮다. 말 길어지는 것보다 조종해서 내 마음대로 다루고 기억을 지워버리는 게 낫지.
역시, 댓글 명령을 사용하는 게 편하단 말이야.
내가 스마트폰을 꺼내 혜연이 뉴투브 채널에 들어가 댓글 명령을 작성하려는데.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킨 혜연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후우… 그래서 그걸로 뭘 하려는 건데."
"자세히 말해주긴 힘들고, 내가 이번에 MCN에 취업했거든. 확인할 게 있어서 그래."
"알겠어."
응…? 그렇게 간단하게 설득이 된다고?
내가 만지던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멍한 표정으로 혜연이를 쳐다보자. 그녀는 민망하다는 듯 맥주 캔을 입으로 가져가며 말을 이었다.
"뭐, 니가 하는 건데. 이유가 다 있겠지. 그냥 나 20살 때 동영상 하나 찾아서 최초공개로 업로드 하면 된다는 거지? 시간은 어떻게 해?"
"5분 뒤로 부탁해. 얼른 확인할 수 있게."
결국 혜연이를 설득 시킨 건 대화도 조종도 아닌 10년간 쌓여온 우정과 믿음이었다.
내게 그런 커다란 믿음을 가지고 있는 니가, 지금 내 마음속에 그런 자신을 따먹을 생각밖에 없다는 걸 알아채면 어떤 감정을 느낄까?
뭐, 저번에 따먹었던 걸 생각하면 생각보다 좋아할 수도 있겠군.
내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노트북을 만지는 혜연이를 흐뭇하게 쳐다보고 있자. 그녀는 민망하다는 듯 손을 더욱더 다급하게 움직였다.
"어떤 영상으로 올리면 돼? 그냥 4년 전 영상 아무거나?"
"니가 무조건 나와야 돼. 그리고 집에서 촬영한 영상이면 좋겠어."
"진짜 까다롭네."
"굳이 찾지 말고, 너 인별에 업로드 해놓은 그 영상으로 올려줘. 그게 마음에 드니깐?"
"응? 내 인별에 그런 영상이 있어?"
"있어. 확인해봐."
혜연이는 미간을 찌푸리며 영상을 찾기 시작했고, 이내 내가 말한 영상을 찾아냈다.
"야…. 꼭 이걸 올려야 돼? 진짜 나 존나 쪽팔려서 죽을지도 몰라."
영상 속 혜연이는 집에서 책상에 스마트폰을 세워놓고, 앉은 채로 귀여운 음악에 맞춰 귀여운 손짓을 하며 춤을 추고 있었다.
키야…. 영상 속 앳된 혜연이도 그렇고 저 분위기도 그렇고 진짜 4 전년 감성이 차고 넘치네.
"응. 그 영상으로 최초공개 걸어서 업로드 해줘."
"하아……. 미친!"
인상을 잔뜩 쓰고 고개를 끄덕인 혜연이는 다시 노트북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내가 내 흑역사를 내 뉴투브에 직접 올리게 될 줄이야……."
"미안해. 부탁 좀 하자."
"그나저나, 시온이 너, 취업한 거 때문에 요새 바빠서 얼굴도 안 보였던 거야?"
"뭐, 비슷하지."
"그래도 가끔 연락이라도 좀 해. 너무 안 보이니깐, 걱정되잖아."
"그래. 미안해. 넌 잘 지냈냐?"
"나야 뭐, 잘 지냈지. 근데 갑자기 취업은 어쩌다 하게 된 거야?"
"흐음……. 낙하산?"
거짓말은 아니다. 내 메이드가 MCN 대표거든.
"또, 또 미친 소리 하고 있네. 얘기하기 싫음 말어라."
아니, 진짜 낙하산 맞거든? 하지만, 미친놈 취급을 받고 싶진 않기 때문에 말을 아낀다. 저렇게 시키는 대로 잘해주고 있는데. 굳이 쓸데없는 말을 해서 상황을 망칠 필요는 없겠지.
"자! 다 됐어."
"고마워. 굳이 계속 올려놓을 필요는 없으니깐, 내가 확인할 거 다 하면 삭제해도 괜찮아."
"근데. 옛날 영상 보니깐, 기분이 새롭긴 하다. 저 옛날 집에 살 때도 재밌었는데. 지금은 엄마 아빠도 이사해서 못 가지만……."
혜연이는 최초공개 업로드를 걸어놓은 영상을 스마트폰으로 다시금 보며 살짝 미소 짓고 있었다.
참 내, 조금 전에는 흑역사니, 뭐니. 떠들고 심지어 쪽팔려서 죽을지도 모른다고 해놓고 너무 흐뭇하게 보고 있는 거 아니냐?
뭐, 내가 봐도 영상 속 20살 혜연이는 흐뭇하고 귀엽게 바라볼 수밖에 없긴 했다.
"재밌긴 했었지. 특히 20살 때였으니 더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도 있어."
"그러니깐~ 진짜 그리운 것 같애."
남들은 그리워만 할 수 있는 과거의 순간으로 날 지금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뭐, 따져보자면 돌아가는 것보단 진입한다고 하는 게 맞겠지만, 말이야.
물론. 실패할 가능성도 분명 있다.
이다혜의 최초공개 중인 영상 속으로 들어갔던 건 고작 며칠 전일 뿐이었다. 지금 내가 들어가려는 영상 속을 무려 4년 전 비교할 수도 없는 수치이긴 하다.
하지만, 성공한다면 정말 그만큼 엄청난 능력이라는 증거가 되겠지.
그렇게 혜연이와 간단한 옛날얘기를 하며 수다를 떨고 있으니 어느새 5분이 지났고 최초공개 영상이 시작됐다.
난데없이 짧은 영상이 최초공개로 업로드되자 혜연이의 뉴투브 채널 구독자들의 당황스러운 채팅들이 올라왔다.
`?????`
`이거 뭐임?`
`귀요미 ㅅㅂ 존나 고전이넼ㅋㅋㅋㅋ 흑역사냐?`
`애초에 영상 제목이 흑역사네 ㅋㅋㅋ 근데 왜 직접 올리지`
확실히 얘도 구독자가 꽤 있으니 바로 채팅창에 인원이 차는구나. 그래도 확실히 이다혜만큼은 아니네.
"아… 씨, 진짜 쪽팔려!!!"
"내가 맛있는 거 맥여줄게."
"너, 진짜 약속 꼭 지켜라……."
"그래. 고맙다."
자, 그럼 이제 내 차례가 왔다.
난 영상 속에 보이는 앳된 혜연이를 보며 슈퍼챗으로 후원할 금액을 설정했다.
30,000원이면 30,000초 시간으로 환산하면 8시간이 넘는다. 그리고, 고마운 마음도 있으니 이 정도는 후원해줘야겠다.
어차피 채팅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 난 금액만 설정해서 슈퍼챗을 보냈고, 혜연이를 잠시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뜬 순간.
혜연이가 4년 전 살던 아파트 거실에 와 있었다.
해가 있는 걸 보니 아직 낮이었다. 그러나 점심이 한참 지난 시간인 듯 불 꺼진 거실은 어스름한 느낌을 줬고, 이러한 분위기는 묘하게 따스한, 그리고 친숙한 감정을 내게 전해줬다.
진짜 고향에 온 느낌이네.
난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날짜를 확인했고, 날짜는 4년 전을 표시하고 있었다.
미친, 이게 진짜 성공하다니. 몸소 겪고 있으면서도 믿기지가 않는다.
이번엔 스톱워치를 맞춰놓지 않고, 스마트폰 알람을 8시간 후에 울리도록 맞춰놨다.
우선 천천히 주변을 둘러볼까?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부엌 쪽으로 걸어가는데. 닫혀 있는 문이 열리며 익숙하면서도 낯선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 너 언제 왔어?"
20살의 앳된 혜연이가 방문을 빼꼼 열어 날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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