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 수아 데이트 (1)
* * *
"그래서, 캠핑은 어땠어?"
밤새워 놀고, 잠자리도 불편했을 텐데. 리나와 나는 돌아오는 길에도 즐겁게 수다를 떨면서 왔다.
그렇게 나름 즐겁게 운전하며 리나의 집 근처에 도착하니 문뜩 그녀의 감상이 궁금해졌다.
"너무 재밌었어! 다음에 또 오고 싶어질 정도야."
해맑게 대답한 리나는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오빠가 너무 변태같이 굴지만 않으면……."
내가 실없이 웃자 리나도 부드럽게 웃기 시작했다.
"고려해볼게."
"참내……. 근데 진짜 피곤하긴 하다. 얼른 집가서 씻고 자야겠어."
하긴, 딱 봐도 그럴 거 같았다.
오면서도 하품을 얼마나 해대는지, 그렇게 리나가 하품을 할 때면 덩달아 나도 하품이 나와 운전하다 죽는 줄 알았다.
"그래, 푹 자. 쉴 땐 또 잘 쉬어야지."
생각해보면 리나 입장에선 피곤할 수밖에 없다.
난생처음 글램핑을 했으니 밖에서 자는 것도 처음이었을 테고, 밤새 술 먹고 놀고, 심지어 외간 남자와 처음으로 잠을 같이 잤다.
이런 것들 외에도 나랑 뜨겁게 보냈던 시간을 생각한다면, 진이 빠질 법도 하지.
리나네 집 앞에 도착해, 차를 세웠다.
"오빠, 완전 고생했어……. 운전하고, 캠핑장도 알아보고, 진짜 오빠 덕분에 너무 잘 놀았어."
"나도 리나 니 덕분에 재밌게 잘 놀았어."
수상하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리나.
"……뭔가 말이 음흉한데……."
"그냥 별 생각 없이 너랑 비슷하게 말 한 거거든?"
"풉…!"
리나와 나는 서로 실소를 터트리며 차에서 내렸고, 난 트렁크를 열어 리나의 짐을 꺼내 건네줬다.
"무거우면 들어다 줄까?"
"됐거든요. 집에 엄마 있어."
"크흠, 농담이었어."
괜히 엄숙하게 되네……. 그나저나, 집에 어머니가 안 계셨으면 들어가도 됐던 거냐?
나중에 각 잡히면 한번 시도해봐야겠다.
당황스러워하는 날 보며 방긋방긋 웃는 리나에게 짐이 가득한 캔버스 백을 건네줬다.
"넌, 뭐 출발할 때보다 짐이 더 많아진 거 같냐?"
"오빠가 남은 거 다 내 가방에 쑤셔 박아놔서 그런 거잖아!!!"
"그러니깐, 작작 골랐어야지 인마."
"씨이……."
"얼른 올라가 집에 어머니 계신다며, 기다리시겠다."
"응, 아 맞다. 오빠도 집가서 잘 거지?"
"……아마 그렇지 않을까?"
"그럼 자고 일어나서 저녁 같이 먹을까? 내가 오빠네 근처로 갈게."
데이트 신청받는 거 같아서 좋긴 한데……. 오늘 저녁엔 약속이 있다.
"일 때문에 저녁은 시간이 안 될 거 같아. 미안해."
리나는 실망했다는 듯 입술을 삐쭉 내밀더니 이내 얼굴을 폈다.
"아냐 괜찮아! 다음에 만나면 되지! 오빠 고생했으니깐,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그래, 그때도 내가 데리러 올 테니까, 괜히 힘들게 안 와도 돼."
"오빠도 맨날 나 만나러 오는데 뭘……."
"난 차 타고 오잖아 인마."
"히히… 알게써!"
어깨를 움츠리며 귀엽게 대답하는 리나. 난 그런 리나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집에 들어가면 까톡해."
"바로 앞인데…?"
"그래도 해."
"오빠도 도착하면 까톡해!"
"그래."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리나와 짧게 입을 맞췄다.
난 가볍게 `쪽`을 생각했는데, 리나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입술을 부드럽게 머금는 리나 덕에 꽤나 긴 시간 동안 우리는 입을 맞췄다.
들키면 안 되는 장난을 치고 있는 기분이네.
아, 생각해보니깐, 얘네 집에 어머니 계신다고 했지? 집 앞에서 이러고 있어도 되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문뜩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근데, 리나야. 너 어머니한테는 뭐라 얘기하고 외박한 거야?"
"나? 그냥 캠핑 갔다 온다고 했지."
"아니……. 그거야 알겠는데, 누구랑 간다고 했냐고."
별생각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하던 리나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알아서 뭐 하게…!"
…? 이건 대체 무슨 반응이야.
"아니, 웬만하면 어머니들은 외박 허락을 쉽게 안 해주니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우리 집은 안 그래……."
"아, 그래?"
뭐, 본인이 어련히 알아서 잘했겠지. 쿨한 부모들도 있으니 말이야.
내가 관심 없어졌다는 듯 트렁크 정리를 시작하자 리나가 내 뒤통수에 말을 툭 던졌다.
"남자친구랑 간다 했어."
씨팔, 침이 사레에 들릴 뻔했다. 뭐 이렇게 훅 들어와?
고개를 돌아보니 고개를 숙인 채, 마치 허락을 구하는 듯한 눈빛으로 날 살짝 올려다보는 리나가 있었다.
난 괜히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어머니가 뭐라 안 하셔?"
"응."
"오……. 되게 열린 스타일이신가 봐."
"우리 엄마는 원래 그래."
귀가 실시간으로 뜨거워지며 벌게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거 리나가 눈치채기 전에 얼른 집으로 들여보내야겠다.
트렁크에 따로 놓여져 있던 리나의 파우치를 건네주려는데, 리나가 내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남자친구라 해서 기분 나빴어…?"
"아니, 전혀."
"그럼 앞으로도 그렇게 얘기하고 다녀도 돼?"
"응."
으……. 상황이 너무 민망해서 뜨거워진 귀가 터질 거 같다.
갑자기 리나에게 고백을 받을 줄이야.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지는 거 같다.
씨팔, 이거 영상 속 아니야?
현실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역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영상 속일 리가 없지. 슈퍼챗을 쏜 적이 없는데.
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는 리나는 살짝 끌어안아 이마에 입을 맞췄다.
"얼른 들어가."
"……응. 오빠도 조심히 가."
"그래."
서로 이렇게 작별 인사를 나누고도 꼼짝 하지 않는 리나의 몸을 돌려 어깨를 천천히 밀어내 반쯤 강제로 걷게 했다.
"연락할게."
"……."
리나는 붉어진 얼굴로 쑥스러워 죽겠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공동현관 입구로 들어갔다.
난 그런 리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벙쪄버렸다.
진짜 너무 사랑스럽다.
운전하며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나는 꽤나 당황한 상태였다.
20살짜리 여자애한테 고백받은 걸 되새길수록 계속해서 자지가 빳빳하게 발기했기 때문이다.
이거 시발, 왜 이러는 거야.
리나에게 내가 좋다는 말도 들어봤고, 내가 마음에 든다는 말을 들었어도 이런 일은 없었다.
남자친구라고 부르고 싶다는 말은 와닿는 수준이 다른 건가?
뭐 어쨌든, 지금 내 모양새가 존나 이상하긴 해도 리나를 대하는 마음은 전부 거짓 없는 진심이다.
거짓말은 하나 친 게 있다면, 오늘 저녁은 일 때문에 만나지 못한다고 한 것 정도?
사실 휴게소에서 리나가 화장실에 갔을 때 수아와 까톡을 했고, 지금 출장지에서 올라가고 있으니 도착하면 바로 수아네 집으로 간다고 얘기를 끝내놨다.
리나와 저녁을 먹는 것도, 수아와 만나는 것도 둘 다 모두 좋긴 하지만 섹스를 못 한 아쉬움은 아직도 가득하다.
한 발 뺄 필요가 있단 말이지.
이런 타이밍에 수아에게 알아서 연락이 와줬으니 오히려 잘 됐다.
우선 이 꼴로 수아를 만나러 갈 수는 없으니, 샤워를 하고 말끔한 옷으로 갈아입기 위해 호텔에 돌아왔다.
호텔 방 문을 열고 들어가니 현관에 아직도 서하은의 신발이 있었다.
현관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니 깔끔하게 머리를 묶은 채 본인에게는 한참 큰 사이즈인 내 옷을 입고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만지고 있는 서하은이 보였다.
"시온이 왔어?"
"엥? 누나 아직도 있었어?"
"……나 얼른 갈까…?"
"아니, 그런 뜻 아니야. 회사 일 보느라 바쁜 줄 알았거든. 그래서 먼저 갔을 줄 알았어."
굳어졌던 서하은의 표정이 다시 풀어졌다.
"여기 있으니깐, 마음이 편해서……. 집 가기도 귀찮고, 그냥 일 보고 있었어. 헤헤……. 노트북 마음대로 쓴 건 미안해."
"아니야, 나도 오랜만에 집에서 반겨주는 사람이 있으니깐, 너무 좋다."
"히히……. 맞다, 밥 먹었어 시온아? 같이 나가서 먹고 올까?"
"아, 나 약속 있어서 씻고 옷 갈아입고 바로 나가봐야 해. 미안해."
"괜찮아! 미안해하지 마!"
"고마워."
역시, 서하은이 최고다.
그나저나, 이번에 글램핑 다녀올 수 있게 잘 챙겨줘서 다녀오면 꼭 이뻐해 주려 했는데, 타이밍이 이렇게 안 맞게 됐네.
서하은에게 한 발 빼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는데 말이야.
뭐, 수아를 만나러 가야 하니 어쩔 수 없지. 따져보면 수아와 한 약속이 선약이기도 하니까.
난 집중해서 마우스를 움직이고 있는 서하은에게 다가가 볼에 입을 맞췄다.
"다녀올게, 계속 여기 있어 줘."
"시온이, 숯 냄새 엄청난다…!"
"그치? 얼른 씻어야겠다."
"……내가 씻겨 줄까…?"
"흐음…… 그래."
이건 거절하기 쉽지 않지.
수아를 만나서 한 발 뺄 생각이었는데, 자지까지 너무 꼼꼼하게 씻겨 주는 서하은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손길 덕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은 서하은에게 대딸을 시켜서 한 발 뺐다.
어제, 오늘 두 여자에게 연달아 대딸을 받다니 진짜 훌륭한 인생이다.
중간에 너무 꼴려서 그냥 서하은의 보지에 자지를 쑤셔 박을까도 했는데, 날 기다리고 있을 수아를 생각해서 가까스로 참아낼 수 있었다.
섹스를 하면 짧게는 못 끝낸단 말이야.
그렇게 서하은의 손에 진득한 정액을 잔뜩 뿜어낸 뒤 깔끔하게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왔다.
나름대로 정신도 맑아졌고 말이야.
대딸을 넘어 머리까지 정성스럽게 드라이해주는 서하은에 손길을 충분히 즐긴 뒤 그녀와 가벼운 입맞춤으로 인사를 한 뒤 호텔 방을 빠져나왔다.
머리를 내가 직접 세팅한 게 아니라 조금 낯설긴 한데, 이게 또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니라 그냥 나왔다.
이럴 때 새로운 것도 경험해보는 거지 뭐.
그렇게 준비를 전부 끝내고 차를 몰아 수아네 집 앞에 도착했는데, 집 안에서 날 기다리고 있어야 할 수아가 밖에 나와 있었다.
분위기를 보니 집에서 잠깐 나온 느낌은 아니었다.
이제는 익숙한 느낌의 검은색.
수아는 몸에 라인을 타이트하게 잡아주는 검정 뷔스티에 안으로 흰 셔츠를 받쳐 입고 있었고, 가운데 세로로 4개에 단추가 달려있는 H라인 블랙 미니스커트는 수아의 뽀얀 허벅지를 잔뜩 드러내고 있을 만큼 길이가 짧았다.
애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난 수아가 서 있는 곳 근처에 주차를 했고, 한눈에 내 차를 알아본 수아는 내 옆으로 다가왔다.
"수아 씨, 왜 밖에 있어요?"
창문을 내려 수아를 바라보니 사뭇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밖에서 데이트하고 싶어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