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화 〉 기습 키스 (1)
* * *
"누구한테 온 까톡이길래 그렇게 인상을 팍 쓰고 답장해요?"
한창 대화를 나누며 와인을 마시던 오월의 표정이 좋지 않다.
확실히 취기가 오르니깐, 표정이 훨씬 다양해지는구나.
"같은 숙소 사용하는 맴버요. 이제 20살인데, 하는 짓 보면 완전 애가 따로 없어요."
대충 설명만 들어도 익숙한 사람이 떠오르는데.
"아, 혹시 그…… 예진?"
오월은 내 입에서 그 이름이 나왔다는 게 의외라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시온 씨 예진이도 알아요? 생각보다 아이돌을 좋아하나 봐요."
"그런 건 아니고, 레이니폴이 워낙 유명하잖아요."
"무슨 당사자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해요…… 그래도 시온 씨가 우리 맴버를 알고 있다니깐, 묘하게 신기하네요. 성격은 아이돌 같은 거 하나도 모를 거 같은데."
너네 맴버를 아는 수준이 끝이 아니다.
난 예진이의 신음 소리가 어떤지, 엉덩이에 점이 있는지, 보지가 얼마나 좁은지까지 전부 다 알고 있으니까.
물론 그건 너도 마찬가지고.
"오월 씨도 제가 한눈에 알아봤잖아요."
내가 실실거리며 대답하자 오월은 민망하다는 듯 같이 웃었다.
"평소엔 그러고 다니면 아무도 못 알아보는데, 진짜 신기했어요."
아마 나도 평범한 사람이라면 못 알아봤을 거다.
대뜸 아쿠아리움에서 특정 연예인을 만날 거라는 생각은 다들 안 하고 다닐 테니 말이야.
하지만, 나는 오월이 이곳에 온다는 걸 알고 미리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 한 번에 알아챌 수 있었지.
"한 번 알아봤으니 앞으로는 아무리 숨겨도 전 오월 씨 바로 알아볼 수 있어요."
"크흠, 고마워해야 하나요?"
조금 전 여사장과 나눴던 대화가 생각나네.
"편하신 대로 하시면 돼요."
난 싱긋 웃으며 오월과 눈을 마주쳤다.
"그래서 우리 무슨 얘기하고 있었죠?"
대화에 너무 집중한 채로 무의식적으로 와인을 마시다 보니 오월과 나 둘 다 꽤나 진하게 취해버렸다.
와인바에서 나온 우리 둘은 은은한 불빛으로 가득한 정원을 걷고 있다.
상쾌하다는 듯 양팔을 활짝 벌린 오월은 나보다 앞서 걸으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아~ 와인 마시면서 이렇게 취해보는 건 처음이에요."
"그러게요. 저도 이런 건 오랜만이네요."
오랜만은 무슨, 와인을 이렇게 각 잡고 먹어본 것도 처음이다.
물론, 예전에 와인을 마셔본 적이 있긴 하지만, 그때 먹었던 와인은 워낙 떫고 맛이 없어서 내게 굉장히 안 좋은 기억을 남아있다.
그 기억 때문에 그 뒤로 와인을 전혀 마시지 않았고, 이번에 오월의 취향을 공부하기 위해 준비했을 뿐 솔직히 오늘 마신 와인도 그다지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렇게 비싼데도 입에 잘 안 맞는 걸 보면 와인 자체가 나랑 안 맞거나, 내 입이 존나 싸구려인 거겠지.
양주는 맛만 좋은데 말이야.
그래도 오월은 속이기 위해 공부한 만큼, 능숙하게 연기했으니 오월은 내 이런 마음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근데 오월 씨, 사장님한테 인사안하고 그냥 가도 괜찮아요?"
앞장서서 걸어가던 오월은 경쾌하게 뒤돌아 날 바라봤다.
"괜찮아요. 어차피 또 볼 텐데."
"어…… 그건 오월 씨고, 저는 사장님을 뵐 일이 없지 않을까요?"
"왜요?"
정말 순수하게 의문만 가득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오월.
크흠, 저런 식으로 나오니깐, 괜히 내가 더 난처한데?
나보고 여기 와서 혼자 여사장을 만나라는 소리는 아닐 테고, 다음에 여기서 우리가 또 만나는 건 당연하다는 거야 뭐야?
이런 생각에 빠져 나도 모르게 난처한 표정을 짓게 됐는지 내 표정을 살피던 오월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와, 술 취해도 새하얗던 얼굴이 쪽팔리니깐, 저렇게 빨개지네.
오월은 뭐라도 해명하고 싶었는지 입술을 달싹거리며 말을 이어가려 했지만, 그게 쉽지 않았는지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효…… 보는 쪽이 더 민망하네.
잔뜩 당황해 있는 오월을 위해 직접 말을 돌려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나저나 오월 씨, 우리 계산도 안 하고 나왔는데 이거 괜찮을 거 맞아요?"
내가 말을 걸자 이때다 싶어 다급하게 대답하는 오월.
"신경 안 쓰셔도 돼요. 그냥 달아두라고 하면…… 아, 아니 오늘 마신 와인이 원래 제 와인이라…… 그게…… 뭐, 대충 그래요."
오월은 횡설수설하며 결국 말끝을 맺는 걸 포기하고 고개를 푹 떨어트렸다. 내게 그 모습이 너무도 낯설고 귀여워 보였다.
평상시에는 보지 못했던 그녀의 다급하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에 괜스레 마음이 간지럽다.
술 취하면 꽤나 마음을 열어주는 스타일이구나. 근데, 그걸 감안 하더라도 평소랑 갭 차이가 너무 큰 거 아니냐?
흔하지 않은 오월의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던 나는 문뜩 떠오른 질문도 있고, 쪽팔려 죽으려 하는 오월을 도와주기 위해 다시 말을 걸었다.
"대충 무슨 뜻인지 이해했어요. 근데 오월 씨 차는 어떡하시게요?"
고개를 든 오월은 양손으로 얼굴에 꽃받침을 만들고 있었다.
"차는 왜요?"
"저야 택시 불러서 가면 될 거 같은데, 오월 씨는 차 가져오셨잖아요. 대리 기사님을 부르든가 해야죠?"
"아, 저는 언니네 집이 근처라 거기서 자고 가려고요. 여기서 금방이에요."
"그럼, 같이 가죠."
"네?"
조금 진정이 된 듯한 오월은 다시 놀란 눈으로 날 바라봤다.
누가 보면 자고 가겠다 한 줄 알겠네.
"모셔다드릴게요. 취기도 올랐고, 시간도 늦었잖아요."
"괜찮은데……."
"아니에요. 오늘 하루종일 오월 씨한테 얻어먹기만 했는데, 이런 거라도 해야죠."
"고마워요."
오월과 함께 어두운 골목길을 걷고 있다.
가로등이 있긴 하지만,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는지 그다지 밝지 않았고, 그 덕에 꽤나 좋은 분위기가 골목에 풍기고 있었다.
이런 감성적인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나도 어지간히 취했나 보네.
이성적인 생각을 굳이 하나 하자면, 사람 하나 없는 조용한 길이라 오월과 나란히 걷기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별생각 없이 고개를 돌려 오월을 바라보니 그녀는 이미 날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근데, 진짜 안 알려줄 거예요?"
"뭐가요?"
"룸에서 저 오기 전에 언니가 무슨 얘기 했는지, 알려줘요."
아, 이 여자도 집착이 심하네. 이걸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냐.
솔직히 뭐, 나쁜 얘기한 것도 아니니 말해줘도 상관없긴 하겠는데, 그래도 오월이 남자를 처음 데려왔다는 둥 그런 얘기는 하지 않는 게 좋겠지.
"진짜 별 얘기 안 했어요. 그냥 오월 씨를 어떻게 생각하냐~ 뭐, 그런 거 물어보셨어요."
오월은 꽤나 긴장된 표정으로 날 올려다봤다.
"그래서 시온 씨는 뭐라고 대답했는데요?"
"따뜻한 사람, 이라고 대답했어요."
나름 칭찬이라고 볼 수 있으니 만족스러운 답을 줬다고 생각했는데, 오월은 뭔가 찝찝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말 그렇게만 생각해요?"
대충 상황을 보니 내가 자신을 조금 더 특별하게 여기고 있다는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 건가?
뭐,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쉽게 대답해주고 싶진 않단 말이지.
재밌는 대답을 생각하기 위해 싱글벙글 웃으며 걷고 있는데, 옆에 나란히 서 있던 오월이 갑자기 시선에서 사라졌다.
"꺅!!!"
오월은 발에 무언가 걸렸는지 앞으로 고꾸라지고 있었다.
난 넘어지는 오월을 향해 다급하게 손을 뻗었다.
길게 뻗은 손은 오월의 부드러운 손을 잡았고, 곧바로 반대 손을 뻗어 오월의 얇은 팔뚝을 붙잡은 뒤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아, 깜짝이야. 괜찮아요?"
"네, 네……."
난 가볍게 오월의 몸을 훑어보며 그녀가 혹시나 다친 곳은 없나 확인했다.
"다친 곳은 없는 거 같아서 다행이네요."
"……보도블럭이 튀어나와 있어서 발에 걸렸어요."
그 여왕님 같던 오월도 술 취하면 이런 실수를 하는구나.
오월의 이런 인간적인 모습을 볼수록 그녀가 더 예뻐지는 것 같다.
"비명 소리듣고 깜짝 놀랐어요. 뭐, 총이라도 맞은 줄 알았네."
"놀리지 마세요……."
귀까지 벌게진 오월은 내 시선을 외면하고 있었지만, 내가 그녀의 손과 팔뚝을 붙잡고 있던 탓에 표정이 아주 잘 보였다.
너무 붙잡고 있으면 좀 그러니깐, 슬슬 놔줘야겠네.
난 꽈악 붙잡고 있던 오월의 팔뚝을 놔주었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참고로 손을 놔준다고 한 적은 없다.
붙잡은 오월의 손을 잡아당기며 걷는 내게 오월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끌려왔다.
오월과 나는 어느새 어두운 골목길에서 풋풋한 연인처럼 어색하게 손을 맞잡고 걷고 있었다.
"손…… 이제 놔주셔도 돼요."
"그러다 또 넘어지면 어떡해요?"
"안 넘어지거든요."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오월은 내 손을 살짝 쥐었다.
으, 심장이 존나 간지러워서 벅벅 긁어버리고 싶다.
오월은 조금 전처럼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진 않았지만, 꽤나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표정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맞잡은 손에서 오월의 심장이 두근거리는 게 느껴지는 것 같다.
절대 무리한 행동은 하지 않으려 했는데, 취기도 단단히 올랐고, 이런 상황까지 벌어지니 나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이 정도면 제가 오월 씨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달됐을까요?"
"……."
오월이 고개를 푹 숙이자 좁은 골목길에 정적이 맴돌았다.
그러나, 정적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네."
그렇게 오월과 어색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손을 잡은 채 목적지 앞까지 도착했다.
나와 오월을 서로 반대되는 손을 맞잡은 채 마주 보고 있었다.
가볍게 인사라도 먼저 하려 했는데, 오월이 입을 열었다.
"내일 또 만날래요?"
이제는 그냥 아예 돌직구를 날리는구나.
뭐, 거절할 이유도 없지.
"네, 좋아요."
오월은 만족스럽다는 듯 작은 미소를 지었고, 그 모습은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내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월은 어쩔 줄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까치발을 들어서 내게 입을 맞췄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나는 눈을 크게 뜨며 코앞에 있는 오월을 바라봤고,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이 내 입술을 통해 너무도 자극적으로 전해졌다.
나도 취했단 말이야. 이런 식으로 굴면 못 참아.
오월의 잘록한 허리를 한쪽 팔로 감싸 안은 뒤 고개를 틀어 입술을 더욱더 밀착시켰다.
내 힘에 밀린 오월이 점점 뒷걸음질 치며 벽에 부딪히기 직전이 됐고, 난 반대 손으로 벽을 짚으며 그녀가 벽에 닿지 않도록 몸을 고정했다.
나와 벽 사이에 완전히 끼어버린 오월.
난 그런 오월의 허리가 휘도록 더욱더 강하게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 탓에 오월은 내 몸에 배를 바짝 붙이며 자연스럽게 고개를 위로 들게 됐고, 그녀는 과격한 내 행동에 질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여전히 나와 입술을 맞대고 있는 오월의 눈빛엔 당황스러움과 흥분이 공존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이제 멈출 수도 없지.
난 눈을 살포시 감으며 혀로 오월의 입술을 핥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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