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2화 〉 리나 수아 일상 (4)
* * *
리나와 수아는 여전히 티격태격하며 나보다 앞서 걸어가고 있었고, 난 그 뒤를 따라가며 주변을 둘러봤다.
확실히 사람도 별로 없고 좋네.
오랜만에 맡는 바다 내음도 좋고.
평일인 것도 그렇지만, 완전 애매한 시간대에 도착한 덕분인 거 같다.
문제는 이 안되는 사람 중에 리나와 수아를 알아보는 몇몇이 있다는 거지.
어느정도 예상했던 상황이니 큰 문제는 아니다.
심지어 남자들보단 여자들이 두 사람을 더 잘 알아보는 거 같네.
대화는 들리지 않지만, 저 표정과 몸짓을 보면 거의 확실하다.
그게 아니면 뭐, 그냥 예뻐서 쳐다보는 거겠지.
저렇게 예쁜 애들은 흔치 않으니까.
"진짜 깨물면 어떡해! 자국났잖아!!!"
"그럼 도망을 잘 가시던가."
시끄럽게 따지는 리나와 무덤덤하게 앞으로 걷기만 하는 수아.
……그냥 둘이 어그로를 존나 끌어서 쳐다보는 걸 수도 있겠다.
어쨌든, 난 계속 리나와 수아에게서 살짝 떨어져 걸었고, 사람들은 내겐 별 관심이 없었다.
스캔들이고 자시고 이 정도면 동생들 데리고 나들이 나온 오빠로 보이겠어.
……비슷한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두 사람의 뒤태를 감상하던 중, 리나가 날 불렀다.
"오빠!"
제자리에 멈춰 서서 날 바라보고 있는 리나와 수아.
어그로 끌어서 사람들이 쳐다본다는 말은 취소다.
존나 예뻐서 쳐다본 게 맞네.
"거기서 뭐해!"
"얼른 와요."
해수욕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사람이 날 기다리고 있었고, 난 고개를 푹 숙인 채 헛웃음을 터트렸다.
"갈 거야. 너희가 너무 빨리 걷잖아."
준비하는 리나와 수아를 기다리며 미리 찾아놨던 가게에 왔다.
사람도 거의 없는 수준이고, 분위기상 다른 손님이 들어올 거 같지도 않네.
하긴, 대낮부터 누가 조개구이를 먹으러 오겠어.
내가 오긴 했지만…….
어쨌든, 가게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2층 발코니 창문 너머로 보이는 모래사장과 파도치는 바다까지.
내가 찾은 가게긴 하지만, 이 정도면 많이 훌륭한데?
일단 사람이 없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그나저나, 소주를 못 마시는 게 아쉽네.
애들은 어차피 조개구이가 먹고 싶어서 온 거니 딱히 술 생각 없을 테고.
나만 고통받는 구만.
뭐, 운전을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지.
애들이랑 같이 와서 대리를 부르기도 좀 그러니까.
그래도 애들 덕분에 술 없이 놀아도 꽤나 즐거운 거 같다.
잠시 가게를 둘러보던 나는 다시 앞을 바라봤고, 한 손에 장갑을 낀 채 열심히 가리비를 괴롭히고 있는 리나와 수아가 눈에 들어왔다.
"너넨 오기 전에 떡볶이 실컷 먹어놓고 그게 그렇게 들어가니?"
리나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날 노려봤다.
"오빠가 늙어서 그래. 원래 이 정도는 먹는 게 정상이거든? 그리고 우리 둘 다 오늘 치팅 데이라 이 정도는 먹어줘야 돼."
"맞아요. 이렇게 먹는 날도 있어야지."
고개를 끄덕이며 리나의 말에 수긍하는 수아.
너네 이럴 때는 안 싸우는구나.
저렇게 논리적으로 말하는 리나도 오랜만에 보는 거 같네.
"그러냐……."
날 웃음을 참기 위해 괜히 고개를 돌리며 답했고, 의아한 표정으로 잠시 날 바라보던 두 사람은 다시 집게를 들었다.
조개구이를 다 먹고 나와서는 근처에서 여러 가지 게임을 하며 놀았다.
다트 던져서 풍선도 터트리고, 총 쏴서 인형도 떨구고, 농구공도 몇 번 던져보고.
특히 니가 이겼네, 내가 이겼네 하면서 티격태격하는 리나와 수아를 보는 게 상당히 재밌었다.
심지어 가게 주인아저씨까지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봤을 정도였으니까.
하긴, 예쁘고 귀여운 여자애들이 자기 가게에서 경쟁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흥미가 안 생기겠어.
심지어 둘 다 실력이 꽤나 좋다.
계속해서 내기하며 판수를 늘리는 리나와 수아를 보며 내가 나서서 다 털어줄까 싶다가, 둘이 생각보다 다트와 총쏘기를 너무 잘해서 포기했거든.
심지어 인형도 4개나 땄으니 말 다 했지.
주인 아저씨가 살짝 편파판정을 한 거 같긴 하지만…….
어쨌든, 그렇게 한창 게임을 하고 놀다가 지금은 바로 맞은 편에 있는 포차에 간식거리를 먹으러 왔다.
리나와 수아가 서로 편드는 모습이 은근 재밌어서 또 먹냐고 놀리려 했는데, 윤기나는 소세지랑 갓 튀긴 핫도그를 보고 있으니 참을 수가 없네.
나도 먹으면서 그런 소리 하긴 조금 그렇거든…….
난 소세지를 한입 베어먹으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
"너네 둘 다 이런저런 재능이 많구나."
"당연하지. 나 얼마 전에 촬영하면서 실총도 싸봤어."
칭찬을 들은 리나가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말하자 옆에서 수아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난 그런 거 안 해봐도 너보다 잘하는데, 그럼 내가 더 대단한 거지?"
"……야, 한 판 더 해?"
"갈래?"
서로를 노려보는 두 사람 뒤에서 으르렁대는 짐승이 보이는 거 같다.
아니, 근데 게임 더 하는 건 안돼.
기다리는 거 지루하단 말이야.
내기까지 껴서 게임을 더 하겠다는 두 사람을 겨우 달래서 모래사장 쪽으로 데리고 왔다.
뭐, 반쯤 협박이긴 했는데…… 어쨌든, 중재했으면 된 거잖아?
리나와 수아는 여전히 결판이 제대로 나지 않은 것에 불만이 있는듯했지만, 내 눈치가 보여서인지 더 난리를 치진 않았다.
그럴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기다리는 게 지루했던 거지 너네 말싸움 하는 건 재밌거든.
난 묘하게 시무룩해 보이는 두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안쪽까지 들어가 볼래? 대신 발에 모래 들어갈 수도 있어."
"갈래요."
"응. 기껏 왔는데, 바다는 보고 가야지."
리나와 수아의 표정이 조금이지만 밝아졌고, 우린 파도가 잔잔하게 치는 모래사장으로 내려갔다.
난 탁 트인 시야를 둘러보며 숨을 들이마셨다.
이 둘을 데리고 바닷가를 걷게 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네.
리나와 수아는 뭐라 떠들어대며 빠르게 바다 쪽으로 다가갔고, 난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따라갔다.
그나저나, 이쪽으로 오니깐 사람이 꽤 있다.
뭐, 대부분 멀찍이 있어 얼굴도 안 보일 정도긴 하지만, 일단 다들 커플로 보인다.
더블 데이트를 하는 건지,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 부탁을 한 건진 모르겠는데, 사람들 사진 진짜 열심히 찍는구나.
리나와 수아도 그 모습을 봤는지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애들도 사진 찍고 싶어서 그러나?
그 와중에 둘이서 같이 저런 얼굴을 하고 있으니 존나 귀엽네.
후우…… 평소 같으면 이런 말 절대 안 하겠지만, 오월과 로렌하고 잠시 지내면서 여자들이 사진 찍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아버렸으니 무작정 모른 척하기도 좀 그렇다.
어쩔 수 없지. 뭐, 사진 찍는다고 별문제 생기겠어?
난 리나와 수아에게 다가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우리도 사진 찍을까?"
"네. 좋아요."
"응! 찍을래! 천수아, 니가 나랑 오빠 찍어줘."
수아는 오늘 본 표정 중 가장 사나워 보이는 표정으로 리나를 노려봤다.
"니가 나랑 오빠를 찍어줘야지. 내 집에 얹어 살면서 은혜 갚을 생각은 일절 안 하니?"
"……그거랑 이거랑은 별개지!!! 엄마가 월세도 다 내주잖아!!!"
"그게 니가 내는 거야? 넌 나한테 뭘 해줄 건데. 지금 사진 찍어주면 딱 아니겠어?"
리나는 수아에 말에 말문이 턱 막혔는지 잠시 우쭐쭈물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번갈아가면서 찍어주면 되지!!!"
"싫어. 다른 건 몰라도 오빠가 다른 여자랑 있는 사진 같은 거 찍을 생각 절대 없어."
다시 토론을 펼치며 말싸움을 하는 리나와 수아.
그 와중에 수아 쟤는 내가 리나랑 섹스해도 별말 없더니 오히려 사소한 쪽에서 용납을 안 해주는구나.
하긴, 리나는 댓글 명령으로 질투와 소유욕을 많이 줄여놨지만, 수아에겐 그런 작업을 한 적이 없지.
뭐, 이해는 한다.
내가 다른 여자랑 섹스하는 것과 자신이 직접 다른 여자와 다정하게 서 있는 내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건 분명 다른 개념일 테니까.
그래도 서로 찍어주는 건데, 너무 야박한 거 아니냐, 수아야…….
난 여전히 말싸움을 하고 있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럼, 우리도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서 셋이 같이 찍으면 되잖아."
"난 오빠랑 단둘이 찍고 싶은데."
"……저도요."
다시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리나와 수아.
이거 계속 들어주고 있다가는 끝이 안 나겠구만.
"안돼. 서로 기분 상하게 하는 일이니깐, 그건 다음에 하고, 오늘은 내가 말한 대로 하자. 이러다 집 갈 때 퇴근 시간 겹치겠다."
수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리나는 한 마디를 더 거들었다.
"퇴근 시간이 뭔 상관이야. 그냥 자고 가면 되지……."
들릴듯 말듯 작게 속삭이며 투덜대는 리나.
저거 진짜 남의 말 지지리도 안 듣네.
"너네 내일 스케줄 있잖아. 그러다 대표님한테 혼난다?"
"이씨……."
리나는 조금 성질은 부리긴 했지만, 어쨌든 내 말에 수긍하는 눈치였다.
서하은 이름 파는 게 생각보다 효과가 좋구나, 평소에도 자주 써먹어야겠어. 애들이 말을 잘 듣네.
물론, 그 대표님은 오늘 나한테 후장 따일 준비를 하고 있지만.
어쨌든, 이미 말을 다 해버렸으니 이제 사진을 부탁할 사람을 찾아야 한다.
근데, 우리가 저런 식으로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하다간 찍어주는 사람이 분명 리나와 수아를 알아볼 거 같단 말이지.
문제는 이런 걱정하는 의미가 전혀 없을 정도로 우리 근처에 사람 자체가 없었다.
시발, 일 났네. 저 멀리까지 가서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멘탈이 살짝 나가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모래사장 쪽으로 내려오고 있는 노부부가 눈에 들어왔다.
……딱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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