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 썸녀 친구가 나 왜 좋아함? (2)
* * *
저번 진입에서는 서하은이랑 이틀 내내 워낙 먹고 놀기만 했던지라 이번에 영상 속으로 진입하면 정말 제대로 정보를 모을 생각이었다.
분명 그럴 생각이었는데…….
"아, 좀 가라!!!"
"오빠 진짜 저 몰라요?"
자신의 이름을 예진이라 밝힌 리나의 친구는 나를 계속해서 졸졸 쫓아오고 있다.
심지어 음흉한 미소를 띠고 말이다.
"모른다니까!!!"
진심으로 모른다. 아니,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지. 애초에 초면인 여자를 골라서 대상으로 영상 속에 진입한 건데. 내가 알고 있을 리가 없잖아.
나도 모르게 조금 윽박지르듯 말하자 예진이는 다소 놀란 듯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히잉……. 저 그래도 리나보다 유명한 편인데."
"대체 무슨 기준으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난 너 모른다고."
"헐~ 썸녀라고 지금 편드는 거예요?"
시무룩하던 예진이는 다시 싱긋 웃기 시작했고, 그 표정은 아무리 봐도 날 놀리기 위함이었다.
후우……. 어차피 영상 속인 데 그냥 꿀밤이나 한 대 존나 새게 갈기고 여기서 빠져나갈까. 풀빌라에서는 딱히 모을 정보도 없으니 말이야.
진짜 꿀밤을 후려칠 마음의 준비까지 했는데. 안 그래도 슬렌더 체형이라 빼빼 마른 예진이의 몸을 보니 한 대 쥐어박고 싶던 욕구가 많이 사라졌다.
날 놀리려는 목적이긴 해도 웃고 있는 얼굴이 예뻐서 장난으로라도 때리긴 힘드네.
내가 인상을 쓰며 자신을 계속해서 노려보자 예진이는 폴짝 뛰어 내 옆에 나란히 섰다.
"화난 거 아니죠? 혹시 저 누군지 안 궁금해요?"
"관심 없으니까 가라."
"치이……. 엄청 까칠하네……."
입술을 삐죽 내민 예진이는 드디어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이제야 다른 데로 가려나? 그러게 왜 자꾸 쫓아와가지고, 사람을 귀찮게 구는 거야.
예진이가 드디어 나가떨어졌다고 생각한 나는 속도를 높여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일단 풀빌라에서 나가자. 여기서는 더 이상 마땅히 할 게 없어.
"오…! 생각보다 몸이 튼튼하네요."
"뭐하냐?"
내 팔뚝을 열심히 더듬으며 주무르는 무언가를 느끼고 고개를 돌리니 예진이가 내 팔뚝을 붙잡고 있었다.
"헤헤, 너무 빨리 걷길래……. 좀 천천히 가요."
이쯤 되니까 황당하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것도 안 떠오르네.
"야. 너 본론만 말해. 왜 자꾸 쫓아오는데."
"그, 그냥 대화 좀 하고 싶어서 그래요……."
내 단호한 말투에 예진이는 살짝 당황한 듯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그리고, 애초에 이 여자애의 태도는 아무리 봐도 대화를 하고 싶은 사람이 아닌데?
표정, 말투, 몸짓. 대충 봐도 이건 뭔가 속셈이 있는 느낌이란 말이지.
일단 얘기를 조금 나눠볼까?
"그럼 대화만 하던가 갈 길 가는 사람 팔을 막 붙잡아서 만지고 지금 뭐 하는 거야."
"억울하면 오빠도 만지던가요!"
씨발, 대화가 안 통하네.
예진이는 짓궂은 표정으로 날 올려다봤고, 난 예진이의 이런 당당함에 벙찐 얼굴을 해버렸다.
진짜 여러모로 어이가 없다. 어떻게 영상 속으로 들어오자마자 이런 미친 애를 만난 거지?
아, 내가 애를 대상으로 지정해서 영상 속으로 들어왔으니 다 내 탓이구나. 누굴 원망할 게 아니다.
후우……. 그나저나, 내 기억이 맞다면 이 근처에 리나가 있을 텐데. 이러다 리나가 보면 괜히 분위기가 이상해질 수도 있다.
바로 옆에서 보면 모르겠지만, 멀리서 보면 예진이와 내가 꽤나 사이 좋은 모습으로 팔짱을 낀 채 걷는 것처럼 보일 테니 말이야.
아, 아니지. 리나가 보는 게 무슨 상관이냐. 어차피 여긴 현실도 아닌데. 이 건방진 여자애한테 진짜 막 나가는 게 뭔지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난 손을 뻗어 예진이의 엉덩이를 콱 잡고 주물렀다.
"꺄아…!!!"
"뭐, 억울하면 만지라며."
예진이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침을 꼴깍 삼키며 날 올려다보고 있었고, 난 이런 상황에도 계속 진득하게 예진이의 엉덩이를 주물럭거리고 있었다.
"아, 아니. 나는 팔뚝 만지라는 거였는데……."
그래. 이 표정이다. 예진이는 조금 전 나를 처음 봤을 때도 딱 이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볼에 홍조를 띠며 묘하게 부끄러워하는 듯한 이 표정.
확실히 매력 있고, 귀여운 얼굴이었다.
"그렇게 말한 적 없잖아. 그리고, 니가 먼저 내 몸에 손댄 거야."
난 계속해서 예진이의 엉덩이를 주물렀고, 생각보다 부드러운 청바지의 질감과 마른 몸에 비해 넓은 골반을 가져 풍만한 예진이의 엉덩이의 촉감을 동시에 기분 좋게 즐기고 있었다.
예진이는 이제 날 쳐다보기도 민망했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귀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고, 주변에서 작게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지자 자신의 엉덩이를 주무르던 내 손을 거칠게 쳐냈다.
"이제 그만 좀 만져요! 사람들이 보면 어떡해……."
…? 그 말뜻은 사람들이 보는 거 아니면 실컷 만져도 상관없다는 거냐? 애는 진짜 정신 상태가 어떻게 돼 먹은 거지?
일단 여기서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다. 현실이 아니라 크게 상관없긴 하지만, 이 장소에 있는 사람들과 여러 관계를 맺고 있는 이상, 쓸데없는 구설수에 오를 필요는 없다.
아무리 영상 속이어도 사실 귀찮아지는 건 싫기 때문이다. 거의 연인 관계에 가까운 여자의 친구 엉덩이를 주무르고 있는 걸 누군가 본다면 분명 귀찮아질게 뻔하니 말이야.
어쨌든, 슈퍼챗으로 100,000원을 후원하며 영상 속으로 들어왔고, 이걸 환산하면 1일 3시간 46분 40초다.
나름 적지 않은 시간이니만큼 피할 수 있는 귀찮은 일들은 피하는 게 좋겠지.
그러려면 일단 눈앞에 있는 이 여자애부터 해결해야 한다.
"너 솔직히 얘기해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비밀인데요……."
하! 비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미안한데 난 너 같은 여자애들한테는 내가 듣고 싶으면 뭐든지 들을 수 있거든?
댓글 명령까지 사용할 생각은 딱히 없었는데. 어쩔 수 없겠네. 정 비밀이어서 알려줄 수 없다면 조종해서 입을 여는 수밖에.
일단 너도 뉴투버니까, 여기 와 있는 거지? 그럼 뉴투브에 이 여자애 이름을 검색하면 그냥 나오겠구만.
난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뉴투브에 검색을 시작했고, 혹시나 예진이가 스마트폰 화면을 보지 못하도록 예진이를 정면으로 마주 봤다.
예진이라는 이름을 검색하니 예상대로 많은 영상이 나타났다. 여러 종류의 영상들이 있었지만, 한 가지 종류의 영상이 가장 많았다.
흐음, 뭐지. 대부분 아이돌 직캠이 나오네. 자기가 리나보다 유명하다더니. 아이돌이었던 거야?
근데 아무리 봐도 누군지 모르겠는데. 스마트폰 화면 속도 예진이도 그렇고, 내 눈앞에 있는 예진이도 그렇고, 진짜 정말로 처음 보는 얼굴이다. 유명하다는 거 구라 아니야?
어쨌든, 그렇게 검색하여 나온 직캠 영상들의 썸네일을 확인하던 중 얼굴이 확실하게 나온 썸네일이 있어 정면에 서 있는 예진이와 비교해보니 분명 동일 인물이 맞았고, 예진이는 그런 나를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긴, 생각해보니 리나도 은퇴하긴 했지만, 아이돌이었지. 그런 리나와 친구라고 주장하는 눈앞에 이 여자애가 아이돌인 걸 보면 리나와 친구라는 게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뭐, 궁금한 게 있으면 앞으로 직접 질문해서 확인하면 되겠지.
난 예진이의 얼굴이 확인된 직캠 영상에 들어가 댓글 명령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나와 손을 잡으며 내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한다.`
댓글 명령을 작성한 뒤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놓고 예진이를 바라보니 예진이는 곧장 내 손을 부드럽게 붙잡았다.
"어, 뭐지…?"
"후우, 이제 더 이상 따질 기운도 없다.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이나 해줘. 너 나한테 계속 이러는 이유가 뭐냐고."
난 내 손을 붙잡은 예진이의 손을 바라보며 능청스럽게 어이가 없다는 듯 연기를 했고, 예진이는 그런 내 반응에 더욱더 당황스러워 보였지만, 이내 입을 열었다.
"진짜 얘기해도 돼요…?"
반응을 보니 댓글 명령은 제대로 통한 것 같네.
예진이는 부끄럽고 민망하다는 표정으로 내 눈을 피하고 있었다.
역시, 무슨 이유가 있을 줄 알았어. 리나가 날 떠보라고 시킨 건가? 아니야. 리나가 그런 치졸한 성격은 아니란 말이지.
그럼 대체 뭘까. 우선 들어보자.
난 예진이에게 신뢰가 넘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고, 예진이는 말하기를 망설이는 듯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이내 입을 열었다.
"저…… 이런 거 좋아하거든요……."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대체? 뭘 좋아한다는 거지? 친구 남자한테 이렇게 존나 꼬리치는 거?
"미안한데. 무슨 소리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예진이는 손을 꼼지락거리며 내 얼굴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제가 이런 얘기 진짜 안 하는데……. 오빠는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서 얘기하는 거예요……."
내가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고…? 내가 너한테 한 건 짜증만 존나게 내다 엉덩이 만진 것밖에 없는데?
"그래. 알겠으니까, 그게 뭔 얘기인데."
"리나나 다른 사람들한테는 꼭 비밀로 해주실 수 있죠…?"
"응."
예진이는 고개를 살짝 들고 눈을 귀엽게 치켜뜨며 날 바라봤다.
"저…… 친구의 남자가 좋아요……."
그러니까, 그냥 친구 남자친구랑 자는 거 좋아하는 싸이코라는 뜻이잖아? 그래서 대뜸 자기 엉덩이를 주물러댄 나를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고 표현했구나.
크흠, 얘도 진짜 어지간한 또라이네.
일단 몸매도 얼굴도 뭐 하나 빠지는 것도 없으니까, 한 번 따먹을 가치는 충분히 있겠네. 저런 이상한 사상을 가진 여자의 보지 맛은 어쩔지 궁금하기도 하고.
"나 지금 여기서 나갈 건데. 같이 갈래?"
내게 자신의 비밀을 밝힌 뒤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하던 예진이는 내 말을 듣고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렇게 부끄러워 할 게 있냐? 대놓고 친구 남자 꼬시려고 하던 년이.
뭐, 그래도 이렇게 들통난 건 처음일테니. 니 입장에서도 일단은 여기서 벗어나는 게 좋겠지.
일단 근처 호텔에 데려가서 한 발 빼야겠다.
난 예진이의 손을 붙잡아 걷기 시작했다. 예진이는 그런 날 홍조를 띠며 설레는 눈빛으로 바라봤고, 난 그 시선을 싱긋 웃는 미소로 받아냈다.
오늘 넌 너보다 끔찍한 사상을 가진 남자를 만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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