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0화 〉 리나 수아 일상 (2)
* * *
날 흘겨보고 있는 두 사람을 마주하고 있자니 생각보다 말이 안 나왔다.
단순히 이사 얘기하는 건데, 왜 묘하게 긴장이 되냐.
내가 봤을 땐 내용이 문제라기보단, 아직도 날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보는 저 눈빛들 때문이다.
후우…… 이거 잔소리 꽤나 오래 듣겠구만.
괜히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은 나는 천천히 입술을 뗐다.
"리나 너, 여기 사는 거 부모님한테 제대로 허락은 받았어?"
"당연히 받았지! 나 이제 당당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리나는 기세등등하게 어깨를 펴며 말했고, 난 피식 웃어버렸다.
왠지 저번보다 리나 물건이 많이 늘어난 거 같더라.
옷방을 슬쩍 보니 딱 봐도 수아 취향은 아닌 옷들이 정리돼 있어서 뭔가 했는데, 리나 옷이었구나.
그 외에 생필품들도 꽤 산 거 보면 확실히 허락은 받은 거 같네.
난 잠시 숨을 고른 뒤 덤덤하게 말했다.
"잘됐네. 리나, 너 살 집 구해졌어. 그러니깐 가고 싶으면 오늘 당장 가도 돼."
"……어, 진짜?"
"진짜지, 나중에 대표님한테 감사하다고 꼭 얘기해라."
사실상 서하은이 혼자 발로 뛰면서 구한 집이니깐 말이야.
근데 반응이 왜 이래? 당연히 좋아할 줄 알았더니.
리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고, 수아는 별생각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일단 나머지 얘기도 얼른 해줘야지.
"리나 너가 살 집만 구한 건 아니야. 혹시, 수아 씨는 이사 갈 생각 없어요? 여기보다 훨씬 좋을 거라 생각해요. 물론, 금전적인 부분은 제가 다 알아서 해결할 거니 전혀 신경 쓸 필요 없고요."
그 뿐만이 아니다. 여기보다 넓은 건 당연한 거고, 위치상 이 동네보다 치안까지 나름 자신 있다.
수아도 금액적인 문제 전혀 없이 더 좋은 집으로 가는 게 좋겠지.
그러나, 이번엔 수아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니, 대체 뭔데? 뭐가 문제야?
수아는 저번에 혼자보단 덜 쓸쓸해서 좋다는 말을 해서 무작정 반길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이사 얘기를 듣고 둘 다 이렇게까지 당황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얼타고 있는 두 사람은 내가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자, 리나와 수아는 잠시 서로 눈을 마주쳤고, 이내 리나가 어떡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 음…… 오빠 잠깐만, 사실……."
리나는 민망하단 말투로 내게 설명을 이어갔고, 나와 수아는 옆에서 묵묵히 들었다.
"이런 사정이야……."
대화를 마친 뒤 고개를 살짝 숙이며 내 시선을 피하는 리나.
"그러니깐, 리나 너는 수아 씨랑 같이 사는 조건으로 부모님께 독립을 허락받았다는 거지? 수아 씨도 그걸 받아들인 거고?"
리나와 수아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고, 둘의 그 모습이 상당히 귀여웠다.
허락 받았다고, 당당하다더니 반쯤 구라였구만.
일단 대충 정리해보면, 리나는 수아와 함께 사는 조건으로 나름의 자취 생활을 허락받은 거고, 리나의 부모님은 수아가 믿을만하니 둘이 함께 사는 조건을 걸었다는 거네.
하긴, 수아가 말썽을 부릴 이미지도 아니고, 애가 워낙 똑 부러지니 리나와 같이 지내면 여러모로 괜찮겠다고 생각하신 거 같다.
좋은 선택이긴 해. 리나가 가끔 철없게 굴어도 수아가 어느 정도 억제기 역할을 해줄 테니까.
그래서 둘 다 표정이 안 좋았던 거였어.
리나는 수아가 없으면 절대 혼자 살 수가 없는 상황이고, 수아는 이사를 가고 싶어도 기껏 독립하게 된 리나가 자유를 빼앗길까 마음에 걸리는 거겠지.
이런 걸 보면 수아가 참 착하긴 해.
뭐, 어쨌든 문제는 생각보다 별거 아니잖아?
난 여전히 굳어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말했다.
"그럼 내가 구한 집에서 둘이 같이 살면 되겠네."
리나와 수아는 토끼 눈을 뜬 채 날 바라봤고, 난 말을 이어갔다.
"결국 조건은 리나 부모님은 리나가 수아랑 같이 살아야 자취를 시켜주신다는 거잖아? 그럼 이번에 구한 집에서 둘이 같이 살면 되잖아. 이렇게 하면 전혀 문제없는 거 아니야?"
"어…… 그러네…?"
멍하니 내 얘기를 듣고 있던 리나가 손을 모으며 수긍하자, 수아도 꽤나 긍정적인 표정을 지었고, 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문제가 없는 수준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거지. 집도 더 넓으니 두 사람이 살기도 더 좋을 거고, 일단 침대가 두 개니 리나 잠자리도 해결되는 거니까."
이쯤 되면 더 설득할 것도 없겠지?
하지만, 이사를 가는 게 부담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수아를 위해 한마디 더 한다.
"위치를 따지면 이 동네보다 치안도 좋을 거고, 나도 같은 건물에 살 거야."
수아는 이제 거의 직전까지 내 꼬드김에 넘어온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리나는 집주인이 아니라 결정권이 없어 답답해 죽을 것 같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분위기만 봐서는 당장이라도 짐을 쌀 거 같은 느낌이었다.
자신의 팔뚝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겨 있던 수아가 입을 열었다.
"……너무 좋긴 한데, 그래도 가족이랑 상의하고 결정해야 할 거 같아요."
하긴, 수아도 아직 스무 살짜리 여자애였지.
애가 하도 어른스럽게 굴다 보니 깜빡했네.
그래도 금전적인 문제 전혀 없이 더 좋은 집으로 간다는데, 가족들이 반대할 일은 없을 거다.
출처가 수상한 것도 아니고, 소속된 회사에서 다 지원해주겠다는데, 뭘 의심하겠어.
사실상 수아가 가족들에게 하는 건 상의가 아니라 통보가 되겠지.
"그럼, 가족분들하고 대화 나누고, 결정되면 수아 씨가 다시 얘기해주세요."
수아는 굳은 의지가 담긴 눈빛으로 날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귀엽네.
수아의 옆에서 리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었지만, 자신의 처지를 똑바로 이해하고 있는 만큼 답답한 마음을 내보이진 않았다.
리나도 어리광을 조금 부려서 그렇지, 똑똑한 여자애니까.
난 사뭇 진지해진 분위기를 풀어볼 겸 다시 입을 열었다.
"둘 다 궁금할 거 같은데, 집 사진이라도 볼래?"
식탁에 모여 앉아 다 같이 내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새집에 대한 구조와 위치 등 자세한 내용을 설명해 줄수록 두 사람은 점점 더 이사 가고 싶은 마음에 차올랐는지 꽤나 훌륭한 리액션을 보였고,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가던 중 리나가 다급하게 내 손목을 붙잡았다.
"아, 맞다! 오빠 떡볶이 먹고 가."
불건전한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울 뻔했지만, 가까스로 막아냈다.
"……갑자기 웬 떡볶이야?"
"아까 주문해 놨거든, 이제 슬슬 올 거야!"
리나가 해맑게 대답하자 옆에서 수아도 거들었다.
"리나가 많이 시켜서 둘이서 먹기엔 조금 많아요. 오빠도 같이 먹어요."
흐음, 하령이랑 아침 먹고 와서 별로 배가 안 고프긴 한데…… 애들이 저렇게 얘기하니깐 도저히 거절을 못 하겠네.
알겠다고, 먹고 가겠다고 대답하려는데, 갑자기 리나가 튀어나왔다.
"야! 내가 뭘 많이 시켜, 저번에 같이 먹었을 때 모자라서 이렇게 시킨 거잖아!"
"그땐 내가 첫 끼였잖아. 그리고, 너가 많이 먹는 거 맞거든?"
"그래서 넌 파스타 시켜 먹을 때 맨날 내 빵 뺏어 먹냐?"
"……그게 어떻게 내가 뺏어 먹는 게 돼? 너가 식단 한다고 안 먹은 거잖아! 애초에 식단 하는 애가 리조또를 왜 먹어?"
"밀가루 안 먹으면 됐지!!! 리조또는 쌀이거든?!"
왠지 평화롭게 넘어가나 했더니 또 곧장 싸우기 시작하는 리나와 수아.
이쯤되면 참 대단하다 싶어.
그래도 너네 나 없는 사이에 많이 가까워졌구나.
정신 사나운 와중에 대화 내용을 집중해서 들어보니 나름대로 끼니도 같이 해결하면서 잘 지낸 거 같네.
난 티격태격하는 리나와 수아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근데, 너네 뭘 또 먹어? 아까도 뭐 먹고 있더만."
말이 끝나자마자 수아가 억울하다는 듯 재빠르게 입술을 뗐다.
"전 과자 안 먹었어요…!"
놀라운 반응 속도로 대답하는 수아를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정신을 차렸는지 발끈하며 내게 따지는 리나.
"……그건 간식이고…! 이건 아침이지!!!"
"지금 오후 한 시거든?"
"아점이야, 아점!"
"……맞아요!"
변명하듯 말하는 두 사람을 보며 나도 모르게 실소를 터트려버렸다.
집 설명을 마저 다 해주고, 조금 전 배달이 도착해 지금은 떡볶이를 먹고 있다.
난 대충 소시지를 하나 꼬치로 꾸욱 찌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오늘은 둘 다 쉬는 날이야?"
입을 귀엽게 오물오물 거리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리나와 수아.
그래도 둘이 사이좋게 영화보고 있었구만.
쉬는 날엔 집에서 뒹굴 거리는 게 좋긴 하지.
생각보다 음식 맛이 괜찮아 본격적으로 먹어보려는데, 떡볶이를 꿀꺽 삼킨 리나가 내게 말을 걸었다.
"오빠 수아랑은 바닷가에서 조개구이 먹었다며?"
민망하다는 듯 내 시선을 피하는 수아.
너네 둘이서 평소에 대체 무슨 대화를 하고 사는 거야…….
"응. 그랬었지. 그게 왜?"
"나랑은 바다 간 적 없잖아!!!"
갑작스럽게 윽박지르는 리나 탓에 당황하고 있는데, 이번엔 수아가 입을 열었다.
"맞아. 오빠, 리나랑은 글램핑도 다녀왔다면서요?"
"그랬었죠…?"
너네 뭐 그런 걸로 자랑 대결이라도 했었니…?
씩씩 거리는 리나와 차분하게 날 바라보는 수아를 번갈아 보던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버렸다.
"나도 조개구이 먹고 싶어!!! 먹을래!!!"
"저도 글램핑 가고 싶어요. 한 번도 못 가봤단 말이야."
내가 시선을 피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덤벼드는 두 사람.
……시팔, 떡볶이 먹다가 갑자기 이게 무슨 상황이야.
그래도 뭐, 이젠 여자애들 다루는데 노하우가 좀 생겼다.
난 까칠한 오월도, 성격 더러운 하령도 다 내 여자로 만든 남자거든.
손에 들고 있던 꼬치를 내려놓은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거 다 먹고, 셋이 바람이나 좀 쐬러 갈까?"
내 말을 듣고 서로를 바라본 채 묘하게 간질간질한 눈빛으로 시선을 나누던 리나와 수아는 동시에 대답했다.
"응!"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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