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8화 〉 놀이공원 (6)
* * *
와, 이거 생각보다 빡센데?
첫 번째 놀이 기구를 오월에게 정신없이 끌려가서 타고 난 뒤 곧바로 놀이 기구를 2개 더 탔다.
360도 회전을 두 번 하는 롤러코스터랑 풍차 같은 의자에 앉아 여러 방향으로 존나게 돌기만 하는 놀이 기구를 탔는데, 롤러코스터는 꽤나 재밌었고 풍차 같은 놀이 기구는 꽤나 토 쏠렸다.
뭐, 그래도 재밌긴 하네.
확실히 방금 막 개장한 상태라 줄이 얼마 없으니 그냥 연달아서 타는구나.
심지어 첫 번째 놀이 기구를 같이 탔던 몇몇 사람들하고 두 번째 세 번째 놀이 기구도 같이 탔으니 확실히 다들 초반에 빡세게 탈 생각을 하는 거 같다.
오월이 계속 빨리빨리 움직이자고 보챈 이유가 있었구만.
느긋하게 걷던 중 오월이 팔짱을 끼며 내게 바짝 붙었다.
"시온 씨, 벌써 그렇게 힘 빠지면 어떡해요?"
크흠, 그냥 살짝 진 빠진 건데, 그걸 눈치채냐.
"솔직히 너무 빙글빙글 도는 것만 타긴 했어요. 뭔 놈에 놀이 기구가 저렇게 죄다 미친 듯이 돌아대는 거야."
내 반응이 재밌는지 히죽대는 오월.
"맞아요. 좀 그렇죠. 혹시 그래서 시온 씨 마지막에 내리고 나서도 땅에서 혼자 돌려고 했던 거예요?"
"그건 아니거든요?"
그냥 어지러워서 살짝 비틀거렸을 뿐이다.
"푸흡…!"
우리는 길을 걸으며 폭소를 터트렸고, 그 과정에서 난 자연스럽게 한쪽 팔로 오월의 어깨를 감쌌다.
사람 많은 곳에서 서로 딱 붙어 있으니 민망하다는 듯 웃음을 멈추고 입을 귀엽게 앙다무는 오월.
볼따구 한 번 존나 세게 꼬집어주고 싶네.
그나저나, 이제 어디로 가려나?
내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자 볼에 홍조를 띠고 있던 오월은 내 시선을 피하려는 듯 고개를 살짝 들고 머리끈을 잡아당기며 포니테일로 질끈 묶어 놓은 머리카락을 풀기 시작했다.
머리끈을 잡은 오월의 팔이 쭉 펴졌고, 이내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있던 내 팔에 보드라운 머리카락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갑자기 머리는 굳이 왜 푸는 거야? 묶은 것도 예뻐서 보기 좋았는데.
처음에 당당하게 놀이 기구를 탔던 오월은 내리고 나서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곧바로 머리카락을 묶었었다.
난 오월을 바라보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머리는 왜 풀어요? 더 안 타요?"
"빙글빙글 도는 건 그만 탈 거라 괜찮아요."
후우…… 그거 듣던 중 다행이네.
나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그럼 지금은 어디 가는 거에요?"
놀이 기구 좀 탔으니 이제 동물 구경하다가 간식거리나 먹으면 좋을 거 같은데…….
아침이라 배고프단 말이야.
"이제 메인 타러 가야죠."
오월은 날 바라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쟤 놀이공원 안 데려왔으면 어쩔 뻔했냐.
오월과 시답잖은 농담들을 하며 목적지 근처로 향하는 리프트에 탔다.
이거 타면 놀이공원 중앙을 가로지를 수 있다는데, 솔직히 누가 그런 이유로 타겠어? 그냥 둥둥 떠 있는 리프트니깐 타는 거지.
물론 편하긴 편하다. 움직이긴 해도 나름대로 오월하고 단둘이 편하게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니까.
그래도 놀이공원 자체에서 느껴지는 분위기 때문에 그런가 이것도 묘하게 재밌는 것 같네.
발 밑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과 아기자기한 건물들을 보는 게 꽤나 즐거웠다.
오월도 나랑 비슷한 마음인지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구경하고 있었고, 공중에 떠 있는 발을 동동 구르는 게 상당히 귀여웠다.
꼭 저렇게 의외인 모습을 보여준단 말이지.
그 와중에 또 오월의 허벅지가 계속해서 눈에 들어온다.
……솔직히 오월 같은 여자가 저런 짧은 치마를 입고 옆에 앉아 있는데, 시선이 안 돌아가면 그게 이상한 거잖아?
근데, 쟤는 담요도 있으면서 다리는 왜 안 가리고 있는 거야.
저거 설마 은근히 나 보라고 저러나…?
"고마워요."
몰래 훔쳐보고 있던 건 아닌데, 갑자기 오월이 말을 하자 나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아니, 몰래 훔쳐보고 있던 거 맞나?
"……뭐가요?"
"여기 데려와 준 것도, 올 수 있게 이것저것 챙겨준 것도, 전부 다 고마워요."
오월은 스스로도 말하면서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돌려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마워 해주니 나도 기쁘네.
그건 그렇고 저렇게 고마워만 하는 거 보면 내가 옷 입혀놓고 마음대로 치마 올려서 팬티랑 엉덩이 보고 대뜸 탈의실로 끌고 가서 펠라 시켰던 건 금세 다 잊었나 보다.
뭐, 애초에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던 걸 수도 있고.
난 오월의 손을 부드럽게 붙잡은 뒤 그녀의 뽀얀 허벅지와 치마 사이에 내 손등을 얹었다.
"저도 고마워요."
"시온 씨는 왜요?"
오월은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며 날 바라봤고, 난 그녀에게 싱긋 웃어 보였다.
"나랑 이런 시간 보내줘서."
"……진짜 말은 잘해……."
내 손을 꼬옥 붙잡으며 고개를 푹 숙이는 오월.
그녀의 붉어진 귀가 너무도 사랑스럽다.
크흠, 너무 사랑스러워니깐 만지고 싶어서 못 참겠잖아.
나는 오월과 맞잡은 손을 뽀얗고 말랑한 그녀의 허벅지 안쪽 사이를 향해 슬쩍 집어넣었다.
손가락과 손등에서 느껴지는 오월의 탐스럽고 고혹적이 허벅지 감촉, 후우…… 진짜 개처럼 따먹고 싶네.
조금 더 자극적인 감촉을 느끼고 싶어진 나는 다리 사이로 손을 더욱더 깊숙하게 집어넣으려는데, 오월이 내 손등을 쳤다.
탁!
아야!
"이런 건 하나도 안 고맙거든요…!
슬쩍 고개를 놀리니 오월이 선글라스를 쓴 채 표정만으로 날 노려보고 있었다.
흐음…… 이따 더한 것도 할 생각인데, 이거 가지고 이렇게 예민하게 굴면 안 되지.
뭐, 여차하면 댓글 명령도 있으니 상관없으려나?
오월과 티격태격 대며 실컷 웃고 떠들다 보니 어느새 리프트가 도착 지점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대기하고 있던 직원이 눈에 들어왔다.
리프트가 도착할 때쯤 되자 우리는 서 있던 직원과 서로 얼굴이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다.
우리에게 안내를 해주어야 할 직원은 반쯤 넋이 나간 채로 오월을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히 오월은 얼굴을 가리고 있어도 존나 예쁘구나.
내가 알아서 안전 바를 올리자 그제서야 다급하게 입을 여는 남자 직원.
"아…! 내리시면 돼요…!"
"감사합니다."
허둥지둥 안내를 한 직원의 시선을 여전히 오월을 향하고 있었고, 오월은 살포시 웃으며 상냥하게 감사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헙, 넵!!!"
시발, 반응이 무슨 포상 휴가받은 일병 같냐.
우린 혼이 나간 거 같은 직원을 뒤로 한 채 걷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불안하다는 듯 내 옆에 바짝 달라붙어 나지막하게 말하는 오월.
"설마 알아본 건 아니겠죠…?"
"절대 아니니깐 걱정하지 마요."
"그걸 시온 씨가 어떻게 알아요!"
모를리가 없지. 딱 봐도 얼굴이 아니라 몸매보고 넋이 나갔던 건데.
"알아봤으면 아는 척이라도 슬쩍 했겠죠. 그리고 선글라스도 쓰고, 머리카락으로도 얼굴을 살짝 가리고 있었는데, 저 사람이 어떻게 알아보겠어요."
"근데 왜 저렇게 수상하게 굴지…?"
그건 그냥 니가 존나 예뻐서 그래…….
리프트에서 내린 우리는 얼마 걷지 않아 오월이 원하던 목적지에 도착했다.
T 익스프레스.
개인적으로 이건 놀이 기구보다 줄이 더 무섭다.
후우…… 줄 별로 안 길었으면 좋겠는데, 오래 서 있기 싫단 말이야.
내가 떨어지는 롤러코스터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자 오월이 내 앞으로 돌아와 싱긋 웃으며 허리를 살짝 숙인 뒤 날 올려다봤다.
"여기까지 왔으면 이건 꼭 타고 가야죠. 시온 씨, 설마 무서운 거…?"
이런 식으로 사람 피를 끓게 만드네.
늘상 예쁘다고 느끼기만 했던 오월의 얼굴이 상당히 얄미워 보인다.
"내가 저런 걸 무서워할 거 같아요? 얼른 타러 가죠."
얼른 타러 가도 못 타는 게 문제지만, 씨팔…….
오월은 즐겁다는 표정으로 내 손을 잡아끌었고, 난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걸었다.
"마실 거라도 사서 들어가죠. 목말라 죽을 거 같아요."
"어, 저도 마실래요."
간단한 간식거리와 음료수 하나를 사며 오월이 한눈파는 동안 떨어지는 롤러코스터를 슬쩍 바라보니 가슴이 아주 조금 미세하게 두근거렸다.
크흠, 살짝 긴장되긴 하는데…?
역시 내 예상대로 아무리 아침 일찍 왔어도 줄은 엄청나게 길었다.
뭐, 예약하고 어쩌고 그런 게 있긴 했는데, 귀찮아. 그냥 기다렸다 얼른 타고 말지.
그래도 오월과 다른 평범한 연인들처럼 수다 떨고 장난치면서 기다리니 시간은 금방 갔다.
마실 거랑 간식거리도 있었으니 딱히 지루할 것도 없었고.
문제가 하나 있다면 너무 재밌어서 한 번 더 타고 싶다는 거지.
"와, 진짜 개재밌어."
오월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내 머릿속을 읽은 듯한 타이밍에 말했다.
그 와중에 개 재밌어라니, 오월도 저런 말을 쓰는구나.
난 오월을 바라보며 작게 실소를 터트렸다.
"뭐야. 왜 웃어요?"
"아니에요. 재밌으면 한 번 더 탈까요?"
"으응, 그건 싫어요. 줄 너무 길어……."
그건 그렇지. 나도 저 줄을 또 서고 싶진 않다.
"그럼 이쪽에 먹을 거 많으니깐, 뭐라도 좀 먹으면서 조금 쉬죠. 아까 너무 감질나게 먹었더니 지금 더 배고파졌어요."
입을 꾹 닫은 오월은 동감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귀엽네.
그렇게 지금은 츄러스 하나씩 사 들고, 앉아서 다른 사람들이 회전목마 타는 걸 구경하고 있다.
"밥은 뭐 먹을까요? 먹고 싶은 거 있어요?"
그다지 작게 말한 것도 아닌데, 오월은 내 말을 못 들었는지 여전히 회전목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저러지 저거 타고 싶어서 그러나?
난 오월의 손등을 검지로 톡톡 쳤다.
"저것도 타고 갈까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오월.
"아뇨. 저걸 뭐하러 타요."
표정에서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심인 게 느껴진다.
크음, 진짜 별 관심 없어 보이는 얼굴인데…?
근데 왜 저렇게 쳐다보는 거야.
이 와중에도 오월의 시선은 여전히 회전목마 쪽을 향하고 있었다.
아, 혹시 저걸 쳐다보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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