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화 〉 리나 술 취함 (1)
* * *
스피커 볼륨이 그렇게 높진 않았지만, 회의실에 퍼지는신음 소리는굉장히 이질적이었다.
하령은영상 속에서 들려오는 신음을 듣고 굉장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스마트폰을 화면을 보고 기겁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뭐야 이게!!!"
꽤나꼴릿한배와 다리 사이로 드나드는 자지를 촬영하고 있던 카메라 앵글이 위로 올라가며 쾌락에 젖어 있는하령의얼굴이 화면에 나오고 있었다.
"난 그쪽 섹스 영상이 유출된 거라고 보는데."
벌떡 일어나서 테이블을 붙잡고 있는하령은영상 속자신의 모습을보면서 넋이 나가 있었다.
"이…… 이거, 나 아니야…!"
"그래, 아니라고 하겠지. 근데,이 눈가에있는 작은 점까지 똑같은 건 어떻게 설명할 거야?"
영상을 보던하령은이제 날 노려보기 시작했다.
"나 아니라고 했잖아……."
하령의표정은 상당히 억울해 보였고,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뭐, 그럴 수밖에 없겠지. 정말로 본인은 저런 기억이 없을 테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믿는데?"
"애초에 그쪽이 이상한 짓 한 거 아니야?딥페이크라던가……."
아이고, 아는 것도 많으시네. 근데,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실제로 찍어온 거거든?
"딥페이크라하기엔퀄리티가말이 안 돼. 그리고 당신이랑 내가 문제가 있긴 했지만, 이런 영상까지 만들어낼 이유가 없잖아. 심지어 난 이런 기술도 없어."
"퀄리티고뭐고 내가 아니라고 하잖아!!!"
잔뜩 흥분해서 내게 소리를 지른하령은꽤나혼란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믿는데."
"일단 나도 이 회사 직원이야. 소속뉴투버인생 망칠 생각은 없어."
이 말은 진심이다. 서하은의 돈벌이는 내 돈벌이인데, 그걸 망칠 이유가 전혀 없지.
난 계속 재생되고 있는하령의섹스를 영상을 멈춘 뒤 양손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이런 영상이 메일로 온 이상해결을 해야 돼. 만약, 이 영상 속 여자가 당신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면 내가 책임지고 전부 다 해결해줄게."
"개소리하지 마. 이걸…… 무슨 수로 해결할 건데……."
슬슬멘탈이나가고 있구나. 하긴 뭐,하령입장에선 조작된 게 분명한 영상이 있고, 심지어 의심까지 받고 있으니 맨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겠지.
"내가 평범하지 않은 건 알고 있잖아? 날 만나고 나서 그쪽 몸에 생겼던 이상한 일들…… 뭐, 전부 내가 한 거 맞아."
하령이꽤나놀란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예상하고는 있었겠지만, 이렇게 직접 내 입으로 듣게 되니 당황스럽겠지.
"내가 그 쪽한테 약을 썼든 뭘 했든 난 특별한 사람이 맞고, 지금 당신한테 벌어진 일을 전부 깔끔하게 해결할 자신이 있어."
자신이 있을 수밖에 없지. 내가 직접 찍어온 영상 하나만 삭제하면 전부 해결되는 거니까.
"……너, 지금 하는 소리가 말이 된다고 생각해?"
"믿고 말고는 당신 자유야. 하지만, 당신이 따르고 의지하는 서하은도 날 신뢰하고 있다는 걸 알면 좋겠네."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던하령은오늘 중 가장 혼란스러워 보였다.
솔직히 이렇게 마구잡이로 떠들어대도 되나 걱정스럽긴 하지만, 뭐 여차하면 나한텐 댓글 명령이 있으니깐 괜찮겠지.
기억을 조작해도 되고, 사상을 바꿔버려도 된다.
물론, 그런 상황은 최대한 피하고 싶다.
굳이 이렇게 번거롭게 돌아가는 이유는 최대한하령을즐겁게 괴롭히고 싶기 때문이니까.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부여잡은하령은다시 의자에 주저앉았다.
"나보고 대체 이 말을 어떻게 믿으라는 거야……."
"나에 대해선 서하은한테 직접 확인해. 서하은이…… 아니, 대표님이 날 보증해줄 거야."
하령은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주겠다는 건데?"
"방금 본 영상이 세상 어떠한 곳에도 존재하지 않게 해줄게. 대신, 넌 영상 속 여자가니가아니라는 걸 나한테 확실하게 증명해."
"……정말 나 아니야……."
"그래. 알겠는데, 그런 식으로는 증명이 안 돼."
"나일 수가 없단 말이야…!"
하령의눈가와 귀가 붉어지고 있었다.
"……난, 나는, 애초에 해, 해본 적도…… 없단 말이야……."
고개를 푹 숙이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작게 말하는하령.
나도 알고 있어. 영상 속에서니 처녀를이미 떼고 왔거든.
"그러면 얘기가 쉬워졌네."
"뭐? 무슨……."
"해본 적이 없다며? 그럼 남자인 내게 증명하는 법은 간단하잖아."
하령은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잠시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더니빼액소리를 질렀다.
"너…! 처음부터 그러려고…!"
"마음대로 생각해. 하지만, 가장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건, 이 방법뿐이잖아?"
하령은도저히 분이 삭지 않는다는 듯 날 노려보고 있었다.
"대표님 만나서 얘기하고, 너 스스로 결정해. 연락 기다리고 있을게."
난하령의떨리는 손을 힐끗 바라보며 그녀를 지나친 뒤 회의실 밖으로 나왔다.
뭐, 솔직히 처녀를 확인하는 방법이야 다른 것들도 충분히 있긴 하겠지만,하령도바보가 아닌 이상 내가 원하는 걸 눈치를 챘겠지.
내가하령에게건넨 조건은 증명뿐만이 아니라 처녀를 바치라는 것도 포함이야.
그걸 본인도 알고 있으니 저렇게 화가 잔뜩 난 거겠지.
뭐, 난 차분하게 연락이나 기다릴 생각이다. 이 이상으로 뭘 더 하면 괜히 재미가 없어질 수도 있으니 말이야.
일단 하은이나 기다리면서 좀 쉬어야겠다.
혹시나 두들겨 맞을까 봐존나 긴장해있었네.
서하은의 사무실 소파에 반쯤 누워 핸드폰을 만지고 있다.
혹시나하령이곧바로 서하은을 찾아올까 싶어서 다른 곳에 가 있을까 했는데,멘탈이제대로 나간하령이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냥 왔다.
뭐, 지금은 도저히 얘기할 기분이 아닐 수도 있고, 아무리 서하은하고 친하다 해도 회사에서 그런 대화를 나누기엔 무리라고 느꼈겠지.
서하은에게는 어제부터 미리 언질을 줬었으니 만약하령이당장 서하은을 찾아왔어도 나에 관한 얘기를 잘 해주었을 것이다.
애초에 알아서 잘하는 서하은이니 별다른 언질 없어도 잘 얘기했겠지만.
"시온아, 지루하면 먼저 가도 돼."
모니터를 바라보며 내게 말을 거는 서하은은꽤나바빠 보였다.
"아냐, 지금 딱히 할 것도 없어. 끝나면 같이 갈래."
"흐음……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은데……."
"오래 걸려? 아, 잠깐만."
서하은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리나잖아. 오늘 친구들 만나서 논다 그랬는데, 뭔 일이지?
"어, 여보세요?"
"오빠아!!!"
귀를 때리는 듯한 목소리에 난 화들짝 놀라며 귀에서 스피커를 떨어트렸고, 서하은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왜 그래?"
"흣, 히히……어디야아…?"
스마트폰 넘어 들리는 리나의 목소리를 상당히 취해있었다.
"나 회사에 있지. 넌 어디야?"
"……나아? 나? 나어디냐고오?"
대답 안 해도 어디 있는지 딱 알겠다. 주변에 들리는 시끄러운 목소리와 노랫소리를 보니 안 봐도 술집이네.
"그래, 리나야. 너 어디냐고."
"나취해떠!!!"
환장하겠네.
서하은은 너무도 큰 리나의 목소리를 듣고 실실거리며 웃고 있었다.
"오빠! 바빠?푸흡!"
리나는 말도 안 되는개드립을 치더니혼자 재밌다고 웃고 있었다.
"나 안 바빠, 주소 좀 찍어서 보내봐."
"오빠, 나 데리러 와……."
"그래, 알겠어. 어디 있는지 주소 알려줘."
"흐응…… 여기가……."
스피커에서 잠시 잡소리가 크게 들리더니꽤나익숙한 목소리의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저 리나친군데요. 리나 남자친구분 맞으세요?"
"네. 뭐, 비슷해요."
"꺄아아!!! 야, 들었어?!"
주변에서 여자애들끼리 소리 지르며 난리를 치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넘어왔다.
개판이구만.
그래도 지금 전화를 받은 여자는텐션이꽤 높긴 했지만, 리나만큼 취해있진 않았다.
"제가 지금 그쪽으로 갈 테니까, 위치 좀 설명해 주실래요?"
씨팔, 주소만 지금 몇 번째 물어보는 거야.
"아, 잠시만요!"
전화를 받은 여자는 내게 간단하게 주소를 설명해줬고, 가게 이름을 대충 메모한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나저나, 이 여자애 목소리가존나 익숙하단말이지.
일단 얼른 출발부터 하자.
"누나, 미안해. 나 먼저가야 할거 같아."
"괜찮아. 나 아직 할 일도 많이 남았고, 집 가서 챙겨야 할 것도 있어!"
서하은은 내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후우, 저번에 서하은이 공항까지태우러 와줘서오늘은 내가 운전기사 좀 해주려 했더니 일이 이렇게 돼버리네.
난 미안한 마음에 서하은에게 다가가 가볍게 볼에 입을 맞췄다.
리나의 친구가 알려준 장소는 회사에서 생각보다 가까웠다.
그 덕분에 빠르게도착할수 있었고, 대충 차를 세운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몇 번 방이라고 했더라…… 아, 이쪽이겠네.
벌써술 냄새가나는 거 같은 복도를 지나 리나가 있는룸방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나 그 안에 있는 모든 시선이 내게 집중됐고,룸안엔 예쁘장한여자애들과리나가 있었다.
"오빠아!"
나와 눈이 마주친 리나는 내게 귀엽게 달려와 안겼다.
내 품에 쏙 들어온 채 날 올려다보는 리나는 전화로 들었던목소리만큼이나상당히 취해서 눈이 풀려 있었다.
눈이 풀렸다는 게흐리멍덩한그런 느낌이 아니다.
이건 너무도 야릇한, 관능적인 유혹의 눈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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