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 공포의 학교 (1)
서영후는 힐링 포션을 마시는 걸로 모자라 귀에 들이부었다.
플레이어들은 그런 서영후를 고소하다는 듯이 구경했다.
거기까지 확인한 은혁은 몸을 돌려 염훈에게 지시사항을 전했다.
“참, 우리가 방과 후의 학교에서 서로 흩어지게 되면 본관 1층 동쪽 현관에서 보자.”
“본관 1층 동쪽 현관? 왜 하필 거기로?”
“그래야 본관에서 별관으로 빨리 탈출하지.”
“흠. 별관이 있을 법도 하긴 한데.”
“왠지 학교 본관에 오래 남는 것보다 별관 쪽으로 가야 돌파구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음. 알았어.”
그 순간, 플레이어들의 모든 선택이 끝났다.
-2층 게이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체력이 완전 회복됩니다!
-3층으로 자동 전송됩니다!
파앗!
은혁과 염훈을 비롯한 40명은 의식을 잃은 채 어디론가 전송되었다.
* * *
어두침침한 1학년 1반 교실.
창문 밖에 노을이 지고 있었다.
선택지 D를 고른 플레이어 40명 중 10명은 1반 교실에서 책상에 엎드린 자세로 눈을 떴다.
“으음…….”
“여긴……?”
-3층 : 방과 후의 학교.
‘기억 그대로군.’
방과 후의 학교를 고른 사람은 총 40명이다.
하지만 모두 한곳에 모여서 시작하지 않고, 10명씩 4곳에 나뉘어서 학교 곳곳에 랜덤 배치된다.
은혁은 1학년 1반에 배치되었다.
‘염훈은 3학년 교실에, 서영후 그 새끼는 2학년 교실 쪽에 배치되었겠지?’
은혁은 학교 평면도와 주요 인물 위치를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다.
그리고 2층에서 받은 금메달을 만지작거리며, ‘히든 상점’으로 가는 이동 동선을 대략적으로 그려 보았다.
“와 씨, 진짜 학교네?”
“근데 좀 분위기가 으스스하다……?”
플레이어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몇 명은 교실 문으로 갔다.
덜컥덜컥.
교실 문은 잠겨 있었다.
그 순간.
찰칵!
칠판 옆에 설치된 TV에 불이 들어왔다.
그리고 흰 토끼 가면을 쓴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학생 여러분! 방과 후의 학교에 잘 오셨습니다!”
토끼 가면 너머의 목소리는 굵었다.
“여러분께서 헬 난이도를 고르셨다는 사실을 알려드릴 수 있어서 대단히 기쁩니다!”
토끼 가면의 말에 3층에 온 이들이 헛숨을 들이켰다.
“뭐라고!”
“아니, 학교인데 왜 헬 난이도야?!”
“시발, 설마설마했더니만!”
다들 우왕좌왕했고, 학교 곳곳에서 비슷한 소리가 들려왔다.
은혁만이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다.
“자자, 조용조용! 우선 칠판을 봐주세요!”
주륵, 주르륵…….
텅 빈 칠판에 피가 흐르더니, 미션창으로 변했다.
<3층 메인 미션 : 옥상으로 탈출.>
-목표 : 제한 시간 이내에 살인귀를 피해서 옥상에 도착할 것.
-성공 시 보너스 : 게이트 미션 개방.
-실패 시 페널티 : 죽음.
-제한 시간 : 2시간.
-힌트 : 학교 곳곳에 붉은 쪽지 힌트가 잔뜩 숨겨져 있음.
“간단하죠? 살아남고 싶으면 힌트를 잘 찾으시길. 아, 힌트 하나 더 드릴게요. 절대 지하실로는 내려가지 말 것. 이상!”
탁!
TV가 꺼졌다.
드륵.
은혁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교실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별관 쪽으로 가야 한다.’
탈출 장소가 옥상이라고 해서 무조건 옥상으로 올라가다간 죽는다.
왜냐하면 귀신이 옥상에서 아래로 내려오기 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것보다…….
“저, 저기요!”
나머지 플레이어들이 죄다 은혁 곁에 몰려들었다.
“저기, 아까 붉은 허수아비 처치하신 분이죠?”
“저희랑 같이 파티 맺지 않으실래요?”
은혁이 기억하기로 악한 이들은 아니었지만 이기적인 이들이었다.
‘날 두고 도망치다가 죽었지.’
회귀 전 기억을 떠올렸다.
이들은 E급 전사였던 은혁에게, ‘당신이 전사니까 맨 앞에서 탱킹 좀 맡아 주세요’라면서 경계병 겸 미끼 역할을 맡겼었다.
그리고 의외로 쉽게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까지 갔었다.
‘하지만 옥상 문은 잠겨 있었지.’
잠긴 문을 건드리는 순간 살인마가 뒤쪽에서 덮쳤다.
옥상 문 기준에서 맨 뒤에 안전하게 있던 이들이 먼저 죽었다.
오히려 옥상 문 앞에 있던 은혁은 계단 쪽 창문을 통해 겨우 도망칠 수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들이지만 미워하긴 힘들군.’
일부러 구해 줘야 할 의리는 없지만, 그렇다고 고통스럽게 죽게 둘 만큼 악한 자들도 아니었다.
‘그러니 기회를 한 번 주자.’
테스트였다.
통과하면 은혁은 이 사람들을 제대로 데리고 살려 주기로 했다.
“제 지휘를 따르겠다고 맹세하면, 최대한 다 함께 살아남는 방향으로 진행하겠습니다.”
“맹세요?”
“충성 맹세 같은 건가?”
“뭐, 까짓 거 하죠.”
다들 가볍게 말했다.
은혁은 고개를 끄덕인 뒤, 스탯창을 열었다.
“그럼, 스탯창을 열고 정말로 [맹세]하십시오.”
[맹세]는 시스템이 제공하는 계약의 일종이다.
스탯창에 걸고 [맹세]를 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어길 수가 없었다.
어기는 순간 죽기 때문이다.
은혁이 [맹세]를 요구하자, 맹세하겠다고 가볍게 말한 이들은 모두 주춤거렸다.
일부는 적반하장으로 신경질을 부렸다.
“아니, 이 상황에서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서로 믿고 도우면 되는 거지 뭔 [맹세]까지 시킵니까?”
그 태도를 본 은혁은 피식 웃었다.
‘심성이 악한 것들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자기보신적이야. 각오도 부족하군.’
은혁은 이들을 거두지 않기로 했다.
“뭐, 그러시든가요. 그럼 각자 행동하죠. 저는 먼저 갑니다.”
은혁은 두 번 말하지 않고 먼저 교실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교실에 남은 이들 중 목소리 큰 몇몇이 투덜거렸다.
“체, 1층에서부터 잘난 척하더니 무슨 충성 맹세를 하래?”
“지가 무슨 왕인 줄 아나.”
“우리끼리 힘을 합쳐서 살아남읍시다!”
은혁의 등 뒤에서 교실 문을 탁 닫더니, 문을 잠그고 책상으로 바리케이드를 쌓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가 나쁘진 않군.’
즉, 1반에 남은 9명은 바리케이드를 쌓고 살인귀를 상대하기로 마음먹은 듯하다.
‘살인귀가 딱 하나라면 나쁜 전략이 아니지만…….’
문제는 살인귀가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다.
띠리링…….
흐르는 듯한 피아노 선율이 3층에서 울려 퍼졌다.
그리고.
“끼히히히! 놀자! 놀자아!!”
“흐아악!”
“엄마! 엄마아아!!”
3층에서 괴성과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음악실의 소녀.’
음악실 근처에서 목소리를 내면 나타나는 귀신이다.
악령 타입의 몬스터이므로, 성직자, 성기사, 또는 마법 무기 소유자가 아니면 피해를 전혀 줄 수 없다.
섣불리 힌트를 찾으러 돌아다녔다가는 귀신만 깨우는 것이다.
그리고 깨어난 귀신은 주변을 배회하며, 교실에 뭉쳐 있는 이들을 죽일 가능성이 높았다.
‘일단 본관 밖으로 나가야 해.’
은혁은 동쪽 계단을 통해, 1층으로 주저 없이 이동했다.
현관에서 좌우를 살핀 뒤 대기하자, 염훈이 곧 나타났다.
“허억, 허억. 강은혁!”
염훈은 몸 곳곳에 피를 묻힌 상태였고, 크게 놀란 상태였다.
“여긴 완전 미쳤어. 시발 진짜 귀신 새끼들이 막 튀어나오는데……!”
“진정해라.”
은혁은 염훈의 손을 잡더니, 그의 손을 이마에 갖다 댔다.
“너 자신한테 [정화] 스킬 써.”
“에?”
“시키는 대로 해.”
염훈은 손에 집중한 [정화] 스킬을 자신의 이마에 썼다.
화악…….
신성한 황금빛이 염훈의 이마에 머무르는가 싶더니, 염훈은 빠르게 진정했다.
“와, 이게 되네?”
“히든 이펙트까진 아니고, 너는 불패불굴의 성기사니까.”
본래 [정화]는 오염된 물질만 정화시키는 스킬이다.
단, S급 직업인 불패불굴의 성기사는 자신의 흔들리는 정신력조차도 [정화] 스킬로 회복시킬 수 있다.
“자, 일단 앉아서 쉬자.”
두 사람은 현관 뒤편에 각자 편한 자세로 앉았다.
“이제 어떻게 하지? 사람들을 모아서 힘을 합칠까?”
“그건 어려워.”
여긴 헬 난이도였다.
이지, 노멀, 하드의 경우 힘을 합쳐 던전을 클리어하는 게 정석이지만, 3층은 공포 그 자체를 자극하는 층이고, 분열적인 요소가 컸다.
다른 이들이 은혁의 말을 듣겠다고 [맹세]를 한다면 노력을 해 보겠지만, 대부분 그것을 거부할 터였다.
“3층 헬 난이도가 악랄한 이유는, 섣불리 믿고 협력하려 들면 오히려 더 빨리 망한다는 점이야.”
“그렇구나. 그럼 우린 어쩌지?”
“저기 체육관 보이지?”
은혁은, 자신의 몸이 현관밖에 나가지 않도록 조심하며 별관을 가리켰다.
“내가 신호하면 저기로 뛰는 거야.”
“지금 가지 않고?”
“음. 아직이야.”
그때, 2층이 소란스러웠다.
쨍그랑!
와장창!
석고상 따위를 바닥에 던지고 깨뜨리는 소리와 창문 깨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그리고 참극이 시작됐다.
“죽어!”
“너나 죽어, 이 개새끼야!”
“비켜! 탈출권은 내 거야!”
플레이어끼리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작됐군.’
은혁은 씁쓸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 * *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힌트를 찾아 돌아다녔고, 곳곳에서 힌트를 찾아냈다.
“찾았다!”
“나도!”
힌트는 푸른 종이에 적혀 있었다.
-13번 힌트 : 지하실은 위험하다. 하지만 미술실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24번 힌트 : 미술실의 조각상 속에는 아이템 교환권이 잔뜩 있다. 조각상을 깨면 얻을 수 있다.
-45번 힌트 : 미술실을 지배하는 자, 학교를 지배하리라.
꽤 많은 힌트들이 미술실을 가리켰고, 20명 가까이 되는 플레이어들이 하나둘, 2층 미술실에 모였다.
미술실은 넓었고, 책상, 캔버스, 석고상이 적당한 간격으로 있었다.
그리고 창가 쪽에는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의 초상화가 100개 이상 걸려 있었다.
“우와, 초상화 겁나 기분 나쁘네.”
“지금 초상화가 문제야? 귀신이 숨어 있을지 모르니까 조심해.”
“일단 석고상부터 나눠서 찾아보죠.”
“아이템 혼자서 전부 독식하는 새끼는 뒈진다.”
그리고 앞 다투어 석고상을 깨며 아이템을 찾아냈다.
“오, 있다!”
“아이템 교환권 발견!”
“힌트 쪽지에 적힌 그대로군요!”
그들은 주문서 형태의 교환권을 발동했다.
그러자 아이템으로 바뀌었다.
문제는 그 아이템의 정체였다.
-참극의 나이프 :
4성급 아이템.
매우 예리한 힘이 담긴 마력의 나이프다.
귀신마저도 죽이는 게 가능한 위력.
이 나이프를 이용하여, 이 나이프를 지닌 다른 플레이어를 모두 죽이면 탈출권을 얻을 수 있다.
탈출권 보유자는 3층 메인 미션과 게이트 미션을 클리어한 것으로 간주한다.
주의 : 저주받은 아이템! 한 번 장착하면 24시간 동안 해제 불가!
서로 죽이기를 권장하는 나이프였다.
이 자리에 모인 플레이어들은 모두 동일한 참극의 나이프를 얻은 참이었다.
플레이어들은 주춤주춤,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저기, 일단 다들 진정해.”
한 궁술사가 나섰다.
그는 ‘C+급 직업 냉철한 궁술사’로, 탑 바깥에서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던 사내였다.
감정이 격해지기 전에 사람들을 진정시키는 법을 알고 있었다.
“다들 무슨 생각 하는지 알겠지만, 지금 이건 함정이 아니라 행운이야.”
“행운이요? 이 아이템이 무슨…….”
“들어봐. 아이템 설명 보니까 4성급 마법 무기인데, 이걸로 귀신들도 죽일 수 있대.”
궁술사의 말에 플레이어들은 경계하면서도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요?”
“그러니까 우리끼리 경계하지 말고, 서로 힘을 합쳐서 학교의 귀신들을 죽이러…….”
“히히. 싫어…….”
“뭣?! 지금 누구야?!”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또 속삭였다.
“아, 저기 머리 긴 여자 지금 수상해.”
머리 긴 여자 플레이어가 흠칫했다.
“저, 저 아무것도 안 했어요!”
“잠깐, 아무나 입 열지 마. 함부로 움직이지도 말고! 일단 진정……!”
“저기요! 아까부터 저 여자 슬금슬금 움직이잖아요! 저 여자부터 말리든가!”
“그러니까 큰 소리 내지 말라고 했잖아!”
“아, 진짜다! 저 여자 뭘 하는 거야?!”
실제로, 머리 긴 여자는 슬금슬금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자의로 움직이는 건 아니었다.
“히익?!”
무언가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살살 당기고 있었다.
“뭐야, 저거! 스킬이야?!”
“아, 아녜요! 도와줘요!”
“아냐. 이 여자가 거짓말하는 거야. 죽여, 죽여 버려. 죽여죽여죽여.”
“흐, 흐아아아!!”
공포를 이기지 못한 누군가가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