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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모든 직업-14화 (14/434)

14화 : 튜토리얼 클리어

“거, 너무하네!”

“뭔 장벽이 저리 악랄하지?”

“아예 장벽을 때려 부숩시다!”

“그럽시다! 저 사람 내려오라고 한 다음, 힘을 합쳐 이놈의 장벽을 때려 부숴 버리자고요, 씨X!”

은혁의 회귀 전 때와 비슷한 진행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안 됩니다.”

염훈이었다.

“저 녀석은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습니다. 믿어주시길 바랍니다.”

은혁을 가장 도와주고 싶은 건 염훈이었다.

하지만 염훈은 은혁이 처절하게 장벽을 기어오르는 모습을 보며 뭔가를 느꼈다.

‘올라가라, 강은혁. 너는 오를 수 있는 놈이야.’

그렇게 생각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올라야만 하는 놈인 것 같다. 너란 녀석은.’

염훈의 소리 없는 응원을 받으며 은혁은 더 올라갔다.

5미터.

3미터.

1미터.

그리고 지금 마침내…….

“끄응.”

손을 뻗어 정상의 모서리를 붙잡았다.

“흐으읍…….”

은혁은 몸을 끌어당겼다.

“……도착!”

그러고는 정상 위에 드러누웠다.

-축하드립니다! 올해의 플레이어 중 최초로 정상에 도착하셨습니……!

은혁은 시스템 메시지를 걷어치웠다.

“으와아아아아아!!”

그리고 정상에서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보고 있냐, 이 개새끼들아!!”

은혁은 하늘을 향해 외쳤다.

스카우터들이 보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만 외치는 게 아니었다.

자신보다 높은 곳에 있는 플레이어, 몬스터, 성좌들에게 외치고 있었다.

“나는 강은혁이다!! 나는!!”

은혁은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나는 100층을 정복하기 위해 여기 섰다!! 내가 바로 100층을 정복할 자다!!!”

그랬다.

그것이 은혁의 회귀 목표였다.

‘물론 염훈처럼 소중한 동료를 지키겠다는 목표도 있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들, 착한 사람들만 우선 지키겠다는 각오로는, 진정한 뜻을 이루기에 조금 부족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은혁은…….

‘압도적인 강함, 비정상적인 빠르기로 100층탑을 완전 정복해 보이겠다!!’

그것이 모두를 구하는 길이기도 했다.

“으와아아아아아!!!”

은혁이 한 번 더 포효했다.

일부러 은혁이 이 장벽을 오른 이유는, 자신의 각오를 표출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오르는 자다.’

오르는 과정에서 미끄러지더라도, 아득바득 기어올라 기어코 정상에 서는 자.

그게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튜토리얼의 마지막에서 외치고 싶었다.

“으음.”

쉬지도 않고 소리를 질러서일까.

은혁은 가벼운 어지럼증을 느끼며 주저앉았다.

-축하드립니다! 4층 메인 미션을 클리어하셨습니다!

-클리어 보상으로 50 골드를 획득하셨습니다!

정상 클리어 보상으로 450 골드를 추가로 획득하셨습니다!

“하핫.”

100층탑에서는 1골드가 5만 원 정도의 가치가 있다.

즉, 합치면 2,500만 원 상당의 보너스를 획득한 셈이다.

‘초반치곤 엄청 큰돈이지.’

와아아아……!

장벽 아래에서 환호성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에게도 클리어 판정과 함께 50 골드씩 지급되었을 것이다.

“강! 은! 혁!”

“강! 은! 혁!”

그들은 강은혁의 이름을 연호했다.

쉽게 50 골드를 벌어서가 아니었다.

은혁이 아득바득 꼭대기까지 오르는 그 모습에 순수한 감동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핫.”

은혁은 장벽 귀퉁이에 앉아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 순간.

-5층으로 전송됩니다!

* * *

플레이어들은 매우 거대한 체육관 같은 곳으로 전송되었다.

-5층 : 길드연합국.

“우왓.”

“여긴……!”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은혁이 속해 있던 튜토리얼 4구역을 포함, 총 26구역의 플레이어들이 한 번에 공용 체육관으로 전송됐기 때문이다.

인원수는 약 4,800명.

1층에서 전원이 전멸한 12구역도 있고, 400명이 모두 살아남은 26구역도 있었다.

한국인으로만 구성된 구역이 있는가 하면, 남자만 있는 구역도 있었고, 교도소에서 무작위로 선발된 구역도 있었다.

각국의, 각양각색의 플레이어들은 서로를 경계하며 두리번거렸다.

그때, 연단 위에 불이 켜지더니, 나풀거리는 핑크빛 드레스 차림의 여인이 나타났다.

“튜토리얼을 완수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연단 위의 여인은 관리자 중 한 명이었다.

100층탑 관리국은 100층탑의 신적 존재, 이른바 성좌들과 어깨를 견주는 존재다.

미션의 난이도, 미션의 보상과 페널티, 몬스터의 리스폰 주기 등등을 조율할 정도의 막강한 권한을 지닌 집단이었다.

그 관리국에서 신규 플레이어를 위한 설명회에 요원을 파견한 것이다.

“저는 아이리스 매켄이라고 합니다. 아이리스라고 불러주세요.”

여인은 빙긋 웃었다.

“5층에서부터 본격적인 100층탑 생활이 시작됩니다. 이곳에서, 여러분은 자유입니다. 5층에 머물며 일하며 사는 것도, 100층탑의 정상을 향해 오르는 것도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이에 관한 설명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식사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위잉…….

거대한 체육관 뒤편이 열리더니, 임시 뷔페 식당이 나타났다.

사람이 한 곳에 몰리지 않게, 여러 줄로 나뉘어 이용할 수 있게 세팅도 완벽했다.

“오옷.”

“꼴깍…….”

반나절 동안 아무것도 못 먹은 이들이 대다수였다.

“테이블을 마련하지 못한 점, 양해 드립니다. 죄송하지만 바닥에 앉아 드셔주시길 바랍니다.”

아무도 거기에 불만을 품지 않았다.

“자, 그럼 편히 식사하시길.”

아이리스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우르르……!

사람들은 식사를 하러 움직였다.

“가자, 염훈.”

“진짜 먹어도 되는 걸까?”

염훈은 의심을 버리지 않고 조금 머뭇거렸다.

“염려 마. 방금 무료라고 했으니까.”

관리국 요원은 플레이어에게 절대 거짓말하지 못한다.

“일단 먹자!”

은혁과 염훈은 접시를 들고 먹고 싶은 걸 잔뜩 담았다.

스크램블드에그, 탕수육, 볶음밥, 소시지, 치킨 등등.

‘사양 않고 먹는다는 건 이런 거다!’라고 온몸으로 외치듯 음식을 담았다.

두 사람은 벽 쪽에 앉아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다.

접시의 절반쯤을 비우고 나자 염훈은 감회가 새롭다는 듯이 말했다.

“진짜 묘한 하루였어. 100층탑에 들어오고 나서 8시간도 지나지 않은 거잖아?”

그랬다.

도중에 배경이 밤이 되기도 했지만, 실제 시간은 8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샤워를 마친 순간 갑자기 1층으로 전송되고…… 운 좋게 너를 만나서, 이렇게 밥을 같이 먹다니.”

염훈은 칠리 소스를 뺨에 묻힌 얼굴로 은혁을 물끄러미 보았다.

“왜?”

“고맙다고.”

“어휴, 뭘 새삼스럽게.”

“진짜로, 내가 널 안 만났다면 난 진작 죽었겠지.”

염훈은 진지하게 말했지만 은혁은 양심이 조금 찔렸다.

‘내가 없었어도 넌 살아남는데.’

은혁이 없었어도 염훈은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회귀 전에도 그랬으니까.

거기에 대해 더 말하기 껄끄럽다고 생각한 그때, 배달부 NPC들이 곳곳을 돌아다녔다.

한 여자 배달부가 은혁에게 다가왔다.

“실례합니다. 강은혁 님?”

“네, 맞는데요.”

“배달 왔습니다~.”

여자는 편지 봉투를 내밀었다.

편지가 여러 장 들어 있는지 두툼했고, 봉투에는 도장이 일곱 개 찍혀 있었다.

“어떤 분이 보낸 건가요?”

그 말에 여자 배달부는 빙긋 웃었다.

“편지 봉투에 적혀 있지 않다면, 답해드릴 수 없습니다.”

“흠, 그렇군요. 고마워요.”

은혁은 편지 봉투를 받았고, 배달부는 떠났다.

“안 뜯어봐?”

염훈이 물었지만 은혁은 고개를 저었다.

‘뜯어보나 마나지.’

편지 봉투에 찍힌 일곱 개의 도장은 길드 마크였다.

‘7대 길드 스카우터들이구만.’

도장 찍힌 편지 봉투에 든 것은 가입 권유 내용이 담긴 초청장이었다.

‘도장 7개가 전부 찍힌 건 이례적이긴 하군.’

겉봉에 도장 7개가 전부 찍혔다는 건, 7대 길드 전체가 은혁을 원한다는 뜻이었다.

‘귀찮네. 초반에는 내가 7대 길드를 이용하거나 할 일도 없는데.’

은혁은 편지를 인벤토리창에 휙 던졌다.

그동안, 꽤 많은 플레이어들이 초대장을 받았다.

A급, S급들은 7대 길드 중 한두 곳, 또는 동시에 서너 곳의 도장이 찍힌 초대장을 받았다.

급이 낮아도 열심히 한 이들도 드물게 편지를 받았다.

“와, 부럽네.”

“저거 7대 길드에서 스카우트하는 거라며?”

“7대 길드? 그게 뭔가요?”

“저도 잘은 모르는데, 여기서 가장 잘 나가는 큰 길드라네요.”

“튜토리얼 좀만 더 열심히 할걸.”

눈치 빠른 사람들은 편지를 받은 이들을 부러워했다.

“야, 은혁아. 네가 받은 편지 엄청 대단한 건가 봐?”

도장이 7개 찍힌 사람은 은혁이 유일했다.

“뭐, 직업이 여러 개다 보니 특이해서 접촉해 오는 거겠지.”

“그러고 보니 넌 스킬 여러 개 쓰더라. 그거, 엄청 대단한 거 아니야?”

“자세한 건 비밀이고, 언젠가는 12개의 기본 직업 스킬을 모두 쓸 수 있을 거다, 라고만 해 두지.”

“와…….”

은혁에게 감탄한 염훈은 내심, 나한테는 편지 안 오나 하고 목을 학처럼 길게 뺐다.

그 순간.

“저기요.”

“어? 나도 주는 거?!”

염훈도 다른 배달부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다만 염훈의 초대장에는 도장이 2개만 찍혀 있었다.

‘문양을 보니 정의 길드와 상승 길드군.’

아마 성기사로서의 면모 때문일 것이다.

염훈이 바로 뜯으려 하자 은혁이 일단 말렸다.

“지금 뜯지 마.”

“왜?”

“수상쩍으니까. 좀 신중하자는 거지.”

“너무 신중한 거 같은데.”

염훈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은혁의 말을 따랐다.

잠시 뒤.

사람들의 배가 차고, 식기가 다 치워졌다.

아이리스가 다시 연단 위에 섰다.

그녀는 바로 설명에 들어갔다.

“여러분이 계신 이 장소는 7대 길드가 연합하여 만든 길드연합국 총의회의 지하 광장입니다.”

길드연합국이라는 표현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길드는 알겠는데, 길드연합국?”

“길드끼리 연합해서 나라를 만들었다 이건가……?”

그 말에 아이리스가 빙긋 웃었다.

“맞습니다. 100층탑의 대부분은 험난한 시련과 게임, 대결의 장이지만, 드물게 살기 좋고 넓은 층도 있습니다. 특히 이곳 5층은, 플레이어들이 자주적으로 연합하여 만든 최초의 국가, 길드연합국입니다!”

아이리스는 참 대견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녀는 5층에 관해 간략히 설명했다.

5층의 총 면적은 약 100제곱킬로미터 정도 되고, 인구수는 플레이어, NPC 포함하여 약 158만 명.

서울을 기준으로 설명하자면, 5층의 크기는 서울의 6분의 1 정도에, 인구수는 8분의 1쯤 된다.

“100층탑에 처음 들어온 플레이어들은 매우 막막했답니다.”

아이리스는 길드연합국의 역사를 간략히 설명했다.

“몬스터가 넘쳐났고, 너무나 가혹한 환경이었죠. 그래서 이상을 품은 7인의 위대한 플레이어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5층에 7개의 길드를 창설하고, 연합하여 ‘길드연합국’을 세운 것입니다.”

이번에도 ‘위대한’이라는 표현을 쓸 때, 대견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스크린에는 길드명이 떠올랐다.

“길드연합국을 구성하고 있는 7대 길드는 다음과 같습니다.”

-정의 길드

-상승 길드

-행복 길드

-평화 길드

-자유시장 길드

-구원 길드

-연구 길드

길드명을 본 플레이어들은 웅성거렸다.

“뭔 길드명이 다 저러냐?”

“너무 평범해서 좀 이질적인 듯?”

“행복 길드랑 평화 길드가 가장 좋아 보이네.”

‘풉.’

은혁은 혼자 실소했다.

7대 길드의 길드장들은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무척 강했다.

그리고 저마다의 이상을 지니고 있었다.

‘좀 독선적인 이상이라는 게 문제지.’

그래서 은혁이 정한 방침은, 적어도 초반에는 7대 길드와 가급적 얽히지 않는다, 라는 것이었다.

어느새 아이리스의 설명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미 다 아시겠지만, 100층탑의 세계는 현실과 게임의 중간쯤 되는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각자의 이상을 추구하시길 바랍니다. 그럼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몇몇이 손을 들었다.

“왜 하필 우리가 100층탑으로 소환된 겁니까?”

“기본적으로는 무작위로 선정하여 소환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관리국의 판단하에 조정하기도 합니다. 사실상 랜덤이라고 이해하시길.”

“우린 정말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100층탑에 소환하고 플레이어로 만든 목적은 뭔가요?”

“그 해답을 찾는 것 또한 100층탑 등반의 목적 중 하나겠지요.”

“여기서 돈은 보통 어떻게 법니까?”

“플레이어의 경우, 대부분 몬스터 사냥으로 돈을 법니다. 온라인 게임 등을 해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요.”

“혹시, 탑을 더 오르지 않아도 됩니까?”

“여러분이 탑을 오르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여러분께 불이익이 가해지지는 않습니다.”

“100층에 도달하면 여기서 나갈 수 있다고 들었는데요. 사실인가요?”

“네. 그건 사실입니다.”

“100층에 도달하면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끝인가요? 아니면 더 큰, 엄청난 보상이라도?”

“후훗. 그것은 100층에 도달한 이후의 즐거움으로 남겨두죠.”

이런저런 자잘한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고, 아이리스는 마무리했다.

“이상으로 설명회를 마칩니다.”

설명회는 끝이 났다.

플레이어들은 박수를 쳤다.

그 순간.

철컹…….

뷔페가 있었던 곳의 큼직한 셔터가 열리고, 5층으로 나가는 길이 나타났다.

“나가자.”

은혁은 염훈을 데리고 나갔다.

4,800명 중 절반 정도는 즉시 움직였고, 나머지 절반은 조금 머뭇거렸다.

저벅저벅…….

오르막길을 걸어 나가니, 5층 세계가 펼쳐졌다.

“……와.”

“진짜 게임 같다…….”

5층의 광경은 현대의 서울과 중세 판타지 세계 속 대도시, 그리고 근미래 SF 세계 속 장벽 도시를 뒤섞은 듯한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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