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화 〉 놀이공원 (4)
* * *
거울 속에서 날 바라보던 오월은 볼에 홍조를 띠며 시선을 살짝 피했다.
"……동생 옷 훔쳐 입은 거 같아요."
크흠, 저렇게 얘기하니깐 괜히 더 그런 거 같네.
나는 예쁘다고 해줬는데 너무 한 거 아니냐?
뭐, 그래도 반응을 보면 나름 마음에 들어 하는 거 같으니 넥타이까지 매서 이대로 입고 나가면 되겠다.
옷을 갈아입은 괜스레 불편하다는 듯 매무새를 정리하며 오월을 바라봤다.
"크흠, 이제 슬슬 출발하죠."
"……잠시만요!"
오월이 상당히 다급한 눈빛으로 내 손목을 붙잡았다.
갑자기 왜 이래?
자신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오월은 스스로도 놀랐는지 꽤나 당황스러운 눈빛을 하고 있었고, 난 그 모습을 바라보며 느긋한 말투로 말했다.
"왜요? 다른 거 더 입어보게요?"
"……아니요. 그, 저도 시온 씨 부탁 들어줬으니까……."
들어줬으니까?
"……같이 사진 한 장만 찍어줘요."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양손으로 내 소매 끝을 살짝 붙잡는 오월.
후우…… 진짜 존나게 사랑스럽네.
애초에 안 들어줄 만한 부탁도 아니지만, 이렇게 부탁하면 그 어떤 남자가 거절을 할 수가 있겠어?
난 오월에게 최대한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알겠어요."
내가 부탁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오월의 표정이 꽤나 밝아졌다.
뭐, 솔직히 사진 찍는 걸 싫어하긴 하지만, 오월이 어디 다른 곳에 사진을 올리거나 그럴 일은 절대 없을 테니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허락을 받아낸 오월은 손끝으로 붙잡고 있던 소매를 끌고 난 거울 앞으로 데려갔다.
크흠, 사진 찍는 걸 싫어하는 거지 딱히 부담스러워하거나 그런 건 전혀 없었는데, 오월 옆에서 찍으려니깐 진심으로 존나 개 부담스럽다.
시발, 이렇게 생긴 여자 옆에서 사진 찍는데 남녀노소 안 불편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
어쨌든 찍기로 했으니 군말 없이 찍어야지 뭐.
거울 앞으로 날 끌고 온 오월은 내게 밀착하며 팔짱 낀 상태로 포즈를 취했고, 반대 손으로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찍을게요."
난 스스로도 느껴지는 상당히 불편한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었고, 그 덕에 사진이 잘 나왔을 거라는 자신감이 뚝 떨어졌다.
셔터음이 들린 뒤 오월은 민망하다는 표정으로 내게서 살짝 떨어졌다.
"어디 봐봐요."
"시온 씨, 표정은 왜 이래요?"
"크흠, 긴장해서 그래요……."
"원래 사진 찍을 때 긴장해요?"
"안 해요. 오월 씨랑 찍어서 긴장한 거지."
"……."
오월은 꽤나 설레 보이는 모습으로 귀를 붉혔다.
뭔가 서로 받아들이는 방식이 조금 다른 거 같은데…?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일단 사진 보여줘 봐요. 어떻게 나왔길래 그러는데?"
"아…! 여기요."
스마트폰 액정 속에 담겨 있는 우리 둘의 모습은 정말 인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커플들과 같은 모습이었다.
마음에 드네.
내가 잘 나왔을 것이란 기대감이라고는 일절 없이 사진을 봐서 그런가 내 모습도 이 정도면 나름 만족스럽다.
오월은 뭐, 말할 것도 없이 존나 예쁘게 잘 나왔다.
어떻게 카메라 앞에서 저렇게 자연스럽게 웃는 거야?
물론, 다른 여자들도 자연스럽게 예쁜 웃음을 잘 짓긴 하지만, 오월은 정말 그 수준이 다르다.
어쨌든 나름 만족스럽게 사진을 보다 시선을 돌려 옆을 바라보니 오월도 만족했는지 사진을 바라보며 흐뭇하다는 듯 작게 미소 짓고 있었다.
하긴 오월이 저번에 말했던 것도 평범한 커플들 처럼 일상을 보내고 싶다는 거였지.
지금 사진에 찍혀 있는 흔한 연인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우리를 보며 만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탁도 들어줬으니까, 이제 진짜 슬슬 출발해야겠네.
카운터에 올려놓은 핸드폰과 차 키를 챙기러 가는데 오월이 조금 전처럼 다시 내 손목을 다급하게 붙잡았다.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조금 전엔 당황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지금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라는 거지.
"어디 가요?"
"……놀이공원 가야죠…?"
"시간 아직 남았잖아요. 사진 더 찍어요."
오월의 눈빛이 약간, 어디 고작 사진 한 장 찍은 걸로 자신한테 한 짓을 퉁 치려 하느냐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한참 붙잡혀서 오월이 원하는 내 모습이 나올 때까지 사진을 찍었다.
"근데 시온 씨 그렇게 입고 운전하는 거에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오월.
"얼굴은 성인인데요. 뭐, 상관없겠지."
"아닌데…… 딱히 그렇게 안 보이거든요?"
아니, 아까는 동생 옷 뺏어 입는 거 같다고 하더니 지금은 또 칭찬해주고 있네.
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오월은 괜히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돌렸다.
"흐음, 경찰 아저씨한테 혼나겠네."
"혼나려면 오월 씨가 혼나야죠. 그렇게 입고 조금 전까지 무릎 꿇……."
"악!!! 그만!!!"
오월한테 등짝을 몇 대 맞으며 가게에서 빠져나왔다.
그나저나, 이렇게 세트로 대여한 옷을 맞춰 입고 있으니깐 커플 느낌 제대로 나는구만.
아마 오월이 계속해서 묘하게 설레는 표정으로 홍조를 띠는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뭐, 졸업 이후로 한 번도 못 입었던 옷을 입어서 설레는 것도 있긴 하겠지만, 이렇게 대놓고 커플이라는 티를 잔뜩 내며 그 사람 많은 곳을 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꽤나 심장이 두근거리겠지.
가게에서 빠져나온 오월과 나는 아무도 없는데 괜히 주변 시선을 의식하며 차에 탔다.
이거 묘하게 쪽팔리단 말이야…….
놀이공원 주차장 입구에 도착했다.
이제 근처만 도착한 건데, 벌써부터 묘하게 설레는 거 같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평일이라 그다지 사람이 많은 거 같진 않았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쳐도 사람이 많을수록 오월을 아는 사람이 많아지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조수석을 슬쩍 바라보니 오월도 나와 비슷한 기분인지 표정에 설렘이 은근히 묻어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저 치마 진짜 존나 꼴릿하네.
타이트하게 뽀얀 허벅지를 신축성 좋은 치마가 조이고 있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자꾸 시선을 빼앗긴다.
심지어 앉아 있는 탓에 치마가 올라가 있어 안 그래도 짧은 치마가 더 짧아져 허벅지가 이젠 탐스러워 보일 지경이다.
오는 길에도 계속 힐끔힐끔 쳐다봐서 오월이 살짝 비웃었는데, 은근히 자존심이 상한단 말이지.
뭐, 근데 나도 모르게 계속 시선이 가는데 어떡하냐.
다행히 지금은 놀이공원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인지 내 시선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오는 길에도 뭐 먼저 탈지 정해놨던 순서를 계속해서 확인하며 잔뜩 기대하고 있었으니 정신이 없을 수밖에 없겠지.
저러면서 은근히 설레는 모습을 숨기는 게 존나 귀엽단 말이야.
표지판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직원이 주차 안내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다 들어왔나 보네.
차를 세울 곳에 도착해 안내를 받아 주차를 끝내고 시동을 껐다.
오월은 시동이 꺼진 걸 확인하자 선글라스를 쓴 뒤 곧장 차에서 내리려 했고, 난 그런 그녀를 다급하게 붙잡았다.
"오월 씨, 잠깐만요."
"네?"
난 날 바라보고 있는 오월의 선글라스 중앙 부분을 잡아 조심스럽게 벗겨 냈다.
이내 천천히 드러나는 오월의 잔뜩 당황한 아름다운 눈.
"선글라스 이런 거 쓰면 안 돼요."
오월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눈빛으로 날 바라봤고, 난 미리 준비해놨던 또 다른 선글라스를 포장도 안 벗긴 채로 그녀에게 건넸다.
"이거 쓰고 들어가요."
내 손에 있는 선글라스를 벙찐 모습으로 쳐다보는 오월.
이건 내가 직접 다이소에서 천 원 주고 산 선글라스다.
심지어 가격도 포장에 쓰여 있다. 1,000원.
느낌을 설명하자면 체육대회에서 한 번 쓰고 버릴 거 같은 그런 선글라스지.
솔직히 집안을 뒤져보면 내가 진짜 체육대회 때 썼던 걸 찾을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집에 갈 시간도 없고, 도저히 천 원짜리 때문에 집에 가는 건 너무 낭비 같아서 포기했다.
시발, 기름값만 해도 이런 거 50개는 더 산다고.
오월은 여전히 벙찐 표정으로 내 손에 있는 선글라스를 건네받았다.
"어…… 이건 왜요?"
"오월 씨 지금 쓰고 있는 선글라스는 너무 쓸데없이 화려해서 좋을 게 없어요."
화려함도 그렇지만, 너무 고가야.
이미 지금 복장만 해도 눈에 띄는 편인데, 굳이 다른 부분들까지 눈에 띌 필요는 없다.
가능한 부분들은 최대한 수수하게 만들어야지.
그런 점에서는 이 선글라스가 딱이다.
아주 평범하고 흔한 디자인이니 선글라스에 딱히 관심 가지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존나 진해서 그 누구도 오월의 눈을 절대 볼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만큼 오월도 캄캄한 세상을 보게 되겠지만…….
오월은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래도 은근 귀여워서 마음에 드네요. 이런 건 언제 샀어요?"
조금 전까지 잔뜩 당황한 얼굴로 날 바라보던 오월은 이제 내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냥 지나가다 샀어요."
"시온 씨는 예상치 못한 데서 되게 세심한 거 같아요."
"크흠, 늘 세심하거든요?"
"야한 거 할 땐 전혀 안 그러던데……."
……얘가 이제 별소리를 다 하는구만.
그 와중에 오월에게서 저런 소리를 들으니 발기할 것 같다.
후우…… 이제 안에 들어가야 하니 우선 진정하자.
난 아랫도리로 피가 쏠리는 것에서 최대한 신경을 떨어트리며 당황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건…… 뭐, 그럴 수도 있죠."
"너무 당당한 거 아니에요?"
"어차피 오월 씨는 제 여잔데 뭐 어때요."
"……참나, 됐어요……."
당황한 티를 내지 않는 건 실패했지만, 오월도 같이 당황하게 만드는 건 성공했다.
오월이 내 시선을 피하며 잔뜩 붉어진 귀를 보여주고 있었거든.
꽤나 민망했는지 오월은 다급한 손길로 선글라스 포장을 뜯어 꺼냈고, 재빠르게 쓴 뒤 선바이저를 내려 거울을 확인했다.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고개를 가볍게 좌우로 움직이는 오월.
오월은 생각보다 선글라스가 마음에 들었는지 은은하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잘 쓸게요."
"그런 거 가지고 뭘요. 선물하려고 샀던 것도 아니었어요."
"그래도 마음에 들어요. 은근 이쁘지 않아요?"
선바이저 거울을 보던 오월은 고개를 휙 돌려 살짝 웃으며 날 바라봤고, 1,000원짜리 선글라스를 쓴 그녀의 모습은 너무도 예뻤다.
"……네. 예쁘네요."
시발, 일부로 눈에 띄지 말라고 저런 걸로 골라온 건데, 저러면 의미가 없는 거 아니야…?
후우, 그래도 이 전에 쓰고 있던 그 존나게 비싼 선글라스보단 낫겠지.
예쁜 미소를 짓고 있던 오월은 이제 해맑게 웃었다.
"그럼 고마워할래요."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듯한 오월의 표정을 보고 있으니 이거 은근히 민망하다.
심장도 묘하게 빨리 뛰는 거 같은데…?
"……많이 격한 거 탈 땐 벗어야 되니까, 그땐 머리카락으로 최대한 얼굴 잘 가려봐요."
"알겠어요. 시온 씨가 사준 건데, 잃어버리지 말고 평생 간직해야지."
아니, 고작천 원짜리인데그렇게까지 얘기하면 오히려 내가 미안해지잖아.
난 괜히 헛기침을 하며 운전석 문을 열었다.
"훨씬 더 좋은 것도 평생 사줄 수 있어요. 얼른 들어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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