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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투브속 그녀들을 내 마음대로-231화 (231/273)

〈 231화 〉 로렌 오키나와 (1)

* * *

로렌과 나는 마주 보고 앉아 가볍게 한 마디씩 던지며 여행 계획을 짜기 시작했고, 30분쯤 지나니 일이 꽤나 커져 있었다.

일본이라니…… 갑자기 국내에서 벗어나게 될 줄이야.

제주도는 사람도 많고 오월하고 엮이는 문제가 있을까 싶어 대충 강원도나 다녀오자는 얘길 했는데, 로렌이 완강하게 거절했다.

여행을 각 잡고 가고 싶은 건지, 본인이 유부녀인 만큼 국내에서 벗어나 마음 편하게 놀고 싶은 건지…….

그렇게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싶어 살짝 고민했지만, 난 결국 로렌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뭐, 차 타고 강원도 쪽으로 가나, 비행기 타고 일본에 가나 어차피 드는 시간은 비슷하니깐 말이야.

그나저나, 일본 어디로 가려는 거야?

"일본에 가는 건 알겠는데, 어디로 갈 건데요?"

난 어쩔 수 없다는 듯 싱긋 웃으며 질문했고, 로렌은 해맑게 대답했다.

"오키나와!"

로렌과 드라이브가서 여행 계획을 짜고 온 지 며칠이 지나고, 드디어 오늘 출발하는 날이다.

살다살다 여자 때문에 여권을 재발급받는 날이 올 줄은 몰랐네.

그래도 나름 공항에서 비행기 타고 다른 나라까지 놀러 간다고 생각하니 묘하게 설레긴 한다.

서하은이 데려다 준다는 걸 떼놓고 오느라 살짝 애먹긴 했지만 말이야…….

뭐, 서하은이야 크게 질투를 하는 편이 아니니 딱히 상관없었다고 쳐도 로렌 입장에서 얼마나 당황스럽겠어.

회사 사장님이 불륜 여행 기사를 해주는 꼴인데.

어쨌든 그렇게 태워다 준다는 서하은에게 괜찮다고 단호하게 말한 뒤 혼자 공항을 향해 가는 중이다.

웬만하면 가는 길에 로렌을 태워서 함께 목적지로 가겠지만, 지금이 아침 출근 시간대라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비행기 시간도 한참 남았으니 라운지 가서 커피나 한잔하고 있으면 되겠네.

로렌도 그쪽으로 오라 해야겠어.

출근 시간치고는 생각보다 차가 막히지 않아 예상보다 빠르게 공항에 도착했다.

흐음…… 이건 너무 빠른데, 로렌도 오려면 아직 한참 남았겠다.

뭐, 여행 가는 건데 시간에 쫓기는 것보단 나으려나?

난 묘한 상쾌함을 느끼며 공항 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본 뒤 걷기 시작했다.

"시온아!"

누군가 거친 동작으로 내게 팔짱을 꼈고, 뒤를 돌아보니 로렌이 숨이 차다는 듯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서 부터 날 보고 달려온 건가?

"뭐야…? 어떻게 벌써 왔어요?"

"일찍 출발한다고 카톡 했잖아."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날 올려다보는 로렌.

"아, 운전하느라 못 봤나 봐요."

"넌 왜 이렇게 일찍 왔어?"

"그러는 누나는요?"

"……그냥, 마음이 급해서 빨리 나왔어."

로렌은 설렘이 드러나는 표정으로 날 바라봤고, 그 와중에 난 그녀의 몸을 순식간에 위에서 아래로 훑어봤다.

평소에도 예쁘게 입고 다니긴 하지만, 오늘은 진짜 애 엄마라고는 상상도 못할 수준이네.

갈색 계열 체크무늬 플리츠 미니스커트와 타이트한 흰색 반팔 크롭 니트, 그 밑으로 신은 검정 니삭스와 검정 워커.

로렌하고 안 어울린다는 게 아니라 이렇게 입고 있으니 뭐랄까, 묘하게 낯설다.

내가 너무 빤히 쳐다보자 치마를 살짝 들어 올리며 자신의 옷매무새를 확인한 뒤 민망하다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로렌.

"……왜? 이상해?"

"아뇨. 너무 예뻐서요."

가볍게 툭 던진 말인데도 로렌은 볼에 홍조를 피웠다.

"신경 쓴 보람이 있네."

"네. 엄청 어려 보여요."

"그래? 그게 예쁘다는 말보다 더 좋다."

로렌은 귀엽게 배시시 웃었고, 그 모습을 바라본 나도 덩달아 웃게 됐다.

근데, 진짜 립서비스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무리 봐도 저건 20대가 맞다.

애엄마 같은 문제가 아니라 딱히 30대로도 안 보여.

아, 일단 좀 걸어야겠다. 사람 다니는 길목 한복판에 너무 오래 서 있었어.

로렌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으는 비주얼이니 말이야.

"커피 아직 안 마셨죠?"

"응. 그럴 시간이 없었지."

"저도요. 짐 부치고 카페가요."

로렌은 날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난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의아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며 내 손을 살짝 붙잡는 로렌.

"아니, 가방 하나 줘요. 들어줄게."

"……고마워."

난 민망해하는 로렌을 바라보며 실소를 터트렸다.

"이씨, 너 일부러 그랬지?"

"아뇨? 뭐가요?"

"……됐어!"

로렌은 캐리어 하나만 끌게 된 덕분인지 조금 전보다 편해 보이는 모습으로 씩씩하게 앞서서 걷기 시작했고, 난 하늘하늘하게 흔들리는 치마 밑으로 그녀의 꼴릿한 허벅지를 바라봤다.

여기까지 온 이상 일본까지 가야 저 여자를 따먹을 수 있다는 게 골때리네.

마음 같아선 당장 아무 데나 끌고 들어가서 치마만 올린 뒤 자지를 쑤셔 박고 싶은데 말이야.

뭐, 공항 화장실에서 섹스하는 걸 절대 불가능하니 참을 수밖에.

난 잠시 입맛을 다신 뒤 로렌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탑승을 기다리며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는 동안 로렌하고 이번 여행에 컨셉을 확실하게 정했다.

무조건 휴양이다.

혹여나 로렌이 존나게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면 어떡하나 살짝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절대 그런 스타일은 아니었다.

물론 나도 아니고.

하지만, 둘 다 맛있는 건 상당히 좋아하니 식당은 꽤나 돌아다닐 예정이다.

이미, 로렌이 잔뜩 기대해서 식당들을 찾아놨다고 하니 난 평소처럼 그녀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맛있는 음식도 먹고, 맛있는 유부녀도 먹겠네.

어쨌든 탑승 수속을 전부 마친 뒤 게이트를 통과했다.

비행기 안에서 잠시 소란스러운 탑승 시간이 지나고, 이내 사람들의 작은 말소리만 들려오는 고요한 순간이 찾아왔다.

사실 로렌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공항에서부터 은근히 걱정하고 있었는데, 아무 문제 없이 비행기에 탑승하는 것까지 성공해서 다행이다.

뭐, 로렌이야 그렇게 유명한 편이 아니니 굳이 알아볼 사람도 없지만.

누가 알아봤다 해도 그녀가 유부녀인 사실을 어지간해서는 모를 테니 지인을 만난 문제가 아니라면 크게 상관없다.

그나저나, 그렇게 유명한 편이 아니라니. 오월을 만나고 나니 어지간한 뉴투버는 그렇게 보이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혼자 히죽거리고 있는데,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이동하는 감각이 몸에 전해지자 내 손을 세게 꽈악 붙잡는 로렌.

"왜 그래요?"

"……별거 아니야."

"설마 비행기 무서워해요?"

가볍게 농담하듯 말했는데, 로렌의 표정이 사뭇 어두웠다.

"조금 불안해서……."

크흠, 딱 봐도 장난치는 건 아닌 듯하네.

이런 사람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근처에 있을 줄을 몰랐다.

"너무 걱정하지 마요. 나랑 있으면 무서운 일 절대 안 생기니까."

난 로렌과 눈을 마주치며 덤덤하게 말했고, 그녀의 표정이 살짝 풀어졌다.

"믿음직스럽네."

"당연하죠. 날 안 믿으면 누굴 믿게?"

내가 어깨를 으쓱대자 결국 작게 웃어버리는 로렌.

"사실 평소엔 이거보다 더 무서운데, 오늘은 너가 옆에 있어서 괜찮은 거 같아."

크흠, 그렇게 말하면 너무 사랑스러워 보이잖아.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하는 로렌의 표정.

계속 보고 있으니깐, 묘하게 꼴리네…….

뭐랄까, 나름대로 강한 이미지가 있었던 로렌이 저런 모습을 보이니 남자의 보호본능을 제대로 자극한다.

그냥 저 표정 자체가 야릇하기도 하고 말이야.

로렌의 눈빛에 빠질 듯 그녀를 빤히 쳐다보던 나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가서 나랑 뭘 할지만 생각해요."

쑥스럽다는 듯 귀를 붉히는 로렌.

"……응."

그 와중에 내 옆에 앉은 남자가 우리 대화를 듣고 억울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푹 숙이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어…… 그 뭐냐, 괜히 미안하네.

내가 로렌에게 말했던 대로 비행기는 오키나와에 무사히 착륙했다.

로렌이 비행기를 무서워할 줄이야, 생각도 못 했네.

심지어 탑승 전에 나 몰래 안정제까지 챙겨 먹었다고 한다.

그런 걱정이 있으면 미리 얘기를 해야지 뭘 숨기고 있어.

그래도 내가 옆에 있어서 덜 무섭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무서워하려면 이륙보다 무서웠을 착륙 땐 표정이 꽤나 편해 보였다.

여전히 내 손을 꼬옥 붙잡고 아랫입술을 질끈 물고 있긴 했지만.

뭐, 그래도 이 정도면 무난하게 온 거 아니겠어?

단지 저런 겁 많은 여자가 나랑 편하게 여행을 즐기겠다는 일념하에 내겐 말도 없이 혼자 두려움을 극복하려 했다는 사실이 묘하게 아련하고, 대견하게 느껴질 뿐이다.

크흠, 살짝 꼴리기도 했고…….

어쨌든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입국 심사를 받으러 갔다.

그리 길지 않은 줄을 기다리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점점 로렌을 향하는 게 느껴졌다.

내 좆집이 예쁘다고 쳐다보는 거니 딱히 상관은 없지만, 괜히 옆에 있는 나까지 시선을 받아서 이럴 때마다 은근히 불편하단 말이지…….

다행히도 성수기가 아니어서인지 줄은 금방 줄어들었고, 몇 가지 절차가 끝난 뒤 우리는 곧장 수화물을 찾으러 갔다.

각자의 캐리어를 챙기고, 난 익숙하다는 듯 앞서 걸어가는 로렌의 안내를 받으며 공항 밖을 향했다.

비행기에서는 잔뜩 쫄아있더니 지금은 또 저렇게 씩씩하게 걸어가는 게 귀엽네.

난 로렌의 옆에 바짝 붙어 그녀의 손을 슬쩍 붙잡았다.

"누나는 여기 와봤어요?"

"응? 아니, 처음인데."

의아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로렌.

"그래요? 되게 능숙하길래 와본 줄 알았어요."

"공부한 거야. 너랑 처음 가는 여행인데, 실수해서 시간 낭비하면 너무 아깝잖아……."

로렌은 민망했는지 말끝을 살짝 흐렸고, 난 싱긋 웃으며 붙잡은 그녀의 손을 들어 올려 손등을 입술에 가져다 댄 뒤 말했다.

"잘했어요."

"간지러워…!"

로렌이 다급하게 고개를 돌리자 그녀의 빨갛게 달아오른 귓불이 눈에 들어왔다.

귀엽네, 진짜.

"간지러운데 손은 왜 안 놔요?"

"……놓기 싫으니까."

으, 진짜 왜 이렇게 귀엽냐.

난 로렌의 손등을 세게 깨물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며 걸었고, 이내 공항 밖으로 나오게 됐다.

그다지 이국적이지 않은 풍경과 로렌의 손등에서 느껴지는 좋은 향기.

이건 향수가 되겠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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