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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투브속 그녀들을 내 마음대로-111화 (111/273)

〈 111화 〉 오월 (2)

* * *

"어……. 그건 좀 힘들지 않을까요…?"

"왜? 너 그런 거 좋아하잖아."

내 갑작스러운 부탁에 꽤나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던 예진이는 이제 어이가 없어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 문제가 아니거든요?"

"멤버의 남자랑 자는 취향은 없는 거야?"

"크흠, 살짝 두근거리긴 하는데……. 아니! 애초에 그런 걸 떠나서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본인이 오월 언니를 꼬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예요?"

"그건 니가 신경 쓸 게 아니고, 넌 오월을 나한테 소개만 해주면 돼."

예진이는 내 알 수 없는 당당함에 가슴이 답답하다는 듯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오빠, 지금 뭔가 오해하고 있는 거 같은데. 오월이라는 사람은 누구를 소개 받고, 좋은 감정이 생기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답답한 건 나도 마찬가지다. 난 그딴 의견이 통용되는 사람이 아니야.

"후우……. 예진아. 길게 얘기하지 말자. 일단 지금 너 말은 오월이 시간이 없다거나, 먼 장소에 있다거나, 그런 이유로 소개해 줄 수 없다는 게 아니라. 단순히 니 의견 때문에 소개해 줄 수 없다는 거지?"

예진이는 상쾌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딱, 그 말이에요."

난 살짝 고개를 숙이고 골똘히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예진이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내가 무슨 상실감이라도 느끼는 줄 알았는지 다정한 말투로 위로를 건넸다.

"오빠는 괜찮은 사람이 맞아요. 나 오빠랑은 진심으로 연애하고 싶을 정도니까, 근데 오월 언니한테는 그런 게 전부 다 의미가 없어요. 오히려 오빠를 싫어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처음에는 날 위로하던 예진이의 다정한 말투는 이야기가 끝날 때 즈음엔 내가 그런 여자를 탐낸다는 게 너무 기가 차서 어이가 없다는 말투로 바뀌어 있었다.

아니, 그렇게까지 대단하고 까탈스러운 여자야? 이쯤 되니깐, 더 궁금해지네. 정말 범접할 수 없는 그런 여자라 저런 말을 하는 거야? 아니면, 소문처럼 싸가지가 존나 없어서 날 걱정해주는 거야?

뭐던 간에 내가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겠지. 뭐, 끔찍하게 상처를 받거나 못 볼 꼴을 당하면 어때? 어차피 여긴 현실이 아닌 영상 속인 데.

일단 막 질러보자고.

그나저나, 현직 아이돌이 연애를 하고 싶을 정도로 나를 마음에 들어 한다니. 세상 진짜 오래 살고 볼 일이네.

"너, 근데 아이돌이 연애 같은 거 해도 되냐?"

"당연히 안되죠. 그래서 체크인 할 때도 전 밑에서 기다렸잖아요."

예진이는 민망하다는 듯 배시시 웃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호텔에 체크인 할 때도 예진이는 지하 주차장 차 안에서 기다리다 방이 배정되자 곧장 지하 주차장에서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호텔 방이 있는 층으로 올라왔다.

그래. 아무리 아이돌이어도 그렇지. 왜 저렇게 얼굴을 꼼꼼 싸매고 오나 했는데. 남자와 호텔에 가는 걸 누군가 목격이라도 한다면 그건 심각한 문제지.

하물며 연애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냥 적당한 립서비스 였나보구만. 뭐, 그래도 기분은 좋네.

일단 중요한 것부터 먼저 해결해야지.

"오월 소개 시켜주는 건 일단 나중에 얘기하고, 그럼 내 질문 하나만 대답해줘."

예진이의 표정이 다시 굳어가기 시작했다.

"아, 나중에 얘기해도 소용없다고요. 질문은 뭔데요."

"너 오늘 쉬는 날이라고 했고, 오월이랑 같은 숙소를 쓴다고 했잖아. 그럼 오월은 지금 숙소에서 쉬고 있는 거야?"

"아마 그럴 거예요. 언니는 스케쥴 없는 날은 대부분 숙소에서 보내거든요."

예진이는 날 수상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대답하긴 했지만, 나름대로 확신에 찬 말투로 대답했다.

일단 단둘이 쓰는 숙소에 지금 오월이 있는 건 확실하겠군. 문제는 예진이가 절대로 날 오월에게 소개 시켜줄 생각이 없다는 것인데.

역시,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댓글 명령이지.

"그럼 소개 얘기를 다시 해보자."

난 질색하는 예진이를 바라보며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호텔을 벗어난 나는 예진이를 태우고 오월과 예진이가 함께 지내고 있다는 숙소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

여기 지하 주차장은 널널해서 차 세우기 편하고 좋네. 나중에 여기로 이사와도 나쁘지 않겠는데?

그나저나, 벌써 여름 휴가지에서 세 번이나 차를 몰고 올라왔다.

첫 번째는 현실에서, 두 번째는 서하은과, 세 번째는 지금이다.

시발, 슬슬 똑같은 길 운전하는 것도 지겹네…….

물론, 드라이빙 어시스턴트 옵션이 있어서 나름대로 편하게 올라왔다. 고속주행에서 이 옵션의 편의성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마치 자율주행에 가까운…… 아니다.

이런 이상한 소리 할 때가 아니라 예진이의 표정이 너무 안 좋아졌다.

휴게소에서 내가 사다 준 간식거리를 먹을 때만 해도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입 안을 가득 채우던 예진이는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점점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이제는 내게 심적 불안을 직접 표현하기 시작했다.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어……. 여기가 어디라고, 언니가 날 분명 죽일 거야……."

예진이는 조수석 창문에 머리를 콩콩 부딪히며 마치 주문처럼 혼잣말을 되뇌고 있었고, 난 그런 예진이를 재미있게 바라봤다.

"오늘 길 내내 말했잖아. 내가 알아서 잘 해결할 테니까, 아무 걱정 하지 말라고."

고개를 천천히 돌려 날 바라본 예진이는 모든 걸 포기했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소개 시켜주긴 할 거예요. 근데 전 이제 죽었어요……."

댓글 명령으로 예진이의 마음을 조종해 오월을 내게 소개해 줄 수 밖에 없도록 만들긴 했지만, 예진이가 느낄 걱정은 미쳐 해결할 생각을 못 했다.

아니, 그럴 생각을 못 하는 게 당연하지. 대체 오월이 어떤 인간이길래. 단순히 소개해 주는 것 가지고, 저렇게까지 걱정하는 거야?

"저는 바로 도망갈 거니깐, 나머지는 오빠가 알아서 해결해요."

"그래. 알겠어."

난 불안해하는 예진이에게 싱긋 웃어 보였다.

그나저나, 아이돌 숙소라길래. 뭐, 대단한 거라도 있나 했더니. 그냥 평범한 아파트잖아?

오는 길에 예진이와 대화를 나눠보니 숙소를 생각보다 자주 옮겨 다닌다고 한다. 아마도 워낙 유명인들이니 한 공간에서 오래 지냈을 때 생기는 문제들을 방지하려는 것이겠지.

심지어 지금 숙소도 새로 구한 지 며칠 되지 않은 곳이라 날 데려갈 수 있는 거지. 기존에 사용했던 숙소였다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한다.

나와 예진이가 이곳에서 함께 집으로 들어가는 걸 누군가 목격한다면 저번 영상 속으로 진입했을 때 서하은과 열애설이 났던 것 이상으로 상황이 피곤해지겠지.

물론, 난 내일이면 현실로 돌아갈 생각이니 크게 상관은 없지만.

심지어 예진이도 누가 목격하든 말든 그런 건 크게 상관없다는 태도로 조수석 문을 활짝 열고 차에서 내렸다.

오월이 자기한테 지랄할 거 외에는 아무것도 걱정이 안 되나 보구만. 뭐, 그래도 손님이 찾아온 건데 그렇게 크게 뭐라 하겠어? 대충 같은 팀 멤버 언니로서 따끔하게 철없는 동생 혼내는 정도겠지.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린 나는 터벅터벅 힘없이 걸어가는 예진이를 따라갔다.

저렇게 대놓고 가도 괜찮은 건가 싶었지만, 뭐, 나름대로 얼굴도 가리고 있고, 지하 주차장에 단 한 명에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전혀 문제 될 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주차장이 이렇게 주차된 차도 몇 없이 텅텅 비어있는 걸 보면 아직 분양도 제대로 안 끝난 아파트인 것 같네.

그나저나, 이런 평범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도 꽤 많은 CCTV가 설치되어 있구나. 가볍게 주변을 살펴보는 내 눈에도 적지 않은 수에 카메라 렌즈가 보였다.

현실이었다면 절대로 이렇게 나를 대놓고 노출한 채 움직일 수 없었겠지. 내가 지금 오월에게 찾아가 그녀에게 할 행동도 절대 평화로운 것들은 아니니깐.

그러나 여긴 현실이 아니고, 내게 망설일 이유도 없다.

난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예진이와 함께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현관문을 조심스럽게 연 예진이는 고개를 살짝 밀어 넣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언니 집에 있어…?"

"그게 들리겠냐."

"가만히 있어요…!"

예진이는 다급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고, 난 그냥 현관문을 확 잡아당겨 열어버렸다.

"꺄악…!"

살짝 열린 현관문에 몸을 기대고 있던 예진이는 갑작스럽게 문이 열리자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현관으로 들어갔고, 난 그런 예진이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미쳤어요…?"

"어차피 소개 시켜주고 도망간다며. 할 거면 빨리 좀 하자."

예진이는 토끼 눈을 뜨고 날 노려보고 있었고, 역시 내 예상대로 불청객이 만들어 내는 이 소리를 집주인은 놓치지 않았다.

현관에서 예진이와 내가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커지자 거실 안쪽에서 방문이 열리며 한 여성이 나타났다.

"한예진, 너 뭐야."

꿀꺽.

이 침 삼키는 소리가 나한테서 난 건지. 예진이 한테서 난 건지 구별이 안 된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목소리와 그에 어울리는 새하얀 피부, 실제로 마주한 오월의 외모는 정말 현실감이 없었다.

아, 맞다. 여기 현실 아니지. 근데 저게 현실에도 똑같이 있다는 거 아니야?

진짜 여신이라고 부를 만 하구나.

작은 얼굴에 오밀조밀하게 어울려 있는 눈, 코, 입은 어느 하나 빼어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무슨 게임 속 완벽한 캐릭터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네.

"집에 남자를 데려와? 너 미쳤니?"

"어, 언니……."

예진이는 이제 아예 내 등 뒤에 숨어서 내 팔 사이로 오월을 훔쳐보고 있었다.

생각 이상으로 분위기가 안 좋잖아…? 예진이가 그렇게 걱정하던 게 이유가 있었네. 저건 애초에 날 손님으로 보는 눈치가 절대 아니다.

점점 싸늘하게 흘러가는 상황 속에서 오월의 외모를 바라보며 넋을 놓고 있었던 내게 어느 정도 침착함이 돌아왔고, 그 상태로 오월을 바라보자 조금 전에는 못 봤던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집에서 편하게 쉬고 있었던 사람답게 수면 바지를 위아래 세트로 입은 채, 앞머리에 핀을 꽂아 옆으로 넘겨 이마를 드러내고 있는 오월은 분명 편안하고, 평범해 보이는 복장이었지만, 저 외모 하나로 엄청나게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심지어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녀는 어떠한 메이크업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쉬고 있었으니 이건 당연한 거겠지. 그럼에도 오월의 뚜렷한 이목구비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난 결국 또다시 오월을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게 됐고, 내 시선을 느낀 오월은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쓰며 내 뒤에 숨어있는 예진이를 바라봤다.

"흐음……. 한예진, 너 대답 안 하니?"

"새, 새로운 매니저야!!! 인사해!!!"

내 뒤에 숨어있던 예진이는 내 허리를 힘껏 밀어내며 현관문을 열어 도망쳐버렸고, 난 순식간에 앞으로 밀려나며 거실로 들어가게 됐다.

아악!!! 씨팔, 내 허리!!! 다치면 어쩌려고!!!

다행히 크게 아프진 않았다.

난 상체를 숙인 채 무릎을 짚고 허리를 매만지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문제는 고개를 들자마자 눈앞에서 컴퓨터 그래픽 같은 여자가 날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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