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3화 〉 서하은 애널 (1)
* * *
나와 비슷한 타이밍에 노부부를 발견한 리나가 곧장 그쪽으로 가서 재롱을 떨며 부탁했다.
뭐라고 말을 걸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리나 쟤는 행동도 빠르네.
뭐, 그렇다고 수아가 행동이 느리다는 건 아니다.
노부부를 못 봤던 수아는 저 멀찍이 있는 사람들한테 부탁하려 했거든.
어쨌든 두 분은 귀여운 리나 덕분인지 흔쾌하게 부탁을 받아들였고, 천천히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찍어줘도 괜찮겠어요?"
할머니의 걱정스러운 표정을 본 나와 수아는 다급하게 대답했다.
"당연하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수아는 고개를 푹 숙여가며 인사했고, 난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확실히 예쁜 애들이 싹싹하니 보기 좋네.
할머니도 나와 같은 마음이신지 은은한 미소가 얼굴이 피었다.
"아이고…… 그래도 우리 양반은 사진 찍는 걸 좋아하니깐, 일단 맡겨봐요."
"편하게 찍어주세요. 찍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그나저나, 할아버지는 엄청 과묵하시구만.
가까이서 보니 두 분 다 생각보다 더 연세가 있으신 거 같네.
그래도 저분들이면 리나와 수아를 알아볼 일도 없고,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한다.
제일 가까운 사람을 찾은 건데, 운이 좋았네.
사진을 잘 찍어주실지는 살짝 걱정이긴 하지만…….
노부부에게 예의 있게 고개 숙여 감사를 표시한 리나는 자신의 핸드폰을 건네 드린 뒤 나와 수아가 있는 쪽으로 빠르게 걸어왔다.
우리는 살짝 뒤로 물러나 제대로 바다가 배경으로 나올만한 위치에 자리를 잡았고, 리나와 수아는 내 양쪽에 서 있었다.
자연스럽게 내 양팔에 팔짱을 끼는 두 사람.
둘은 날 사이에 두고 잠시 서로를 노려본 뒤 묘하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를 바라봤다.
너네 카메라 앞에 서 있는 게 먹고 사는 일이면서 그건 대체 무슨 표정이냐…….
"학생들, 찍을게요…!"
과묵한 이미지와 다르게 상당히 친절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리나는 팔짱을 낀 채 더욱더 바짝 붙어 내 팔뚝을 가슴으로 꾸욱 눌렀다.
살짝 당황해서 왼쪽을 바라보니 리나가 음흉하지만, 순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물론, 이 모습을 나만 본 건 아니다.
수아는 리나를 보고 입술을 삐죽 내민 뒤, 질 수 없다는 듯 가슴을 쭈욱 밀어, 내 반대편 팔뚝에 가져다 댔다.
아니, 너네 왜 이런 걸로 싸우는 거야…….
어르신들 보시는 앞에서 이런 상황에 처해져 있으니 아무리 나라도 민망하고 당황스럽다.
하지만, 이거 존나게 황홀하다.
옆에 서 있기만 해도 즐거울 거 같은 관능미 넘치는 두 여자가 내 팔에 가슴을 문대고 있는데, 어떻게 황홀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이렇게 훌륭한 가슴으로 하는 질투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젊은 친구가 인기가 많네."
노부부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고, 난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하, 아닙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대충 넘기려는데, 다시 주제를 붙잡는 수아.
"인기 맞은 거 맞잖아요. 샴푸 냄새가 만날 때마다 다른데."
수아는 툴툴대며 말했고, 리나는 날 노려보기 시작했다.
"진짜야? 오빠 미쳤어?"
난 다급하게 리나의 시선을 피했지만, 양옆에 두 사람이 있으니 볼 수 있는 곳은 정면밖에 없었고, 결국 양쪽에서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됐다.
"크흠, 얼른 사진이나 찍자, 기다리시잖아."
그리 길지 않았던 사진 촬영이 끝나고, 우린 노부부에게 핸드폰을 돌려받았다.
오…… 할아버지가 사진 찍는 걸 좋아하신다더니, 그게 끝이 아니었네.
내 예상과 다르게 사진을 정말 잘 찍어주셨다.
이 정도면 인별 하느라 온종일 사진 찍어대는 애들보다 훨씬 나은 거 같은데?
내 옆에 바짝 붙어 사진을 확인한 리나와 수아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는지 둘 다 토끼 눈을 뜨고 있었다.
"와…… 사진 너무 예뻐요. 감사합니다."
"그래요? 우리 양반이 잘 찍어줬나 보구만."
수아의 감사 인사를 하자 할머니는 가볍게 웃으셨고, 할아버지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셨다.
"맞아요! 사진을 저보다 잘 찍으시는 거 같은데요…? 너무 마음에 들어요. 정말 감사해요!"
리나가 해맑게 얘기하자 두 분은 어깨까지 살짝 으쓱이시며 웃으셨다.
"재밌게들 놀아요."
"네. 감사합니다."
내 인사와 함께 두 분은 사람들이 많은 쪽으로 걸어가셨고, 우리 세 사람은 그 뒤로도 한참 동안 사진을 구경했다.
"오빠 표정 왜 이래? 긴장했어?"
리나는 실실대며 날 바라봤고, 수아도 사진 속 내 표정이 꽤나 재밌는 눈치다.
"너네 때문이잖아!"
가슴을 그렇게 비벼대는데, 표정 관리가 되겠냐?
"응? 우리가 뭐?"
"저희가 뭘요?"
두 사람은 은근하게 미소를 띠며 의아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후우…… 그 와중에 둘 다 존나게 예쁘고 귀여워서 말이 안 나오네.
"……됐다. 걸으면서 바다 구경 좀 하다 저쪽으로 올라가서 차에 가자."
"응!"
"네에."
리나와 수아는 내 반응이 재밌다는 듯 배시시 웃었고, 우린 느긋하게 걷기 시작했다.
적당히 분위기 좋은 곳에서 내 여자 두 명 끼고 걸어 다니는 것도 꽤나 괜찮네.
난 수아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고, 리나는 우리보다 살짝 앞서 파도에 부서지는 모래는 구경하며 걸었다.
내 옆에 있는 수아는 나와 붙어 있는게 마냥 좋은지 홍조를 띠고 있었다.
정신 없이 바다를 구경하다 수아와 내가 사이좋게 걷고 있는 모습을 보자 곧장 볼을 부풀리며 다가오는 리나.
"야! 여기까지 왔으면 너도 바다 구경이나 해!!!"
리나는 꽤나 거친 손길로 수아의 손목을 낚아채갔다.
수아는 짜증이 잔뜩 난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별다른 저항 없이 리나에게 끌려갔다.
"내가 천수아랑 사진을 찍을 줄이야……."
"나도 너랑 찍기 싫었거든?"
바다를 구경하자 더니 자연스럽게 시비를 거는 리나 탓에 두 사람은 또다시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진짜, 조용한 건 잠깐이라니까.
둘의 매혹적인 뒤태를 바라보던 나는 분위기를 정리할 겸 말을 건넸다.
"같이 찍기 싫었던 거치곤, 둘 다 생각보다 표정이 괜찮던데?"
앞서 걸어가다 내 말을 듣고 다급하게 뒤돌아 날 바라보는 리나와 수아.
"연기지, 연기!!! 사진 찍는데 이쁘게 나와야 할 거 아니야."
"전 원래 사진 찍을 때 잘 웃어요."
발끈하는 리나와 당황하는 수아를 보고 있으니 괜히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너네도 내 사진 보고 놀렸잖아? 당한 건 갚아줘야지.
"그래? 그럼 너네 같이 찍기 그렇게 싫었던 사진도 나랑 셋이 찍었으니깐, 나 끼면 다른 것도 둘이 같이할 수 있겠네?"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수아와 수상한 눈빛으로 날 노려보는 리나.
"뭔 소리야?"
"우리 셋이 같이할 수 있는게 또 뭐가 있겠어. 잘 생각해봐."
"그게 뭔데?"
"……."
한 놈은 못 알아듣고, 한 놈은 얼굴이 시뻘게졌네.
난 결국 실소를 터트려버렸다.
"몸으로 하는 거 있잖아."
마침내 리나의 얼굴도 붉게 달아올랐다.
"아, 미쳤어?!!!"
"운동 얘기한 건데, 왜 그래?"
"……아이씨……."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고개를 푹 숙이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놀릴 맛 제대로 난다니까.
그나저나, 생각보다 반응이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
의외로 그렇게까지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단 말이지.
흐음…… 조만간 한 번 각을 봐야겠네.
애들이랑 바닷가에서 재밌게 놀고, 지금은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집갈때 또 가위바위보를 해서 조수석에 누가 앉을지 정했는데, 그랬던 게 무색해질 정도로 둘 다 개꿀잠을 주무시고 있다.
하긴, 리나나 수아나 이렇게 놀았던 경험이 많지 않았을 테니 피곤할 법도 하지.
그나저나, 그 시끄럽던 애들이 너무 조용하니깐 심심하네.
출발할 땐 시끄럽긴 했어도 리나와 수아가 실컷 떠들어준 덕분에 지루하진 않았는데, 아예 이렇게 조용해져 버리니 묘하게 허전하단 말이야.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제 거의 다 도착했다.
리나와 수아를 깨운 뒤 비몽사몽 하는 두 사람을 현관문 앞까지 바래다주고 집에 가려는데, 손을 붙잡혔다.
쪽.
내 손을 부드럽게 붙잡은 리나는 까치발은 든 채 입술을 맞췄고, 옆에서 수아가 보고 있어서 부끄러운지 귀를 잔뜩 붉히고 있었다.
"오늘 오빠 덕분에 잘 놀았으니깐, 고마워서……."
리나는 괜히 내 시선을 피하며 말끝을 흐렸다.
"……그래."
짧게 대답하고 수아에게 인사를 하려는데, 품에 무언가가 확 들어왔다.
쪼옥.
허리를 확 끌어안은 채 어깨를 잡아당겨 내가 고개를 숙이게 만든 뒤, 진하게 입술을 맞추는 수아.
천천히 입술을 뗀 수아는 떨리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조심히 가요."
"아, 그래."
옆을 슬쩍 보니 리나가 입술을 삐죽 내민 채 수아와 날 노려보고 있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자기가 사는 집 복도니 조용히 하려는 건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묘하네.
리나의 저 표정을 보고 있으니 아랫도리에 미친 듯이 피가 쏠린다.
"갈게. 둘 다 부모님께 이사 얘기해둬."
"응."
"네."
후우…… 이제 집에 가는구나.
생각보다 하은이를 오래 기다리게 했네.
심지어 수아네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저녁이었고, 도중에 퇴근 시간까지 겹쳐 버렸다.
일단 출발한다고 연락은 해놨으니 알아서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겠네.
오늘 여러모로 쌓여 있는 것들을 서하은에게 다 풀어야겠다.
호텔 현관문을 여니 소파에 앉아 있는 서하은이 곧장 눈에 들어왔다.
"시온이, 왔어?"
묘하게 수척한 모습, 피곤한 눈빛.
서하은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내게 다가왔다.
"응. 늦었지? 미안해."
평소 같았으면 일이 바빴구나 생각하고 말겠지만, 지금 서하은에게선 다른 것들이 더 크게 느껴진다.
설렘, 두려움, 흥분.
평소엔 입지 않은 야릇한 시스루 슬립 원피스를 입고 있고, 치마 부분이 너무 짧아 엉덩이가 다 보일 지경이다.
"아니야. 오래 안 기다렸어…!"
어느새 내 바로 앞까지 다가온 서하은.
분명히 오래 기다렸을 텐데, 날 배려하기 위해 배시시 웃으며 거짓말을 하는 그녀가 너무도 사랑스럽다.
난 그녀를 꽈악 끌어안았다.
"흣……."
팔과 몸에서 느껴지는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가슴.
끌어안고 있는 것만으로 만족감이 느껴진다.
난 서하은은 안은 채 잠시 주변을 둘러봤고, 테이블 위에 끝이 뾰족한 애널 전용 러브젤이 보였다.
겉모습도 그렇고, 제대로 준비하고 있었네.
품고 있던 서하은을 살짝 밀어내자 입을 앙다문 예쁜 얼굴이 보였다.
여전히 설레는 눈빛으로 긴장하고 있는 서하은.
이젠 더는 참을 수가 없다.
"무릎 꿇어."
"……응?"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