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전사 + 마법사
‘직업이 전사랑 마법사…… 두 개라고?’
은혁은 회귀자답게 냉철한 편이었지만, 이런 순간에는 조금 주춤했다.
“크윽, 이 새끼가!!”
얼굴에 화상이 가득한 박태돈이 은혁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팍!
은혁은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검을 걷어차서 박태돈의 얼굴로 날렸다.
“윽?!”
박태돈이 피하느라 주춤하는 순간, 은혁은 박태돈의 측면으로 이동했다.
“너도 참 학습 능력이 없구나.”
은혁은 박태돈의 무릎 측면을 향해 뻗어 찼다.
뻐억!
“끄아아아!!”
무릎이 완전히 박살 난 박태돈은 데굴데굴 굴렀다.
평생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었다.
“어때? 남 앞에 무릎 꿇는 기분이.”
은혁이 물었다.
사실, 은혁은 박태돈이 반성의 기색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죽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박태돈은 쓰러진 채로 악을 써댈 뿐이었다.
“닥쳐! 운 좋게 이긴 거 갖고 뻐겼겠다! 씨X 죽여 버릴 거야!!”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반성은커녕, 은혁에 대한 증오만 잔뜩 표출하고 있었다.
“말할 가치가 없네.”
이쯤 되면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지능의 문제였다.
덥썩!
은혁은 박태돈의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
“뭐, 뭘 하려는……!”
“네 잘난 신념을 그대로 돌려주려고.”
박태돈을 제물용 침대 중 한 곳에 집어 던졌다.
그 순간.
철컹! 철컹!
수갑이 자동으로 박태돈의 팔다리에 채워졌다.
“히익?!”
“잘 가라.”
은혁은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를 알았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철컹!
침대 밑에 갑자기 구멍이 생기더니, 수갑이 채워진 박태돈은 통째로 떨어졌다.
“끄아아아……!”
구멍 속에 떨어진 박태돈의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진 순간.
스윽.
구멍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시 막혔다.
“우웃……!”
“맙소사!”
구경하던 이들은 소름이 끼쳤다.
그 순간, 은혁에게는 박태돈을 쓰러뜨린 것에 대한 보상이 찾아왔다.
-전사 숙련도가 3% 증가했습니다!
-현재 전사 숙련도 : 3%.
-전사 스킬 [강타]를 습득하셨습니다!
-마법사 숙련도가 3% 증가했습니다!
-현재 마법사 숙련도 : 3%.
-마법사 스킬 [스모크]를 습득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박태돈의 죽음에 대해 놀라건 말건, 은혁은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현상을 분석하느라 머릿속이 바빴다.
‘정말로 직업이 두 개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은혁이 아는 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한 존재는 하나뿐.
‘99층 보스 뮤비즈.’
뮤비즈는, 자신이 잡아먹은 플레이어들의 모든 직업을 사용했었다.
‘뮤비즈의 마정석…… 그걸 흡수해서인가.’
특수한 소화제 덕분에 흡수율이 100%에 도달했고, 위기의 순간 각성한 것이다.
‘나도 뮤비즈처럼 여러 개의 직업을 쓸 수 있게 됐구나…….’
그때, 은혁은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다.
사람들은 3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은혁만 보고 있다가 눈이 마주쳤다.
“히익.”
“으으…….”
죄다 겁에 질려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풀려나지 않은 트롤보다, 박태돈을 냉정하게 처리해 버린 은혁이 더 무서운 것이다.
“아, 괜찮습니다. 안심하세요.”
은혁에게는 딱히 사람들을 협박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주춤주춤 다가와서 질문했다.
“저어, 아까 어떻게 한 겁니까?”
“어떻게 전사가 마법을 쓴 건가요?”
은혁의 강함을 눈여겨본 사람들은 그것부터 질문했고, 은혁은 피식 웃어 보이는 걸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 여유로움이 사람들을 더 애가 타게 만들었다.
“아까 힘을 합치면 다 살 수 있다고 했었죠?”
“정말로 트롤 상대로 이길 수 있는 겁니까?”
사람들은 은혁을 구원의 동아줄 바라보듯 했다.
쿵! 쿠쿵!
컨테이너 속 트롤들은 몸부림쳤고, 그때마다 컨테이너는 조금씩 흔들렸다.
제한 시간은 점점 더 줄어들었다.
-1분 9초…….
-1분 8초…….
그때, 높은 천장에 숨어 있던 오리가 사람들 머리 위를 맴돌며 이죽거렸다.
“후훗! 여러분!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네요? 현명한 판단 하시길!”
은혁은 오리의 이죽거림을 무시한 채, 사람들에게 한마디만 했다.
“살고 싶으면, 다들 나를 좀 도와줘야겠습니다.”
그러자 사람들 중 절반 정도는 겁에 질리고, 절반은 투지를 불태웠다.
“저, 그럼 다 같이 힘을 합쳐 싸우는 겁니까?”
플레이어들이 은혁만 바라보며 질문했다.
그러자 은혁은 고개를 저었다.
“뒤로 빠져 계시면 됩니다.”
“네?”
은혁의 작전이 성공하려면, 트롤들의 어그로를 은혁 혼자 끌어야 했다.
‘살짝 도박이긴 하지만, 지금의 능력이라면 가능할지도.’
은혁은 컨테이너로 향했고, 다른 이들은 먼 곳으로 물러났다.
“저 사람, 혼자서 뭘 하려는 거야?”
“혹시 우릴 살리려고 미끼가 되어 주려는 건가?”
“그런 것 같진 않은데……?”
그동안 은혁은 한 컨테이너 위로 올라갔다.
컨테이너는 겉보기엔 크기와 모양이 같았지만, 은혁은 어느 컨테이너에 ‘막내 트롤’이 있는지 알고 있었다.
‘제일 약한 트롤 즉, 막내 트롤부터 죽인다.’
트롤 오 형제 중 막내가 가장 약하고, 첫째에 가까울수록 강했다.
그렇게 하는 데에는 단순한 힘의 논리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었다.
‘히든 미션.’
은혁은 트롤 오 형제 중 한 마리라도 죽이면 자동 발동하는 히든 미션을 노리고 있었다.
-3초…….
-2초…….
-1초…….
-카운트다운 종료!
철커덩!
컨테이너의 문이 일시에 열렸다.
-트롤 오 형제가 풀려납니다!
“쿠오오오!!”
은혁이 올라간 컨테이너에서 막내 트롤이 뛰쳐나왔다.
그리고 눈알을 부라리며 가장 약해 보이는 인간을 찾았다.
놈의 머리 위로 은혁이 뛰어내리며 스킬을 썼다.
‘[강타]!!’
퍼벅!!
가장 약한 막내 트롤의 머리통이 터지며 즉사했다.
재생력을 갖춘 트롤이라 해도, 스킬로 뇌가 일격에 터지면 재생이 불가능하다.
“쿠오오오!!”
트롤 네 마리는 막내의 죽음을 감지했다.
그리고 은혁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트롤을 처치하셨습니다!
-1층 히든 미션 개방 조건 달성!
-히든 미션이 시작됩니다!
-히든 미션 전용 아이템 ‘트롤 슬레이어’가 제공됩니다!
-히든 미션 전용 버프 [헤이스트]가 제공됩니다!
파앗!
은혁의 몸에 가속 주문이 걸렸다.
그리고 인벤토리창에는 묵직한 도끼가 생성됐다.
<1층 히든 미션 : 트롤 오 형제 처치>
-발생 조건 : 트롤을 한 마리라도 처치할 것.
-목표 : 제한 시간 이내에 트롤 오 형제를 모두 처치하라.
-성공 시 보너스 : 랜덤 보너스 상자 1개 획득.
-실패 시 페널티 : 죽음.
-제한 시간 : 15분.
‘됐다. 성공했어.’
히든 미션은 난이도가 높다. 대신 히든 미션 전용 버프와 아이템이 제공된다.
하지만 아직 좋아하긴 일렀다.
“쿠오오오!!”
트롤 네 마리가 은혁에게 달려들었다.
은혁은 인벤토리창에서 트롤 슬레이어를 꺼내서 장착한 뒤, 도끼날에 손을 뻗었다.
은혁은 회귀 전, 트롤 사냥만 전문으로 하던 중급 랭커 2인조를 떠올렸다.
전사, 마법사 2인조였던 그들이 트롤을 효율적으로 사냥하는 방법.
그것은…….
‘대형 근접 무기에 화염 주문을 걸어서 공격한다.’
그 2인조가 트롤 사냥꾼으로 명성이 높았던 건, 전사의 근접 무기에 마법사가 화염으로 버프를 걸어줬기 때문이다.
지금의 은혁은 혼자서 1인 2역을 해낼 작정이었다.
“[화염 방사].”
화르르륵!
그 순간, 트롤 슬레이어의 도끼날에 화염이 넘실거렸다.
-히든 이펙트 발동!
스킬과 스킬을 조합하거나, 마법 아이템과 스킬을 조합하는 경우 숨겨진 힘이 추가되는 경우가 있다.
이를 히든 이펙트라 부른다.
‘날붙이 무기에 화염의 힘을 부여하는 히든 이펙트, [플레이밍 엣지].’
무기에 마법을 부여하는 것은 히든 이펙트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1층에서, 그것도 혼자서 해낸 것은 은혁이 최초였다.
그것을 본 오리가 경악해서 꽥꽥거렸다.
“아니, 님! 그거 알고 쓴 겁니까?! 히든 이펙트는 어떻게 알아낸 거죠!”
은혁은 오리가 꽥꽥거리는 걸 무시하고, 트롤을 향해 달려들었다.
“간다!!”
[헤이스트]의 힘을 빌려 트롤들에게 돌진하자, 트롤 네 마리는 동시에 은혁을 잡으려 했고.
쿠쿵!
트롤끼리 어깨가 부딪히고 서로 튕겨 나갔다.
은혁은 그 틈새를 이용해 빠져나간 뒤 마법사 스킬을 썼다.
“[스모크]!!”
퍼펑!
새까만 연막이 트롤들의 눈앞을 가렸다.
“쿠웃?!”
“쿠워어!”
연막 속에서 저들끼리 투덕거리는 순간, 은혁은 냉정하게 놈들의 다리를 우선 노렸다.
퍼억!!
화륵!!
화염의 힘이 깃든 도끼날이 꽂힌 순간, 놈들의 다리가 통째로 잘려 나갔다.
“꿰에엑!!”
‘우선 다리부터!’
퍽 퍽 퍽 퍽!
“쿠와아악!!”
트롤들은 손바닥으로 은혁을 후려치려 했지만, 회귀 전에도 이미 E급 직업으로 99층에 도달한 은혁이었다.
공격 패턴을 외우고 있는 데다가 [헤이스트] 버프가 걸려 있기에, 전부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트롤의 손바닥이 빗나가서 바닥을 찍으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트롤의 손등을 도끼로 찍었다.
콰직!!
트롤의 피와 지방이 은혁의 얼굴에 팍 튀었다.
은혁은 전투의 열기와 회귀자만이 느낄 수 있는 희열을 느끼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연속 공격을 가했다.
촤악!
퍼버벅!!
트롤들은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그제야 상황을 깨닫고 몸을 뒤로 물렸다.
‘누가 누구를 갖고 놀고 있는지 이제 좀 알겠냐, 새끼들아?’
은혁은 회귀 전에 당했던 굴욕에 이자를 쳐서 갚아 줬다.
은혁은 다리가 잘린 트롤들부터 처치했다.
파각!! 파각!! 파각!!
쿠쿠쿵……!!
그렇게 트롤 셋이 순식간에 죽었다.
그 모습을 본 구경꾼들 대부분은 기가 막혔다.
“겁나 강한데……?”
“진짜 혼자서 다 죽이는 건가.”
은혁은 호흡을 고르며 마지막 트롤을 노려봤다.
‘마지막 한 놈 남았다.’
가장 덩치가 큰 첫째 트롤이었다.
덩치가 큰 만큼 오래 살아온 트롤은 은혁을 잔뜩 경계했다.
이대로 시간을 끌면 히든 미션 제한 시간이 있는 은혁이 불리했다.
그래서 은혁이 한 일은…….
타앗!
냅다 뒤돌아서 도망치는 일이었다.
“엥?”
“뭐, 뭐야!”
“아니, 이기고 있는 중인데 왜 도망쳐?!”
구경꾼들은 믿었던 은혁이 갑자기 한쪽으로 도망치자 어이가 없었다.
그런 구경꾼들의 목소리가, 트롤에게는 신호탄이 되었다.
“쿠오오!!”
첫째 트롤은 은혁을 쫓았다.
‘됐다!’
유인한 은혁은 뒤돌아서며, 슬슬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마나로 마법사 스킬을 짜냈다.
“[화염 방사]!”
화르륵!
1,200도에 달하는 불꽃은 달려오는 트롤의 발바닥을 노렸다.
달려오다 불길을 밟게 된 트롤은 괴성을 지르며 미끄러졌고.
‘지금이다!!’
은혁은 과감하게 뛰어올라 [강타] 스킬로 트롤의 머리를 찍었다.
퍼벅!!
그렇게 첫째 트롤의 머리통도 터졌다.
“전멸, 끝!”
전투가 끝나자, 트롤 처치로 쌓인 숙련도가 한 번에 올랐다.
-전사 숙련도가 5% 증가했습니다!
-현재 전사 숙련도 : 8%.
-전사 패시브 스킬 [대형 무기 숙련]을 획득하셨습니다!
-마법사 숙련도가 5% 증가했습니다!
-현재 마법사 숙련도 : 8%.
-마법사 스킬 [화염 방패]를 획득하셨습니다!
“좋았어.”
대형 무기인 트롤 슬레이어를 들고 싸운 경험 덕분인지 [대형 무기 숙련] 스킬을 얻었다.
그리고 [화염 방패]는 용도가 무궁무진한 스킬이다.
은혁은 특히 ‘화염을 지배하는’ 수식어를 갖고 있으니 범용성이 더욱 늘어날 터였다.
‘할 수 있어……!’
은혁은 이 순간 확신했다.
‘100층탑 완전 공략! 정말로 할 수 있다!!’
은혁은 트롤 피가 잔뜩 묻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회귀자로서의 지식.
‘모든 직업의 가능성’이라는 희귀 직업.
노력이 습관이 된 자의 근성.
이것들을 모두 지니고도 100층 공략에 실패한다면 그게 오히려 말이 안 된다.
그 순간.
-축하드립니다! 1층 히든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그와 동시에 은혁의 몸에 걸렸던 히든 미션용 버프와 아이템은 사라졌다.
대신에 보상이 찾아왔다.
펑!
눈앞에, 게임 속 보물 상자처럼 생긴 랜덤 상자가 나타났다.
은혁은 랜덤 상자의 열쇠 구멍 위치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찰칵!
상자가 열리며 메시지가 나타났다.
-축하드립니다! 3성급 단검 ‘플레임 나이프’를 획득하셨습니다!
‘오늘따라 운빨 좋은데?’
아이템은 1성급이 가장 별로고, 9성급이 가장 좋다.
1층에서 3성급 나이프가 나왔다면 엄청 운이 좋은 편이다.
그리고 모두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축하드립니다! 1층 게이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2층으로 가는 게이트가 곧 개방됩니다!
“저, 정말 이긴 거야?”
“살았다! 살았어!”
“와아아아아!!”
플레이어들은 환호했다.
그 모습을 본 은혁은 왠지 흐뭇했다.
‘회귀 전에는 수십 명이 죽었었는데, 이번 생에는 한 명만 죽었어.’
전생에서는 박태돈의 의견을 따르다가 애꿎은 5명만 희생당하고, 추가로 수십 명이 죽거나 다쳤었다.
그러나 현생에서는 박태돈만 죽고 나머지 모두가 살아남았다.
은혁은 다른 인간들의 생존 자체보다, 자신의 능력으로 미래를 바꾸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이 기뻤다.
“쳇! 쳇!”
오리는 하늘을 날며 연신 혀를 찼다.
“에잇, 짜증 나! 이봐요! 혼자서 전부 다 클리어하다니! 오리엔테이션 의미가 없잖아요!”
오리는 은혁에게 와서 꽥꽥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