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 썸녀 친구가 나 왜 좋아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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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은이 업로드 걸어놓은 영상이 최초공개 되기까지 5분이 남아있고, 난 영상 속에 들어가 무얼 할지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준비 중이다.
뭐, 솔직히 지금까지 겪었던 걸 생각하면 준비 같은 거 없이 대충 들어갔다. 대충 나와도 상관없을 것 같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그동안 영상 속으로 들어갔던 시간은 나름대로 짧다고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대부분 몇 시간이거나 몇 십 분 정도였으니 말이야.
하지만, 지금 서하은이 최초공개로 업로드 하는 영상 속에는 슈퍼챗으로 후원 가능한 최대 금액과 최대 시간을 맞춰서 들어갈 예정이다.
슈퍼챗으로 후원 가능한 최대 금액은 500,000원. 새로운 능력의 규칙을 따라 다르게 표현하자면 500,000초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걸 환산하면 5일 18시간 53분 20초. 하지만, 서하은이 업로드할 영상의 시점은 2일 전, 아무리 길게 쳐줘봤자 3일 전이다.
시간이 긴 만큼 여러 가지를 확인하고 실험할 수 있겠지만, 가장 궁금한 건 이거다.
만약 영상 속에서 내가 현실의 시간을 넘어버린다면?
뭐, 그걸 알아낼 방법은 역시 내가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겠지.
그나저나, 500,000원이라는 큰돈을 후원하는 게 처음이라 기분이 묘하긴 하다. 어쨌든 내가 이렇게 금전적 여유로운 생활을 하게 된 건 얼마 안 됐으니 말이야.
그래도 돈이 아깝거나 그런 건 전혀 없다. 솔직히 이제와서는 그렇게 큰돈도 아닐뿐더러 애초에 서하은 덕분에 벌게 된 돈이고, 서하은이 내게 복종하는 이상 서하은 돈도 전부 내 돈일 뿐이다.
흐음, 그렇게 생각하니까 애초에 후원이라고 부르기도 이상하네.
어쨌든, 서하은에게 얼마를 후원하든 전혀 아까운 건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어차피 영상 속에서 현실의 시간을 넘으려면 그만큼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니까.
대충 이런 생각들을 하며 시선을 돌리니 머리를 넘기며 조신하게 파스타를 먹고 있는 서하은이 보였다.
확실히 여러모로 복덩이란 말이지.
이번 영상 속에서는 서하은이나 데리고 다녀야겠다. 업로드된 영상 속으로 들어가 현실 시간을 따라잡는 데만 적어도 이틀 이상 걸릴 것이고, 그 긴 시간을 혼자 보내면 꽤나 쓸쓸할 게 분명하니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게 좋겠지.
내 마음대로 깽판을 쳐도 그만인 가상세계에서 굳이 심심할 필요는 없잖아?
뭐, 다른 여자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머리를 너무 많이 써서 그런가 별다른 설명이나 조종 없이 데리고 다닐 수 있는 서하은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좀 쉬고 싶다.
나름대로 휴가 같은 느낌인 거지.
스마트폰을 바라보니 서하은이 업로드한 영상의 최초공개가 1분 남짓 남아있었다.
슬슬 슈퍼챗을 보낼 준비를 해야겠네.
만약 내가 이번 영상 속에서 현실의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면 지금 시간을 기준으로 최소 이틀은 미래를 볼 수 있다. 새로운 능력에도 여러 가지 조건이 있었던 걸 생각하면 무조건 성공할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우선 직접 겪어보는 수밖에 없지.
그러니 지금, 현재의 날짜와 시간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영상 속으로 들어가면 내가 진입했던 현실의 시간 같은 건 전혀 알려주지 않으니 내 머릿속에 확실하게 각인 시켜놓는 수밖에.
어느새 업로드된 영상은 최초공개를 시작하고 있었고, 스마트폰 화면 속으로 내가 2박 3일간 지낸 익숙한 풍경과 내 옆에서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는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난 서하은을 슬쩍 쳐다봤고, 서하은은 그런 날 바라보며 배시시 웃었다.
확실히 서하은은 실물이 더 예쁜 것 같단 말이지. 심지어 지금은 그냥 자다가 일어난 상태잖아?
뭐, 지금 그런 건 딱히 중요하지 않지. 영상 속에서 보자.
나는 지금, 현재의 날짜와 시간을 머릿속으로 되뇌며 슈퍼챗으로 500,000원을 후원했다.
"아, 씨팔. 돌아온 거야?"
열심히 밥을 먹던 서하은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응…? 갑자기 왜 그래. 시온아?"
"별일 아니야."
아, 머리가 지끈거리네.
후우……. 본론부터 얘기하자면 영상 속에서 미래를 겪는 건 실패했다.
영상 속으로 들어간 뒤 여름휴가 파티고, 뭐고, 서하은과 미친 듯이 놀러 다녔다. 평소에는 바빠서 없어서 못 갔던 곳들도 가보고, 맛있는 음식점들도 찾아다니고, 나름대로 힐링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사실상 돈만 존나 쓰고 다니긴 했는데. 이곳이 현실에는 영향을 줄 수 없는 영상 속 세계라 생각하니 도저히 돈을 펑펑 안 쓸 수가 없었다.
현실에서도 이미 돈이야 많긴 하지만, 나는 꽁돈이 생기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그리고, 기분 탓이긴 하지만 묘하게 안 쓰면 사라지는 돈 같은 느낌이란 말이지…….
너무 여기저기 대놓고 돌아다닌 탓에 둘째 날 서하은과 열애설이 나서 조금 피곤하긴 했지만, 어차피 현실도 아니고, 딱히 상관은 없었다.
묘하게 설레하는 서하은의 표정이 너무 귀엽기도 했고.
진짜 문제는 영상 속에서 현실의 시간을 따라잡으니 곧바로 현실로 튕겨져 나왔다는 것이다.
난 조금 전까지. 호텔 루프 탑에 있는 썬 베드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보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 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영상 속으로 들어왔던 현실의 시간이 찾아온 순간 난 곧바로 지금 내가 있는 호텔 방으로 돌아온 것이다.
결국, 영상 속에서 미래는 볼 수 없다는 뜻이군.
슈퍼챗으로 500,000원을 후원했으니 내가 영상 속에 있을 수 있던 시간은 5일 18시간 53분 20초, 그러나 내가 이번에 실제로 영상 속에서 보낸 시간은 고작 이틀이 조금 넘는다.
씨이발, 3일 치 손해 봤네…….
그래도 서하은에게 후원했으니 돈이 크게 아까운 것도 없고, 나름대로 휴가처럼 잘 쉬고 놀다 와서 크게 나쁘진 않다.
또, 얻어낸 정보가 하나 있는데. 영상 속에는 그 시간대에 존재해야 할 또 다른 '내'가 없다는 것이다.
슈퍼챗을 쏘며 영상 속에 들어가자마자 이 시간쯤이면 또 다른 내가 주방에서 라면을 먹고 있다는 것이 떠올랐고, 곧바로 그곳으로 향했지만, 내 기억 속에 또 다른 '내'가 있어야 할 장소엔 빈 테이블뿐이었다.
그 뒤로 풀빌라를 이 잡듯이 뒤졌지만, 또 다른 '나'를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재밌는 점은 내가 쓰던 방에 내 짐과 차 키는 그대로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는 건 내가 영상 속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또 다른 '내'가 분명히 존재했다는 뜻인데. 내가 이쪽 세계로 진입하자 중복되는 걸 막기 위해 사라졌다는 뜻인가? 뭐,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일단 이 정도로 예측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라는 존재가 사라져있자 처음에는 꽤나 당황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고 오히려 이게 더 잘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만약 한 세계에 두 명의 내가 존재하고 있다면, 그건 분명히 여러 문제를 만들었을 것이다. 한 사람에게서 나올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동선들이 생길 것이고, 내 주변 지인들은 짧은 시간 내에 두 명의 나를 만나게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뭐, 이런 사소한 일들도 생각 이상으로 피곤하긴 했겠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를 고르라면 역시 내가 '나'를 마주치는 경우겠지.
이러한 문제들에서 자유롭고 안전하게 됐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잘된 일이 맞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던 중 최초공개 중인 영상이 재생되던 내 스마트폰에서 내가 후원한 500,000원짜리 슈퍼챗 알림이 나타났다.
……그래도 거기서 시간 이틀이나 보냈는데. 실패한 건 역시 아쉽네. 씨발, 뭐 별 수 있냐? 이렇게 멘탈 나가 있어 봐야 득 될 것도 없다. 아직 영상이 최초공개 중일 때 다시 실험해야 한다.
일단 이번에 영상 속에서 이틀 동안 생각했던 게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선 그중 하나는 새로운 능력의 대상 지정 기준이 무엇인지다.
지금까지 새로운 능력을 사용한 대상은 전부 뉴투브 채널 주인이며 내 지인이었고, 여자였다.
그러면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영상에 출연한 모르는 사람과 남자한테도 능력이 사용이 가능한지 확인하는 것이겠지.
딱 타이밍 좋게 최초공개 중인 영상에 남자 한 명이 나타나 있었고, 난 그가 화면에 나와 있는 순간 슈퍼챗으로 100,000원 후원했다.
실패할 수도 있긴 하지만 조금 전 말한 것처럼 서하은에게 후원하는 것이니 돈이 아까울 것도 전혀 없고, 이왕 성공해서 들어가게 된다면 많은 정보를 얻어야 하는 지금 내 상황에서는 시간이 짧은 것보단 긴 게 좋다.
뭐, 결국은 실패한 것 같지만, 눈을 깜박여도 난 영상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고, 호텔 소파에 앉아 있었다.
심지어 내가 후원한 슈퍼챗 알림은 늘 영상 속에서 현실로 돌아온 뒤 확인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영상 속에 들어간 적도 없는 내게 슈퍼챗 알림이 보이고 있다.
흐음……. 그렇다는 건 역시 댓글 명령의 대상 지정 메커니즘하고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네.
댓글 명령으로 사람을 조종하는 건 뉴투브 채널 주인이 아니어도 영상에 출연하고, 내가 성욕을 느끼는 여성이라면 누구든지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이 기준에 맞춰서 다시 슈퍼챗으로 100,000원을 후원해봐야겠어.
서하은은 본인의 채널에 슈퍼챗이 꽤나 터지고 있었지만, 내가 슈퍼챗을 잔뜩 쏠 거라는 얘기를 조금 전에 미리 해놨기 때문에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물론 내 능력에 관해선 전혀 설명하지 않았다.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지. 그런 설명 없어도 서하은이 날 수상하게 생각할 일은 없으니까.
그래도 궁금하긴 할 테니 나중에 기회 되면 말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비밀의 공유자가 생기는 게 내가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야.
그렇게 서하은의 최초공개 영상을 보며 대상을 정하고 있는데. 드디어 딱 내가 생각한 조건에 맞는 여자가 나타났다.
일단 전혀 모르는 여자다. 풀빌라에서 보냈던 시간이 2박 3일이니 대부분 얼굴이 눈에 익어 아예 초면인 사람을 고르는 게 힘들었는데. 이 여자는 분명 내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두 번 째 조건은 뉴투브 채널 주인이 아닌 건데. 이 영상이 업로드된 뉴투브 채널 주인은 서하은이니 이건 말할 필요도 없지.
난 초면인 그녀를 바라보며 슈퍼챗으로 다시 100,000원을 후원했다.
눈을 깜박인 순간 난 다시 2박 3일간 지냈던 풀빌라로 돌아와 있었고, 내 눈앞엔 슈퍼챗을 쏘며 대상으로 정했던 여자가 있었다.
역시, 대상을 지정하는 건 댓글 명령하고 같은 메커니즘이었네. 이러한 조건이라면 충분히 폭넓게 활용할 수 있겠어.
그나저나, 대상으로 정했던 여자는 실물을 보게 되니 생각보다 더 어리고 미인이었다.
쌍꺼풀이 짙게 있지만, 얼굴은 여우상에 가까웠다. 옅은 갈색의 잔머리가 정리되지 않은 올림머리는 그런 그녀의 인상과 더욱더 잘 어울렸고, 몸에 딱 달라붙는 밝은 파란 색 골지 반팔티와 청바지를 입어 몸매가 꽤나 잘 드러나 있었다.
몸매는 굉장히 마른 슬렌더 계열이고, 가슴이 큰 편은 아니지만, 골반은 확실히 넓네.
나도 모르게 그녀를 관찰하며 너무 빤히 쳐다보자 그녀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내게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정신없이 보고 있었네. 일단 차 키랑 지갑을 챙기러 내 방으로 가자.
그렇게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나려는데. 날 바라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혹시, 리나랑 썸 타시는 분 아니에요?"
뭐지?
미간을 찌푸리며 뒤를 바라보니 그녀가 싱긋 웃고 있었다.
"그쪽은 누구신데요?"
"저 리나 친구예요. 전 오빠 얘기 많이 들었는데……."
그래, 니가 리나 친구인 건 알겠어. 근데 왜 날 보고 얼굴을 붉히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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