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화 〉 200화!
* * *
"오월 씨, 준비 다 했어요?"
거실 소파에 한참을 앉아 있어도 오월이 방에서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자 나는 은근히 재촉하듯 그녀를 불렀다.
"……네!"
다급하게 방에서 빠져나온 오월의 모습은 내 시선을 빼앗았다.
어두운 남색 계열 레깅스는 오월의 하체에 타이트하게 딱 달라붙어 각선미와 넓은 골반을 뽐내고 있었고, 그 위로는 공기가 잘 통할 거 같은 스포츠웨어 크롭티를 입고 있었는데, 브라 라인이 은은하게 드러나는 모습이 꽤나 자극적이었다.
오월이 예쁘고 몸매 좋은 거야 뭐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 대놓고 뽐내는 옷을 입고 있으니 진짜 수준이 다르구나.
"왜 그렇게 쳐다봐요."
냉랭한 말투로 말하는 오월은 그런 태도와 다르게 내 시선이 민망하다는 듯 후딱 검은색 크롭 후드 집업은 입었다.
"그냥, 예뻐서요."
"……그런 소리 좀 하지 마요."
날 지나친 오월은 자신의 휴대폰을 챙기기 위해 테이블을 향해 걸어갔고, 내 눈엔 오월의 뒤태가 들어왔다.
짧은 후드 집업이니 만큼 겉옷을 입었음에도 오월의 예쁘고 봉긋한 엉덩이는 제대로 드러나 있었다.
오월 성격상 일부러 저렇게 엉덩이를 살랑거리며 걷진 않을 테고, 진짜 저게 몸에 배어 있는 색기라는 건가…….
후우, 등산 하다 보면 저 엉덩이와 골반, 잘록한 허리를 계속 보면서 걸을 텐데 벌써부터 정신을 못 차리겠네.
뭐, 애초에 저런 뒤태를 보고, 제 정신을 유지하는 것도 정상은 아니지만.
일단 나가자.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니 준비를 전부 끝낸 오월이 내 팔뚝만 한 물병에 물을 채우고 있었다.
허리를 살짝 숙여 뒤치기하기 딱 좋을 거 같은 자세로 정수기 앞에 서 있는 오월.
진짜 왜 저렇게 예쁘냐.
제주도에서 처음 같이 술 먹을 때보다 더 예쁜 거 같네.
가벼운 화장 정도만 한 거 같은데, 진짜 여신이 따로 없다.
"오월 씨."
"네?"
이런 말 하면 싫어할 거 아는데, 놀리는 맛이 쏠쏠해서 끊을 수가 없네.
"어차피 선글라스 쓰고 다닐 거 아니에요?"
"……그렇죠?"
"근데 왜 그렇게 예쁘게 하고 나왔어요."
의아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던 오월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선크림이랑 입술만 발랐거든요……."
크흠, 오월이 저렇게 대답하니깐 묘하게 재수 없네…….
다른 여자가 저런 대답을 했으면 그냥 가식 떠는 걸로 느껴졌을 텐데 말이야.
하긴 뭐, 오월 입장에서 자기가 예쁜 건 당연한 거겠지.
난 너무 예쁜 오월 덕분에 살짝 당황한 상태였고, 오월은 물병에 물을 전부 받은 뒤 내 어깨를 톡톡 쳤다.
"시온 씨 짐도 챙기러 가야 되잖아요. 얼른 가요."
"아, 네."
등산을 가기 전에 내가 지내고 있는 호텔에 먼저 가야 한다.
오월이야 이 집 주인이니 등산 갈 복장이야 전혀 문제가 없겠지만…… 아니, 문제가 없는 수준이 아니라 너무 예뻐서 환장할 지경이지.
크흠,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쨌든, 지금 내 복장은 도저히 등산에 갈 복장이 아니다. 그래서 우선 호텔에 옷을 갈아입으러 갈 생각이다.
다음 주까지 여기서 지내려면 다른 옷도 필요하고 말이야.
솔직히 옷이야 그냥 아무 곳이나 가서 사면 되는 건데, 오월이 굳이 우리 집에 가서 짐을 챙기자고 말하는 걸 보면 아마 날 최대한 배려해주고 싶은 게 아닐까 싶다.
지금 오월은 날 평범한 직장인으로 알고 있고, 그렇다고 자기가 옷이나 생필품들을 전부 사준다고 하면 남자로서 내 자존심이 상할까 싶어 걱정하는 거겠지.
뭐, 내 생각일 뿐이지만, 오월 입장에선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예리하고 배려가 깊은 여자니까.
문제가 하나 있다면 이제 곧 오월이 내 차를 보게 된다는 것이지.
"어, 이거…… 시온 씨 차예요?"
오월이 잔뜩 당황한 눈빛으로 내 차와 나를 번갈아가며 바라본다.
하필이면 엊그제 세차를 맡긴 덕분에 오늘따라 유독 더 고급스럽게 번뜩이는 옵시디안 블랙.
지금보니 새삼 느끼는데, 아무리 봐도 평범한 직장인이 탈 만한 차가 절대 아니다.
후우…… 오월에게 수상해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긴 했지만, 딱히 돈이 많은 걸 숨기려 한 적은 없는데 말이야.
뭐랄까 속인 사람은 아무도 없고, 속은 사람만 있는 게 이런 상황인가?
차를 아예 모르는 여자라면 딱히 문제 될 게 없겠는데, 레인지로버 벨라를 직접 신차로 출고해서 타고 다니는 오월이 차를 모를 리가 없지.
이미 차 얘기도 몇 번이나 신 나게 했었고…….
뭐, 어차피 시간 지나면 결국 알게 된 문제였으니 크게 신경 쓰진 않지만, 이거 묘하게 민망하네.
"……네. 아시다시피 제가 차를 많이 좋아하는 편이라 무리해서 샀어요."
"시온 씨 직급이 생각보다 많이 높나 봐요?"
흐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으려나?
"생각하기 나름인 거 같아요."
"그러고 보니 시온 씨 지금 사는 곳도 호텔이라고 했었죠?"
"네."
"왠지 선물이라고 가져온 술부터 평범하지가 않더니……."
"크흠, 그런 거 아니에요."
"농담이에요."
날 바라보며 싱긋 웃는 오월.
살짝 걱정하긴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오월이 이런 문제로 날 수상하게 여기거나 의심하는 그런 느낌은 전혀 없었다.
애초에 딱히 수상하게 여길 문제도 아니지.
솔직히 오월 입장에선 내가 특출나게 돈이 많은 사람도 아닐 테니 말이야.
오히려 내가 능력 있는 직장인이라는 건 오월에게 더욱더 호감 요소일 것이다.
난 운전석 문을 열어 차에 탔고, 내가 차에 타자 오월도 살짝 쭈뼛대긴 했지만, 조수석에 탔다.
드디어 이 차에 오월까지 태워보는구나.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니 조수석에 앉은 오월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예쁜 년.
오월이 뿜어내는 특유의 고급스러움 때문인가, 그녀를 태우기 위해 더 좋은 차를 사고 싶어진다.
뭐, 그냥 차가 한 대 더 사고 싶은 걸 수도 있다.
간단하게 날씨 얘기와 곧 가게 될 산 얘기를 하며 호텔에 도착해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오는 길 내내 오월이 내 호텔 방을 보고 싶어해서 긴장했는데, 다행히도 그건 불가능했다.
이럴때 오월이 연예인이어서 행동을 조심하게 되는 덕을 보네.
이 사람 많은 호텔에서 남자 방을 구경하는 건 오월 입장에선 절대 불가능한 일이지.
심지어 그런 오월에게 내 호텔 방을 구경시켜주는 것도 마찬가지로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 집에 서하은이 있을 텐데 방을 어떻게 보여주냐고.
"얼른 다녀올게요."
"천천히 해요. 빨리 오려다 뭐 빼놓고 오지 말고."
"알겠어요."
난 싱긋 웃으며 오월에게 대답했고, 오월은 내 방을 구경할 수 없다는 사실에 혼자 기분이 상했는지 토라져 있었다.
뭐, 이건 누구 탓도 아니니 어쩔 수 없잖아.
입술을 삐죽 내밀고 창밖을 바라보는 귀엽고, 예쁜 오월을 바라보며 운전석 문을 닫았다.
"어, 시온이 벌써 왔어?"
호텔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제 막 외출 준비를 끝낸 듯한 서하은이 소파에 앉아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응. 근데 바로 나가야 돼. 다음 주까지 그 집에 있기로 해서 짐 좀 챙기러 왔어. 누나는 어디가?"
"아니, 나도 방금 도착했어."
귀엽게 웃으며 대답하는 서하은.
외출 준비를 하던 게 아니라 이제 막 들어온 거였구나.
너무 깔끔해서 외출하고 온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네.
아, 잘 됐다. 시간도 없는데, 서하은한테 부탁 좀 해야겠어.
"누나 미안한데, 나 옷 갈아입고 있을게. 캐리어에 대충 일주일 정도 입을 옷하고 짐 좀 챙겨줘."
"알겠어!"
서하은은 소파에서 일어나 곧바로 내 옷과 생필품들을 챙겨주기 시작했고, 난 옷을 대충 벗어 던진 뒤 등산할 때 입을 옷을 꺼내기 시작했다.
서하은이 하도 오월 얘기를 궁금해하는 탓에 옷을 갈아입으며 그녀에게 어제, 오늘 오월과 있었던 일을 설명해줬다.
옷을 갈아입고 물 한 잔 마신 뒤 서하은을 바라보니 펼쳐진 캐리어에 내 속옷과 옷가지들을 정갈하게 개서 예쁘게 담고 있었다.
서하은에게 다가가자 정리를 끝낸 그녀가 날 바라보며 해맑게 웃었다.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해 챙겨줄게!"
"아니야. 그 정도면 됐어."
난 바닥에 무릎 꿇고 짐을 챙기고 있던 서하은의 양쪽 겨드랑이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일으켜 세운 뒤 입술을 맞췄다.
"누나도 피곤할 텐데, 고마워."
"……뭘, 아니야……."
뽀뽀해주자 볼을 붉히며 부끄러워하는 서하은.
예뻐해주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서 아쉽네.
난 서하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누나가 챙겨준 술, 오월이 엄청 좋아하더라. 그것도 고마워."
"그래? 다행이다."
서하은은 날 꼬옥 끌어안았고, 이내 빠르게 놔주었다.
"얼른 가봐야 하지?"
"응. 나갈게. 다음 주에 봐. 누나!"
"잠깐만, 시온아!"
캐리어를 챙겨서 얼른 나가려는데, 서하은이 다급하게 내 손목을 붙잡았다.
왜 그러지?
"밑에서 기다리고 있다며 신경 써야지."
클러치백에서 티슈를 꺼낸 서하은은 내 입술에 묻은 자신의 립스틱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다 됐다. 얼른 가봐."
부드럽게 웃는 서하은의 미소가 너무도 포근하게 느껴진다.
"아, 다녀올게."
"응!"
서하은 덕분에 스무스하게 준비를 마칠 수 있었고, 지하주차장에 내려간 나는 트렁크에 캐리어를 실은 뒤 곧바로 출발했다.
오월은 우리 집 바로 앞까지 와서 내 방 구경을 못했다는 사실에 우울해했지만, 다음에 꼭 구경시켜준다고 약속하니 금세 기분이 풀렸는지 지금은 꽤나 즐거운 눈빛으로 창밖을 구경하고 있다.
그나저나, 오월이 가자고 한 산이 생각보다 멀었다.
이 정도는 돼야지 연예인이 아무 걱정 없이 등산하러 다닐 수 있는 거구나.
가볍게 등산 가려다 휴게소까지 들리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네.
"오월 씨,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잠시 고민하던 오월은 봇물 터지듯 말했다.
"회오리감자랑 떡볶이요!"
"어…… 있으면 사올게요. 더 필요한 건 없어요?"
오월은 순간 신이 났던 자신의 모습이 민망했는지, 괜히 고개를 숙이며 목소리를 깔았다.
"커피도 사다 주세요."
"넵. 아이스 아메리카노 맞죠?"
"네."
진짜 어이없게 귀엽네.
회오리 감자가 없어서 알감자와 떡볶이, 커피 두 잔을 샀다.
내가 이걸 두 손으로 들고 갈 수 있다는 게 존나 신기하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오월은 내가 다가오는 걸 봤는지 차 근처에 다가가자 조수석 문을 열고 짐을 받았다.
"회오리 감자는 없어서 그냥 이걸로 사왔어요. 미안해요."
"아니에요…! 사다 줘서 고마워요. 이것도 너무 좋아요!"
생긴 건 여왕이 따로 없는데, 무슨 떡볶이랑 알감자 가지고 저렇게 좋아하냐…….
난 흐뭇하게 웃으며 조수석 문을 닫았고, 운전석으로 돌아가 차에 탔다.
"시온 씨도 먹어요."
오월은 떡볶이 하나를 찍어 내 입에 넣어주었다.
나도 모르게 흠칫 놀랐는데, 오월이 손을 밑에 바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안심하고 받아먹었다.
으음, 휴게소 떡볶이는 진짜 맛이 없던 적이 없단 말이지.
"맛있네요."
내가 떡볶이는 맛있게 먹자 오월은 알감자를 작게 부신 뒤 호호 불어서 내 입에 넣어주었다.
이것도 맛있네.
솔직히 지금 같은 상황에서 오월이 먹여주는 음식이 뭔들 맛이 없겠냐.
"제가 계속 시온 씨 먹여줄게요. 출발해도 돼요."
"아, 괜찮아요. 다 먹고 출발해도 되니깐, 천천히 먹어요."
움직이는 차에서 떡볶이라니,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월이어도 차에 뭐 흘리는 건 못 참지…….
간단하게 배를 채운 뒤 짧지 않은 거리를 운전해 목적지에 도착했다.
운전하는 걸 크게 좋아하진 않지만, 오월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 시간도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짧게 느껴졌지.
그나저나, 오월이 왜 사람이 없다고 말한 지 알겠네.
차를 타고 들어오는 초입에서부터 정말 단 한 명도 볼 수가 없었다.
마음에 쏙 드네.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나름 주차장도 제대로 돼 있고 말이야.
주차를 끝내고 차에서 내리자 벌써부터 맑고 상쾌한 공기가 느껴졌다.
"시온 씨, 이쪽이에요."
물병 하나만 챙겨 차에서 내린 오월이 내게 손짓하고 있었다.
오월은 꽤나 능숙하다는 듯 걷기 시작했고, 살짝 언덕인 곳에서 바라보는 그녀의 뒤태는 너무도 황홀했다.
검정색 크롭 후드 집업과 딱 붙는 어두운 남색 레깅스를 입은 덕분에 오월의 잘록한 허리와 넓은 골반이 전부 드러나 있었다.
심지어 쭉 뻗은 아름다운 각선미와 봉긋한 엉덩이는 내 시선이 살짝 내려와 있어서 그런가 더욱더 자극적이었다.
후우…… 씨발 진짜 존나게 섹시하네.
뭐, 이미 생각하고 오긴 했지만, 오늘 얌전히 등산만 하고 돌아갈 일은 절대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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