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화 〉 놀이공원 (7)
* * *
자세히 보니 오월은 회전목마를 타면서 사진을 찍고 있는 커플을 보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회전목마를 타고 있는 여자친구의 사진을 밖에서 찍어주는 남자친구의 모습이었지.
왜 저러나 했더니 사진 찍고 싶어서 그랬던 거였구나.
그런 거면 말을 하지, 뭐 대단한 일이라고 저렇게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어?
난 손에 들고 있던 츄러스를 빠르게 먹어치운 뒤 오월의 손목을 붙잡았다.
"가죠."
"갑자기 어딜 가요…?"
"가서 저거 타요. 내가 사진 찍어 줄 테니까."
내게 손목을 붙잡힌 오월은 귀를 잔뜩 붉히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그렇게 대놓고 빤히 쳐다보면 당연히 눈치채죠."
모르고 넘어갈 뻔하긴 했지만…….
오월은 꽤나 놀란 듯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고, 쑥스러웠는지 이내 고개를 살짝 돌렸다.
"이것만 다 먹고 가요. 자기 다 먹었다고 바로 가자 그러네……."
아직 손에 츄러스를 들고 있는 오월은 귀엽게 볼을 부풀렸다.
난 별다른 대답 없이 다시 자리에 앉은 뒤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진짜 커플들이 많긴 하네.
우리처럼 옷을 맞춰 입는 연인들도 많았지만, 아이랑 함께 놀러 온 젊은 부부도 꽤나 있었다.
가볍게 주변을 둘러보다 보니 여자들끼리 놀러 온 듯한 모습도 상당히 많이 볼 수 있었다.
일부러 보는 건 아니다. 대부분 오월하고 비슷한 옷을 입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가네.
그 와중에 대부분 몸매는 좋다. 물론 오월 정도는 아니지만.
흐음…… 다른 여자들이랑 와도 재밌을 거 같단 말이지.
몇명은 굳이 신분 숨기느라 피곤하게 움직일 필요도 없을 테니 편하게 놀 수 있겠네.
그렇다고 오월이랑 있는 게 즐겁지 않다는 건 아니다.
물론 불편한 점들이 조금 있긴 하지만, 오월은 그 모든 걸 아우를 정도로 충분한 가치가 있으니까.
어쨌든 주변을 둘러보며 비슷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으니 회전목마에서 사진 찍는 정도로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거라 판단했다.
솔직히 회전목마 자체가 워낙 느린 놀이기구니 시선이 집중될 가능성이 높아 걱정되긴 하지만, 뭐 조금 위험해도 오월이 하고 싶어하는데 굳이 지레 겁먹고 피할 필요는 없겠지.
아직 이른 시간이라 사람도 별로 안 모였고 말이야.
난 지금 회전목마 바깥쪽 펜스에 서서 혼자 쪽팔려 죽겠다는 듯 줄을 서고 있는 오월을 보고 있다.
아, 진짜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계속 나오네.
혼자 저기 서서 쪽팔려 하고 있는 것만 해도 웃긴데, 머리에 쓰고 있는 토끼 머리띠가 너무 눈에 띄어서 더 웃기다.
그래도 저렇게 혼자 서 있으니 다른 평범한 여자들 속에 잘 녹아드는 거 같아서 보기엔 좋다.
회전목마가 작동을 멈추고 직원의 안내와 함께 기존 탑승 인원이 빠져나가고 오월과 함께 줄을 서던 사람들이 들어간다.
출입구를 지나 내가 있는 쪽으로 둥글게 걸어오는 오월.
난 내 눈앞에 있는 가짜 말을 향해 손짓하며 오월을 불러 세웠다.
"이거 타요! 내 앞에 있는 거!"
오월은 내게 총총 걸어와 내가 가리키고 있는 말 앞에 서서 날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냥 같이 타자니깐…!!!"
"같이 타면 사진을 예쁘게 찍어줄 자신이 없어요."
"……."
내가 실실대며 대답하자 오월은 할 말이 없다는 듯 입을 굳게 닫았고, 자신의 뒤에 있는 말에 올라타 한쪽으로 걸터앉았다.
치마가 살짝 올라가며 뽀얀 허벅지가 드러나자 재빠르게 손에 들고 있던 담요로 다리를 가리는 오월.
'뭘 봐요.'
오월은 인상을 살짝 쓰며 입 모양으로만 말했고, 난 그 모습을 보자 묘하게 가슴이 일렁거렸다.
시발, 왜 꼭 오월한테는 이런 이상한 포인트에서 설레지…?
내가 괜히 헛기침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는 동안 탑승이 전부 끝난 회전목마가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반짝이는 조명들과 경쾌한 노랫소리.
후우…… 일단 사진이나 잘 찍어주자.
난 오월이 돌아오는 순간마다 최대한 집중해서 사진을 찍었고, 회전목마의 따스한 색감과 분위기가 차가운 오월과 한 앵글에 담기자 상당히 조화로운 모습이 만들어졌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게 존나 아쉬울 정도네.
배경인 회전목마도 나쁘지 않지만, 솔직히 내가 보기엔 오월 자체가 밸런스 붕괴다.
가볍게 손잡이를 붙잡고 있는 오월의 손끝, 담요 밑으로 드러난 가느다란 발목, 부드럽게 미소 짓는 입가까지.
이 정도면 사실 회전목마가 아니라 지하철에서 찍었어도 같은 느낌이 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근데 뭐랄까, 한 바퀴씩 도는 타이밍마다 서로 눈을 마주치고 사진을 찍어대니 이거 존나게 무안하고 민망하네…….
아마 오월도 지금 나랑 비슷한 심정인지 어느 순간부터 포즈 잡는 걸 멈추고 괜히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크흠…… 뭐, 사진은 많이 찍었으니까.
그렇게 생각보다 길었던 시간이 흘러가고 회전목마 출구에서 오월이 빠져나왔다.
"……얼른 사진 보여줘요!"
반응 보니 확실히 자기도 민망했나보구만.
난 싱긋 웃으며 오월에게 사진을 보여줬고, 그녀는 만족스럽다는 듯 사진을 하나씩 넘기며 확인했다.
"시온 씨 생각보다 사진 잘 찍네요?"
"생각보다는 뭐예요. 그럼 못 찍을 줄 알았어요?
"아뇨, 그냥 은근히 잘 찍어서 놀랐어요."
그 와중에 은근히 잘 찍는 거냐…….
난 어이 없다는 듯 웃으며 오월이 들고 있는 내 핸드폰을 슬쩍 빼앗았다.
"아, 예. 감사합니다. 이따 까톡으로 다 보내줄게요."
핸드폰을 빼앗기자 멍하니 허공을 잡고 있던 오월은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어…… 장난이었어요. 사실 엄청 잘 찍었어요…!"
아니, 갑자기 태세전환 뭐야…? 설마 내가 삐칠 까봐 그러나?
얘도 은근히 걱정이 많다니까. 하긴, 그도 그럴 게 오월 자체가 꽤나 예민한 성격이지.
하지만, 나는 그렇게 쉽게 삐치고 그러지 않는다.
"갑자기 칭찬해줘도 뭐 떨어지는 거 없거든요?"
"아니, 진짜 잘 찍어서 하는 얘기예요. 어지간한 감독님들 보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려는 거야?
난 다급하게 손을 뻗어 오월의 입술을 손가락 끝으로 톡 쳤다.
"쓰읍, 이상한 소리 그만하고 이제 다른 데로 가죠."
오월은 당황한 듯 귀를 붉히며 날 올려다봤고, 난 시선을 맞추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이제서야 걱정스럽다는 듯한 눈빛을 지우는 오월.
"히…… 예쁘게 찍어줘서 고마워요."
살짝 홍조를 띠며 말하는 오월이 너무도 귀엽고 사랑스럽다.
난 오월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그녀를 내 쪽으로 살짝 잡아당겼다.
"이제 어디로 갈까요?"
"어딜 가요? 아직 안 갈 건데."
……뭔 소리야?
짓궂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오월이 싱긋 웃었다.
"시온 씨도 타요. 내가 사진 찍어줄 테니까."
"네? 아, 전 됐어요. 안 찍어도 됩니다."
시발, 저기 앉아서 사진 찍히고 있으면 진심으로 수치사 할지도 모른다.
다급하게 등을 돌려 여기서 벗어나려는데, 오월이 내 손을 강하게 붙잡았다.
나지막하게 말하며 날 노려보는 오월.
"……저도 찍었잖아요……. 시온 씨도 찍어요……."
"아니, 그건 본인이 찍고 싶다 해서 찍은 거잖아요!"
"제가 언제요? 전 원래 처음부터 시온 씨가 회전목마 탄 사진 찍고 싶었어요."
아, 생각해 보니 그렇네. 오월이 나한테 사진 찍어달라고 말한 적은 없구나.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야.
"아, 싫어요! 절대 안 찍어요!"
날 바라보는 오월의 표정이 매우 굳건하다.
굳건하다 못해 이제는 동시에 우울하고 슬픈 표정까지 짓기 시작하는 오월.
이거 그냥은 못 넘어가겠는데…?
저거 애초에 처음부터 내 사진을 찍으려고 군말 없이 회전목마에 탄 걸 수도 있다.
나도 수치스러웠으니깐 너도 수치스러워 봐라 이거냐?
시발…….
상당히 수치스러운 몇 분을 겪긴 했지만, 너무 즐겁다는 듯 행복하게 웃고 있는 오월을 보고 있으니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내 사진 찍고 싶었다는 건 진심이었구나. 그렇게 웃으면서도 사진은 엄청 열심히 찍어놨네.
물론 사진 자체는 존나 이상하다.
잘 찍었고, 못 찍었고를 떠나서 다 큰 남자 하나가 회전목마 타고 쪽팔려하는 사진이 보기 좋을 리가 없지.
심지어 오월이 너무 즐겁게 사진을 찍어대는 탓에 어그로가 잔뜩 끌려서 주변이 있던 사람들이 다들 나만 쳐다봤다.
몇몇 사람들은 아예 쪽팔려 하는 날 보고 대놓고 웃기까지 했으니 회전목마를 탄 광대가 된 기분이었다.
시발, 오월이 탔을 때보다 몇 배는 더 주목받은 거 같네…….
"배경화면 하고 싶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걷고 있는데, 옆에서 걷고 있던 오월의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다.
옆을 보니 오월이 자신의 핸드폰을 들고 조금 전 회전목마에서 찍었던 내 사진을 아직도 보고 있었다.
배경화면 하는 거야 상관없는데, 왜 하필 저 웃기지도 않는 사진이야?
"그 사진이 그렇게 마음에 들어요?"
"네."
배시시 웃으며 대답하는 오월.
"그럼 그냥 배경화면 하면 되……."
아, 오월은 그런 행동 하나 쉽게 할 수 없겠구나.
아차 싶은 마음에 다급하게 입을 닫았지만, 이미 오월의 표정은 꽤나 우울해져 있었다.
시발, 내가 생각이 짧았네.
어떻게든 기분을 풀어주고 싶은 마음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범퍼카가 보였고, 다행히 줄도 별로 길지 않았다.
재수 좋으면 바로 탈 수도 있겠는데?
"크흠, 나 저거 타고 싶어요."
"네?"
"얼른 타러 가죠!"
난 어리둥절 하는 오월의 손을 붙잡아 다급하게 끌고 갔다.
역시 내 예상대로 얼마 기다리지 않고 범퍼카를 곧바로 탈 수 있었다.
후우…… 재수 좋았네. 이거 타고나면 오월도 우울해졌던 기분이 조금이라도 풀리겠지.
근데, 지금 같이 범퍼카 탄 인원들 연령대가 왜 이러지?
오월과 나를 제외한 주변에 모든 범퍼카에 초등학생들이 타 있었다.
이 씨팔, 잼민이 새끼들이 왜 이렇게 많냐…?
안전요원의 벨트 확인이 끝난 뒤 곧바로 시작 신호가 떨어졌고, 애들끼리 놀라고 자리를 비켜주려는데 누군가 나한테 뒷빵을 존나게 꽂았다.
쾅!!!
악! 시발, 이거 놀이기구 맞아…?
첫 후방추돌 교통사고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각을 느낀 나는 잔뜩 당황해서 뒤를 돌아봤고, 그곳엔 날 들이박은 오월이 씨익 웃고 있었다.
저거 처음부터 저럴 생각이었구만.
뭐, 솔직히 예상하고 있었다.
근데 이건 예상 못 했지.
애들이 예쁜 여자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하는 짓까지 따라 할 줄이야.
주변에 있던 초등학생들이 다 같이 합심이라도 한 듯 범퍼카를 몰아 죄다 날 때려 박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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