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 비밀 상점
“자, 봐 봐.”
체리가 꺼낸 것은 성기사 전용 갑옷과 마법사용 스태프였다.
“지금 입어 봐.”
은혁이 염훈에게 말했다.
“이, 이건.”
염훈이 봐도 성기사용 갑옷은 엄청나게 좋은 물건이었다.
은빛의 갑옷은 세련되면서도 다부진 전신 갑옷이었다.
‘수호의 천사 지크리엘의 갑옷.’
5성급 아이템으로서, 방어력이 매우 높았다.
“보기보다 가벼워……!”
성기사에게 어울릴 법한 육중한 갑옷처럼 보였지만, 신성한 강철로 만들어졌기에 무게는 매우 가벼웠다.
“방어력이 높고 가벼울 뿐만 아니라, 고유 스킬이 있어.”
체리가 설명했다.
‘지당하신 말씀.’
은혁이 속으로 웃었다.
‘[신성한 날개] 스킬.’
중력, 관성, 공기 저항 따위를 싹 다 무시하는 고속 기동의 날개를 생성하는 스킬이다.
성좌급 고위 천사의 기동력에 결코 꿇리지 않는 비행 능력을 얻게 된다.
100% 컨트롤하려면 레벨이 올라야 하지만, 저레벨에서도 압도적인 기동력과 비행 능력을 선사한다.
“와, 쩐다. 3층에서 이런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니, 사기 아니야?”
염훈이 기쁨 반 충격 반으로 그렇게 중얼거렸고, 체리가 설명했다.
“그야 헬 난이도의 비밀 상점이니까. 난이도가 비정상적인 만큼, 그만큼 보상도 좋아야지. 뭐, 나 같은 상인은 세상에 둘도 없겠지만. 후훗.”
그러자 은혁이 슬쩍 소곤거렸다.
“공짜도 아니면서…….”
체리가 은혁을 쓰윽 노려봤다.
“불만이라도?”
“응.”
“뭔 불만?”
“일단, 이 지팡이는 필요 없어.”
은혁이 지팡이를 반품했다.
“아니, 왜? 그건 프에리품의 지팡이! 고명한 마법사의 자아가 깃든 에고 스태프라고!”
그랬다.
마법사의 자아가 깃들어, 마법사에게 가르침을 주는 희귀한 지팡이였다.
하지만.
‘그 고명한 마법사가 주는 낡은 가르침보다, 회귀자인 내 지식이 훨씬 낫다.’
무엇보다 프에리품은 60층 무렵에서 죽은 고위 마법사지만, 은혁은 회귀 전 99층에서 죽은 플레이어다.
100층탑의 지식은 넘쳐났다.
“그러니 다른 걸로 바꿔 줘.”
“어떤 걸로?”
“가령, 음…….”
은혁은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고 고뇌하는 표정을 지었다.
“뭐…… 봉인된 마검이라든가. 뭐, 그런 것도 좋겠지.”
“……!!”
“봉인되어서 쓸 수 없는 폐품을 받아가겠다니. 아, 난 참 양심적이야.”
“어, 어떻게 그걸……!”
“내놔.”
은혁이 손을 내밀자 체리는 마지못해 락커룸 상점을 뒤졌다.
그리고 가장 깊은 곳에 숨겨 뒀던, 봉인된 마검을 내밀었다.
‘됐다. 이 무시무시한 물건을 3층에서 얻게 될 줄이야!’
은혁은 처음으로 부들부들 떨었다.
-봉인된 마검 :
위대한 존재가 사용하던 마법 검.
악을 멸하기 위해 모든 것을 불사른 위대한 존재는, 자신이 악에 물드는 것을 경계했다.
하여, 그 존재는 자신과 자신의 검을 하나로 합쳐 봉인했다.
봉인된 상태일 때는 어떤 마법적 효과도 없다.
실제로 봉인된 마검을 들여다보면, 녹슬고 손때 탄 낡은 장검으로만 보인다.
하지만 은혁은 이 검의 진짜 정체를 알고 있었다.
“흥! 흥! 어차피 그 누구도 봉인을 해제하지 못한 검 따위, 가져가거나 말거나.”
체리는 툴툴거렸다.
은혁은 히죽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봉인을 정상적으로 해제하려고만 하니까 쓸 줄 모르는 거지…….”
“엇! 당신! 이 검의 봉인을 푸는 법을 알아?!”
“알아서 뭐 하게? 이젠 내 건데.”
“그, 그치만.”
“어차피 알아도 안알랴줌.”
“이…… 이……!”
‘그러게 고객한테 마음 좀 곱게 썼어야지.’
돈이 없다는 걸 알자 안색을 확 바꾸는 체리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서 은혁은 적당히 약 올리고 염훈을 데리고 나가기로 했다.
“이 악덕 고객들! 가버려!”
체리는 락커 속에서 체리가 든 그릇을 꺼내더니, 소금을 뿌리듯 체리를 뿌려댔다.
“아얏.”
체리 알갱이 몇 개는 염훈의 머리에 부딪혔지만.
“날름!”
은혁은 날아오는 체리를 입으로 받아먹었다.
“음, 맛있네. 펫! 씨는 여기 있다. 가자, 염훈.”
은혁은 염훈을 데리고 탈의실 밖으로 나가서 문을 닫았다.
체리는 얄미워서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 * *
은혁은 염훈을 데리고 별관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에는 왜 올라가?”
“본관 옥상으로 가려고.”
“엥?”
“그래야 3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지.”
그랬다.
3층 메인 미션은 본관 옥상에 도달하는 것이다.
“별관 옥상에 간 다음, 네 [신성한 날개] 스킬로 단숨에 본관 옥상으로 날아가는 거야. 그럼 미션 클리어. 쉽지?”
“……아! 그렇구나!”
염훈은 그제야 자신이 새로 얻은 갑옷의 가치를 깨달았다.
‘보통 옥상으로 올라간다 그러면 계단으로 올라가는데, 옆 건물 옥상에서부터 냅다 날아서 가는 방법을 떠올리다니.’
깊이 생각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긴 하지만, 은혁은 그게 매우 자연스러웠다.
“본관 옥상으로 넘어가면 마음의 준비 해둬라. 서영후 그 새끼랑 싸움이 시작될 테니까.”
서영후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아마 본관에 숨어서 기회를 노릴 것이다.
‘그 개자식. 약자들만 골라 죽이면서 힘을 키우고 있겠군.’
회귀 전에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그러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회귀 전과는 조금 다른 점은, 좀 더 노골적이고 잔혹한 방식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 * *
“허억, 허억…….”
본관에 남은 유일한 생존자는, 학교 건물 외벽 수도관을 붙잡고 옥상으로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더, 더 빨리…….’
운동장의 키다리 귀신은 그 유일한 생존자를 구경하며 방긋방긋 웃었다.
“두발 합격. 복장 합격.”
키다리 귀신은 물러갔다.
‘됐다! 성공이야!’
그랬다.
그 유일한 생존자는 학교를 돌아다니며 숨겨진 아이템인 ‘교복’을 찾아냈다.
그리고 머리카락을 스스로 짧게 잘랐다.
키다리 귀신은 두발과 복장 검사를 하는 귀신이었기에, 기준에 들면 공격하지 않았던 것이다.
철그렁.
교복 차림의 그 생존자는 옥상 펜스를 움켜쥐었다.
‘다, 다 올라왔다!’
이제 펜스만 넘어가면 옥상에 도달한 게 되어 메인 미션 클리어다.
하지만.
스르륵.
옥상 위의 그림자가 사람 형상으로 변하더니, 히죽 웃었다.
“제법 머리 썼네? 하지만 반칙.”
서영후였다.
서걱!!
그림자가 칼날처럼 변하더니, 펜스와 생존자를 동시에 절단해 버렸다.
후두둑……!
생존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었다.
“자, 본관 청소는 끝.”
그러자 서영후의 귀에 꽂힌 통신기에서 토끼 가면이 투덜거렸다.
“이보세요, 서영후 님. 기껏 그림자의 힘을 강화했으면서 왜 여태 본관에 있습니까? 즉시 별관으로 가세요!”
“거 시끄럽네. 난 완벽주의자라고. 준비는 철저히 해야지?”
“준비……?”
서영후는 은혁과 염훈을 즉시 죽이러 가지 않았다.
본관의 생존자들을 모두 죽여서 도적 숙련도를 최대한 높였다.
뿐만 아니라…….
‘열쇠를 모두 파괴했다.’
3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려면 옥상에 가야 했다.
그리고 잠긴 옥상 문을 열려면 힌트를 모아 열쇠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서영후는 토끼 가면의 부하가 되어, 힌트 없이도 열쇠의 위치를 모두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열쇠들을 모조리 없앴지. 히히히! 이젠 누구도 옥상에 올라오지 못해!’
서영후 자신은 이미 클리어 판정을 받은 상태이므로 언제든 4층으로 갈 수 있었다.
“철두철미하군요. 솔직히, 당신처럼 남들 훼방을 잘하는 사람은 처음 봅니다.”
토끼 가면이 순수하게 감탄했다.
“흐흐흐! 이제야 알아봐 주시는군.”
서영후는 토끼 가면의 칭찬을 듣자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마다 그림자가 짙어지고, 숙련도가 조금 상승했다.
그만큼 마음도 어둠에 물들었으며 토끼 가면에게 영혼이 서서히 잠식당하는 중이었지만.
“놈들이 별관에서 뭔 짓을 하건, 놈들은 이제 3층 메인 미션을 절대 클리어하지 못……!”
그때였다.
휙!
서영후의 머리 위로 뭔가가 날아가는가 싶더니.
“야, 야, 비행 좀 잘해!”
“잘하고 있잖아!”
“착륙을 잘하라고!”
은혁과 염훈은 티격태격하더니 추락 비슷한 착륙을 했다.
우당탕!
“아이고오.”
염훈과 은혁은 팔꿈치나 무릎을 문지르며 옥상에서 일어났다.
“뭐……!”
서영후는 눈앞에 펼쳐진 일을 보고 경악했다.
새로운 성기사 전용 갑옷을 입은 염훈의 등 뒤로 황금빛 날개가 있었다.
‘하늘을 날아서 옥상에 왔다고……?’
그랬다.
은혁과 염훈은 서영후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별관 옥상에서 수직으로 높이 상승했다.
그 상태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본관 옥상으로 이동, 착륙한 것이다.
“다, 당신들……!”
서영후는 진상을 깨닫고 부들부들 떨었다.
모처럼 본관의 옥상 열쇠를 일일이 찾아서 파괴했더니만, 그건 시간 낭비였다.
두 사람은 옥상 문을 통하지 않고 날아서 왔으므로.
“오, 안 보인다 했더니, 오랜만이군요.”
은혁이 손을 들어 보이며 안부를 물었다.
은혁은 서영후의 상태를 한 번 쓱 보는 것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비정상적으로 많은 그림자를 두르고 있군. 저놈은 이 학교의 어둠에 스스로 잠식된 건가.’
은혁은 쓴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결국 토끼 가면의 부하가 된 모양입니다?”
“닥쳐!!”
서영후는 착한 척 따윈 벗어 던지고 은혁에게 화를 냈다.
은혁의 얼굴을 보는 순간, 2층에서 당했던 귀의 화상 자국이 욱신거렸다.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염훈이 대신 짜증을 냈지만, 은혁은 그를 말렸다.
“야, 왜 말려? 저놈 저거, 온몸이 피투성이인 거 안 보이냐?”
염훈이 화를 냈다.
서영후의 몸에는 다른 플레이어들을 죽이고 뒤집어쓴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저 새끼는 이미 다른 사람을 잔뜩 죽인 놈이라고! 저런 새끼한테 욕을 안 하면……! 읍읍……!”
“진정해라.”
은혁은 염훈의 입을 틀어막았다.
직업이 성기사인 염훈이 과도하게 욕을 해 봤자 숙련도 올릴 때 좋을 게 없었다.
“자, 그럼.”
은혁은 서영후를 무시하고 4층 올라가는 게이트에 접근했다.
-3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메인 미션 클리어 보상으로, 게이트 미션이 개방됩니다!
<3층 게이트 미션 : 네임드 마정석 획득.>
-목표 : 학교에 존재하는 귀신들과 관련된 괴담 하나를 해결하거나, 귀신을 처치하여 네임드 마정석을 하나 확보할 것.
-보상 : 게이트의 개방.
그리고 그 즉시.
-축하드립니다! 3층 게이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그랬다.
은혁은 이미 물귀신을 죽이고 그 네임드 마정석을 지니고 있었다.
위잉……!
4층 올라가는 게이트가 열렸다.
그걸 본 서영후가 기겁했다.
“뭣?!”
“물귀신을 죽이니까 마정석이 나오더라고요.”
은혁이 굳이 위험하게 운동장을 가로 질러 별관에 간 이유 중 하나는, 네임드 몬스터인 수영장의 물귀신을 염훈과 단둘이 안전하게 처치하고 그 마정석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별관에 가는 것은 쉽지 않지만, 대신 서영후의 방해를 걱정할 필요가 없으므로.
만약 서영후가 레이더를 얻자마자 은혁과 염훈을 방해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때는 서영후에게 승산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영후는 나름 머리를 쓴다고 본관의 옥상 문 열쇠를 파괴하는 데 시간을 낭비했다.
‘즉, 서영후 네놈 본성은 딱 그 정도 수준이라는 거다.’
은혁은 눈빛으로 생각을 전했다.
‘회귀자인 내가 3층 구역을 모두 숙지하고, 네 본성까지 다 예측하고 있는데 네 방해 공작에 내가 밀리겠냐? 딴에는 열쇠를 부숴서 옥상 문을 못 열게 만든다고 했겠지만, 우린 비행으로 날아왔다.’
“그럼 안녕히. 얼른 가자, 염훈.”
은혁은 등을 보였다.
그러자 은혁의 예상대로 서영후는 기습을 걸어 왔다.
쉬익!
챙!
염훈의 은도금 장검이 은혁의 등을 지켰다.
‘한 방 정도는 맞아 주려고 한 건데.’
은혁은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염훈에게 고맙다는 눈짓을 해 보였다.
그리고 서영후를 추궁했다.
“지금 이게 무슨 짓이죠?”
“뭐겠냐, 기습이지. 이 재수 없는 새끼야.”
서영후는 히든 미션의 조건인 ‘다른 플레이어가 옥상에 도달하기 전에 죽일 것’을 실패했다.
이젠 서영후의 영혼은 토끼 가면에게 완전히 종속될 터였다.
‘상관없어.’
서영후는 미션이고 뭐고 은혁과 염훈에 대한 미움만 가득했다.
-플레이어가 몬스터로 변이를 일으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