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모든 직업-1화 (1/434)

프롤로그

지구에 100층탑이 생겨났다.

‘100층탑의 정상을 정복한 자, 신이 되리라.’

그런 소문이 돌았다.

* * *

99층.

그곳에는 수많은 마수의 사체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지금, 그 사체들 위에 거대한 마수가 쓰러졌다.

쿠쿵……!

“허억, 허억……!”

검성 은혁은, 최강의 지고의 위상인 ‘포식하는 왕 뮤비즈’와 최후의 결전을 벌이고 승리했다.

“우와아악!!”

은혁은 악에 받쳐 검을 휘둘렀다.

퍼벅! 퍼버벅!

뮤비즈의 사체에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칼을 후려쳤다.

100개의 굵은 촉수가 달린 거대한 입.

오랜 세월 플레이어들을 집어삼키고, 그 플레이어들의 직업을 빼앗아 쓰는 괴물 중의 괴물.

그것이 바로 뮤비즈였다.

“으와아! 크아아아!!”

아무리 사체에 대고 칼을 휘둘러도, 희생당한 친구에 대한 울분은 가시지 않았다.

모든 직업의 힘을 빼앗아 쓰는 뮤비즈의 힘은 가히 사기적이었다.

결국, 은혁의 동료인 염훈마저 잡아먹혔다.

‘아니야. 염훈은 스스로 잡아 먹혔어.’

성기사 염훈은, 잡아먹히는 순간 뮤비즈의 식도에서 [신성한 희생] 주문을 썼다.

그 순간 뮤비즈는 치명상을 입었고, 뮤비즈의 권속들은 모조리 불타 죽었다.

혼자 남은 은혁이 뮤비즈를 죽일 수 있었던 것도 전부 염훈 덕분이다.

“흐흑…….”

은혁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뮤비즈의 배를 갈랐다.

그러나 동료의 시신조차 찾을 수 없었다.

데구르르…….

“어?”

투명한 탁구공 크기의 구슬이 뮤비즈의 배 속에서 굴러 나왔다.

“아……!”

은혁은 허리를 숙여 그 구슬, ‘뮤비즈의 마정석’을 집었다.

그 순간.

푸확!!

죽은 줄 알았던 뮤비즈의 촉수가 은혁의 복부를 꿰뚫었다.

“……!!”

-그것만은…… 못…… 준다……!

은혁이 빼앗은 뮤비즈의 마정석에 대한 집착이었다.

“쿨럭……!”

은혁이 피를 토했다.

방심하고 있던 탓에, 복부의 상처는 깊었다.

“이 개자식이……!”

은혁은 피를 씹으며 이를 갈았다.

염훈의 생명까지 희생한 덕분에 겨우 쓰러뜨린 적이다.

이대로 놈이 이기게 둘 수는 없었다.

‘반드시 해치운다.’

후두둑…….

출혈이 심했지만 뮤비즈 또한 죽어가는 상태.

“크와아아아!!”

은혁은 투지를 불태우며 달려들었다.

격전 끝에 부러진 그의 무기를 들고, 뮤비즈의 정면으로 뛰어 들었다.

뮤비즈가 촉수를 들어 올리려 했지만.

“죽어!!”

푸확!!

돌진하면서 쓴 은혁의 회전 배기가 뮤비즈의 머리를 잘라냈다.

-크르륵…….

뮤비즈는 죽었다.

하지만.

왈칵!

은혁은 심하게 피를 토했다.

‘이거 위험한데…….’

은혁은 인벤토리 창에서 힐링 포션을 찾았다.

‘어, 없어?!’

99층에서의 보스전을 벌이느라 다 써버렸다.

‘이런, 젠장.’

은혁의 몸에서 피가 흐르고 눈이 점점 감겼다.

‘미안하다, 염훈. 나는 여기까지인가보다.’

은혁은 후회 가득한 한숨을 내쉬려 했지만 피가 목에 걸려서 기침만 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1층에서부터 문제였어.’

100층탑 1층의 오리엔테이션.

그것은 직업을 고르는 미션이다.

은혁이 고른 직업은 ‘노력하는 전사’였다.

좋게 봐 줘야 E급 직업.

그 낮은 등급의 직업으로 시작해서, 아득바득 등급을 올리고 승급해서 검성이 된 것이다.

‘좋은 직업 뽑았으면,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후회해도 너무 늦었다.

은혁은 눈을 감았다.

은혁이 손에 쥔 뮤비즈의 마정석에, 은혁의 피가 닿았다.

그 순간, 상태창이 떴다.

-뮤비즈의 마정석이 흡수됩니다.

-흡수율 5%.

-흡수율 10%.

…….

1화 : 다시, 1층으로

“여긴……?”

허름한 자신의 자취방이었다.

은혁은 지저분한 이불 위에서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모든 것이 또렷하게 생각났다.

분명 자신은 죽었어야 한다. 하지만 죽지 않았다.

스마트폰으로 날짜를 확인했다.

“설마 회귀……인가?”

은혁은 무척 혼란스러웠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뮤비즈와 혈투를 벌이고 죽었는데, 눈을 떠보니 자취방이라니.

은혁은 스마트폰으로 날짜와 뉴스를 거듭 확인한 뒤에야 회귀 사실을 믿을 수 있었다.

‘혼란스러워 할 때가 아니야.’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면, 혼란스러워하며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100층탑을 클리어한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핵심 아이템 위치는 대부분 다 외우고 있어. 문제는 그걸 내가 어떻게 얻느냐인데. 초반에 사기 직업을 고른다면 문제없지.’

은혁은 그 부분에 정신을 집중했다.

동료를 모아서 가는 건 은혁의 성격에 맞지 않았다.

‘초반에 사기 직업을 얻어서! 나 혼자 전부 독식한다!’

은혁은 각오와 계획을 마쳤다.

이제 행동할 때였다.

‘내 기억대로라면, 앞으로 15분 뒤에 100층탑으로 자동 전송된다.’

수십 년 전, 태평양의 한 무인도에 100층탑이 나타났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전에 없던 탑만 덩그러니 나타난 것이다.

각국의 학자와 군인들이 분석하려 했으나, 알아낸 것은 딱 세 가지.

첫째. 100층탑은 파괴할 수 없다.

둘째. 100층탑은 1년에 1, 2회 번쩍이며, 그때마다 일정 수의 일반인들을 강제 소환 방식으로 끌고 들어간다.

셋째. 지금까지 그 누구도 100층탑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이것이, 100층탑에 관해 알려진 공식적인 사실 전부다.

‘물론 나는 그보다 훨씬 많이 알지. 너무 많이 알아서 탈이지.’

은혁은 후회 없는 준비를 위해, 우선 몇 가지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스탯창! 인벤토리창!”

그러나 창이 뜨지 않는다.

‘탑 바깥이라서 안 되나?’

하는 수 없이 배낭에 짐을 챙기기로 했다.

‘2층에서는 먹을 게 없어서 곤란했었지.’

은혁은 배낭을 열고 냉장고에 든 이온 음료와 초콜릿을 잔뜩 챙겼다.

‘아, 그리고 이것도 챙겨가자.’

은혁은 배낭을 열고, 안 입는 가장 큰 녹색 야상을 꾹꾹 눌러 담았다.

‘돈은 가져갈 필요가 없고, 무기도 직업을 고르면 지급되니까 따로 챙길 건 없겠지.’

준비는 금방 끝났다.

배낭을 멘 은혁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 순간, 메시지창이 떴다.

-축하드립니다! 100층탑의 플레이어로 선택되었습니다!

파앗!

은혁은 탑으로 전송되었다.

* * *

-100층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1층 : 오리엔테이션의 층.

“어라?”

“헉! 여긴!”

“꺅?!”

400명의 사람들이 새하얀 방에 모여 있었다.

대학교에서 강의 듣던 여대생, 금은방 할아버지, 술에 취한 노숙자, 심지어는 샤워 중이던 운동 남까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였다.

대다수가 한국인이었고, 아주 드물게 외국인이 있었다.

하지만 언어는 100층탑의 시스템으로 자동 통역되었다.

“뭐, 뭐야, 여긴!”

“맙소사! 우리 100층탑에 끌려 왔나봐!”

“엄마! 엄마아!!”

몇몇 사람들이 공황에 빠지려 했다.

“자자, 조용!”

“일단 침착하십시다!”

화재가 났을 때 초기 진화가 중요하듯, 공황도 마찬가지.

다행히 몇몇 이들이 나서서 빠르게 다독여서 집단 공황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은혁은 사람들을 둘러보다 눈살을 찌푸렸다.

‘회귀 전이랑 똑같군.’

그래서 더 짜증 났다.

저 400명 중에 누가 쓰레기 같은 놈인지, 누가 억울하게 죽는지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누구보다…….

‘염훈은 어디 있지?’

“와 씨, 엄청 당혹스럽네.”

염훈은 타월로 하반신을 가리고 무척 당황해했다.

샤워하던 운동 남이 바로 염훈이었다.

“와, 저 사람 몸 근육 좀 봐.”

“쩐다. 종합격투기 선수가 샤워 도중에 온 건가?”

“어머, 어쩜…….”

남녀 모두 염훈을 비웃기보다 몸을 보고 감탄하고 있었다.

“이씨, 뭘 봐? 구경났어? 어휴, 시발.”

염훈은 혼자 시발시발거리며 구석으로 이동했다.

이 시기의 염훈은 성기사로 거듭나기 이전이었기에, 망나니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 거친 말투를 썼다.

‘염훈……. 살아있구나……!’

은혁은 감격스러웠다.

회귀했으니 염훈이 살아 있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직접 보니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흐흑…….’

자신을 위해 자폭했던 염훈의 모습이 떠올랐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자기 자신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염훈은 내가 약했기 때문에 죽은 거다.’

자신이 약했기 때문에 최고의 동료이자 유일한 친구였던 염훈을 잃었어야 했다.

‘이번에는 다를 거다, 염훈. 내가 약속한다.’

자기도 모르게 한참을 애틋한 눈으로 바라봐서일까?

“크흠! 저기요! 뭘 그리 애틋하게 쳐다봐?”

염훈이 은혁에게 한마디 했다.

‘저 인간 취향이 혹시……?’ 하는 표정이다.

은혁은 끓어오르는 반가움과 미안함을 겨우 억눌렀다.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처럼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이거라도.”

은혁은 가방에서 녹색 야상을 꺼내 줬다.

은혁이 옷을 내밀자 염훈이 머뭇거렸다.

“안 입는 거라 집 앞 의류함에 넣으려고 챙겨 뒀던 건데요. 괜찮으시면 입으시죠.”

“크흠. 뭐, 그럼 고맙게 입을게.”

염훈은 옷을 입었다.

알몸에 녹색 야상만 입은 상태였지만, 워낙 잘생기고 몸이 좋아서 이상하게 보이진 않았다.

“저는 강은혁이라고 합니다. 스물둘이고요.”

“아, 나는 염훈. 나도 스물둘이야. 말 놓자.”

“그래, 그러자.”

두 사람은 구석에 섰다.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짧은 대화 시간이었지만, 은혁은 염훈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매우 빠르게 친해졌다.

“침착하네?”

염훈이 은혁에게 물었다.

겁에 질린 사람, 우는 사람, 먹통이 된 스마트폰을 바닥에 던지는 사람도 있는 이곳에서 은혁은 무척 침착해 보였다.

은혁은 대답하지 않고 빙긋 웃어 보였다.

그때,

쾅! 쾅!!

삭발한 양아치 한 명이 게이트를 걷어찼다.

“어이! 문 열어!!”

양아치는 미친 듯이 발광했다.

하지만 게이트는 꿈쩍도 안 했다.

‘박태돈.’

흔한 양아치처럼 보이지만, 꽤 강한 녀석으로 성장한다.

은혁이 저 녀석을 기억하는 이유는…….

‘놈한테 처발린 적이 있기 때문이지.’

은혁은 씁쓸한 기분으로 과거를 회상했다.

같은 전사였던 두 사람은 훈련소와 사냥터에서 몇 번씩 충돌했었다.

그때마다 은혁은 거의 이길 뻔했지만, 결국에는 피지컬 차이로 눌리곤 했다.

그때마다 놈은 이런 식으로 말했다.

‘약한 새끼는 찌그러져 있어. 세상은 말이야, 약육강식이야. 알아?’

약육강식은 놈의 입버릇이었다.

‘그런 주제에 정작 자기는 강자에게 엄청 굽신거리고 다녔었지.’

은혁은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화가 났지만, 아직은 행동에 나설 때가 아니었다.

‘기다려라. S급 직업 뽑아서 처발라 줄 테니까.’

그 순간.

“정말 시끄럽군요.”

낭랑한 목소리가 천장에서 들리더니, 푸드득 소리가 났다.

“아!”

“저건?!”

거대한 새가 천장에서 날갯짓을 하며 내려왔다.

“환영합니다!”

거대한 새의 정체는 새하얗고 거대한 오리였다.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하겠습니다. 다들 중앙에 모이세요! 어서요!”

흰 날개를 파닥이며 손짓, 아니, 날갯짓을 했다.

우르르…….

사람들이 오리 주위로 몰려갔다.

몰려가던 두 사람이 한마디 했다.

“오리엔테이션이라서 오리가 설명하는 거냐.”

“으으, 아재 개그 극혐.”

오리는 무시하고 설명을 시작했다.

“여러분은 현재 100층탑에 와 있습니다.”

사람들은 전율했다.

설마 하던 사실이 오리의 입을 통해 확정되었으므로.

“여러분이 기억하셔야 할 것은 하나뿐!”

오리가 날개를 손가락처럼 접었다.

“살아서 나가고 싶으시다면,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각 층을 공략하여 탑을 올라야 한다는 겁니다.”

그때, 한 사람이 얼른 손을 들었다.

“저어, 탑을 꼭대기까지 오르면 여기서 나갈 수 있나요?”

“네! 맞습니다!”

오리가 대답하자, 사람들은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웅성거렸다.

오리는 뒤뚱거리며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다.

“100층탑의 각 층에는 일반적으로, 메인 미션과 게이트 미션이 있습니다. 층마다 규칙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개 둘 다 클리어하면 위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오리는 설명하다 양아치를 흘깃 보았다.

“님처럼 무식하게 게이트를 걷어차도 게이트는 열리지 않습니다.”

“이 오리 새끼가, 뭘!”

양아치는 달려들려 했지만.

펑!

오리 앞에 달걀판을 닮은 거대한 ‘판’이 생겨났다.

그 판에는 거대한 오리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총 400개.

각 오리알의 색깔은 조금씩 달랐다.

“주의하세요! 함부로 깨면 후회합니다! 멋대로 두 개 이상 깨면 죽습니다!”

경고하자 다들 주춤주춤 물러났다.

하지만.

“좀 더 가까이 가자. 맨 앞줄에 서면 더 좋고.”

은혁은 염훈을 데리고 오히려 앞으로 조금 더 나갔다.

오리는 다시 허공에 손짓을 하더니 미션창을 띄웠다.

<1층 메인 미션 : 오리알 뽑기>

-목표 : 오리알을 하나 골라서 깨면 ‘직업 각성 포션’이 들어 있다. 그걸 마시면 성공.

1인당 하나이므로, 오리알을 두 개 이상 함부로 깨거나 방해하면 실패.

-성공 시 보너스 : 직업을 얻고, 게이트 미션에 도전할 수 있다.

-실패 시 페널티 : 폭사.

-제한 시간 : 2시간.

“다 아시겠지만, 여러분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미션입니다! 마음의 준비가 되신 분부터 한 줄로 서 주십시오!”

오리가 날갯짓으로 정렬하라 한 순간.

탓!

은혁은 염훈을 이끌고 맨 앞줄에 섰다.

‘해냈다!’

은혁은 어떤 오리알에 어떤 직업 포션이 담겨 있는지 대략 기억하고 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S급 직업이 어디에 있는지, F급 직업이 어디에 있는지는 안다.

“둘 중 누가 먼저 뽑을 겁니까?”

오리가 물었다.

은혁은 염훈에게 먼저 기회를 주기로 했다.

“염훈. 11시 방향 구석에 있는 노란색을 골라.”

은혁은 소곤소곤 가르쳐 줬다.

“어?”

“날 믿어.”

그러자 오리가 독촉했다.

“자! 얼른 뽑으세요!”

“쯧, 알았다.”

염훈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은혁이 골라 준 것을 뽑았다.

“오리알을 깨면 직업 각성 포션이 나옵니다.”

“음.”

염훈은 신중하게 오리알을 까고 그 안에서 나온 것을 들어 보였다.

“‘불패불굴의 성기사’ 각성 포션……?”

“오옷! 축하합니다!”

오리가 종을 흔들며 소리쳤다.

“S급 직업! 첫 사람부터 뽑았습니다!!”

그랬다.

성기사는 전투력과 회복력의 균형을 모두 갖춘 직업이며, 특히 ‘불패불굴’이라는 수식어는 사기급으로 좋은 수식어다.

염훈이 이전 생에서 고른 직업이기도 하다.

“직업 각성 포션은 뽑은 자리에서 마셔야 합니다!”

오리가 재촉했다.

염훈은 시키는 대로 각성 포션을 마셨다.

화악……!

황금빛 광채가 염훈의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이제, 염훈은 일반인이 아니라, 성기사로 각성한 플레이어가 되었다.

펑!

염훈의 눈앞에 시작 장비가 나타났다.

성기사 전용 의복, 은빛 갑옷, 부츠, 장검 등등.

겨우 레벨이 1인 플레이어라도, 일단 시작 장비를 착용하고 스킬을 쓰면, 탑 바깥의 일반인보다 전투력이 우수해진다.

염훈은 장비들을 챙기고는 은혁을 돌아봤다.

‘야. 거기에 S급 직업이 있는 줄 어떻게 알았어?’

‘난 찍기 실력이 좋아. 나만 믿어.’

두 사람은 눈빛으로 대화했다.

염훈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은혁을 좀 더 믿기로 했다.

“와, 부럽다.”

“아씨, 나도 앞줄에 설걸.”

“아, 맞다. 줄, 줄 서야지!”

사람들이 염훈을 부러워하며 은혁의 뒤로 줄을 섰다.

“자, 다음 분!”

오리가 은혁을 불렀다.

은혁은 심호흡을 했다.

‘마지막까지 고민되네.’

사실, 이 미션에는 히든 오리알이 있다.

회귀자인 은혁은 히든 오리알이 어디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근데 히든 오리알 안에 뭐가 들었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사람들이 히든 오리알을 못 찾고 미션이 끝나면, 오리가 놀리듯이 가르쳐 줄 뿐.

그 내용물은 모른다.

그래서 그것을 뽑을 것인지 말 것인지가 고민되었다.

“뭐 합니까? 거, 빨리 뽑으시지?”

“빨랑빨랑 합시다!”

“그래요, 빨랑빨랑!”

뒤에 선 사람들이 소리쳤다.

콱!

은혁은 오리알이 가득 담긴 판을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앗?!”

“무슨 짓을!”

경악성을 무시하고, 은혁은 판의 한쪽을 살짝 들어 올렸다.

오리의 눈이 커졌다.

스윽.

손을 판 밑에 넣어, 아주 작은 오리알 하나를 찾아냈다.

“오옷! 그걸 찾아내다니!!”

오리가 이번에는 양손에 종을 하나씩 들고 마구 뒤흔들었다.

“당첨! 히든 오리알 당첨! 당처엄!!”

팡파르가 터지고, 난리가 났다.

“세상에……!”

“으음, 저 판 밑에 저런 게 숨어 있을 줄이야.”

사람들은 부러움 반 놀람 반으로 은혁을 바라봤다.

특히 염훈이 가장 놀라서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하하! 염훈이 저런 표정을 짓다니.’

그때, 오리가 설명했다.

“그 오리알 안에 든 것은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엄청난 힘을 갖고 있습니다!”

“뭐가 들었는데요?”

은혁은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그것은 ‘절대 필요의 포션’입니다!”

오리는 당당하게 외쳤다.

“히든 오리알에 든 것은 뽑는 사람마다 상대적인 것! 그 안에 든 절대 필요의 포션은, 현재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포션으로 변할 겁니다!”

“호오…….”

은혁이 원하는 것은 탑을 클리어하는 능력이다.

‘그럼 도대체 얼마나 엄청난 직업이 나오는 걸까?’

은혁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히든 오리알을 깼다.

콰직!

파앗!!

무지갯빛 섬광이 1층 전체를 물들였고, 포션이 변화했다.

“오오…….”

빛이 사라지고 포션이 드러났다.

벌컥벌컥……!

사람들의 부러워하는 시선 속에서, 은혁은 포션을 원샷했다.

-축하드립니다! 1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크하앗!”

기세 좋게 다 마신 은혁은 어떤 직업을 각성할 것인지 기다렸다.

‘최소한 A급, 아마 S급이겠지?’

-축하드립니다! E급 직업 ‘노력하는 전사’를 각성하셨습니다!

“뭐, 뭐라고?”

히든 오리알에 담긴 포션을 마셨는데 E급 직업을 각성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뭐야, 저 사람. 팡파르 엄청 터뜨리더니 E급?”

“풉! 지뢰 밟으셨네.”

“그러게. 히든 템이라고 다 좋은 게 아니라는 교훈을 주는 건가 봐.”

주변 사람들은 은혁을 보고 비웃었다.

은혁은 화가 나기보다 어이가 없어서 포션에 적힌 이름을 확인했다.

‘고오급 소화제.’

“……뭐?”

포션 유리병 측면에는 설명서가 붙어 있었다.

-고오급 소화제(절대 필요의 포션으로 생성됨) :

당신이 현재 특수한 소화불량 증세를 겪고 있는 것을 확인하였기에, 본 포션은 고오급 소화제로 변합니다.

“뭐야, 이게! 소화제?!”

은혁은 화를 냈고, 오리도 머리를 긁적였다.

“어, 이상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오리는 정말로 당황해했고, 줄을 선 이들은 더 큰 소리로 킥킥 웃거나 안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말이 안 되잖아! 소화제를 먹었는데 왜 E급 전사를……!”

그 순간 메시지창이 떴다.

-고오급 소화제의 힘 덕분에, 일시 정지되었던 뮤비즈의 마정석 흡수가 다시 시작됩니다.

-흡수율 51%…….

-흡수율 62%…….

-흡수율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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