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화 〉 오월한테 호감 얻을 수 있냐? (2)
* * *
오월은 여전히 내 자지를 손으로 누른 채 휘둥그레 뜬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당황했으면 저렇게 망부석처럼 굳어버린 거야?
"저기… 요? 손 좀 치워 주실래요?"
"아…! 죄송합니다!!!"
워낙 싸가지가 없는 여자라 살짝 걱정했는데, 그래도 사과는 할 줄 아는 인간이구나.
오월은 화들짝 놀라며 자지를 누르고 있던 본인의 손을 치웠고, 민망한 듯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그나저나, 시발 생각보다 바지가 너무 젖었네.
갑작스럽게 난리가 나자 몇 안 되는 사람들의 시선이 오월과 내게 집중됐다.
이런 상황은 아마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오월에게 가장 피하고 싶었던 것이겠지.
우리 둘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저 여자가 가만히 앉아 있던 남자한테 커피 엎은 거 같은데?"
"요새 애들은 앞도 안 보고 걷는다니까."
오월도 나와 같은 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네. 뭐, 바지 젖은 거 빼고는 괜찮네요."
자지가 조금 아프긴 하다.
"……죄송합니다. 제가 세탁비… 아니, 입장료까지 다 물어드릴게요……."
내 시선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비스듬히 푸욱 숙이고 있는 오월은 죄인처럼 양손을 모은 채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영상 속에서 만났을 때랑은 이미지가 꽤나 다른데?
하긴 뭐, 그때랑은 상황이 다르니 무작정 비교하긴 좀 그렇긴 하다.
지금 이 상황은 누가 봐도 오월이 잘못한 상황이니까.
물론, 내가 전부 설계한 상황이긴 하다.
어쨌든 댓글 명령으로 내가 원하던 상황을 만드는 건 성공했다.
"그쪽은 괜찮아요?"
"네, 네…?"
"넘어질 뻔하셨잖아요."
"아…! 전 괜찮아요."
"뭐, 한눈팔고 있었던 내 잘못도 있으니 그냥 넘어가죠."
오월은 내 말을 듣고 다시 눈을 휘둥그레 뜨며 날 바라봤다.
"아니에요…! 제 잘못이 맞는데요. 그, 그 번호라도 주세요. 제가 꼭 변상할게요."
"괜찮아요. 별일도 아닌데요. 차에 바지 하나 더 있으니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아, 아니… 그래도…!"
오월은 너무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과 몸짓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예쁘긴 존나 예쁘네.
딱히 꾸민 것도 없는데. 대놓고 연예인이라는 티가 팍팍 나는 것 같다.
뭐, 본인은 지금 정신없어서 그런 거 신경 쓸 여력도 없어 보이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은 더 이상 나와 오월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커피를 엎지른 탓에 직원이 우울한 표정으로 청소 도구를 챙겨오고 있었다.
흐음, 재수 없으면 저 사람이 오월을 알아볼 수도 있겠는데…….
난 바닥에 굴러다니는 오월의 텀블러를 주워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진짜 괜찮으니까, 가셔도 돼요. 바지야 갈아입으면 되고, 젖은 바지는 빨면 되니까요."
"……."
그냥 가라는데도 가슴이 답답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오월.
죄짓고는 못 사는 성격인가? 진짜 끈질기네.
그나마 다행인 건 오월도 다가오고 있는 아쿠아리움 직원을 눈치챘는지 내가 건네는 텀블러를 받아서 들었다.
"폰 주세요."
"네?"
"빨리요…!"
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오월에게 스마트폰을 건네줬고, 오월은 재빠르게 내 스마트폰에 번호를 입력했다.
"제 번호예요. 꼭 연락하세요."
텀블러를 챙긴 오월은 다가오고 있는 직원 쪽으로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걸어갔다.
난 내 스마트폰에 적혀 있는 오월의 번호와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이게 갑자기 무슨 상황이야…?
걸어가던 오월은 자신이 저지른 일을 청소하러 오는 직원과 마주치자 허리를 푹 숙여가며 사과의 뜻을 전달했다.
재밌는 점은 안 그래도 얼굴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걷던 그녀가 허리까지 숙여가며 사과를 하니 거의 머리카락이 땅에 닿을 지경이었다.
대걸레를 들고 오던 직원은 당황한 듯 작게 손사래를 쳤지만, 오월은 그대로 쭈욱 걸어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생각보다 예의가 바르네.
우선 민폐 끼치는 걸 존나게 싫어하는 성격이라는 건 확실하게 알겠다.
이렇게 번호까지 주고 간 걸 보면 분명하지.
물론, 이 번호가 오월의 번호가 아닐 가능성도 충분하다.
매니저의 번호라던가 회사 관계자의 번호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 쳐도 좋은 결과인 건 분명하다.
애초에 내 목표는 오월의 기억 속에 나를 심어두는 것이었고, 저 번호로 연락할 생각도 전혀 없으니 말이야.
일단 나도 얼른 여기서 나가야겠다.
시발 바지 존나게 축축하네.
젖은 바지를 입고 운전하며 호텔로 돌아가고 있다.
오월에게는 차에 바지가 하나 더 있다고 했지만, 사실 구라였거든
짐을 호텔에 다 풀고 왔는데 차에 바지가 있을 리가 없지.
오월을 그냥 돌려보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애초에 목적은 딱 이 정도 인연을 만드는 거였으니까.
바지 이거 시간이 지날수록 더 축축해지는 거 같네.
그래도 결과가 꽤나 만족스러운 덕분에 이 축축한 감촉마저 즐기면서 호텔로 돌아갈 수 있다.
그나저나, 바지가 중간에 껴 있긴 했지만, 현실에서 오월이 내 자지를 만지게 될 줄이야.
뭐, 사실 만졌다기보단 눌렀다고 표현하는 게 맞긴 하지만.
그때 상황을 다시 떠올리니 아랫도리에 피가 쏠리는 것 같다.
흐음…… 부를 여자도 없고, 오늘 저녁엔 댓글 명령으로 모르는 여자나 한 명 따먹어야겠네.
호텔에 돌아가면 내일 하루 정도는 푹 쉴 생각이다.
다음에 오월을 만날 날짜는 이틀 뒤니까.
이틀 후, 오전.
식물원에서 막연하게 걷고 있다.
화려하고, 밝고, 향기 좋고, 뭐 나쁜 건 없는데.
내가 이런 쪽에는 취향이 없어서 도저히 구경하는 맛이 없다.
그나마 좋은 점이 있다면 사람이 많지 않아 산책하는 맛은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이 있다고 해봤자 중간중간 사이좋게 사진을 찍고 있는 커플 정도였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물론 오월은 만나기 위해서다.
사실 오월이 이 식물원에 있는 건 이미 확인했다.
식물원 초입에서 봤던 멀리서 보이는 마스크를 끼고 있는 여자.
이런 곳에서 굳이 마스크를 끼고 있을 여자는 오월밖에 없겠지.
오월을 마주치게 된다 해도 먼저 말을 걸거나 하는 행동을 취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렇게 되면 저번에 노력했던 것들이 전부 물거품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해서 걷다 보면 분명히 오월 쪽에서 먼저 내게 말을 걸어올 거다.
씨팔, 먼저 말을 걸어오긴, 이거 좆된 거 아니야?
한참을 걸었는데, 처음 들어왔을 때를 제외하면 오월 비슷한 사람도 보질 못했다.
아, 진짜 멘탈 터지네. 분명히 이 식물원에 있긴 한데…….
인상을 팍 쓰며 걷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쳤다.
돌아보니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맞네요."
오월은 주변에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선글라스를 벗었다.
"기다렸는데, 왜 연락 안 주셨어요."
저 눈만 봐도 오월이 분명하다.
흐음, 일단 연기를 좀 해볼까.
"누구…? 아, 혹시 아쿠아리움…?"
마스크 탓에 눈만 보이지만, 오월은 꽤나 부끄러워 보였다.
"그때 정말 죄송했어요……."
어색한 상황에 잠시 정적이 흘렀고, 오월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연락 계속 기다렸거든요……. 꼭 변상해드리고 싶어서요."
"연락 안 한 건 죄송합니다. 변상받고 그 정도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솔직히 별일 아니잖아요?"
오월은 싱긋 웃는 날 바라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얘기하시면 할 말 없긴 한데……."
"사과도 충분히 해주셨고, 이제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정말 죄송했습니다……."
사과를 하면서도 말투나 표정에서 차가운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이 정도면 영상 속에서 봤을 때보단 많이 부드러운 편이다.
슬슬 상황을 정리해야겠네.
"근데 진짜 신기하네요. 여기서 또 만날 줄은 몰랐는데."
"아…!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마세요……. 정말 우연히 만난 거예요."
우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내가 존나 무식하게 걸어 다닌 덕분에 만난 거지.
"알아요."
난 작게 웃었고, 오월은 멋쩍은 듯 손을 움직였다.
"꽃 좋아하시나 봐요? 되게 열심히 구경하시더라고요."
말하는 거보니 아마 오월은 계속 내 뒤쪽에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깐, 난 오월을 못 보고 오월은 날 봤겠지.
"사실 잘 몰라요. 그래도 보는 맛은 있네요."
내 솔직한 대답을 듣고 오월은 내게 작은 눈웃음을 보여줬고, 작은 미소였지만 난 처음으로 오월의 웃음을 봤다.
"그럼 여행하러 오신 거예요?"
"뭐, 그렇죠. 휴가 비슷한 느낌으로 왔어요."
"아…… 휴가, 부럽네요……."
묘하게 아련한 느낌을 주는 오월의 눈빛.
이쯤에서 슬슬 질러야겠다.
"오월 씨도 여행하러 오신 거 아니에요?"
오월은 아쿠아리움에서 내 자지를 깔고 앉았을 때처럼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날 쳐다봤다.
저렇게까지 당황한 얼굴은 오랜만에 보네.
"저 알아보셨어요?"
"네? 저 아쿠아리움에서부터 오월 씨인 거 알고 있었는데요."
"네에?! 어, 어떻게 알았지…?"
나야 뭐, 당연히 너 인 걸 알고 왔으니 모를 수가 없지.
"그냥, 얼굴이 딱 오월 씨던데요."
내 대답에 꽤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오월은 이제 마스크까지 시원하게 내려버렸고,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티가 나요…?"
"그냥 제가 사람 보는 눈썰미가 좋은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진심으로 걱정할 게 없긴 하다. 나니깐 알아본 거지. 굳이 다른 사람이 알아볼 거란 생각이 들진 않는다.
어쨌든 내 작전은 나름대로 성공한 것 같다.
내가 지금 대놓고 오월을 알아보고 있어도 오월은 전혀 날 적대하고 있지 않으니까.
자신의 신분을 알면서도 받은 번호로 연락 한 통 안 했는데, 그런 날 오월이 굳이 수상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애초에 아쿠아리움에서 내게 커피를 엎었던 것도 오월이고, 오늘 식물원에서 내게 먼저 말을 걸어온 것도 오월이다.
오월 입장에서 날 의심할 필요는 없지.
그것도 그렇고 오월은 애초에 내게 호의적일 것이다.
아쿠아리움에서 댓글 명령을 작성할 때 간단하고 작은 명령도 하나 껴 넣어놨거든.
내가 오월을 알아본 순간부터 꽤나 긴 정적이 찾아왔고, 난 여전히 당황스러워 하고 있는 오월과 눈을 마주쳤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난 이제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오월을 바라보며 짧게 인사를 남긴 뒤 등을 돌렸다.
"자, 잠깐만요…!"
오월이 다급하게 내 손목을 붙잡았다.
역시, 예상대로네.
여기서 좀 더 대화를 나누며 놀란 오월을 안심시켜주고 작은 인연을 만들어가는 것이지.
완벽하게 내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
난 다시 뒤돌아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오월을 바라봤고, 나와 다시 눈이 마주친 오월은 흠칫 놀라며 붙잡고 있던 내 손목을 놔주었다.
저렇게 예쁜 얼굴을 마스크 써서 가리고 있었다니, 진짜 낭비 아니냐.
"식사 안 하셨으면 같이 드실래요…?"
어라…? 이런 상황은 예상 못했는데?
"네…?"
"변상은 안 받으셔도 되니깐, 식사 대접이라도 하게 해주세요."
여전히 차가운 얼굴이지만, 그 속에서 은근한 곤란함과 민망함이 피어오른다.
아니, 이 정도까지 바란 건 아닌데…… 상황이 이렇게 잘 풀린다고?
살다 살다 오월한테 같이 밥 먹자는 소리를 듣게 될 줄이야. 도저히 믿기지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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