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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투브속 그녀들을 내 마음대로-184화 (184/273)

〈 184화 〉 한 지붕 아래 리나와 수아 (8)

* * *

"그거 리나가 수아 씨 챙겨주겠다고 사 온 거예요."

"아 그걸 왜 말해!!!"

빽 소리를 지르는 리나에게 난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왜? 나쁜 말 한 것도 아니잖아."

"아니, 아…! 몰라!!!"

리나는 꽤나 심통이 난 듯 거칠게 몸을 돌려 창 밖을 바라봤다.

나한테 저렇게 온갖 심통은 다 부리고 있지만, 그렇게까지 기분 나빠 보이는 표정은 아니다.

본인도 어느 정도는 티를 내고 싶었겠지.

그나저나, 수아 얘는 왜 이렇게 조용해? 한마디라도 거들 줄 알았더니 아무 말도 없네.

룸미러로 뒷좌석을 바라보니 수아가 봉지에 담긴 크로와상을 하나 꺼내 만지작거리며 볼을 살짝 붉히고 있었다.

"……잘 먹을게."

얘는 반응이 또 왜 이래…?

수아는 꽤나 쑥스러워 보이는 듯한 모습으로 말했고, 그런 수아에게 리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대답했다.

"그러시던지……."

너네 뭐하니?

내가 예상했던 반응이랑 너무 달라서 상당히 당황스럽다.

수아가 리나를 놀리는 분위기로 좀 더 티격태격할 줄 알았는데, 이건 묘하게 훈훈한 분위기잖아…….

뭐, 그렇다고 나쁠 건 전혀 없으니 상관은 없다.

이러나저러나 두 사람이 함께 지낼 수 있을 정도는 친해져야 하니까 말이야.

그나저나, 둘 다 저렇게 민망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얌전히 있으니 진짜 귀여워 죽겠네.

난 두 사람을 보며 꽤나 흐뭇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고, 그 덕에 기분까지 은근히 즐거워졌다.

그렇게 묘하게 어색한 분위기를 느끼며 우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리나야, 너 안 씻어?"

"아, 응…!"

소파에 앉아서 화장도 안 지우고 멍을 때리고 있던 리나를 부르니 화들짝 놀라며 내게 대답했다.

씻으러 간다는 거야, 안 씻겠다는 거야…?

대답 한 번 이상하게 하네.

차에서 어색해하던 모습이 귀엽긴 했는데, 집에 와서 까지 이럴줄은 몰랐네.

심지어 리나뿐만이 아니다. 수아도 정신을 반쯤 놓은 듯한 모습으로 리나와 동선이 겹칠 일 없는 책상에 앉아서 핸드폰만 만지고 있을 뿐이다.

후우…… 안 싸우는 건 좋긴 한데, 그렇게 넋이 나간 사람들처럼 있기를 바란 건 아니었거든?

어떻게 해야지 이 어색한 분위기를 푸는데 좀 도움이 되려나.

흐음, 역시 이럴 땐 같이 술 마시는 게 최고지.

여름휴가 파티 때 리나와 수아가 같은 테이블에 앉은 적이 없어서 완벽하게 장담할 수는 없지만, 어지간해서는 효과가 좋을 거라 생각한다.

뭐, 20살 동갑내기 친구끼리 술 마시는데 딱히 문제가 생길 이유도 없으니까 말이야.

조금 전 대답만 하고 여전히 내 옆에 앉아서 귀엽게 하품을 하고 있는 리나의 허벅지를 톡톡 건드렸다.

"하암…… 왜 또?"

왜 또…? 어이가 없네.

얘가 내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나?

아, 일단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리나야, 할 것도 없는데 술이나 마실래?"

계속해서 멍이나 때리고 있던 리나의 눈이 드디어 초롱초롱해졌다.

"헐, 좋아!"

"그럼, 일단 가서 씻고 와."

"근데, 수아는…?"

"수아는 집에 오자마자 씻었잖아. 못 봤어?"

"아니!!! 그게 아니라 가, 같이… 먹냐고……."

아…… 정신이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네.

"같이 먹어야지. 지금 가서 물어볼게."

"응……."

리나는 묘하게 긴장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크흠, 설마 수아가 싫다고 거절하진 않겠지?

생각해보면 수아가 술을 좋아하는지 어떤지 나도 딱히 잘 모른단 말이야…….

뭐, 가서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지.

리나가 세면도구를 챙겨서 욕실 안으로 들어가자 나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수아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수아는 여전히 정신을 반쯤 놓은 채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고, 핸드폰을 더듬는 손가락은 마치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듯했다.

난 그런 수아를 잠시 바라보며 문을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수아 씨, 바빠요?"

"네?! 아, 아뇨!"

수아가 이렇게 높은 톤으로 대답하는 걸 처음 보는 거 같은데? 심지어 수아는 내 목소리를 듣자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떨어트릴 뻔했다.

아니, 이 정도면 엄청 부드럽게 부른 건데 왜 저렇게까지 화들짝 놀라는 거야…?

수아나 리나나 오늘 진짜 제정신이 아니구만.

새 친구를 사귀는 것과 비슷한 어색함이라 생각하며 되려나…?

어쨌든 이 재미있는 모습들 덕분에 난 실소가 터져 나오려는 걸 참아내며 수아를 바라봤고, 수아는 창피하다는 듯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오늘 술 한잔할까요?"

"어…… 네. 좋아요."

잠시 고민하던 수아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왠지 거절할 거 같진 않더니 역시 내 예상대로네.

내게 대답한 수아는 아직 할 말이 남았는지 입술을 달싹거리다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리나는요?"

"리나는 지금 씻고 있어요."

"아니…… 리나도 술 먹냐고요."

수아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씨발, 나 오늘 대체 왜 이러냐?정신 상태가 안 좋은 건 나도 마찬가지네.

"아…… 네. 리나도 마신대요."

한 번이면 모르겠는데, 두 번 연속으로 이러니깐 쪽팔려서 귀가 뜨거워지네.

난 괜히 말을 돌리려는 듯 수아에게 재빠르게 질문했다.

"어, 수아 씨 안주는 뭐 먹을까요? 저녁 겸해서 초밥 괜찮아요?"

"조금 배부르긴 한데…… 흐음…… 네, 괜찮아요."

집에 와서 계속 넋이 나간 듯한 모습을 하고 있던 수아는 저녁 얘기가 나오자 생기가 살아났다.

확실히 수아도 먹을 거에 진심이란 말이지.

하긴, 뭐 리나도 수아도 이제 20살짜리 여자애들인데, 한창 잘 먹을 때지.

"알겠어요. 리나한테도 물어보고 바로 주문할게요."

"넹."

늘 차갑던 수아의 대답이 묘하게 해맑아진 것 같다.

리나는 씻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니 지금 물어보고 주문하면 시간은 얼추 맞겠네.

좋다하면 넉넉하게 시키고 싫다 하면 씻고 나왔을 때 뭐 하나 더 시켜주지 뭐.

방에서 나온 나는 리나가 씻고 있는 화장실 문을 벌컥 열었다.

"야, 리나야. 초밥 먹을 거야?"

문이 열리자 뜨거운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안에서 알몸의 리나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매끈한 등허리엔 젖은 머리카락이 달라붙어 있었고, 연분홍색 유두가 돋보이는 풍만한 가슴이 물줄기를 받아내고 있었다.

그 밑으로는 잘록한 허리를 지나 봉긋한 엉덩이가…….

"이, 이 미친…!!! 나가!!!!!"

리나가 토끼 눈을 뜬 채 다급하게 가슴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고, 나는 반사적으로 화장실 문을 다시 닫았다.

얘는 오늘 낮에만 나랑 두 번이나 섹스했으면서 왜 저렇게 놀라는 거야?

아니지, 며칠 전까지 처녀였는데 샤워중에 대뜸 남자가 문을 열었으니 놀랄 만도 하다.

크흠, 그래도 그 처녀를 때준 게 난데, 너무 놀라는 거 아니냐?

어쨌든 두 번째 질문을 할 땐 노크한 뒤 문 밖에서 질문을 했고, 노크도 할 줄 모르냐는 타박을 잠시 들은 뒤 초밥을 먹겠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아직 머리가 덜 마른 채 은은하게 기분 좋은 샴푸 향을 뿜어내는 리나와 무표정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수아.

두 사람이 함께 식탁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참 묘하다.

난 조금 전 배달 온 쇼핑백에 든 초밥을 식탁에 내려놨고, 서로 딴짓을 하고 있던 리나와 수아는 할 일이 생기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열심히 배달 포장을 뜯기 시작했다.

저런 모습을 보면 둘이 집안일 때문에 싸울 일은 없을 거 같단 말이지.

작게 실소를 터트린 나는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 식탁에 내려놓은 뒤 부엌 선반에서 잔을 3개 꺼내 자리에 앉았다.

그런 내 모습을 리나가 노려보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능숙해?"

"……이걸 딱히 능숙하다고 할 게 있나? 소주잔이야 눈앞에 딱 보이잖아."

"아닌데, 아무리 봐도 능숙한 게 맞아."

아니, 저렇게 우기니깐 완전 억지인데도 괜히 뜨끔하게 되잖아.

리나는 계속해서 날 수상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아가 말했다.

"시온 오빠가 능숙한 게 아니라, 니가 너무 미숙한 거 아니야?"

"뭐?"

날 노려보던 리나는 이제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수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너, 자꾸 화장실 불 끄려다 실수로 내 방 불 끄잖아. 그건 일부러 하는 게 아니면 완전 바보란 뜻이거든."

"……헷갈리게 붙어있는데 어떡해!!!"

"그래서 내가 표시도 해놨잖아!"

"이왕 표시를 할 거면 화장실이라고 적어두던가! 파란색 스티커 하나만 붙여놓으면 내가 그게 화장실인지 니 방인지 어떻게 아냐?!"

리나와 수아가 본격적으로 투닥거리기 시작했고, 결국 초밥 포장을 뜯는 건 전부 내 일이 돼버렸다.

그래, 그렇게 서로 어색해하지만 말고 차라리 조금 격해도 대화를 나누렴…….

뭐가 됐든 서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참 뿌듯하구나.

애들은 저렇게 친해지는 거지 뭐.

그렇게 테이블 세팅은 전부 끝났고, 난 소주병을 따서 리나와 수아의 잔을 채워주었다.

술을 따르는 내 모습을 본 수아가 괜히 헛기침을 하며 말을 삼키자 리나는 귀를 붉히며 입을 앙다물었다.

둘 다 귀엽네, 진짜.

두 사람의 술잔은 다 채웠고, 이제 내 잔에 술을 따르려는데 리나와 수아가 다급하게 내 손을 붙잡았다.

"오빠 뭐해?"

"제가 따를게요."

내가 무슨 너네 군대 선임이냐…?

꼭 이렇게 20살 짜리 애들이 술자리 예절에 더 집착한다니까.

그래도 챙겨주니 좋긴 하네.

그 와중에도 리나와 수아는 한 손 씩 소주 병을 잡은 채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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