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9화 〉 메이드 서하은 (2)
* * *
서하은과 단둘이 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
로렌과 함께 오는 길에 운전시켰던 게 미안해서 지금은 내가 운전대를 잡고 있다.
가볍게 생각하면 평범하게 차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이지만, 문제는 평소 그녀가 있는 장소에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미묘한 어색함이 감돈다는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분위기야…….
그렇다고 서하은이 삐쳤다거나, 기분이 상해 보이는 건 또 아니다.
그냥, 단지 기분이 꽤나 싱숭생숭해 보인다.
분위기를 조금 바꿀 겸 아무 얘기나 조금 해볼까 싶어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서하은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먼저 내게 말을 건넸다.
"시온아, 점심 먹어야지?"
"응. 누난 밥 먹고 온 거야?"
"아니…… 늦잠자서 못 먹었어, 배고파 죽을 거 같아."
"그럼, 얼른 밥 먹으러 가자.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초밥…?"
서하은은 귀엽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고, 그 모습을 본 난 작게 미소 지었다.
"그래."
딱봐도 공항에서 돌아오는 길에 로렌이랑 초밥 먹었던 얘기했던 게 신경쓰였나보구만.
한 번 질투하기 시작하니깐, 이제는 완전 대놓고 하네.
신호에 걸림 틈을 타 흐뭇한 표정으로 서하은을 바라보는데 그녀가 꽤나 즐거워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가서 할 얘기도 있어."
"뭔데?"
"도착하면 알려줄 거야!"
식사를 하며 들은 서하은에게 들은 이야기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내가 이 여자, 저 여자들과 노는 사이 벌써 집을 구하다니.
하물며 서하은하고도 며칠 놀았었지.
난 서하은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잘했어. 진짜 고마워."
오는 길 내내 묘하게 뚱해 보였던 서하은은 내 칭찬 한 번에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볼을 붉히며 손을 꼼지락거렸다.
그나저나, 지금 간단한 감사 인사로 끝내긴 했지만 서하은이 확실히 대단하긴 하네.
대체 무슨 수로 건물을 그렇게 빨리 구한 거야? 심지어 신축 고급빌라를 통째로 말이야.
심지어 서하은이 내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는지, 그녀가 보여준 사진 속에 딱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건물이 담겨있었다.
"아직 완벽하게 계약한 상태는 아니야, 지금이라도 바꿀 수 있으니 마음에 안 드는 거 있으면 얘기해줘."
"진심으로 마음에 들어. 위치도 그렇고, 평수도 그렇고, 전부 다 내가 생각하던 건물이야."
사실 건물 하나를 통째로 사는 과정이니 내가 생각한 여러 가지 조건을 전부 채울 순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서하은이 보여주고 있는 것들은 전부 다 내 생각과 맞아떨어졌다.
내가 마음에 들어 하자 기분이 더 좋아졌는지 배시시 웃으며 나 손을 살포시 잡는 서하은.
"그럼 밥 먹고 바로 구경하러 가볼래? 이 근처야."
"응. 시간 많으니까, 천천히 먹고 가자."
솔직히 밥이고 뭐고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건물을 보러 가고 싶은 기분이었는데, 서하은이 아직 배부르게 못 먹는 거 같아서 참았다.
서하은이 해주는 안내에 따라 목적지에 도착한 나는 곧장 차를 세웠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비스듬히 위를 바라보니 사진에서 봤던 것처럼 고급지고 이상적인 빌라가 있었다.
심지어 도심에서 떨어진 곳이라 신경만 조금 쓴다면 내 여자들이 가진 유명세 때문에 입을 피해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거 같다.
물론, 보안이 살짝 걱정되긴 하는데, 서하은을 통해 믿을 수 있는 사람들도 해결하는 방법도 있고, 여차하면 하령이나 한국에 다른 강한 여성들도 있을 테니 괜찮겠지.
세대수가 조금 많은 거 같아서 공실 때문에 걱정이긴 하지만…….
뭐, 내 여자들로 다 채워 넣고도 부족하면 서하은이 운영하고 있는 MCN 소속 여성 뉴투버들도 있으니 크게 걱정할 건 없겠지.
애초에 서하은 정도 재력을 가진 사람이 건물 공실이 생겼다고 큰 문제가 벌어질 일도 없을 테니깐 말이야.
멍하니 서서 건물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새 내 옆에 다가온 서하은이 팔에 가슴이 말랑하게 닿을 정도로 바짝 붙어 내게 팔짱을 꼈다.
"들어가 봐야지?"
"응, 그러자."
서하은과 다정하게 빌라 쪽으로 걸어가면서도 계속해서 눈앞에 건물을 두리번거리며 훑어보게 된다.
이만한 건물을 내가 가지게 되다니, 진짜 기분 묘하네.
물론, 명의는 서하은으로 돼 있긴 하지만, 결국 내 마음대로 원하는 용도로 사용할 예정이고, 애초에 하은이 자체가 내 완벽한 메이드니 내 건물이라는 기분이 들 수밖에.
뭐, 사실 이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 곳이 내가 진짜 원하는 장소가 되려면 건물 자체보단 저 안에 누가 있느냐가 중요하니까.
빌라 안으로 들어온 서하은과 나는 곧장 엘리베이터를 탔다.
"몇 층으로 가볼래?"
"아무 층이나 상관없지 않나, 실내는 다 똑같은 거 아니야?"
입을 앙다문 채 귀엽게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서하은.
"층마다 호수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어."
아, 그래서 밖에서 봤을 때 건물이 그렇게 요상하게 생겼던 거였구나.
그냥 네모 반듯하게 쭉 생기면 되는 건물이 왜 울퉁불퉁한가 했나.
난 뭐, 디자이너의 예술적 감각 그런 건 줄 알았지.
"크흠, 제일 넓은 데가 어딘데?"
"맨 위층!"
"그럼 거기로 가자."
내 대답이 끝나자마자 서하은은 곧장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그나저나, 신축건물이어서 그런가 엘리베이터도 고급스럽네.
이 정도면 내가 묵고 있는 호텔보다 좋은 엘리베이터 인 거 같은데…?
심지어 빠르기도 존나 빠르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마자 서하은을 따라 걸으니 이내 굳이 닫혀 있는 현관문 앞에 서게 됐다.
서하은 미리 챙겨온 마스터 키를 도어락에 가져다 대자 문이 열렸고, 우리는 곧장 집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상당히 넓은 거실과 고급스러운 가구들이었다.
"내 생각보다 더 넓은 거 같은데? 가구들도 다 새 거 같고, 훌륭하네."
별 생각 없이 한 집 칭찬이었는데, 옆에 있는 서하은이 민망해한다.
이런 모습도 나름 귀엽네.
내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걸 확인한 하은이는 흠칫 놀라며 다급하게 말했다.
"크흠, 이런 게 몇 개 더 있어."
"그래? 다 이런 식으로 가구가 세팅돼 있는 거야?"
"아니 그렇진 않고, 여긴 풀옵션이라 그래. 아예 옵션 없이 완전히 빈집도 있어."
그것도 나쁘지 않네. 분명히 내 여자들 중에 자기 가구를 챙겨서 이사 올 사람이 있을 테니 말이야.
"들어가자, 더 구경해볼래."
"응."
난 서하은의 손을 붙잡으며 안으로 들어갔고, 그녀는 내 손을 꼬옥 잡으며 날 따라왔다.
안쪽으로 들어오니 큰 침대가 있는 안방과 거실과 비슷한 사이즈 정도 돼 보이는 TV가 설치돼 있었다.
TV도 두 개나 있고, 있을 거 다 있는 수준이 아니라 오히려 살짝 과한 느낌이네.
하긴 풀옵션이라 했으니 이 정도는 당연한 거겠구나.
침실을 들어가지 않고 앞으로 직진하니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꽤나 넓은 테라스가 보였다.
미친, 까지 있어?
이 정도면 빌라가 아니라 단독주택이라 봐도 무방하겠는데…?
심지어 풀옵션이란 이름에 걸맞게 테라스엔 예쁜 테이블과 의자까지 세팅돼 있었다.
열심히 두리번거리며 집안을 구경하다 서하은이 내 어깨에 머리를 툭 기댔다.
"마음에 들어 시온아?"
"응. 내가 살고 싶을 지경인데?"
"살면 되지 시온이 건데."
오늘따라 더 사랑스러워 보이네.
일단, 이렇게 제일 좋은 방 중에 하나는 무조건 서하은에게 줘야겠다.
사실상 이런 집을 구해온 일등 공신인데, 가장 좋은 방을 쓰는 건 당연한 거지.
그리고, 이런 방이 몇 개 더 있다고 했으니 또 하나는 오월에게 주는 게 좋겠네.
오월은 제주도에서도 상당히 넓은 집에 살았으니 이 정도는 돼야 나름대로 만족스러울 것이다.
물론, 아직 오월에게 이사에 대한 이야기는 꺼낸 적도 없지만…….
뭐, 그래도 준비해둔 방법은 많으니 크게 걱정하진 않는다.
잘 되겠지.
그렇게 옆에 서하은을 끼고 집안을 한참 구경하던 나는 소파에 풀썩 주저앉았다.
"다 본 거 같아. 이제 좀 쉴래."
여행 끝나고 공항으로 돌아온 직후, 곧장 밥 먹고 집 구경을 했으니 지칠 법도 하다.
"응. 자고 가도 되니깐, 시온이 편한 대로 해."
서하은은 여전히 내 손을 살포시 잡은 채 앉아 있는 날 살짝 허리 숙여 바라보고 있었고, 난 그녀를 확 끌어안아 내 무릎 위에 앉게 했다.
"누나도 좀 쉬어, 아침부터 공항까지 오느라 고생했잖아."
"……아니야, 힘든 거 없었어."
"그래도 쉬어."
"응……."
내게 안긴 채 쑥스럽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이는 서하은.
이렇게 얌전히 있는 모습을 보니깐 또 새롭네.
내 어깨와 목 사이에 얼굴을 처박고 숨을 색색 쉬던 서하은은 고개를 들어 떨리는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시온아."
"응?"
"그, 어…… 다른 구멍으로 해봤다는 거, 진짜야…?"
억울하다는 듯 묘하게 슬픈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서하은.
이 얘기를 계속 신경 쓰고 있어서 표정이 안 좋았구나.
……그래도 뭐, 거짓말을 할 순 없잖아. 고작 이런 걸로 로렌의 기억을 조작할 수도 없고…….
그리고, 기억을 어쩌니저쩌니하기엔 하은이의 이런 반응이 너무도 재밌다.
"응, 진짜야."
처음 이 얘기를 로렌에게 들었을 때처럼 다시금 굳어버린 서하은은 굳게 다짐했다는 눈빛으로 침을 꿀꺽 삼키며 내 귀에 속삭였다.
"……나랑도 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