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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투브속 그녀들을 내 마음대로-185화 (185/273)

〈 185화 〉 한 지붕 아래 리나와 수아 (9)

* * *

소주 병을 잡고 서로 노려보던 리나와 수아는 결국 공평하게라는 명목하에 함께 양손으로 병을 붙잡고 내 술잔을 채우는 기묘한 모습을 하게 됐다.

아니…… 시발, 니네가 앞에서 그러고 있으니깐 무슨 의식 같잖아.

어쨌든 술잔은 다 채웠다.

난 리나와 수아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그래도 나름 두 사람이 같이 지내게 된 걸 기념하는 느낌이라 좋네요."

"네, 그렇네요."

"으…… 소름 돋거든?"

리나와 수아는 거의 동시에 대답했고, 리나는 놀란 표정으로 상처받은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수아를 바라봤다.

"그, 그래도…… 오랜만에 술 마, 마시니깐 좋네!!!"

난 어떻게든 상황을 무마시키려는 리나를 바라보며 실소를 터트렸다.

"푸흡…! 무슨 금주 깬 아저씨처럼 말하냐."

"이씨… 몰라…! 얼른 마셔! 짠해!"

그런 리나를 바라보며 수아도 기분이 어느 정도 풀렸는지 작게 미소 짓고 있었다.

"수아 너도 얼른 잔 들어!"

"알겠으니깐, 진정 좀 해."

"뭔 진정이야, 흥분 한 적도 없거든?"

"너 취해서 난리 치면 쫓아낼 거야."

"……그러시던가!"

"너 술 잘 마시긴 해?"

"너보단 잘 마실걸?"

"내가 여름휴가 때 너 술 마시는 거보니깐, 얼마 마시지도 않고 엄청 취하던데……."

"그때 별로 안 취했거든? 그리고 너 그때 내 눈엔 보이지도 않더니 그런 식으로 나 훔쳐보고 있었냐?"

"그럴 리가 있겠니?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고 말하는 거 보면 날 찾았던 건 오히려 너 아니야?"

"크흠…! 뭐래, 테이블에 없으니깐 없었다고 하는 거지! 지가 나 취한 거 먼저 봤다 해놓고! 하, 참! 어이가 없네."

"술 취해서 그렇게 웃기게 걸어 다니면 당연히 사람들 시선을 끄는 거지."

"나, 나 웃기게 걸어 다닌 적 없거든…!!!"

"아닌데? 웃기게 걸어 다니던데? 시온 오빠도 봤죠? 얘 좀비처럼 걸어 다니는 거?"

"너 미쳤냐? 오빠, 내가 좀비처럼 걸어 다녔어?"

가볍게 웃고 있는 수아와 잔뜩 당황한 리나가 다시 티격태격하기 시작했고, 이내 두 사람의 시선이 나한테 집중됐다.

왜 갑자기 나한테 어그로가 끌리냐…?

수아의 여유로운 표정을 딱 봐도 리나를 놀리는 거였다.

저건 진심으로 말싸움하는 표정이 아니지.

그와 반대로 리나는 수아에게 홀딱 넘어가 꽤나 성이 난 상태였다.

뭐라 대답해야 이 상황을 잘 넘길 수 있으려나.

잠시 고민하던 나는 입을 열었다.

"난 몰라, 술이나 먹자."

기집애들 티격태격하는 거에 크게 관심 줄 필요 없다.

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리나와 수아에게 잔을 내밀었고, 우리 셋은 서로 잔을 부딪히며 술자리를 시작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던 술자리지만 생각보다 즐겁게 소주를 마실 수 있었다.

여러가지 재밌는 것들이 많긴 했지만, 우선 가장 재밌는 건 리나와 수아가 연습생 시절 추억을 꺼내며 수다를 떠는 모습을 구경하는 게 상당히 즐거웠다.

"걔가 너한테 그랬다고? 그거 완전 미친년 아니야?"

"응. 리나, 너가 그렇게 말했다던데?"

"뭐라는 거야. 나 그런 거 제일 싫어해!"

술 자리를 시작한 지도 시간이 꽤 흘렀으니 리나와 수아 두 사람 모두 어느정도는 취해 있었고, 특히 리나는 이미 귀엽게 볼을 붉히고 있었다.

대충 분위기를 보니깐, 그래도 수아가 리나보다는 술을 잘 마시는 거 같네.

뭐, 상대적으로 리나보다 덜 취했다는 거지. 수아가 술을 잘 마신다는 건 절대 아니다.

얘도 취기가 오른 게 딱 티가 나거든.

묘하게 혀가 꼬인 듯한 말투로 말하는 수아와 은근히 신이 나보이는 듯한 리나가 계속해서 대화를 나눴고, 난 두 사람을 흐뭇하게 지켜봤다.

물론, 두 사람이 하는 얘기 중 절반을 무슨 소리인지도 잘 모르겠다.

관심있는 분야도 아니고, 내가 그쪽에서 일해본 적도 없으니깐 말이야.

그래도 중간중간 날 위해 리나와 수아가 번갈아가며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던 설명을 정성스럽게 해준 덕분에 이해하는데 어렵진 않았다.

알코올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두 사람이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게 참 신기하단 말이지.

심지어 같은 MCN 소속인데도 그렇게 어색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던 걸 생각하면 이 둘 사이에 내가 낀 게 오히려 다행히 아닐까 싶을 정도다.

물론, 난 이런 것보단 두 사람을 내 여자로 만들 생각밖에 없긴 했지만…… 하하.

뭐, 그래도 이렇게 술 먹고 수다 떠는 정도로 두 사람이 친해졌을 거라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재수 없으면 내일 돼서 더 어색해할 수도 있고, 딱히 대화를 안 할 수도 있겠지만, 서로 심하게 다퉈서 리나가 집을 나가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딴생각을 잔뜩 하며 두 사람이 떠드는 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들리고 있는데, 수아가 내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시온 오빠, 듣고 있어요?"

"아, 오빠 듣지 마!!!"

얘넨 또 왜 이래…?

"미안, 너무 정신없어서 못 들었다."

리나가 다급하게 일어나 내 귀를 막으려 했고, 수아는 배시시 웃으며 날 바라봤다.

"됐어, 안 들어도 돼. 야, 너 자꾸 그런 얘기 할래?"

"응. 할 건데?"

이게 리나와 수아, 두 사람과 술을 마시며 두 번째로 재밌는 부분이다.

수아가 리나를 은근히 찰지게 잘 놀린단 말이지.

"아, 하지 말라니깐!!!"

"왜? 너 치킨 먹고 싶다고 사장님한테 얘기했다가 혼나서 울었던 거 얘기하면 안 돼?"

"이, 이 미친! 내가 언제 그랬어!!!"

"아~ 그러면 넘어져서 무릎에 상처 났다고 하루종일 철철 울었던 걸 얘기하면 안 되는 건가?"

"그건 하루종일 울만 했지!!!"

흐음…… 그건 그렇네. 아이돌 연습생이 다리에 상처가 났으면 철철 울만 하지.

"티끌만 한 상처였거든? 지금은 흉터도 안 보이잖아."

그것도 그러네. 생각해보면 리나 다리는 완전히 매끈하기만 했지, 흉터 같은 건 전혀 없었다.

"너, 내 다리도 훔쳐봤냐?"

"훔쳐 봤겠니? 너 자고 있을 때 우연히 본 거거든?"

"나 자는 모습은 왜 보는데!!!"

"니가 내 침대에서 잤잖아!"

수아가 언성을 살짝 높임과 동시에 리나는 분하다는 표정으로 씩씩거리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는데 재미가 없을 리가 없지.

난 두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재밌네. 다른 얘기는 없어요?"

"아직 많아요."

수아는 씨익 웃으며 리나를 바라봤고, 취기가 올라 붉은 리나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리나가 말을 못하는 편은 아닌데, 수아랑은 묘하게 상성이 안 좋단 말이지.

리나는 수아와 내가 묘한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을 바라보자 잠시 고민하는 듯 입술을 달싹거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그, 그러는 너는…! 맨날 분위기 잡고 혼자 다녔잖아!!!"

"분위기 잡고 혼자 다닌 게 아니라 낯가림이 심했던 거야……."

"……."

수아의 대답과 함께 순식간에 정적이 찾아왔다.

리나는 어두워진 수아의 표정을 잠시 바라보더니 다급하게 변명하듯 말했다.

"어…… 그, 혼자 다니던 모습이 고독한 늑대처럼 참 멋있었다고…!"

"푸흡…!"

"아, 오빠 왜 웃어…!"

"너 지금 그걸 변명이라고 하냐, 리나야…?"

"지, 진심이거든…!!!"

나와 리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던 수아도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줄 알았다. 왠지 슬픈 표정치고는 너무 연기 같더라.

"뭐야, 넌 왜 웃어!!!"

"웃기니깐, 웃지."

그동안 본 모습 중 가장 크게 웃음을 터트린 것 같은 수아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얘도 진짜 정상은 아니네…….

리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수아를 바라보고 있었고, 수아는 그런 리나에게 다시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서, 리나야. 내가 그렇게 멋있어 보였어?"

"……몰라!!! 닥쳐!!!"

리나가 아니라고 안 하는 거 보면 진짜 수아가 혼자 다니는 걸 어느정도는 멋있게 봤나 본데…?

애들 참 독특하다니까.

난 두 사람에게 잔을 내밀었고, 아무리 수아에게 심통이 났어도 잔은 꼭 수아와 함께 부딪히는 리나가 너무도 귀여웠다.

그렇게 콩트를 직관하는 기분으로 술을 마시다 보니 어느새 안주가 거의 다 떨어져 있었다.

하긴, 저녁 겸해서 안주로 먹었으니 금방 동날 만도 하지.

난 수다를 떨고 있는 두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안주 또 시켜야 될 거 같은데, 뭐 먹을래요?"

리나가 턱을 괴고 고민하는 표정을 짓자 수아도 동시에 고민에 잠겼다.

"흐음…… 배 안 부르는 걸로 먹고 싶어!"

나도 배 안 부른 게 좋긴 한데, 일단 배달 어플에서 좀 찾아봐야겠다.

핸드폰을 들어 어플을 실행시키자 수아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집에 안주 있어요! 리나가 나한테 직접 사준 빵!"

"이씨, 너 죽을래?! 나 놀리냐?"

"아닌데, 너가 사준 거 진짜 먹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

나도 수아가 리나를 놀리는 줄 알았지만, 가볍게 웃으며 리나를 바라보고 있는 수아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리나는 그런 수아 덕에 꽤나 당황했는지 잠시멍해지더니 이내입을 열었다.

"……우린 많이 먹었으니깐, 나중에 너 혼자 먹어."

싱긋 웃고 있던 수아가 리나의 말을 듣자 갑자기 얼굴을 붉혔다.

"아, 응……. 고마워."

"됐거든?"

두 사람은 다정한 분위기를 잔뜩 풍기며 서로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애네 또 이러네…….

그리고, 리나야. 나도 그 빵 먹어본 적 없거든?

배부른 건 둘 다 싫다던 리나와 수아는 안주로 떡볶이를 시키는 기행을 펼치더니 결국 그 안주로 소주 두 병을 더 비웠다.

뭐, 안주를 떠나서 두 사람 덕분에 꽤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니 난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웠다.

참고로 지금은 테이블엔 나 혼자 앉아 있다.

리나는 화장실에 갔고, 수아는 술버릇인지 대뜸 설거지를 하고 있다.

크흠, 둘 다 언제 오니…?

잠시 넋을 놓고 있으니 수아가 설거지를 끝냈는지 의자에 앉았다.

"금방 끝났네요?"

"얼마 안 된다고 했잖아요."

이렇게 말하는 거 보면 수아는 맨정신인 거 같은데, 가끔씩 자기도 모르게 헤실헤실 거리는 얼굴을 보면 취한 게 분명하다.

그렇게 수아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화장실 문이 열리며 리나가 나왔다.

흐음, 리나도 생각보다 멀쩡해 보이는데? 얼굴이 빨갛긴 하지만 말이야.

이런 생각을 하자마자 테이블을 향해 걸어오던 리나는 나지막하게 말하며 몸을 돌렸다.

"아…… 나 좀 쉴래."

그렇게 말한 리나는 잔뜩 취한 걸음걸이로 침실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침대에서 풀썩 소리가 들렸고, 테이블엔 나와 수아만 남게 됐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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